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민예관② 조선 민화의 가치와 아름다움 처음 세상에 알린 야나기 무네요시의 일본민예관

도 1. 일본민예관에서 화조화(개인소장) 앞에 삼배하는 모습.

▲도 1. 일본민예관에서 화조화(개인소장) 앞에 삼배하는 모습.

한 화가는 우리민화의 매력을 ‘승화된 동심’이라 표현하며, 작품에 감동하여 절로 허리 굽혀 절을 했다. 최근까지도 한국미술사에서 홀대받아온 민화지만, 이미 50년도 전에 민화가 재평가받을 날이 도래할 것이라는 예언을 했던 야나기 무네요시. 그의 손때가 묻은 일본 민예관에는 진실로 아름다운 <까치호랑이>가 남아있다.

명품 앞에선 절을 해야 합니다

민화 앞에서 절을 한 경험이 있는 분이 있을까?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한국 회화가 좋아서 30여 년간 연구했지만 민화는 차치하고 다른 그림 앞에조차 절을 해 본 적이 없다. 적어도 2014년 8월 2일까지는 말이다. 한국의 채색화 도록에 실을 민화들을 촬영하러 도쿄에 있는 일본민예관을 찾았다. 이번에는 한국화가 박대성 화백, 최장호 화백, 이영실 선생 등이 동행했다. 일본민예관의 스기야마 타게시杉山亨司 학예실장은 우리를 위해 도쿄의 어느 화상이 소장하고 있는 <화조도>를 빌려왔다. 이 그림은 일본에 있는 민화 화조화 가운데 가장 명품으로 평가받고 있고, 2004년 ‘반갑다 우리 민화전’에서도 필자의 요청으로 공개되었던 작품이다. 한참 사진작가 김종욱 선생이 촬영하고 있는데, 박대성 화백은 촬영을 멈추자고 요청했다. “이런 명품 앞에서는 절을 해야 합니다.” 모두 민화 앞에 숙연한 마음으로 삼배를 했다. 박 화백은 절을 하면서 “아이구, 하나님. 아이구, 하나님! 이렇게 좋은 명품을 우리에게 내려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아이구, 하나님.”이라는 기도를 신음처럼 내뱉었다. 바로 옆에서 절을 하며 이 소리를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어렸을 적 어머니가 좋았을 때도 ‘아이구’, 슬플 때도 ‘아이구’라고 말했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그런데 갑자기 의아심이 생겼다. 민화 명품을 찾아 온천지를 다니면서 이렇게 가슴을 뭉클하게 한 민화들을 수없이 만났다. 그런데 이들 민화 가운데 한 점도 한국회화사에서 다뤄지지 않은 것이다. 이 얼마나 불공정한 처사인가? 과연 이러한 작품들을 빼고 진정 한국회화사라고 내세울 수 있을까? 야나기 무네요시는 이미 오십여 년 전 이러한 문제를 간파하고 있었다. 그가 1959년에 쓴 ‘조선의 민화 朝鮮の民畵’에서는 다음과 같이 민화가 재평가받을 날이 올 것으로 예측했다.

“대체로 민화는 지금까지 민중적인 속화라는 이유로 경시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좀 더 솔직한 견해를 갖고 보면, 주목받지 않았던 이들 민화 가운데서 생각지도 못한 신선함, 자유로움을 발견하고 그 가치를 재평가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확신한다’는 자신에 찬 마무리 말처럼, 그의 예언은 적중했다. 오늘날 민화가 각광을 받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그는 동양 곳곳에 민화가 많지만, 그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이 조선의 민화이고 이것이 정당하게 개발되고 소개된다면 세상의 주목을 받을 것을 확신한다고 재삼 강조했다. 아울러 현대 화가들에겐 경탄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았는데, 실제 김기창, 권옥연, 변종하, 박생광 등 많은 화가들이 민화의 수집가가 되거나 민화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기도 했다.

 
조선 민화는 모두 조선풍으로 소화되어 있다

1960년대에는 일본이나 한국에서는 조선의 민화를 수집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을뿐더러 동양미술가 누구도 그 존재를 언급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아무도 민화의 보존과 계승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시절이다. 지금의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신인 이왕가박물관 혹은 총독부미술관 등에서 수집한 조선회화는 대부분 중국 직계에 해당하고 민화는 한 점도 그 수집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파악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야나기 무네요시가 누구보다 먼저 조선 민화의 가치를 깨닫고 그것들을 수집하고 주의를 기울여 왔다. 그것도 민속적인 관점이 아니라 예술적 가치로 평가한 것이다.
그렇다면 야나기 무네요시는 왜 조선의 민화를 주목한 것일까? 무엇보다 한국적인 특색이 강한 미술이라는 점이다. 그는 ‘조선의 민화’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이상과 같이 조선의 민화는 아마도 그 기원이 중국의 민화에서 유래된 것이겠지만, 양자를 비교해 보지 않은 이상 뭐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조선 민화는 모두 조선풍으로 소화되어 있으며, 결코 중국의 모방이 아닌 점에 크게 유의해야 할 것이다. 조선의 민화는 분명하고 독자적인 세계를 갖고 있으므로, 결코 다른 나라의 화풍에 종속된 표현이 아니다.”

