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복 교수의 소재로 살핀 우리 옛 그림 ㉑ 봉황鳳凰

도15 미상(19세기), <봉황도>, 종이에 채색, 73×61.5㎝,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난조鸞鳥라고도 불리는 봉황은 상상의 새로 다양한 모습으로 작품에 등장한다.
봉황의 출현은 흔히 성군聖君의 선정으로 태평성대가 시작됨을 알려주는 길조吉鳥다.

글 이원복(미술사가)


봉황은 수컷인 봉鳳과 암컷인 황凰을 합성한 명사이다. 난조鸞鳥는 봉황의 별칭이기도 하다. 중국 명대 1607년 왕기王圻·왕사의王思義 부자가 출간한 《삼재도회三才圖會》와 1590년 《채근담菜根譚》을 편찬한 홍응명洪應明의 《선불기종도전仙佛奇踪圖傳》, 《고씨화보顧氏花譜》 등을 살필 때 봉황과 난조는 도상이 같다. 대체로 금계錦鷄·공작·꿩·원앙 등 여러 새를 합성한 형태로 한·중·일 동아시아 삼국이 비슷한 양상이다.
이 새는 중국을 비롯해 한자문화권 내 문학·역사·사상 등 고전古典에 빈번히 나타난다. 용龍과 마찬가지로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동물이다. 대나무 열매만 먹고 벽오동碧梧桐에 날아든다고 하여 그림에선 흔히 이 두 식물을 배경으로 등장한다. 봉황의 출현은 흔히 성군聖君의 선정으로 태평성대가 시작됨을 미리 알려주는 길조吉鳥이다.
중국에서 봉황 도상은 갑골문·고동기·화상석 등에서 시원을 살필 수 있고, 꿩의 수컷인 장끼와 암컷인 까투리에서 살필 수 있듯 조류는 일반적으로 수컷이 아름답다. 봉황의 모습에 대해서는 시대에 따라 조금씩은 차이를 보이나 당·송을 거쳐 명 이후 점차 정형을 이루게 된다.
동아시아의 서상적瑞祥的 동물로는 전국시대 《예기禮記》에 명기된 사령四靈 즉 봉황鳳凰·용龍·기린麒麟·거북[신구神龜], 동아시아 고대회화의 위상을 알려주는 한漢과 바통을 이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네 방향을 수호하는 사신四神 즉 청룡靑龍·백호白虎·현무玄武·주작朱雀이 있다. 이들 동물 외에 10장생長生에 포함된 학과 사슴 외에 해치獬豸·흰 코끼리·흰 까치·사불상四不像 등도 포함된다.


(좌) 도1 임량(林良, 16세기 초), <봉황도>, 비단에 수묵담채, 163×96㎝, 일본 쇼코쿠지 소장
(우) 도8 <금동대향로>, 백제(7세기), 높이 64㎝,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좌) 도2 명明 만력(萬曆, 1573-1620), <오채 용봉무늬 면반[五彩龍鳳文面盤]>, 구경 39㎝,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우) 도5 미상(남송南宋), <선녀승람도仙女乘鸞圖>,비단에 채색, 25.3×26.2㎝, 베이징고궁박물원 소장


