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우키요에浮世絵의 세계③ – 근대로 앞질러 간 우키요에

일본 우키요에浮世絵의 세계③
근대로 앞질러 간 우키요에

조선 풍속화의 본질은 상업경제를 바탕으로 탈봉건적인 의식이 살아난 말하자면 근대성에 있었다. 마찬가지로 봉건의 에도시대 우키요에(浮世繪)도 탈 봉건의 근대적 성격이 그 요체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키요에와 그 관련문화를 보면 조선 풍속화를 훨씬 능가하는 근대적인 성격을 가졌다.

우키요에를 단지 미적 측면에서만 보려는 경향이 있는데, 당시 에도인에게 우키요에는 전혀 다른 시각이 있었다. 이점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우키요에의 본질 탐구에 다가서는 길이다. 우키요에의 성격은 크게 3가지로 정리된다. 1.문화상품 된 예술, 2.다양한 실용기능의 예술, 3.시민 속에 살아 숨 쉬는 문화미디어, 이 세 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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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봉건시대에 꽃핀 문화상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미술과 상업이 결합한 예로서 우키요에보다 더한 것은 없다. 우키요에라는 그림은 당시로서는 최고의 문화상품이자 상업용 회화였다. 그것이 우키요에 특유의 성격이자 본령이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판매되지 않았다면, 우키요에의 발전도 없었다.
상품으로서의 기본적인 조건은 최고의 기술에 의한 대량제작이고, 구매자의 기호에 부응한 화풍 개발이다. 우키요에는 그러한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급속도로 발전한 그림이었다. 대량생산을 위해서는 분업에 의한 공방제작 방법을 취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당시로써는 최첨단 산업의 매뉴팩처Manufacture(공장제 수공업) 형태로 이루어졌다.
질 높은 그림상품을 제작하기 위해서 하루가 다르게 기술혁신이 이루어졌다. 애당초 단순히 검은색 하나로 된 단색판화로 시작된 우키요에가 드디어 1765년에 하루노부(春信)라는 작가에 의해 다색판화[錦絵]라는 괄목할만한 기술진보를 성취하고, 다양한 기법 개발의 길을 틔웠다. 에도 말에 이르러 히로시게(広重)의 <기소가도69차지내 가루이자와(木曽街道六十九次之内, 軽井沢)>라는 그림에서와 같이 미묘한 색채변화에 의한 번짐[보카시] 효과를 살리는 판화기법(도1), 우타마로(歌麿)의 <모기장[紋帳]> 그림에서처럼 모기장의 섬세한 무늬 표현과 같은 판각기법의 발전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다.(도2) 거기에다 화가를 비롯하여 판각술, 인판술 등 관련 산업 전체의 기술진보가 동반되지 않았다면 우키요에의 눈부신 발전은 어려운 일이었다.
업주의 역할은 상품의 기획력에 있었다. 유행 품목으로서 시류에 민감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업주의 순발력 있는 안목이 무엇보다 요구되었다. 우키요에는 유행을 쫓고 또한 유행을 창출하는 장르이다. 우키요에만큼 시류時流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화풍 개발이 눈부신 장르도 없다. 거기에다 수많이 난립되어 있는 다른 공방작품과 치열하게 경쟁하는 인기 승부의 판도이기 때문에 화가의 기량은 결정적이지 않을 수 없다. 우키요에만큼 화풍이 풍부하고 다기多技에 걸친 장르가 없는 것도, 그 특유의 경쟁판도에서 육성된 표현력의 축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에도시대의 가장 말기에 이르게 되자, 호크사이(北齋)나 쿠니요시(国芳)처럼 묘사력에서 천재적인 작가가 나타났던 것도, 우키요에의 표현력 축적에 의거한 것이다.(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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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양한 실용기능을 가진 우키요에

