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개인소장 <화조도> – 단순하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은 이유

필자는 민화 화조화 가운데 최고 명품으로 일말의 주저함 없이 일본인 개인소장의 6폭 <화조도>를 꼽는다. 테크닉을 뛰어넘는 소박한 표현과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구성이 보는 이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기 때문이다. 비움의 미학으로 그 어느 작품보다 충실한 메시지를 건네는 이 신비한 그림을 소개한다.


어느 유명한 딜러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 다. 평생 고서화를 취급하는 이유는 가끔 가슴을 설레게 하 는 명품을 만나기 때문이라고. 마치 첫사랑을 만나는 것 같 은 설렘과 환희를 말하는 것으로, 명품이 갖춰야 할 요건을 적절한 비유로 설명한 셈이다. 명품이 갖춰야 할 첫 번째 요 건은 다른 데서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세계여야 한다. 다시 말 하면 독창성이 명품의 성패를 가르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완성도가 높아야 한다. 새로움이 바로 감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균형, 조화 등과 같이 작품 으로서 갖춰야 할 필요조건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민화=못 그린 그림’으로 이해하는 이도 있는데, 그것은 민화에 대한 애정은 물론 이해가 부족한 데서 나온 말이다. 민화가 추구 하는 세계는 일반적으로 테크닉을 앞세우는 그림과 다른 차 원의 것이다. 셋째는 긴밀도가 높아야 한다. 민화는 대개 단 순하고 표현이 얇은 그림이라 긴밀도가 낮기 십상이다. 그러 나 이러한 결점을 보완하거나 이를 역으로 활용하는 그림은 오히려 명품이 될 수 있다. 민화 화조화 가운데 최고 명품은 무엇일까? 주관적인 문제라 사람마다 시각이 다르겠지만, 나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 이 일본인 개인소장의 6폭 를 꼽는다. 단순하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으며, 오히려 충실도가 높고 긴장감까지 주 기 때문이다. 오는 7월 ‘갤러리현대’와 ‘현대화랑’에서 열리는 민화 꽃그림 전시회 를 기획 하면서 여러 꽃그림(화초화)과 꽃새그림(화조화)를 수소문하 고 있다. 그러나 아직 이 작품만큼 뛰어난 명품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 작품은 내가 기획한 2005년 서울역사박물관의 에서 처음 우리나라 애호가들에게 선보 인 적이 있다. 그때 전시회를 본 사람은 한정적이지만, 일본 고단샤講談社에서 발행한 이조민화를 비롯한 여러 민화 도 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 여전히 많은 민화전시회에서도 이 그림을 모사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테크닉 너머의 질박한 표현의 세계