중국과 일본 봉황도 – 도석인물화, 화조화의 세 유형

중국에서 송宋 이래 10세기부터 화조화 발전에 힘입어 봉황은 화려한 각종 꽃과 여러 종류 새를 거느린 <백조조봉도百鳥朝鳳圖>, 봉황[군신유의君臣有義]을 비롯한 5종의 새를 유교적 덕목인 오륜五倫에 빗대어 학[부자유친父子有親], 원앙[부부유별夫婦有別], 노랑 할미새[장유유서長幼有序], 꾀꼬리[붕우유신朋友有信] 등을 함께 그린 <오륜도五倫圖>, 명 궁정화가 임량(林良, 15-16세기 초)의 <봉황도>처럼(도1) 태양과 함께 내조한 제후로서의 봉황, 또는 용감하게 간언하는 현신賢臣의 의미로 그려진 <봉명조양도鳳鳴朝陽圖> 등 세 유형으로 나뉜다. <오륜도>의 봉황은 금계 대신이며, 노랑 할미새와 꾀꼬리를 공작과 제비로 그려 넣기도 한다.
동시대 여기呂紀 그림 등도 전하며, 15세기 후반 한 쌍으로 등장한 <청화백자 봉황무늬 대접>과 <오채 용봉무늬 면반[五彩龍鳳文面盤]>(도2)이나 청 <오채 용봉무늬 통> 등에서 용과 봉황이 도자기 표면에 문양으로도 등장한다. 이 같은 양상은 18세기 이후 조선시대 청화백자 접시와 항아리에서도 살필 수 있는데, 중국 도자기에서 비롯하나 중국과 달리 단순하며 우리 미감에 맞게 변모됨을 확인할 수 있다.
현존하는 그림 중 가장 이른 봉황은 1949년 호남성 장사 진가대산 초묘楚墓에서 발굴된 기원전 전국시대(기원전 3세기) <용봉사녀도龍鳳仕女圖>로 인물과 함께 등장한다(도3). 관을 덮은 채로 발굴되어 장례 때 의식에 사용된 깃발이나 명정으로 본다. 측면으로 그려진 여인 위로 봉황과 용이 머리를 마주해 하늘을 향해 솟구친다. 사자死者를 이끌어 승천하는 것으로 본다. 현존하는 비단에 그려진 그림 중 가장 시대가 올라가는 것인 이 그림은 신선사상神仙思想 즉 도교와 연관된 것으로 봄이 일반적이다.


(좌) 도3 미상(전국, B.C 3C), <용봉사녀도龍鳳仕女圖>, 비단에 수묵, 31.2×23.2㎝, 호남성박물관 소장
(우) 도4 <부인계문婦人啓門>, 요遼, 1116년, 125×75㎝, 하북성 선화현 하8리 장세경묘 후실서벽 벽화



무덤 내 벽화로는 1974년 발굴한 하북성 장세경張世卿 묘(1116년) 후실 서벽에 등장한 <부인계문婦人啓門>이다(도4). 문을 여는 자세로 옷을 두 손으로 안은 부인과 얼굴을 측면으로 서로 마주한 봉황은 긴 꼬리를 아래로 하고 위로 나르는 모습을 취하고 있다. 인물과 엇비슷한 크기로 등장한 봉황은 고려불화 보살의 옷 무늬와도 닮아 고려청자와 불화 등의 유사성과 함께 고려와 요 두 나라 교류 차원에서도 주목된다.
고사인물화 범주에서 인물과 함께 봉황이 등장하니 남송대 <선녀승람도仙女乘鸞圖>는 봉황을 탄 선녀로 18세기 초 청대 접시에도 등장한다(도5). 명대 장로(張路, 1464-1538)의 <봉황선녀도>도 알려져 있다. 전술한 《선불기종도전》에는 봉황을 탄 신선으로 <매복梅福>이, <서왕모西王母> 측면에 봉황이 등장해 조선시대 궁중화인 <요지연도瑤池宴圖>에 앞선 진원지 의미를 지닌다. 청 건륭(乾隆, 1711-1799) 때 그려진 <팔선八仙과 삼성三星, 서왕모>는 정형화된 조선 <요지연도>와는 차이를 보이나 봉황을 탄 모습이 보인다(도6).
일본의 봉황으로 17세기 그려진 필자 미상의 <오동봉황도> 병풍이 도쿄국립박물관에서 1995년 열린 ‘화花’ 특별전에서 공개되었다. 대물림한 화가 가문으로 카노에이토크(狩野永德, 1543-1590)의 <봉황·공작> 병풍이 전하며, 카노 히데노부(狩野秀信, 1588-1672)의 봉황과 공작을 각기 그린 한 쌍의 6첩 중 <봉황도> 병풍은 2006년 국립광주박물관에서 개최한 ‘동아시아의 색, 광채’에 출품되어 일반에게 공개되었다(도7). 애도시대 초현실적 화조의 대가 이토 자쿠추(伊藤若冲, 1716-1800)의 대표작으로 일본 궁내청 소장 32폭 <동식채회動植綵繪> 중 흰 봉황도 잘 알려졌다. 이들 모두는 다소 장식적이며 도안적圖案的이나 화사한 일본 장병화障屛畫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도6 <팔선八仙과 삼성三星, 서왕모>, 18세기, 비단에 채색, 182.8×104.2㎝,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뮤지엄 소장



