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를 맞아들이기 위해 마음을 다하다, 삼고초려(三顧草廬)

도 1.  <삼고초려도>, 설화도 병풍, 지본채색, 39×101cm, (《朝鮮時代의 民畵 2》 藝園 도판 230)

▲도 1.  <삼고초려도>, 설화도 병풍, 지본채색, 39×101cm, (《朝鮮時代의 民畵 2》 藝園 도판 230)

삼고초려(三顧草廬)

삼국지는 오늘날까지도 애독되는 최고의 베스트셀러 소설 중 하나다. 한나라에 이어 위·촉·오의 삼국이 일어나 각축을 벌이던 격동의 시기, 조조·유비·손권을 비롯한 영웅호걸들의 무용武勇과 술수, 절의와 배신 등 역사적 사실에 근간을 둔 수많은 전투와 전략을 중심으로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삼국지의 이야기가 인기를 얻으니 그림으로도 널리 그려졌다. 줄거리에 따라 삼국지의 주요 장면 여러 폭을 그려서 완성한 삼국지 그림 병풍도 있지만, 핵심 장면 하나만을 그려 고사인물도 병풍의 한 폭으로 구성한 것도 있다. 고사인물도 병풍을 구성한 삼국지 그림으로는 유비가 관우, 장비와 함께 남양의 초당에 은거 중이던 제갈량을 찾아간 일을 그린 <삼고초려도>가 가장 많이 그려졌다.

세 번 찾아가 현사賢士를 초빙하다

<삼고초려도>는 유비와 관우, 장비가 남양에서 은거하고 있던 제갈량을 초빙하기 위해 세 번이나 그의 초당으로 찾아갔던 일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제갈량은 산동성 출신이지만,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호북성 형주에서 숙부의 손에 자랐다. 당시 전란을 피해 출사하지 않고 있었지만, 이미 명성이 높아 와룡선생이라 불리고 있었다. 조조에게 쫓겨 형주에 온 유비는 제갈량을 군사軍師로 모시기 위해 예를 다하였다. 제갈량의 초당을 직접 찾아갔는데, 번번히 부재중이라 허탕을 치고 돌아왔다. 마침내 세 번째 유비가 찾아가니 동자가 말하기를 제갈량이 낮잠을 자고 있다는 것이다. 유비는 그가 깰 때까지 댓돌 아래에서 기다렸는데, 바로 이 장면이 <삼고초려도>에 그려졌다(도 1). 그림을 보면 상단의 건물 안에 팔을 괴고 누운 제갈량이 있고, 유비는 두 손을 마주잡은 채 건물 밖에서 동자를 마주하고 있다. 하단에 관우와 장비, 그리고 그들이 타고 온 말 세 마리가 나란히 서 있다. 다혈질인 장비는 천하의 영웅이자 자신이 우러르는 의형 유비를 감히 낮잠을 잔다며 기다리게 하는 제갈량에 대해 분을 이기지 못해 씨근거리고, 일을 그르칠 것을 우려한 관우는 그를 말리느라 여념이 없다.
유비의 정성에 마음이 움직인 제갈량은 마침내 그의 초빙을 수락하고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를 진언하였으며, 이듬해 오나라와 손을 잡고 조조의 대군을 적벽에서 대파하였다. 유비는 제갈량을 얻은 것을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에 비유하였다.

조선 후기 역사소설 삼국지연의의 유행

오늘날 우리가 《삼국지》로 알고 있는 책은 14세기 나관중이 역사서를 바탕으로 편찬한 역사 소설인 《삼국지연의》를 말한다. 왕조실록을 보면 대략 선조 때 이미 《삼국지연의》가 우리나라에 전해졌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17~18세기를 거치면서 널리 보급되었다. 부녀자나 어린애들까지 그 구절을 외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유행하였다고 하고, 심지어 과거장의 시험 제목으로 등장하기도 하였다. 조선 말기 중인층의 성장과 함께 독자층이 두터워지면서 《삼국지연의》는 더욱 유행하였던 것으로 보이고, 민화의 유행과 함께 그림으로도 적극적으로 다루어졌다. 19세기 한양의 정경을 노래한 「한양가」에는 광통교 아래 그림 파는 점포에 각종 고사인물도가 걸려 있고 그 중에는 <삼고초려도>도 포함되었던 사실을 읊고 있다.
또 이렇게 팔려 나간 그림이 여염의 가옥 내부를 치장하던 모습도 조선 말기의 소설이며 무가巫歌 등에 묘사되고 있어서 흥미롭다.