그림이라는 형태를 가진 첨단 출판물이자, 인기상품이란 점이 우키요에의 본질이다. 그 때문에 우키요에는 에도 문화센터와 일반인, 그 양자를 연결해 주는 시각 미디어 기능을 가졌다. 에도 문화센터와 일반서민을 직접 연결시켜줌으로써 그 양측에 가져다 준 효과는 엄청나다. 에도문화 붐을 일으키고 그것을 꽃피게 하며, 향수자 측에 에도문화의 정수를 전파시킨 역할이다. 세련된 첨단 미의식, 폭넓은 교양과 새로운 정보, 나아가 그 문화에 내재된 자유 해방 기운에 이르기까지, 에도문화로부터 얻을 수 있는 모든 혜택을 자신의 것으로 섭취하도록 매개 역할을 했다.
우키요에가 취급하는 내용을 보면, 너무나 폭넓고 다양하여 간단히 정리될 수 없지만, 우선 제재별로 분류해 봐도 어림잡아 20여 종류의 정보나 지식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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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미인모습 ②목욕탕여성·인기배우의 사생활 ③춘화 ④위험한 그림 ⑤배우모습 ⑥무사모습 ⑦씨름내용 ⑧만화 ⑨의인화된 그림 ⑩장난감용 그림 ⑪행운도 ⑫시중 유행물 ⑬풍경모습 ⑭명소모습 ⑮요시와라 유락 모습 ⑯부적그림(병마퇴치 그림) ⑰교훈내용 ⑱상품선전 ⑲귀신모습 ⑳풍자내용 이처럼 우키요에는 높은 실용적인 기능을 가졌는데, 그 내용은 이러하다.
우키요에는 풍속화에 속하지만, 그렇다고 조선말기 풍속화처럼 인간 삶의 영위를 다룬 순수한 풍속화와는 성격이 다르다. 조선시대 풍속화처럼, 씨름이나 악단, 빨래터 같은 삶의 현장을 진솔하게 다루지는 않았다. 우키요에에 실리기 위해서는 최신 정보와 같은 실용적 가치가 있는 내용이어야 한다. 겉보기에는 그냥 사람을 그린 것 같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혹할만한 특정정보가 들어있다. 미인그림도 단순히 미인을 그린 것이 아니다. 미인의 모습에다 최신 패션스타일의 의상이나 헤어스타일을 첨가시켜 그림화하고 있다. 그러니 최신 유형의 미인(혹은 배우)+여성의 자태미+패션의상과 장신구+뉴 헤어스타일 등 다양한 볼거리 정보를 복합으로 담은 모델을 등장시켜 일반인을 동경의 세계로 유도한다. 주로 에도의 슈퍼모델을 등장시켜 패션 정보물의 역할을 수행했다. 인기배우의 최신 연기모습, 뉴 헤어스타일이나 의상의 미인, 그런 것이 당시로서는 최신정보였다.(도4, 5) 오늘날로 치면 최신 패션 스타일로 치장한 인기 탤런트를 직접 대하듯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감탄하고 동경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미지의 물건, 예를 들어 극히 일부 부유계층만 소지하고 있는 망원경[遠眼鏡]이나 유리잔 등을 우키요에에서는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다.(도6) 일반 사람들에게는 평생 대하기 어려운 꿈의 물건들도, 우키요에가 확실한 형태로써 생생하게 사람들에게 알려준다. 대부분 미인과 함께 등장시켜 솔깃한 눈요깃거리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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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배우를 그린 소위 배우그림[役者絵]이 있다.(도4) 배우그림은 그 자체가 살아있는 정보이기에 압도적인 지지
를 얻었다. 배우그림도 종류가 다양하다. 무대와 배우가 일체가 되어 그려진 연극그림[芝居絵](도7), 배우의 반신상을 화려한 다색인쇄로 하여 배우의 개성과 이미지를 돌출되게 그린 ‘반신상화’, 얼굴을 크게 클로즈업시킨 ‘안면화[大首絵]’, 연기 준비실이나 일상생활상의 배우모습을 담은 ‘일상화’ 등 다양하게 발전하고 있다. 배우들의 모습에 근접해서 조금이라도 박진감 있게 표현하려는 것이 우키요에 그림이 가진 승부세계이다.
연극의 상연 프로그램을 담은 것도 있다.(도8) 어느 때에 어떠한 연기종목이 흥행될까 하는 점은 관객으로서는 알고 싶어 하는 주요 정보이기에 단기간에 대량으로 인쇄 배포시킨다. 연극 전반에 걸쳐서 소개하는 안내서도 있다.(도9) 이것에 관한 것은 18세기 후반부터 출판이 시작된다. 주요 안내서에서는 대부분 삽화를 곁들인 연극에 관한 해설서이다.
전문적인 배우 평판기評判記(비평기)도 출판되었다. 연기력·자질·스타성 같은 배우의 평가에 관한 전문적인 평판기 출판이 많이 쏟아지고 있었다.(도10) 당시 극장배우에 대한 인기는 어마어마한 것이어서 당시 스타급 배우에 대한 관심이나 동경은 오늘날과 다를 바 없었다. 대중 인기에의 쏠림현상, 이것 또한 근대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 외에 18세기 후반기를 맞이하자 에도 명소도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명소그림도 그려졌다. 실경이 인물 주제의 배경그림으로 주로 도입되어 발간되고 있었다. 그러다가 에도말엽의 호크사이(北齋)나 히로시게(広重)같은 풍경화 거장들에 이르러서는 본격적으로 실경 풍경화가 대량으로 그려져 명소그림이 범람한다.(도11)
이상과 같이 우키요에는 최신 정보지로서, 최신 상품·최신 패션지뿐만 아니라 최신 관광안내서의 역할도 수행했다. 요즘의 정보잡지와 다름없는 것으로, 그것도 예술적인 문화정보 잡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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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서민 속에 살아 숨 쉰 문화미디어

