일월오봉도를 중심으로 한 궁중장식화에 대하여

일월오봉도

필자가 한국민화에 눈을 뜬 것은 건축가·민화수집연구가·민문화운동가였던 대갈 조자용(1926~2000) 선생을 만난 1970년 여름부터였다. 키 크고, 잘 생기고, 만사에 자신이 있었던 장년의 신사 조자용은 그날부터 나의 우상이었다.
영어와 일어에 능통하고, 말 잘 하고, 글 잘 쓰고, 술 잘 마시는 그는 본업인 건축업은 돌보지 않고 민화와 민속품 수집에 열정을 기울이고 있었고, 한국 최초의 민속박물관인 에밀레미술관을 만들고 있었다.
1973년 가을 문화재관리국의 문화재 전문위원이 된 나는 창덕궁소장 궁중회화조사를 했고(1977년), 덕수궁중화전 일월오봉도 보수작업에 참여하였으며(1978년), 여러 가지 도록에 민화해설문(서울시민소장 민화전, 고대박물관 민화도록 등)을 썼다. 그러면서 조자용선생과 그의 업적을 더 잘 알게 되었고 나의 민화연구도 폭과 깊이를 더하게 되었다. 특히 일제가 한일합방 이후 덕수궁중화전 어좌(용상) 뒤의 일월오봉도를 훼손한 것을 본 후에는 궁중장식화에 대한 관심을 더 갖게 되었고 궁중장식화의 최고품이라 할 수 있는 일월오봉도(일월오악도·일월도·오악도·오봉산도·오봉병·일월오봉병)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학에서 주 전공인 중국미술사 강의에 매달려 있는 동안에는 민화연구에는 아무래도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교수 퇴직 후부터(2002년) 민화연구와 민화학회 참가는 다시 시작되었다.
오늘 새삼스럽게 쓰는 는 가회민화박물관장 윤열수 박사의 권유에 의한 것이지만 좋은 기회라 여기고 쓴다.

궁중장식화의 유래와 내용

궁중장식화(장엄화)는 중국에서 하은주시대부터 시작되었고 주례에 제도화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그 후 당송시대에는 양궐(장안과 낙양의 두 궁궐)
체제의 확립과 함께 궁중장식화는 크게 번성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궁중장식화(궁궐장엄화)에 관한 기록은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의 문헌에서도 찾아볼 수 있고, 조선시대에는 개국공신인 정도전(1337~1398)의 여러 기록과 국가기록물에서도 볼 수 있다. 특히 조선왕조의 정궁인 경복궁의 여러 전각 명칭과 그 안에 장식된 회화의 내용은 전적으로 정도전에 의한 것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조선시대 궁궐의 중심건물(정전)은 경복궁의 근정전, 창덕궁의 인정전, 창경궁의 명정전, 경희궁의 숭정전, 덕수궁의 중화전이었고 기타 건물은 편전과 침전 등이었다.
장엄한 정전 내의 북쪽 벽에는 일월오봉도가 부착 설치되었고, 그 앞에는 용상이 놓여있다. 만약 왕이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타건물(예를 들면 경회루)에 가면 이동전개가 가능한 일월오봉병(병풍)을 어좌 뒤에 둘러치기도 하였다. 물론 정전의 내부(천정과 벽 등)는 화려한 물감으로 용봉그림, 산수그림, 화조그림 등이 그려졌다. 왕의 평소 집무실이라 할 편전에도 일월오봉병이 배설(排設)되었고 때로는 산수도병·사군자병·서예병·고사화병·오봉십장생도병·모란병 등이 둘러 쳐지기도 하였다. 왕의 휴식공간이며 생활공간인 침전에는 일월오봉병 대신 경직도·빈풍칠월도·모란도 등이 장식되기도 하였다. 때로는 효자도·문자도·책가도·고사도·요지연도·산수도 등이 감상과 교육용으로 설치되기도 하였다. 물론 창문과 출입문에도 용봉도·매화도·죽석도 등을 그려 화려함을 더하기도 하였다.