내가 이 작품을 민화명품으로 손꼽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 째, 질박한 표현이다. 영어로 ‘naive’로 표기되는 질박함 또 는 소박함이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특색이다. 우리는 뛰 어난 테크닉을 구사한 작품에 본능적으로 눈길이 먼저 가 지만, 더 감동을 주는 것은 테크닉을 넘어선 작품이다. 얼마 전만 하더라도 우리는 클래식한 작품을 선호했지만, 최근 에는 그 미의 기준이 자유롭고 개성적이며 팝아트 같은 작 품을 더 선호하는 경향으로 변하고 있다. 지난 4월 18일 뉴 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추상적인 문양의 분청사기(도1)가 313 만2500달러(33억5천만원)에 낙찰되는 기록을 세웠다. 1996 년 뉴욕 크리스티에서 841만7500달러(89억8천만원)에 낙찰 된 다음으로 비싸게 팔린 유물이 다. 이 분청사기는 삼강청자처럼 귀족들의 클래식하고 세련 된 도자기가 아니라 지방의 자유분방하고 투박한 도자기다. 테크닉의 높낮이가 참조사항은 되지만, 그것 자체가 예술적 가치를 정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다. 그런데 지금 각광을 받고 있는 질박한 미의식은 동아시아 화론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추구했던 것이다. 당나라 장언원張彦遠이 정한 그림 의 품등론品等論을 보면, 테크닉이 화려한 그림은 ‘근세謹 細’라고 하여 맨 꼴찌의 등급에 두고, 소박하고 자연스런 그 림은 ‘자연自然’이라 하여 첫머리에 놓았다. 지금 질박한 아 름다움이 사랑을 받는 것은 작금의 일은 아닌 것이다. 서양도 마찬가지다. 피카소의 작품도 테크닉을 기준으로 삼 아 평가한다면, 잘 그린 그림이 아니라 못 그린 그림으로 추 락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피카소! 피카소!” 하고 열광하는 이유는 그런 테크닉보다는 피카소만의 독특한 이 미지 세계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질박 함 그리고 자연스러움은 그림에서 최고의 경지를 말하는 키 워드인 것이다. 바로 이 화조도는 질박한 이미지의 절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화려한 테크닉으로 그린 그림은 첫눈을 사로잡지만, 결국 금세 싫증나기 십상이다. 한국화가인 소산 박대성 화백은 필자와 함께 일본에서 이 화조도를 실견하고 “승화된 동심”이라고 평한 바 있다. 테크닉을 배제하고 어린 아이그림처럼 순수하고 단순하게 표현한 이 작품은 단순히 질박함을 뛰어넘은 또 다른 차원의 동심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다. 이른바 ‘소나무의 나라’인 우리나라에서 소나무 그림은 수 없이 보지만, 이 소나무 그림(도2)처럼 독특하고 개성적으로 그려진 소나무를 본 적이 없다. 두툼한 줄기 위해 삿갓 모양 의 지붕이 씌어져 있는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소나 무인지 아닌지 고민하게 만든다. 사실성에서 과감하게 벗어난, 그런 가운데 최소한의 사실성을 유지한 표현법은 이 작 품이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요인이다. 북송 때 소동파蘇 軾는 문동文同의 대나무그림을 평하면서 흉중성죽胸中成 竹, 즉 가슴 속에 맺혀진 대나무의 본질을 그리는 것이 중요 하다고 강조했다. 또 그러한 창작과정을 거쳐서 나온 그림은 그 이미지가 대나무이든 버섯 모습이든 무슨 상관이냐고도 덧붙였다. 이 그림도 마찬가지다. 이 민화작가는 대나무의 본질을 그리면 됐지, 그것이 소나무든 버섯 모양이든 무슨 상관이냐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진다. 땅에서 솟아 올라간 소나무 줄기는 오른쪽으로 휘어지고, 중간에 난 가지는 왼쪽으로 뻗어 균형을 잡아주고 있다. 솔 잎들이 하나의 나뭇잎처럼 덩어리로 표현되고 그 안에 가는 선으로 솔잎의 모습을 나타내었다. 줄기나 가지의 윤곽선은 점선으로, 그 안에 수피는 불규칙한 붓질로 거칠게 표현됐 다.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표현한 수지법을 통 해 환상적인 이미지를 자아내고 있다. 이 또한 다른 작품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작가만의 개성적 표현이다. 소나무 밑에 학 두 마리를 배치했는데, 뒤의 학은 막 날기 위해 날갯짓하 고 있다.