김홍도, 신윤복에 대표되는 조선말기 풍속화는 판매를 의식한 그림이 아니다. 오로지 작가가 주체가 되어 그려낸 예술적 창작세계이다. 조선시대 풍속화는 화가가 주체가 되어 일반인을 대상으로 삼은 것이고, 우키요에는 화가 자신보다는 서민의 눈과 관심사를 제공해 주는 것으로, 어디까지나 대중이 주체이다.
우키요에는 에도문화를 활성화시킨 중요한 미디어이고 동시에 회화라는 양면성을 가졌다. 그러한 특성 자체가 서민중심 문화토양에서 얻어진 것이자, 에도문화의 실체이다. 아름다운 미녀, 뉴패션, 최신 트렌드, 최고 인기배우를 가까이에서 보고 즐기고 싶다는 서민의 일상적 바람을 충족시키려면 어떤 방법이 좋을까? 오늘날 그 역할을 하는 것이 연예잡지일텐데, 당시에는 우키요에라는 매체가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이다. 그러니 우키요에는 에도문화의 에센스라고 할 수 있다. 카부키나 유리가 에도문화의 근원이자 꽃이라고 한다면, 우키요에는 그 에도문화의 꽃을 담아서 예술적 차원으로 승화시켜 전국으로 확산시키는 운반체(매체)였다.
 
1) 우키요에는 대중취향의 시각유희 세계
우키요에는 대중을 고객으로 한 지상紙上의 볼거리이므로 무엇보다 서민의 눈을 현혹시켜야 한다. 그 때문에 우키요에는 유희적인 경묘輕妙함과 즐거움이 제일의 주안이 되고 있다. 유희적 성격은 카부키나 유리를 비롯하여 서민을 대상으로 하는 에도문화 전체의 기본적 특징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키요에는 일종의 시각적인 유희의 세계이다.
다음으로, 화면구성이 인위적이고, 구성 자체도 유희적이다.(도12) 우키요에에 등장하는 모든 대상이 기본적으로 흥미의 포인트가 됨은 물론, 그림 구성 또한 흥미 본위로 작성된다. 일반 회화와 같이 자연스런 시각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그리는 표현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흥미유발에 주안을 둔 인공적인 구성이다. 이 점도 우키요에 이해의 주요 열쇠라 할 수 있다. 구성법에서는 극단적인 대비법이 주로 사용된다. 색채에서 백白과 흑黑, 크기에서 대소大小, 인물에서 주主와 부副, 혹은 남과 여, 원근에서 근近과 원遠 등을 이용하여 유희방식의 시각적인 대비법이 자주 쓰인다. 인물의 경우는 몸을 비틀어 뒤돌아보는 미인과 같이 특히 동세가 강조되어 매력적인 율동감이 넘쳐난다. 또한,새로운 기법으로서 외래의 서양화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기상천외하게 응용한다. 서양화법이 동양에 전래되어 우키요에서처럼 활발하게 소화되고 표현세계를 풍부하게 한 예도 달리 없을 것이다.
 
