ì´ì›ë³µ êµìˆ˜ì˜ 소재로 ì‚´í•€ 우리 옛 그림 ⑳ 메추리

ë„12-2 <메추리>, ê°œì¸ ì†Œìž¥



성ì¸ìˆœê±°è–人鶉居와 í˜„ìˆœë°±ê²°æ‡¸é¶‰ç™¾çµ ë“±ì˜ ì‚¬ìžì„±ì–´ê°€ ì˜ë¯¸í•˜ë“¯ 메추리는 ë•ì„±å¾·æ€§ì„ ì§€ë‹Œ 새로, 어디서나 만족하며 사는 소박함과 ìˆœë°•í•¨ì„ ì§€ë…”ë‹¤. 몇 마리 메추리 ì•žì— ìˆ˜ìˆ˜ë¥¼ 뿌리면 싸움닭, 투계鬪鷄처럼 싸워 ì´ê¸´ ë…€ì„ì´ ìˆ˜ìˆ˜ë¥¼ ë…차지 í•´ 용기勇氣를 ìƒì§•í•˜ê¸°ë„ í•œë‹¤. 중국와 ì¼ë³¸, 그리고 한국ì—서 메추리는 사랑받는 그림 소재였다.
글 ì´ì›ë³µ(미술사가)


ë„ì‹¬ì— ì‚¬ëŠ” ì¼ë°˜ì¸ë“¤ì—게 ë©”ì¶”ë¦¬ë¼ í•˜ë©´ ìŠˆí¼ ë¹„ë‹ë´‰ì§€ì— 담긴 ê»ì§ˆì„ ê¹ ìž‘ì€ ì•Œë“¤ì´ ë¨¼ì € 떠오를 것ì´ë‹¤. 메추리는 메추ë¼ê¸°ë¼ê³ ë„ 하며 ê¿©ê³¼ 메추ë¼ê¸° ì†ì— ì†í•œë‹¤. 암수 ëª¨ë‘ ê¹ƒí„¸ì´ íŠ¹ë³„ížˆ 곱거나 아름다운 새는 아니며 ëª¸ì§‘ì€ ë‹­ë³´ë‹¤ 작다. 성경ì—ë„ ë“±ìž¥í•˜ëŠ” ë©”ì¶”ë¦¬ì˜ ìž‘ì€ ì•Œì€ ìž¥ì¡°ë¦¼ 등 요리로 활용ë˜ê³ , 조선시대부터 고기 ë§›ì´ ì•Œë ¤ì ¸ 사육한다. ìš°ë¦¬ë‚˜ë¼ ë¶ë…˜ ì¼ë¶€ 지역ì—는 í…ƒìƒˆë„ ìžˆëŠ” 것으로 전하나 겨울철새로 숲ì´ë‚˜ í’€ë°­ì— ë¬´ë¦¬ 지어 산다.
한ìžë¡œ 메추리는 암鵪·순鶉·료鷯 등ì´ë‹¤. 우리나ë¼ì—ì„  ìˆœé¶‰ì´ ì£¼ë¡œ ì“°ì¸ë‹¤. 오랜 ê³ ì „ì¸ ã€Šì‚¬ì„œì‚¼ê²½å››æ›¸ä¸‰ç¶“ã€‹ì´ë‚˜ ã€Šì˜¤ê²½äº”ç¶“ã€‹ì— ì†í•œ 중국 ìµœê³ ì˜ ì‹œì§‘è©©é›†ì¸ ã€Šì‹œê²½è©©ç¶“ã€‹ì—ë„ ë“±ìž¥í•˜ë©°, 우리나ë¼ë„ ì´ ìƒˆë¥¼ 주제로 한 ì‹œë“¤ì´ ì—¬ëŸ¿ 알려져 있다. ì„±ì§ˆì€ ëŒ€ì²´ë¡œ 부드럽고 순하며 철새로 ë– ëŒì´ ìƒí™œì„ 한다. ê½ì§€ê¹ƒì´ 없어서ì¸ì§€ 잘 ë³´ì´ì§€ 않으며 외모는 기운 누ë”기 같으며, ìž‘ì€ í’€ì„ ë§Œë‚˜ë„ í”¼í•´ ëŒì•„간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어디서나 만족하며 사는 소박하고 ìˆœë°•í•¨ì„ ì§€ë…”ë‹¤.
‘성ì¸ì˜ ì‚¶ì€ ë©”ì¶”ë¦¬ ê°™ì´ ì‚¬ëŠ” 것’ì´ëž€ ëœ»ì˜ ì„±ì¸ìˆœê±°è–人鶉居와 ‘백번 ì´ì€ 누ë”기 옷’ì´ëž€ ëœ»ì˜ í˜„ìˆœë°±ê²°æ‡¸é¶‰ç™¾çµ ë“± 메추리가 들어간 사ìžì„±ì–´ê°€ ì˜ë¯¸í•˜ë“¯ 메추리는 ë•ì„±å¾·æ€§ì„ ì§€ë‹Œ 새ì´ë‹¤. 순거鶉居는 머무는 ê³³ì´ ì¼ì •하지 않ìŒì„ 뜻한다. 성ì¸ì€ í™˜ê²½ì— ì§€ë°°ë˜ì§€ 않으니 장소를 가리지 않고, í˜„ìˆœæ‡¸é¶‰ì€ ëˆ„ë”기 옷ì´ë‹ˆ 가난 ì†ì—ì„œë„ ì•ˆë¶„ì§€ì¡±å®‰åˆ†çŸ¥è¶³í•¨ì„ ì˜ë¯¸í•œë‹¤. 한편 몇 마리 메추리 ì•žì— ìˆ˜ìˆ˜ë¥¼ 뿌리면 싸움닭, 투계鬪鷄처럼 싸워 ì´ê¸´ ë…€ì„ì´ ìˆ˜ìˆ˜ë¥¼ ë…차지 í•´ 용기勇氣를 ìƒì§•í•˜ê¸°ë„ í•œë‹¤.