도7 카노 히데노부(狩野秀信, 1588-1672), <봉황도> 6첩병, 종이에 채색, 175×360㎝,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우리나라 봉황도 – 궁중화로 조선후기부터

우리나라에서 도교적道敎的 요소의 유물은 기원전 1세기경이다. 옛 그림 중 현존 화조화에서 봉황의 등장은 조선 후기로 시대가 사뭇 내려온다. 그러나 이 새의 존재는 일찍부터 알려졌다.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학을 비롯해 감신총龕神塚에 다른 종류의 새를 탄 신선도 보인다. 1992년 백제 고도 부여에서 발굴된 <금동대향로>는 향료의 저부가 용이며 정상부에 봉황이 등장한다(도8). 아울러 부여 규암에서 출토된 8점이 세트를 이루는 아름답고 세련된 문양이 돋보이는 전돌 중에 용과 봉황문전이 있다. 통일신라 와당瓦當에 보이는 봉황문, 고려시대 청동거울 중 생황笙篁을 부는 인물 곁에 춤추는 봉황이 등장한 <청동 소사봉황簫史鳳凰 무늬 거울>도 있다.
음각과 상감으로 시문된 고려청자 봉황, 조선시대 백자 중 용준龍樽과 봉준鳳樽의 존재를 통해 같은 양상임을 알 수 있다. 18세기 이후 병, 항아리, 접시 등에서 봉황, 그리고 용과 함께 있는 봉황을 만날 수 있다. 조선 후기 봉황과 용이 함께 등장하거나 각기 등장한 <백자청화 운봉문 호>가 일례다(도9). 그 연원은 중국이다. 그러나 조형예술 전반이 그러하듯 진원지인 중국과 달리 도자기 문양에서도 너른 여백, 단순한 표현, 회화성과 활달하고 분방한 우리 미감美感의 특징을 잘 반영한다. 무늬 중에 괴석에 모란과 원앙을 그린 <백자청화 화조문 항아리>는 회화사의 화조화 연구에도 좋은 자료가 된다.


(좌) 도9 <백자청화 운봉문 호>, 조선(18세기), 높이 36.9㎝, 조선관요박물관 소장
(우) 도12 김홍도(1745-1806경), <봉황도>, 종이에 채색, 62×31㎝, 개인 소장



(좌) 도10-1 <수월관음도>와 세부, 고려(14세기), 비단에 채색, 175×360㎝,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우) 도10-2 <스란膝欄 치마>와 세부, 조선(19세기), 136×179㎝, 개인 소장