고사인물도 중의 삼고초려도

“…남양의 제갈공명 초당에 잠에 겨워 / 荊益圖 걸어 놓고 평생을 我自知라. 한소열 유황숙이 삼고초려하는 모양….”

이는 앞서 언급했던 「한양가」 중의 한 구절이다. 노래 중에는 제갈량이 초당에 누운 모습과 유비가 그를 찾아간 모습이 등장하는데, 현존하는 <삼고초려도>의 경우 제갈량과 유비가 모두 그려진 경우는 드문 듯하다. ‘삼고초려’의 고사가 워낙 잘 알려져 있어 일일이 모든 모티프를 그려 넣지 않아도 이해가 되었을 것이다.
고사인물도 10폭 병풍 중의 하나인 <초당춘수족도>(도 2)를 보면 초당에 가로 누워 오수를 즐기고 있는 제갈량이 보인다. 동자가 건물 밖에 서 있으며 마당에는 매화가 만개하였고, 학 두 마리가 한가로이 노닐고 있다. 사립문이 열려있으나 유비 일행은 보이지 않는다.
산과 나무, 가옥과 인물의 표현에서 회화적 기량이 갖추어진 전문화가의 솜씨임을 알 수 있다. 그림의 제목 〈초당춘수족草堂春睡足〉은 제갈량諸葛亮의 시에서 유래한 것이다.

“큰 꿈을 누가 먼저 깨었는고, 평생을 나 자신이 스스로 알지. 초당의 봄잠이 넉넉하니, 창문 밖에 햇볕이 더디고 더디네.(大夢誰先覺 平生我自知. 草堂春睡足, 窓外日遲遲.)”

선문대박물관의 <삼고초려도>(도 3)에서는 초당에 커튼이 드리워지고 제갈량의 모습이 생략되었다. 그 대신 유비와 관우, 장비 세 인물이 모두 그려졌는데 귀티 나는 흰 얼굴의 유비와 대추빛 얼굴의 관우, 검은빛의 장비가 개성 있게 그려졌다. 머리와 몸의 비례가 지나치게 짧아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 짓게 하지만, 초당과 자연 배경의 소략한 표현이 잘 어우러지는 듯하다. 동아대박물관 소장의 <삼고초려도>(도 4)는 눈 덮인 겨울 산 속의 초당을 찾은 유비의 모습이 그려졌다. 동자는 제갈량이 낮잠 중이라 고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감상할 그림(도 5)은 제목이 <남양>이다. 남양은 바로 제갈량의 은거지이다. 상하로 긴 화폭의 하단에는 화조화가 그려져 있는데 우리가 보고자 하는 부분은 상단에 그려진 산수화이다. 수묵으로 묘사된 깊은 산 중의 소박한 은거처가 보이고 사립문은 열려 있다. 문 밖에는 세 마리의 말이 안장을 얹은 채 서 있다. 이를 통해 말 주인인 유비와 관우, 장비가 어딘가에 머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고사도이지만, 인물이 생략된 점이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화면 상단의 제시를 보면 내용이 더욱 명백해진다.

남양의 눈보라 속으로
현덕은 몸을 굽혀 세 번이나 찾았네
거짓 잠든 와룡을 깨우기가 몹시 어려웠다네
南陽風雪裏 玄德枉三顧 假睡深難起臥龍

삼고초려의 교훈

고사인물도의 경우 대개 중심이 되는 한 인물의 행적을 통해 교훈을 얻고 꿈을 펼쳐나가게 된다. 그런데 삼고초려의 경우는 중심이 되는 인물이 누구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초당춘수족도>(도 2)의 경우는 제갈량이 주인공이고, <삼고초려도>(도 4)나 <남양도>(도 5)의 경우는 유비, <삼고초려도>(도 1)와 선문대박물관 소장 <삼고초려도>(도 3)의 경우는 유비를 동반한 관우와 장비의 비중도 적지 않을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비록 그림에 제시된 장면은 하나이지만, 이를 통해 그림을 감상하는 이는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쳐 각 인물의 활동상과 이들의 우애와 충의 등을 떠올리며 교훈으로 삼았을 것이다.

 

글 : 유미나(원광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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