(위) ë„1 최ê°(11세기), <비파와 메추리>, ë¹„ë‹¨ì— ì±„ìƒ‰, 27.5×25.5ãŽ, 타ì´ë² ì´ 국립고ê¶ë°•ë¬¼ì› ì†Œìž¥
(아래) ë„2 ì´ì•ˆì¶©(12세기), <들국화와 메추리>, ë¹„ë‹¨ì— ì±„ìƒ‰, 24.1×40.5ãŽ, 타ì´ë² ì´ 국립고ê¶ë°•ë¬¼ì› ì†Œìž¥



ë„3 ì¡°ì°½(10-11세기), <메추리>, 《고씨화보顧æ°ç•µè­œã€‹ ë‚´


중국와 ì¼ë³¸ì˜ 메추리 그림
-화조화ì—서 ì¦ê²¨ 그려진 소재

중국ì—서 사실ì ì¸ 꽃과 ë™ë¬¼ ê·¸ë¦¼ì€ ë‹¹(å”, 618-906) 때부터 그려졌다. ì´ëŠ” 기ë¡ê³¼ ë”불어 하나둘씩 발굴ë˜ëŠ” 당 고분벽화를 í†µí•´ì„œë„ ì—¿ë³¼ 수 있다. 당ì—서 ì´ë“¤ 제작 목ì ì„ ‘장ì‹ì ì¸ 미와 정확한 ìž¬í˜„â€™ì— ìžˆìŒì„ 제임스 ì¼€ì¼ì€ 천명한다. 송 휘종(徽宗, 1082-1135) 때 ê¶ì¤‘ 회화목ë¡ì¸ 《선화화보宣和畫譜》ì—는 ì†Œì—´è•­æ‚…ì˜ <ë§¤ì£½ìˆœë£Œë„æ¢…竹鶉鷯圖>ë¼ëŠ” ìž‘í’ˆëª…ì´ ì „í•œë‹¤. ì‹œì¸ ë°±ê±°ì´(白居易, 772-846)ê°€ ìŒë¥ ì„ ì •ë¹„í•˜ë˜ ê´€ë£Œì¸ ì†Œì—´ì˜ ëŒ€ë‚˜ë¬´ ê·¸ë¦¼ì— ì œì‹œë¥¼ 남길 ì •ë„로 대나무 ê·¸ë¦¼ì— ìœ ëª…í–ˆë‹¤. 당 조광윤, 오대五代 종ì€Â·í™©ì „·황거보·등창우, 송宋 황거채 등 줄기차게 그려졌다. 작품 ì œëª©ì„ í†µí•´ì„œ 매화와 대나무나 꽃과 함께 그린 화조화 범주ì—서 ì¦ê²¨ 그려진 소재ì´ë©°, 한 마리나 ìŒìœ¼ë¡œ ë˜ëŠ” 다른 조류와 함께 그렸ìŒì„ ì§ìž‘í•  수 있다.