패턴을 활용한 민화 꽃그림

두 번째 매력은 ‘패턴의 미’다. 지난번 글에서 민화의 중요한 특징으로 패턴을 지적한 바 있다. 이 작품은 구성과 세부 표 현에서 패턴을 적극 활용했다. 화조도를 그릴 때 구성이나 표현은 어느 정도 정해진 관례 속에서 움직인다. 그 규범이 란 사실적이거나 합리적인 표현방식을 말한다. 그런데 이 작 품의 화가는 이러한 관례에 대해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 다. 완전 새로운 화조화를 창출한 것이다. 구도부터 범상치 않다. 화조화는 물론 다른 전통 회화에서 거의 보기 힘든 사 선방향의 얼개를 구도로 택했다. 화면 속의 어느 하나도 수 평방향으로 바른 것이 없다. 약간씩 기울어지거나 아예 사 선 방향의 줄기를 기반으로 삼고 있다. 소재가 무엇인지를 인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실성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새롭 게 재구성했다. 어떻게 똑같이 그리느냐는 ‘재현’의 문제보 다는 어떻게 멋있고 독특하게 그리느냐는 ‘표현’의 차원을 더 중시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전혀 사실적이거나 묘 사적이지도 않다. 동식물 전문가도 그림 속 꽃과 새가 무엇 인지 파악하기 힘들만큼 변형시켰다. 그림 속 이미지들이 어 떤 소재인지를 파악하려면, 조선시대 화조화의 관례를 따지 고 결정적인 단서를 찾기 위해 ‘명탐정 코난’처럼 추리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도대체 이런 발상이 어디서 나왔을까? 모란도(도3)는 획기 적인 구도다. 모란의 줄기와 가지와 꽃을 마름모형의 틀 속에서 재구성했다. 아주 작은, 그래서 오히려 상징적으로 보 이는 땅덩어리에서 사선방향으로 먹색의 줄기가 뻗어나고 그 줄기에서 직각 방향으로 녹색의 가지들이 전개된다. 다 시 이 가지에서 직각 방향으로 더 작은 가지들이 뻗어나면 서 마름모 모양의 얼개를 만든다. 대개 모란도를 보면 화려 한 모란꽃에 집중하지 이처럼 땅에서 시작하여 꽃에 이르 는 모습을 얼개로 표현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구성적인 일러스트레이션을 연상케 한다. 꽃과 꽃잎도 패 턴을 활용하여 표현했다. 유사한 형상의 꽃과 꽃잎이 크기 만 다를 뿐 일정한 패턴 속에서 약간씩 변화하고 있다. 매화도(도4)는 짝의 구성을 활용했다. 자연스런 모습의 땅 위에 뻗친 매화는 굵은 줄기와 가는 줄기로 대비를 이루며 가지들을 직선의 구성으로 만들었다. 봉황도 크고 작은 크 기로 거리감을 나타내었다. 평면적이고 구성적인 표현이라 자칫 그림이 얇아 보일 수 있는데, 중복된 거친 선으로 질 감을 풍부하게 하여 최소한의 입체감을 나타냈다. 유례가 없는 점묘법을 사용한 점도 특이하다. 한국화, 더 나아가 동양화는 선의 예술이다. 선으로써 세상 만물을 표 현한다. 그래서 동양화에서 선은 단순한 라인Line이 아니 라 대상의 모든 것이 압축된 이미지다. 예컨대, 미인은 봄 누에가 토한 비단실처럼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선으로 그리고, 올곧은 선비는 깐깐한 느낌의 선으로 그리며, 달 마처럼 득도한 이는 자유롭고 탈속한 선으로 그린다. 선은 그 사람의 퍼스널리티personality를 나타낸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는 선보다는 점을 주조로 표현했다. 물론 꽃과 잎 은 선으로 그렸지만, 흙, 줄기, 가지는 점묘법으로 표현했다. 이 자체가 한국화에서는 획기적인 시도다. 양화의 핵심 인 선을 쓰지 않고 점으로써 형상의 실체를 표현했기 때문 이다. 서양의 점묘법을 연상케 하는 시도다. 다만 이 작품 에서는 서양의 점묘법처럼 원색의 미세한 점들로 색의 선 명성을 나타내는 방식과 달리 명료하지 않은 윤곽으로 환 상적인 효과를 자아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점묘법을 이용했지만, 서양의 점묘주의나 분할주의와 달리 ‘환상주 의’를 추구한 것이다. 연꽃그림(도5)에는 계절이 분명하게 감지된다. 아마도 한여 름이 지나고 가을로 들어서는 길목인 입추의 풍경일 것이 다. 활짝 펴서 아름다움을 뽐냈던 연꽃잎은 하나둘씩 떨어 지고 연잎은 더 이상 계절이 변화하는 힘을 이겨내지 못한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물총새가 마지막을 향하는 연 잎의 연밥을 탐하고 있다. 그 아래에는 풍요를 상징하는 잉 어도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경직된 모습으로 아래를 향하 거나 진흙 속에 파묻혀 있고, 부부간의 화합을 염원하는 오리 두 마리가 물끄러미 왼쪽을 바라보고 있다. 이 그림의 골격은 나란히 수직방향으로 올라가는 8개의 연대 표현이다. 연대뿐만 아니라 오리와 잉어까지 점묘법 으로 그려져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경쾌한데다, 색점들의 독특한 색채효과까지 겹쳐져 구성적이면서 현대 적인 아름다움이 드러나고 있다. 화면 윗부분의 붉은 색의 연꽃, 가운데의 청록색과 녹색의 연잎, 그 아래 먹빛의 진 흙이 명료하면서 조화롭게 구성되어 있다.

