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경관으로 거듭난 현실 속 이상향 소상십경도(瀟湘十景圖)

소상십경, 10폭, 각 32×103㎝, 견본수묵

*소상십경, 10폭, 각 32×103㎝, 견본수묵

소상십경도(瀟湘十景圖)

현대인들은 인터넷과 각종 SNS를 통해 여행지의 정보를 모으고, 미리 여행을 떠난 듯한 감상에 젖고는 한다. 여행지를 다녀온 사람들의 경험이 축적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지면서 현실 속의 풍경은 인문경관人文景觀으로써 재탄생하는데, 우리 선조들에게는 중국의 소상팔경이손꼽히는 인문경관이었다. SNS가 아닌 그림으로 남은 소상십경도를 통해 여행을 떠나보자.

*작품을 클릭하시면 큰 사이즈로 보실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에서 유명세를 떨친 소상팔경

휴가철과 명절을 맞이하여 박물관도 분주해졌다. 9일간의 축제 기간 동안 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한국민화뮤지엄을 다녀갔고 인터넷에도 관련 글과 사진들이 시시각각 업데이트되고 있다. 현대인들이 휴가나 휴일을 즐기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것 중 하나가 바로 이렇게 인터넷에 게재된 사진과 후기이다. 여행 장소를 정하기 전에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뿐 아니라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등 그 종류도 다양한 SNS를 찾아보고, 또 다녀온 후에 후기를 적는 것은 이미 대중적인 문화로 자리 잡은 지 오래이며 이러한 문화는 교통과 기술 발달의 산물이다. 우리 선조들에게서 이런 풍습을 찾아볼 수 있는 사례로는 시문학과 더불어 그림을 꼽을 수 있다. 많은 명승지 가운데 고려시대에 유입된 이후 조선시대를 거치며 두루 인기를 누렸던 소상팔경은 직접 가보기는 힘들지만, 시화詩畵를 통해 누리고 싶었던 막연한 그리움의 장소였다. 소상팔경을 그린 그림은 이차적 경험으로나마 여행지의 여유를 즐길 수 있던 선조들의 SNS이자 눈과 귀를 요기하는 공간이었을 것이다.
소상팔경瀟湘八景은 그 명칭을 통해 중국 호남성 영원현 구의산에서 발원하여 호남성을 관통하는 소수瀟水와 광서성 영천현 해양산에서 발원하여 호남성까지 이르는 상수湘水가 만나는 부근의 빼어난 경치 여덟 곳에 이르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그려진 주제를 살펴보면 좁게는 중국 호남성 상강과 동정호 주변, 넓게는 호남지역 전체를 뜻한다. 소상팔경도와 각 폭의 주제는 송적宋迪(1050~1080)에 의해 처음 작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중국에서 시작된 소상팔경시와 소상팔경도는 고려시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과 베트남까지 영향을 끼쳤다. 소상팔경에 대한 애호는 동아시아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났던 문화 현상에 해당하며 나라별로 특색 있는 소상팔경 시화詩畵가 유행하는 배경이 되었다.
한국민화뮤지엄 소장의 <소상십경도瀟湘十景圖>는 왼쪽부터 강도모설江都暮雪, 소상야우瀟湘夜雨, 한사모종寒寺暮鍾, 동정추월洞庭秋月, 평사낙안平沙落雁, 창오모운蒼梧暮雲, 어촌낙조漁村落照, 원포귀범遠浦歸帆, 황릉제견黃陵啼鵑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일반적으로 많이 그려졌던 소상팔경의 주제에 창오모운과 황릉제견이 추가된 형태인데 두 가지 모두 순임금에 관련된 장소로, 작가가 순임금의 죽음과 두 비妃, 아황과 여영의 행적에 관한 이야기를 알고 소상팔경의 장소인 호남지역 중 이에 관련된 두 장소를 의도적으로 추가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유교적 관점에서 순임금과 열녀로 칭송되는 아황과 여영이 죽은 장소인 소상팔경이 문인들에게 인기를 얻으며 조선시대를 통틀어 지속해서 재생산되었던 점을 고려할 때 이 작품이 어느 정도 학문적 소양을 가진 작가에 의해 그려졌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이는 민화 소상팔경도가 현세 구복적인 낙원으로서의 이미지뿐 아니라 조선 초부터 문인들에게 향유되었던 인문경관으로서의 역할도 여전히 담당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전승 패턴에서 벗어난 과감한 시도