1995ë…„ ê°€ì„ íƒ€ì´ë² ì´ ê³ ê¶ë°•물ì›ì—서 ‘송대서화책엽명품특전宋代書畫冊é åå“ç‰¹å±•â€™ì´ ì—´ë ¸ë‹¤. 박물관 개관 70ì£¼ë…„ì„ ê¸°ë…í•´ 송(宋, 970-1279) í™”ì²©ì— ì†í•œ 서화 70ì ì„ 한 ìžë¦¬ì—서 공개했다. ì´ ì „ì‹œì— ìµœê°(崔慤, 11세기)ì˜ <비파와 메추리[비파암순枇æ·éµªé¶‰]>와 ì´ì•ˆì¶©(æŽå®‰å¿ , 12세기)ì˜ <들국화와 메추리[야국추순野èŠç§‹é¶‰]> 등 2ì ì˜ 메추리 ê·¸ë¦¼ì´ ì¶œí’ˆë˜ì—ˆë‹¤(ë„1), (ë„2).
최ê°ì€ ë¶ì†¡ 때 명품 대작으로 토ë¼ì™€ 한 ìŒì˜ 까치가 등장한 <토ë¼ì™€ 까치[ìŒí¬ë„雙喜圖]>를 남긴 ê¶ì •í™”ì›ìœ¼ë¡œ ì˜ëª¨í™”ì—서 첫ì†ì— 꼽히는 최백(崔白, 11세기 후반)ì˜ ì•„ìš°ë¡œ 알려져 있다. 최ê°ì˜ ê·¸ë¦¼ì€ ë¹„íŒŒë‚˜ë¬´ 아래 한 마리 메추리가 땅강아지를 노리는 모습으로 등장하는ë°, ì†Œìž¬ë“¤ì˜ ì‚¬ì‹¤ì ì¸ 표현과 긴박한 분위기 등 필치나 구성ì—서 ìœ ì‚¬ì„±ì´ ë³´ì¸ë‹¤. ë•…ë°”ë‹¥ì˜ ìž”í’€ê³¼ 함께 ìžŽì´ ê¸¸ê³  가는 조처럼 ë³´ì´ëŠ” ì‹ë¬¼ë„ ë³´ì¸ë‹¤. ëŒ€ë‚˜ë¬´ì— ì•‰ì€ ë¹„ë‘˜ê¸°ì¸ <죽국ë„竹鳩圖>를 남긴 ì´ì•ˆì¶©ì€ íœ˜ì¢…ì„ ë¹„ë¡¯í•´ 후대 화조화ì—서 비슷한 구ë„를 ë³´ì—¬ 선구ì ì¸ 위치를 ë³´ì¸ë‹¤. 그는 ê°€ì„ì„ ë°°ê²½ìœ¼ë¡œ 한 ìŒì˜ 메추리를 남겼다. 메추리는 ê°ê¸° 하늘과 ë•…ì„ ë°”ë¼ë³´ëŠ”ë° ë“¤êµ­í™”ì™€ ì£½ì—½ç«¹è‘‰ë„ ë“±ìž¥í•œ 화조화ì´ë‹¤.