 
일월오봉도의 내용

왕권의 상징조형물(그림)인 일월오봉도는 중국이나 일본의 궁궐 전각에서는 볼 수 없는 조선 유일의 미술품이다. 선발된 궁중화가(궁정화가·화원화가·어용화가)에 의해 정성껏 그려진 일월오봉도는 국왕 외에 어느 누구도 사용할 수 없는 어물이었다. 즉 국왕의 권위를 상징, 강화하고 유교적 통치원리에 따른 천명을 받은 군주와 백성을 지키기 위한 천보의 상징이기도 하였다. 이런 군주의 절대권력을 상징하는 어물에는 일월도, 옥좌, 옥새 세 가지가 있었다고 하겠다.
하늘의 명령(천명)을 받아 땅(국토)과 백성을 다스리고 통일하는 매개자가 되는 군주(왕)는 언제나 일월오봉도 앞에 있어야(앉아야)하는 존재였다. 그래서 그림의 크기에 관계없이 군주는 항상 일월도와 함께 했다.
현재 남아있는 일월도는 모두 21폭인데, 표구형식은 2폭·4폭·6폭·8폭이며 그림의 형식과 구성은 같지만 크기는 각각 다르다. 제일 큰 것은 362×473㎝나 된다. 간혹 종이에 그린 것도 있지만 대부분 비단에 좋은 물감(고급 당채)으로 그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일월오봉도가 그려진 병풍의 뒷면에 해학반도(학과 복숭아)도가 그려진 것도 있다. 반도도(복숭아그림)는 유교가 아니라 도교를 상징하는 그림이어서 왕실에서 도교까지 수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불로장생의 도교사상을 받아들이고 그 상징인 천도복숭아를 그린 것이다.
일월오봉도의 형식과 구도는 단순하고 좌우 대칭적이다. 지나치게 도식적이고 정적이어서 역동감은 없다. 장엄미와 고졸미가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하면 삼국시대부터 내려오는 오악사상·불로장생사상·신선사상·음양오행사상·유가적인 천보사상 등이 복합적으로 구현되어 있다고 하겠다. 그래서 역대 선왕들의 어진(초상)과 신주를 모시는 선원전(창덕궁 內)에도 일월오봉도가 모셔져 있다.
이제 그려진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그림의 윗부분은 파란색으로 하늘을 그렸고 오른쪽(남향하고 있는 어좌로 보면 왼쪽)에는 해를 빨갛게 그렸고 왼쪽에는 하얗게 달을 그렸다. 왜냐하면 왕의 왼쪽은 동쪽이 되고 동쪽은 계절과 아침의 시작(양)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좌의정이 우의정보다 품계가 높은 것과 같다.
동양(한국)에서는 해와 달을 별개의 천체로 보지 않고 천지를 밝게 비추는 물상으로 보기 때문에 음양의 대표적 상징으로 인식되었다. 일월오봉도에서처럼 해와 달이 함께 떠있는 하늘을 호천(昊天)이라 한다. 밝은 여름 하늘에 해와 달이 함께 있으면 음양작용이 일어나고 그에 따라 만물이 생성, 변화한다. 구름과 비가 음양작용에 의해 생겨나고 그 혜택을 받은 땅 위의 인간과 만물은 무궁한 발전을 한다.
오봉(오악)은 가운데에 제일 큰 봉우리(산)를 그리고 양쪽에 중봉(중악)보다는 작은 동악과 남악, 서악과 북악을 그렸다. 중앙의 산을 동서남북에서 둘러싸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북악산(중앙인 서울의 산)을 둘러싸고 있는 금강산(동쪽), 지리산(남쪽), 묘향산(서쪽), 백두산(북쪽)을 그린 것이다. 물론 모든 산(땅)은 중악에 포용되고 중악으로부터 모든 산(천하의 모든 땅)이 분화된다는 사상을 나타낸다. 오행사상이다. 그래서 황토색의 땅 대신에 부벽준법(도끼나 자귀로 찍어낸 듯이 산의 모습을 그리는 산수화법)으로 그린다.
그리고 동악과 서악에서는 아래로 쌍폭이 힘차게 흘러내리고 있다. 힘찬 생명수라 하겠다. 이 폭포수는 그 아래에 그려진 바다의 파도(파수)와 물거품(낭수)과 함께 그림의 하반 삼분의 일을 차지하도록 그렸다. 물거품은 흰 손가락을 벌린 손처럼 그렸고, 파도는 여러 겹의 언덕처럼 짙은 초록색이나 갈색으로 그렸다. 그런데 흰 물거품(낭수)은 중악과 폭포수를 향해 그렸다. 바다가 산에 포용되는 모습이다.
이러한 오봉(오행)사상은 전적으로 중국으로부터 전해온 유교사상과 전통적인 제천사상이 혼합된 한국적인 독자성을 가진 것으로 믿어진다. 다시 말하지만 이와 유사한 일월오봉도는 중국에도 없고 일본에도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독창적인 왕권의 상징물은 틀림없이 조선개국과 함께 설치되었으며 창시자는 조선왕조를 설계하고, 경복궁을 세우고, 전각의 규모와 명칭을 정한 정도전에 의한 것으로 믿어진다.
