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관찰자에서 창작의 연금술사로 – 홍경택 작가

 

홍경택 작가에 대한 수식어는 많지만, 민화인들에게는 특히 책가도를 모티브 삼은 서재시리즈로 잘 알려진 그가 대구보건대학교 인당뮤지엄에서 기획초대전 < Great Obsession >을 열었다.
이번 전시는 홍경택 작가의 지난 30여년의 발자취가 총망라된 일종의 회고전으로 그의 광활한 작품세계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그의 작업실에 들러 작품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창작 세계에 대해 들었다.


‘깨어있으라.’ 뭇 위인들이 강조했던 이 명언처럼 일상의 타성에 젖지 않을 때 우리는 삶 속에서 소중한 보물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홍경택 작가의 작품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펜(Pens) 시리즈, 서재(Library) 시리즈 등을 통해 크리스티경매에서 한국 작가로서 최고가 행진을 이어간 그는 눈앞에 놓인 알록달록 펜 뭉치와 민화의 대표적인 화목인 책가도 등 ‘우리와 아주 가까운’ 소재를 다뤘기 때문. 잘 알려진 대로 그의 초기작인 < Pens1 >은 2007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처음 낙찰될 당시 약 7억 원, 2013년 5월 홍콩 크리스티 아시아 컨템포러리 경매에서 약 9억 원에 낙찰돼 크리스티 경매 사상 한국 현대미술품 최고가 기록을 기록했으며 2008년 <서재2>가 6억 원에 낙찰된 바 있다.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가야할 점은 그의 업적이 단순히 ‘가격’으로 평가받아선 안 된다는 것이다. 사실 그는 “더 길었다면 스스로조차 어떻게 됐을지 모를” 10여년의 무명생활을 오롯이 감내해야했으며 1995년 경원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한 이후 유학은커녕 대학원에도 진학하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에 천착해왔다. 일례로, 행운의 트로피를 안겨준 펜 시리즈 역시 대학교 시절부터 수 년간 오랜 공력을 들여 완성한 작품이다. 일약 스타로 떠오른 뒤에도 변함없이 “작업장 안에서 거의 모든 시간을 보내고 틈나는 대로 운동하거나 강아지와 산책한다”는 그의 대답에서 알 수 있듯 홍경택 작가는 대외적인 활동이나 바깥의 풍조에 연연하지 않는 대신 철저히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독보적 세계를 다듬어왔다. 무채색에 근엄한 사상이 주를 이루던 화단에 휘황찬란한 색의 대폭발과 펜시적 소재를 통해 한국미술 사조를 유쾌하게 전복시킨 홍경택 작가, 그의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회고전 < Great Obsession >이 대구보건대학교 인당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다. 천호동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에 들러 이번 전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이번 전시에 대한 소개를 간략히 부탁드립니다. 주요 관람 포인트가 있다면 귀띔해주세요.

펜(Pens) 시리즈, 서재(Library) 시리즈, 훵케스트라(Funkchestra), 모놀로그(Monologue) 등 그간 작업했던 다양한 회화 작품 59점, 제가 수집한 레코드와 소품 소량을 전시합니다. 1988년에 제작한 작품부터 현재까지의 작품을 선보이는 중간 회고전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전시장 로비에 걸린 훵케스트라 시리즈는 각 150호 크기(181.8×227㎝)로 2단에 걸쳐 총 6작품을 묶어 전시했는데 처음 시도해본 디스플레이로 개인적으로 흡족했습니다. 전시장이 넓어서 가능했어요. 2전시실 입구에 있는 < Pens2 > 작품도 공간의 혜택의 봤다고 볼 수 있는데요, 햇살이 들어오는 위치에 놓여 발색이 한층 돋보이는 것 같아요.