또한, 이 작품은 일반적으로 그려졌던 소상팔경이 아닌 십경十景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국에서도 남송 시기에 유행했던 소상팔경이 <동정추월洞庭秋月>과 <소상야우瀟湘夜雨>를 제외하면 정확한 장소라기보다는 어떤 지역이든 비슷한 경관을 찾을 수 있을 정도의 개괄적인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이후 십경十景과 십이경十二景 등의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기도 하였으나, 19세기 말경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민화뮤지엄 소장품과는 시대적·공간적 차이가 현저하여 직접적인 영향 관계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이 구성은 작가가 고려시대에 전래한 이래로 조선시대까지 대대적으로 유행하던 일반적인 패턴을 과감하게 깨고 감명 깊은 장소를 추가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는 궁중장식화에서 민화로 변형되는 과정 중 많은 작품에서 작가의 미감에 맞게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졌듯이 민화가 가지는 자유로움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작화 패턴으로 봤을 때 왼쪽 두 폭과 나머지 여덟 폭에는 현저한 차이가 존재한다. <강모도설>과 <소상야우>의 경우 바위 표현에서 담묵으로 짧게 여러 번 끊어 그린 후에 농묵으로 선을 한 번씩 덧그려준 형태이며 나뭇잎도 나머지 작품에 비해 세필로 앙상하게 표현되었다. 또한, 고기잡이하는 어부를 포함하여 바위와 나무까지 등장하는 모든 사물의 테두리를 한 번 더 그리고 테두리 바깥쪽을 담묵으로 처리하여 상대적으로 테두리 안쪽에 하이라이트 효과를 주고 있는데 마치 얼음 안에 사물들이 갇힌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왼쪽 두 폭과 나머지 폭에 등장하는 배나 누각의 형태, 인물표현이 일치하며 서체가 동일인의 것으로 보여 한 작가가 시차를 두고 그린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오른쪽 여덟 작품이 먼저 그려져 소상팔경을 이루었다가 이후에 좀 더 능수능란한 필치로 세부 표현을 더해 왼쪽 두 작품을 추가하여 소상십경이 탄생했을 것이다. 이는 두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가진다. 우선 일반적으로 그려졌던 소상팔경도를 소상십경도로 구성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원래 그려지던 주제를 생략한 상태로 <창오모운>과 <황릉제견>이 추가되어 그려지기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 작품과 거의 흡사하게 그려진 국립민속박물관 소장의 낙화 <소상십경도>와 이영수 소장의 채색이 가미된 <소상십경도>보다 이 작품이 먼저 제작되어 나머지 작품의 본그림 역할을 담당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꿈에서 찾는 이상향을 그림으로

한편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여러 겹의 굵은 담묵으로 처리된 도식화된 산과 바위 모양은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통일감을 형성하며 실존하는 경치라기보다 차라리 무릉도원과 같은 이상향을 담아놓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게다가 바위마다 빼곡하게 자리 잡은 나무들은 바위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어 나간 형상으로 그려져 때로는 위를, 때로는 옆을, 심지어 아래쪽을 향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기까지 하다. 마치 지구가 평평하다는 주장에 맞서 지구의 둥근 모양을 강조하고자 사물이 지구를 중심으로 사방에 중력으로 매달려 있는 형태를 의도적으로 두드러지게 표현한 그림처럼 보인다. 이는 그림의 중간 어디 즈음에서 관찰자가 고개를 360도로 돌려가며 다양한 각도로 사물을 보고 그린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데 이러한 장치가 몽환적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또한, 인물이나 누각의 상대적 크기에서는 그리는 기능상의 문제나 의도적인 강조 욕구로 현실감이 떨어지기도 하지만, <평사낙안>의 기러기 떼의 경우 동일한 사물임에도 불구하고 근경과 원경에 등장하는 기러기의 크기나 디테일 묘사의 차이를 현저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는 작가가 어느 정도 원근법을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따라서 조선 후기에 중국을 통해 들어온 과학 지식이나 서양식 원근법의 이해는 작가가 소상팔경을 인문경관人文景觀으로 이해하고 <창오모운>과 <황릉제견>을 추가했던 점과 더불어 작가의 교육 수준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부분이자 이 작품을 가로지르는 또 하나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실존하는 장소임에도 우리 선조들은 물론 중국에서조차 가보기 힘들었던 장소인 소상팔경은 유교적, 도교적, 풍수지리적으로 우리 선조들이 꿈꾸던 이상향이자 그리움의 장소로서 시와 그림으로 끊임없이 재생산되었던 공간이다. 마치 우리가 인터넷상의 사진과 동영상, 후기를 통해 그 장소에 가보지 않아도 가본 듯한 감흥을 받는 것처럼 우리 선조들도 그렇게 소상팔경에 대한 막연함을 형상화하며 그리움을 달랬을 것이다. 조선시대 선조들의 SNS 속 후기이자 사진이었을 한국민화뮤지엄 소장의 <소상십경도>를 통해 무더위를 뒤로하고 떠나는 가을 여행 장소를 정해보는 것은 어떨지 권해본다.

 

글 : 오슬기(한국민화뮤지엄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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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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