끝으로 그림의 양쪽 가장자리에는 붉은 소나무(적송)가 두 그루씩 그려져 있다. 사철 푸르고 기운이 왕성한 소나무 가운데에서도 가장 뛰어난 적송이 그려졌음도 매우 상징적이다.
현존하는 유일한 오봉십장생도는 참으로 기이한 귀물이다. 하늘에는 해와 달이 없는 대신 흰 구름이 그려져 있고, 오봉은 부벽준법 대신 피마준법으로 그려졌다. 푸른색과 초록색을 층층이 쌓듯이 그려 한 폭의 청록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화법도 형식적이 아니라 지극히 회화적이다.
양쪽에 하얗게 그린 쌍폭도 동악과 남악 사이와 서악과 북악 사이에서 흘러내리고 있어 매우 자연스럽다. 그림 가운데의 커다란 적송 두 그루도 힘차다. 그리고 땅과 바위 사이사이에 있는 사슴과 불로초(영지버섯) 등도 사실적이다. 사슴 가운데에는 귀하고 귀한 흰사슴(백록)도 있다. 물론 해와 달이 없는 이 오봉십장생도는 어좌 뒤에 두지 않았을 것이다. 좋은 비단에 값비싼 당채를 사용하여 그린 귀물이다. 4폭 병풍이다.
불과 몇 년 전에 민화작가(원혜영)가 그린 변형일월오봉도도 봐야겠다. 전통적인 일월오봉도를 모방하여(주제·구도·화법 등) 그렸지만 각종 흉배를 여섯 개나 첨가했기 때문에 변형일월오봉도라고 이름 붙였다. 미술사에서 말하는 양식의 모방과 변형에 의해서 제작된 작품이다. 2010년에 열린 제5회 전국 민화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크기는 160×44×8, 즉 가로160㎝, 세로44㎝에 8폭의 대작이다.
현대의 민화작가라면 당연히 이런 자세로 오늘의 민화를 그려야 한다.
궁중장식화는 장식화 가운데에서는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며 민간장식화·민화의 원류와 모태가 되는 그림이라 하겠다. 또 궁중장식화 가운데에서 으뜸은 누가 뭐라해도 일월오봉도가 가장 귀한 것이다.
그리고 그 오봉도는 조선 오백년 동안에만 제작된 가장 한국적이고 독창적인 장식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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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천도구여도의 성격과 그 근대적 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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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남, 조선시대 일월오봉병에 대한 도상해석학적 연구, 일월오봉병과 정도전, 조선시대 궁모란병 연구, 궁화 궁궐속의 민화, 숙종의 건축과 예술후원, 18세기 궁중미술의 탐색
명세나, 조선시대 오봉병연구 -흉례도감의궤기록을 중심으로
박일우, 문자도의 기호학적 이해
박진희, 조선후기 회화에 나타난 상징성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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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천, 일월오악도
윤열수, 목판화 효제문자도와 강원도 문자도와의 관계, 근대시기 팔경과 구곡의 재인식
이상국, 조선후기의 호렵도, 경상도 유교문자도 연구
정병모, 빈풍칠월풍류회화와 조선후기 속화, 조선시대 백수백복도의 연원과 전개양상, 동아시아 속의 한국민화
조자용, 민화란 무엇인가
진준현, 민화 효제문자도의 기원에 대하여
한미리, 일월오악도에 대한 연구
한민수·홍종욱, 일월오악도 안료에 대한 과학적 분석
허 균, 조선후기 민화의 유형배경과 향유실태, 일월오악도의 사상적 배경에 관한 시고

 

글 : 허영환 (전 성신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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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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