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으로 간 민화 초본 영모도 초본Ⅱ

이번 시간에는 지난 시간에 소개한 영모도 초본에 대해 좀 더 알아보도록 하겠다.
이 글을 통해 우리 것에 무관심한 결과가 어떤 것인지 생각해볼 수 있길 바란다.


영모도 초본, 언제 수집되었나

지난 시간과 이번 시간에 걸쳐 소개하는 영모도 초본(도2)은 현재 일본민예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런데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이 초본과 관련된 자료가 남아있어 우리의 흥미를 끈다. 영모도 초본의 유리건판(도1)은 도2의 영모도 초본을 촬영한 것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유리건판 38,000여 장 중에 포함된 사진이다. 이 유리건판 자료는 1909년부터 1945년경까지 일제가 식민 지배를 목적으로 우리나라 전역과 만주 등지에 있는 각종 유적과 유물, 민속, 자연환경 등을 촬영한 자료로, 조선총독부박물관이 보관하고 있던 것을 광복 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인수하여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다.
영모도 초본의 유리건판 사진은 촬영자와 촬영 연도, 촬영 당시 기록 자료가 남아있지 않아 정확히 언제 촬영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유리건판 자료 전체의 기록을 참고했을 때, 이 유물은 일제강점기에 촬영되었던 것이 확실해 보인다. 또한 실제 유물과 유리건판 속 유물을 비교했을 때, 장황 상태가 같은 것으로 보아(도3, 도4) 이 영모도 초본은 유리건판이 촬영될 당시의 상태 그대로임을 확인할 수 있다.
다행히 유리건판 속 유물이 촬영 당시 어디에 있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다. 유리건판의 기록에는 이 유물은 일본 도쿄[東京]에 있었다고 쓰여 있다. 일본민예관이 도쿄에서 1936년 개관한 사실을 바탕으로 했을 때, 야나기 무네요시가 일본민예관 개관 이전에 이 초본을 수집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민예관에는 이 초본 외에도 다수의 한국 민화가 소장되어 있는데,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 민화 컬렉션이라는 명성을 가지고 있다. 일본민예관에는 한국 민화뿐 아니라 일반 회화, 도자기, 목가구 등 다양한 분야의 한국 미술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 다양한 한국 유물들은 언제 일본으로 건너간 것일까?

조선 민화에 관심을 가진 야나기 무네요시

야나기 무네요시는 1916년 조선을 처음 방문한 이후 1940년까지 25년간 총 20여 차례 조선을 방문하였으며, 이 시기에 그의 민예론이 구체적으로 정립되었다. 또한 그는 이 시기에 열정적으로 한국의 미술품들을 수집하였는데, 영모도 초본도 이때 수집된 것으로 추정된다. 수집된 조선 미술품은 1924년 경복궁 내 집경당緝敬堂에서 개관한 조선민족미술관의 중심이 되었고, 1936년 설립된 일본민예관 한국 컬렉션의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야나기 무네요시가 한국 민화에 관심을 가진 것은 1957년 염직 공예가인 세리자와 케이스케(芹澤銈介, 1895~1984)의 제자에게 기증받은 민화 책거리 두 점을 계기로 우리 민화에 대해 본격적으로 수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유리건판을 통해 야나기 무네요시가 일본민예관을 설립하던 당시에도 민화에 대해 많은 관심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민화에 관심이 있지 않았다면 어떻게 완성되지 않은 그림인 이 영모도 초본을 수집할 수 있었겠는가.
우리는 오래전부터 우리 것보다는 남의 것을 더 좋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조선 시대에는 사대주의를 표방하였고, 근대에는 일본과 서구 열강의 문물을 모방하였으며, 현재에는 SNS를 통해 보이는 다양한 모습들을 동경하고 있다. 지금, 과거에 우리가 거들떠보지 않았던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을 중요하게 여기고 지켜나가려는 노력이 늘어나는 현상은 분명 좋은 일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가 만들어나가고 있는 문화를 긍정적인 인식과 이해, 이에 관한 연구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야나기 무네요시와 같은 외국 학자들의 눈을 통해 우리 문화를 바라보아야 하는 슬픈 일이 되풀이될 것이다.


글 이다정(가회민화박물관 학예사)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