필자가 민화연구를 처음 시작할 때, 조선의 민화를 중국의 민간연화와 비교분석하는 데 주력했다. 하도 조선 민화에 대해서 한국적인 독창성만을 강조하기에, 동아시아적인 보편성도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런데 점차 연구가 진행되면서 중국 민간연화와 연관은 있지만, 역시 민화는 다른 무엇보다 한국적인 그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일본민예관의 대표적인 민화 중 하나인 <까치호랑이>를 보면, 명나라 호랑이 그림의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그것과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다. 긴 꼬리를 등 위로 접어야 할 만큼 화면에 꽉 차게 배치했다. 그것은 호랑이와 까치의 관계를 강조하기 위한 포석이다. 화난 표정의 호랑이는 탐관오리, 당당한 모습의 까치는 민초를 대변한다. 최근 중국에서 ‘타호打虎’라 하여 부패한 관리를 척결하는 사회정화운동이 연일 신문 지상을 장식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호랑이를 권력을 남용하는 지배계층에 비유하는 전통이 있다. 조선 민화에서는 이러한 상징성을 강조하여 호랑이를 까치와 대립관계를 설정했다. 단순히 호랑이의 배경으로 존재하는 까치와는 다른 개념이다. 이러한 연유로 중국 호랑이 그림에 영향을 받은 조선 민화 까치호랑이 속의 호랑이가 88서울올림픽 때 한국을 대표하는 캐릭터로 내세워진 것이다.
지난 호에 소개했던, 야나기 무네요시가 조선 민화에 관심을 두는 계기가 된 <책거리>도 마찬가지다. 분명 서양식 원근법과 음영법으로 입체적이고 사실적으로 표현된 궁중의 책거리를 보았을 민화가는 그 소재는 빌려왔지만, 전혀 다른 세계를 펼쳤다. 입체적인 공간은 고려불화에 보이는 평면적인 공간으로 뒤바꾸고, 사실적인 표현은 표현주의적인 방식으로 나타내었다. 이를테면, 궁중 책거리에서는 가구를 원래 색 그대로 갈색이면 갈색, 회색이면 회색으로 사실적으로 그린다. 그렇지만 민화에서는 갈색의 가구를 적색, 녹색, 황색 등으로 다채롭게 표현주의적으로 그린다. 우리가 가진 채색에 대한 본능이 민화 속에 부활한 것이다. 공간, 색채, 선의 표현 등에서는 전통적인 미의식이 강하게 드러나 있는 것이 조선 민화다. 그런 점에서 조선 민화는 한국적인 그림인 것이다.

진실로 아름다움은 스스로 빛을 발한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민화의 매력과 아름다움에 대해 ‘새로움’, ‘자유로움’, ‘독특함’, ‘비과학적’, ‘비합리적’, ‘불가사의’ 등의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 매력을 막연한 느낌으로는 깨닫고 있지만, 언어로 적확하게 표현하지는 못한 것이다. 그의 민화관이 잘 피력된 ‘조선의 민화’에서는 다음과 같이 마무리 지었다.

“우리는 새로움을 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아름답다고 솔직하게 말해왔을 뿐이다. 그러나 이후 그 아름다움은 일반인들에게도 인정받을 것이다. 진실로 아름다운 것은 언젠가 스스로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중의 하나로서 무명의 조선민화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나 개인으로서는 이들 조선민화를 통해 어떠한 새로운 미학이론을 확립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 정도로 조선민화에는 독특하고 불가사의한 아름다움이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진실로 아름다움이 스스로 빛을 발하듯이, 민화도 세상에서 빛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조선민화에 숨 쉬고 있는 독특하고 불가사의한 아름다움이 무얼까? 자신이 해결하지는 못한 문제이지만, 언젠가 민화를 통해 새로운 미학이론이 확립될 것이란 기대 속에서 후학의 과제로 남겼다.
필자는 박대성 화백에게 삼배를 한 개인 소장 화조화의 매력이 뭐냐고 물었다. 박 화백은 주저 없이 ‘승화된 동심’이라고 답했다. 죽비로 한방 맞은 듯, 정신이 반짝 들었다. 역시 우리나라 최고 화가다운 안목이다. 이 그림은 어린이 그림을 보듯 소박하지만, 감상자로 하여금 잔잔하게 깊은 감동으로 이끈다. 더욱이 자세히 보면 디테일까지 살아 있다. 우리가 어린아이를 보면 누구나 사심 없이 좋아하듯, 이 작품에는 우리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근본적인 감성을 자극하는 본질적인 세계가 펼쳐져 있다. 그것이 승화된 동심일 게다. 야나기 무네요시가 기대하는 새로운 미학이론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이 민화 화조화에선 ‘승화된 동심’이 적확한 키워드라고 생각하면서 일본민예관을 나섰다.

 

글·사진 : 정병모(경주대학교 문화재학과 교수, 한국민화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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