Q 작가님의 작품 시리즈는 굉장히 다양합니다. 이를 관통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욕망입니다. 서재나 펜 시리즈를 예로 들어보자면 작품 안에 주로 캔, 필기구, 책, 해골 등이 많이 등장하는데 대부분 플라스틱의 매끈한 질감과 색채로 표현되죠. 플라스틱은 우리 생활에 가장 유용하면서도 가장 천대받는 물건이며 거의 모든 형태나 색깔을 입힐 수 있습니다. 즉 자신의 존재를 과장되게 드러냄으로써 스스로를 은폐할 수 있고, 가장 일상적이면서도 일탈적인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림에 이러한 화려함을 지니거나 유아적이고 촉각적인 물건들을 가득 배치함으로써 비밀스럽고도 폭발적인 분위기를 조성했죠. 플라스틱의 이 같은 속성은 누구나 드러내고 싶은 욕망과 숨기고 싶은 욕망을 동시에 소유한 사람들의 모습과도 상통합니다. 저는 이러한 심리들을 표현하고자 회화적 요소와 디자인적 요소의 절충을 시도했어요. 흔히들 회화는 남성적이고 거친 것이며 디자인은 여성적이고 장식적이라고 여기는데, 저는 이 둘을 화면상에 공존시킴으로써 어떤 중성적 매력이 넘치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이런 절충적인 작업방식을 택한 이후 반복해온 밀집적 분위기는 일종의 강박관념으로, 여백 없이 꽉 찬 그림들은 현실에서 생긴 강박증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보아도 좋겠습니다.

Q 월간<민화>의 입장에서 서재 시리즈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데요,
서재 시리즈의 경우 책가도 형식을 모티브로 했다고 들었습니다.

네, 특히 초기작 가운데 정물시리즈의 경우 책가도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대학교 1학년 시절 우연히 《이조의 민화》를 처음 펼쳐보고 충격에 빠졌죠. 조선시대에 채색화가 민간에 흔치 않던 시절, 민화는 민중들이 색을 볼 수 있는 그림이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고 특히 책가도는 물건에 대한 세속적인 욕망을 투영했다는 점에서 제가 그리던 정물화의 그림과 맞닿아있다는 점에서 크게 끌렸습니다. 결국 당시로는 거금이었던 수십만 원을 내고 그 도록을 구입했습니다. 한편으로는 학창시절 미술사 시간에 서양미술만 배웠던 사람으로서 우리 것을 너무도 모른다는 일종의 부채의식도 있었던 것 같아요. 아무튼 민화를 보며 그 속에서 얻을 게 참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Q 최근 주력하시는 작업은 무엇인가요?

훵케스트라 시리즈에서 구조적으로 해체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기존의 것들이 지겨워졌다고 해야 할까요? 변화를 주고 싶었습니다. 지난봄부터 준비하기 시작했는데 구상은 10점정도 했지요. 아직 공개한 작품은 없습니다.

Q 요즘 민화계에서 창작민화가 붐입니다.
창작 작업을 어려워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조언을 해주시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민화가 유행하며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는 분위기는 굉장히 반가운 일입니다. 저도 최근 현대 민화 전시를 가보았는데 사실 아쉬운 점이 없지 않습니다. 과거의 그림이나 형식에만 연연한 모습 때문이에요. 요즘에는 옛민화에 나오는 기물들을 쓰지 않을뿐더러 상당수의 작품에 등장하는 소재들이 단지 예쁘고 장식적인 역할에 그치는 것 같아요. 창작 작업을 하기 전, 주변을 자세히 보셨으면 합니다. 사물을 관성적으로 보지 말고 창의적으로 해석해보시라는거죠. 자유롭게 드로잉도 해보고 모험의식을 갖고 기존의 것과는 다르게 해보려는 굳은 각오를 바탕으로 그림을 그려야지, 옛날 것을 답습하는 것만으로는 좋은 창작물을 그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Q 작가님께서는 유명세를 치른 후 작품에 대한 압박감이 클 것 같은데 왕관의 무게는 어떻게 견디고 계신가요?
향후 계획도 궁금합니다.

심적으로 부담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소용돌이의 중심에 있는 기분이랄까, 시장이라는 데는 냉혹하거든요. 작품에 그렇게 열광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확 돌아서는 것이 시장입니다. 그 와중에 작가로서 시장의 요구는 어느 정도 맞춰야하고 작가로서 나름대로 제가 해야 할 것들, 이를테면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실험하는 그런 작업을 병행하기 위해 애를 많이 썼습니다. 물론 쉽진 않았어요. 작품을 상품으로 보는 시선도 꺼려졌습니다. 2010년쯤 돼서는 스스로 내려왔다는 표현이 맞을진 모르겠으나 상업갤러리 대신 뮤지엄이나 비영리 공간에서만 전시를 하며 제 중심을 잡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아직 확정된 일정은 없지만, 향후에도 최신작이나 미공개작으로만 구성한 뮤지엄 전시를 해보고 싶어요.


글 문지혜 기자 사진 이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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