2) 현실 속에 살아있는 문화실체
우키요에는 비록 수도 에도 지역에서만 간행된 출판물이긴 하지만 관람자는 일본 전국의 광범한 일반인이었다. 그 때문에 우키요에의 판도는 소문이나 유행이 급속도로 번지는 시정市井 특유의 움직임을 항상 의식하면서 대응해야만 하는 것이 숙명이었다. 감각적인 성향이 강한 서민 본래의 취향에 어필하기 위해서는 선명한 색채에 의한 표현이 무엇보다 필요했다. 다색 목판화에 의해 에도 서민은 현란한 색채의 세계로 인도되어갔다. 컬러풀한 색채는 사물의 인식에도 변화를 초래했다.
풍부한 색채는 인간의 감성에 혁명을 가져와서, 인성人性 본래의 장식 욕구에도 불을 지폈다. 흑백은 현상을 단순화시키는 추상적인 인식세계이지만, 색채는 대상을 구체적이면서 개별화시키는 작용을 했다. 즉 관념세계에서 떠나 눈앞의 현실에 가치를 두는 감각세계로 끌어올릴 뿐만 아니라, 사물의 심층 이해에 이르게 하는 인식변화를 가져와, 근대적인 문화로 유도한 것이다.
이처럼 우키요에만큼 생동감 도는 표현과 화풍변화가 다양하고 풍부한 장르도 없었다. 현실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당세풍 표현세계란 점에서도 우키요에는 근대적 성격과 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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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현실과 가상의 융합
그런데, 우키요에가 실용성과 예술성의 양면을 가진 특수한 장르라고 하지만, 오늘날의 안목으로 보아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 적지 않다.
첫째로, 우키요에에는 왜 색정적인 미인화가 많을까? 한 마디로 당시 에도사회가 그것을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에도 무사통치 사회는 조선시대처럼 유교에 의한 강고한 도덕률로 지배된 사회가 아니었던 데다, 남성과잉 현상이 오래도록 지속된 것이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에도 인구의 반수 이상이 지배층 무사로 채워져 있었는데, 특히 참근교대제參勤交代制에 의해 전국의 각 지방 무사들이 처자식을 떠나 홀로 에도에 근무하게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 젊은 남정들이 우글거리는 에도사회는 자연히 밤의 문화가 번창할 수밖에 없었고, 그곳의 미인 여성들은 뭇 남성들의 동경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색리色里가 형성되고, 그곳을 주된 취재로 하는 우키요에도 처음부터 색정성이 흐르는 미인화로 시작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키요에서는 색정미를 기본으로 한다. 정보전달이 목적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미인과 곁들이고 있고, 남자가 등장하더라도 색정적인 미소년으로 둔갑시켜 얼핏 보기에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도13) 몸을 비틀어 뒤돌아보는 요염함, 흰 목덜미를 노출시키는 의상, 다리를 꼬아서 걷는 자세, 클로즈업된 달걀형의 앳된 인상 등 요염함을 드러내는 것이 기본으로 되어 있다.
둘째로, 풍속화로서 인체의 정확한 묘사는 왜 없을까? 우키요에는 에도시대를 대표하는 풍속화이지만, 그렇다고 당시 일반인의 일상사에 초점을 두어 적나라하게 묘사한 그림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현실의 인물을 바탕으로 하되, 그것을 상상의 세계에 끌어올려 놓은 그림이다. 그러므로 현실과 가상假想이 융합되어 있는 특이한 화풍으로, 현실이기도 하고 가상이기도 하여 풍부한 상상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 우키요에의 매력이자 문학성과 상통하는 면이다. 실작을 통해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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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타마로(歌麿)의 <근대칠재여시가近代七才女詩歌>라는 그림은 왼쪽의 시구를 보아서 시와 그림에 뛰어나 있던 이노우에 츠(井上通, 1660~1738)라는 당대의 여류 가인歌人과 관련된 그림이다.(도14) 그렇다고 그녀를 주제로 한 그림은 아니다. 그녀와 전혀 무관한 단순히 가마 탄 미인과 가마꾼을 그린 것에 불과하다. 남자 인부여야 할 가마꾼을 미인으로 교체시켜서 겉으로는 완전히 미인화로 둔갑되어 있다. 묘사법에서는 자연스러운 시각으로 인물을 보고 그린 것이 아니다. 그 인물이 갖는 입체감이나 공간의 깊이감은 전혀 없고, 평면으로 된 인체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몸의 각 부분은 단순히 색채에 의한 평면 배열로 구성되어 있어서 몽타주식 구성법과 같다. 그러니 화풍에서는 사실적인 표현이라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고전적인 표현법에 머물러 있어, 전체적으로는 보수성과 사실성을 융합한 표현법에 속한다.
암시를 풍부히 사용하여, 은유적 상상의 세계에서 실재처럼 맛보게 하는 간접적 표현방식을 개척함에 따라, 우키요에는 보다 풍부한 표현세계를 열어가게 된다. 대중에게 정보 공급이라는 실용성을 중시하는 한편 예술 표현이라는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며 상상의 세계를 보다 풍부히 하려는 노력, 이런 다면성이 바로 우키요에를 설명하는 특징이다.

 

글 : 이중희(한국근현대미술사 연구소 소장, 전 계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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