단순함의 아름다움

세 번째 매력은 단순한 구성과 표현이다. 작가는 불필요한 것은 과감하게 제거하고 대상만을 요약적으로 표현했다. 깊 이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은 화면의 위에 평면적으로 그렸지 만, 질감의 표현 때문에 그림이 얇아 보이지 않는다. 여백은 시원하게 비워두었지만, 대상에는 필치를 여러 번 겹쳐 그려 서 충실하게 표현했다. 텅 빈 여백에 대상을 세밀하게 표현 한 것은 고려불화에 보이는 전통적인 방식이다. 현대 민화작 가들은 창작이란 이름 아래 화면에 참으로 많은 것들을 ‘잡 탕밥’처럼 꾸겨 넣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명품’ 으로 검증된 우리의 회화를 보면, 여러 가지를 복잡하게 조 합하기 보다는 한 가지를 간결하지만 멋들어지게 표현한다. 우리의 전통적인 취향이 어떠하고 현대인의 취향이 어떠한 지를 파악하는 일은 중요하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마당에 파초를 심고 마루에서 앉아 무심코 그것을 내려다봤다. 여 름날 파초 잎에 부딪치는 빗소리를 들으면 운치가 더욱 깊어 졌다. 당나라 초서의 대가 회소처럼 파초 잎으로 글씨를 연 습하기도 했다. 전통적으로 파초는 높은 인격의 선비와 격 조 있는 환경을 은유했다. 파초도(도6)는 키다리와 난장이가 생각나는 구도로 되어 있 다. 키 큰 파초와 키 작은 파초를 나란히 세워 대비의 효과 를 냈다. 키 큰 파초는 뿌리줄기에서 두 개의 덩이줄기가 나 오고 각기 두 개의 긴 잎이 위로 뻗쳐 교차하고 있다. 오른 쪽에서 두 번째 파초 잎은 ㄱ자형으로 꺾여 단순한 구성 속 변화를 엿볼 수 있다. 작은 파초의 뿌리줄기에는 삼지창처 럼 세 개의 파초 잎이 뻗쳐 있는데, 키 큰 파초 앞에 두어 거 리감을 나타냈다. 간결한 구성이지만, 대조와 변화의 표현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풍부한 회화적 표현력을 드러냈다. 파초 들의 근거가 되는 땅은 거듭된 거친 필선으로 꾸미고, 그 사 이와 위에 붉은 점으로 야생초를 나타냈다. 그렇다면, 민화작가가 이 를 통해 우리에게 전하 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사실적 표현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행복을 가져다주는 길상적인 기능이 주 목적은 아닐 것이 다. 그림 소재가 무엇인지조차 파악하기 어려우므로, 그것 의 상징적 의미를 따지는 일은 부차적인 일인지 모른다. 상징 성이 곧 예술성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작품은 자유롭고 개성적인 표현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음 과 같은 회화적인 메시지를 조용히 전해준다. ‘너무 복잡하 게 화면을 꾸밀 필요가 없다. 단순한 구도도 충분히 큰 감동 을 준다. 가뜩이나 복잡한 현대의 도시생활에 지친 우리에 게 필요한 것은 많은 것이 아니다’ 한적한 전원 속에서 맛보 는 한줄기 여유로움처럼, 필요한 것만을 남기고 불필요한 주 변을 과감하게 비우는 지혜가 아쉽다.


글 정병모 (경주대학교 문화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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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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