그뿐 아니라 이에 앞서 일본 가가미진자[경신사鏡神社] 소장 대형 <수월관음도>를 비롯한 아미타여래도, 비로자나삼존도, 지장보살도, 화엄변상도 등 대부분의 고려불화 내 주인공으로 섬세한 금니金泥로 그린 옷 무늬에 춤추며 날아오르는 다양한 자세의 봉황이 보인다(도10-1). 금속, 도자, 목공예 외 조선시대 가례嘉禮 때 입은 활옷이나 왕비의 법의인 적의翟衣, 복원공주의 <스란膝欄 치마> 금박무늬를 살피면 왕비는 용, 공주와 옹주는 꽃과 글자인데 세자빈世子嬪은 봉황이다(도10-2). 이밖에 ‘학문의 신神’ 문창성文昌星과 사령을 수繡 놓은 붓 주머니, 세 기둥이 붙은 화각필통華角筆筒에도 봉황이 등장한다.
조선시대 회화에 등장한 봉황은 본격적인 화조화에 앞서 고사인물화 범주로 도화서 소속 화원들에 의해 광물성 안료인 진채眞彩로 화려하고 섬세하게 그린 궁중화宮中畫에 등장한다. 곤륜산 요지에서 천도天桃가 열리자 서왕모西王母가 신선을 초대해 베푼 잔치인 <요지연도>나(도11), <곽분양행락도郭汾陽行樂圖> 등 고사인물화에서 조연으로 등장한다.
화조영모화 영역에선 역시 서상화인 <서수낙원도瑞獸樂園圖> 등에도 등장한다. 드문 예로 재일동포 김용두 선생이 일본에서 수집한 소장품으로 국립진주박물관에 기증한 비교적 이른 시기 것으로 보이는 그림으로 <오륜도> 범주도 알려졌다. 봉황이 주된 소재로 주인공이 됨은 18세기 후반 이후로 사료된다. 1783(정조7)년 도화서 소속 아닌 규장각奎章閣의 잡직으로 제도화되어 백 년 가까이 지속된 자비대령 화원 녹취재祿取才에 봉황이 등장하면서 새롭게 부각된 소재였다. 하지만 현존하는 것은 김홍도(金弘道, 1745-1806경)의 괴석과 대나무를 배경으로 한 쌍을 그린 것과(도12), 화본풍으로 긴 제사를 곁들여 괴석 위에 한 마리만 당당하게 등장한 조정규(趙廷奎, 19세기)의 <봉황도>(도13) 외엔 이렇다 할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들다.


도11 <요지연도> 10첩 병풍 부분, 조선(19세기), 149×360㎝, 개인 소장



도14 오일영, 이용우 합작, <봉황도>, 1925, 비단에 채색, 214×578㎝, 창덕궁 대조전


조선말과 현대 민화 – 자유로운 다양한 변모

창덕궁 내 용마루가 없는 왕비가 거처하는 내전인 대조전大造殿 동벽 상단에는 가로로 긴 가장 큰 <봉황도>가 있다(도14). 일제강점기 1925년 오일영(吳一英, 1890-1960)과 이용우(李用雨, 1904-1952)가 합작한 비단에 그린 그림이다.
궁중화로 시작된 책거리[冊架圖]나 고사인물화 등 여타의 주제와 마찬가지로 조선말 민화로 이어져 신국면이 펼쳐진다. 1973년 국립중앙박물관 ‘한국민예미술전’에 출품된 그야말로 본격적인 36점 민화 중 <계도鷄圖>로 출품되었다가 <봉황도>로 이름이 정정된 것(도15), 민화 <문자도> ‘염廉’에 등장한 봉황, 해만이 아닌 달과 짝을 이룬 <봉황도>(도16) 등이 있으며 상상의 새이기에 모습 변모에 자유로우며 여러 다양한 새들과 일괄로 어우러진 화조도 병풍에서 다채롭고 다양한 변모를 보인다.
사실적인 표현의 일반 감상화와 구별되는 데포르마시옹, 즉 자유로운 변형과 익살 등으로 나름의 시대성과 특징을 온축蘊蓄하여 고전적 위상으로 진입한다. 작가 정지연의 <소우주-백제금동대향로>를 비롯한 향로 시리즈 등은 현대화단에 진입해 청출어람靑出於藍으로 전개되니, 이는 사뭇 긍정적이며 고무적인 양상이 아닐 수 없다.


(좌) 도13 조정규(19세기), <봉황도>, 종이에 채색, 73×61.5㎝,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우) 도16 미상(19세기), <봉황도> 대련, 종이에 채색, 각 73×61.5㎝, 개인 소장



이원복 | 미술사가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장과 학예연구실장,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경기도박물관장 등을 역임하며 42년간 박물관 현장에 몸담았다.
현재 동국대학교 객원교수, (사)역사여성미래 공동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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