ë„4 주탑(1626-1705ê²½), <메추리>, 1694ë…„, 지본수묵, 31.7×27.5ãŽ, 센오쿠하쿠코칸 소장



(왼쪽) ë„5 ë„슌(?-1520), <부용과 메추리>, 종ì´ì— 채색, 47×25ãŽ, ì¼ë³¸ ê°œì¸ ì†Œìž¥
(오른쪽) ë„7 ì „ ì‹ ìž (1491-1554), <국화와 메추리>, 종ì´ì— 채색, 116.6×45.8ãŽ,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ì´ë“¤ì— 앞선 화가로 사ìƒì„ 통한 화훼花å‰ì™€ ì†Œê³¼ç–æžœì— 능한 ì¡°ì°½(趙昌, 10세기 후반-11세기 초반)ì˜ <메추리>ê°€ 《고씨화보顧æ°ç•µè­œã€‹ì— 실려 ì¡°ì„  ê·¸ë¦¼ì— ë¼ì¹œ ì˜í–¥ì´ ê°ì§€ëœë‹¤(ë„3). ì´ì•ˆì¶©ê³¼ 마찬가지로 조는 ë³´ì´ì§ˆ 않는다. 최ê°ì˜ 그림ì—ì„œë„ ë¹„íŒŒì™€ 함께 등장한 ì‹ë¬¼ì´ ì¡° 같아 ë³´ì´ë‚˜ 분명하지 않다. 줄기차게 그려져 중국 현대 í™”ê°€ë“¤ë„ ê·¸ë¦°ë‹¤. 청대 íŒ”ëŒ€ì‚°ì¸ ì£¼íƒ‘(朱耷, 1626-1705)ì´ 1694ë…„ 69ì„¸ì— ê·¸ë¦° ë…¸ë…„ê¸°ì˜ í™”ì²©ìœ¼ë¡œ 화첩 ì œëª©ë„ â€˜íŽ¸ì•ˆí•œ 노후’를 ì˜ë¯¸í•˜ëŠ” 《안만첩安晩帖》ì´ë‹¤. ëª¨ë‘ 21ì  ë‹¤ì–‘í•œ 소재를 ë‹´ì•˜ëŠ”ë° ì´ ì¤‘ ì œ14í­ì´ <메추리>ì´ë‹¤(ë„4). 수묵으로 그렸으나 메추리 등 ë‹´í™©ì´ ì¹ í•´ì¡Œë‹¤. 제사까지 함께 욕심 없고 í•´ë§‘ì€ ë§ˆìŒì„ ë‹´ì€ ë¬¸ì¸í™”ì˜ ë‹´ë°•í•œ ì‹œì •ì„ ìž˜ 드러낸다.
ì¼ë³¸ì—ì„œë„ ë©”ì¶”ë¦¬ëŠ” ì¦ê²¨ 그려진 조류 ì†Œìž¬ì˜ í•˜ë‚˜ì´ë‹¤. 매우 장ì‹ì ì¸ 화조화ì´ìž 여러 í­ ê·¸ë¦¼ìœ¼ë¡œ 만든 ì¼ë³¸ 중요문화재로 ì§€ì •ëœ ë„슌(等春, ?-1520)ì˜ <메추리>로 6첩 1ìŒìœ¼ë¡œ ëœ ë³‘í’ì— ë“±ìž¥í•˜ëŠ” ì†Œí’ˆì´ ìžˆë‹¤. 중국ì—ë„ ë¶€ìš©ê³¼ 함께 그린 메추리가 있으나 ì¼ë³¸ì  정취가 ì§™ì€ í™”ë ¤í•œ 그림ì´ë‹¤(ë„5).


(왼쪽부터) ë„6 ì „ 심사임당(1504-1551), <ì›ì¶”리와 메추리>, 종ì´ì— 채색, 27.3×21.7ãŽ, ê°œì¸ ì†Œìž¥
ë„8-1 ê¹€í™ë„(1745-1806ê²½), <국화와 메추리>, ë¹„ë‹¨ì— ì±„ìƒ‰, 81.7×41.2ãŽ,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ë„8-2 ê¹€í™ë„(1745-1806ê²½), <국화와 메추리>, ë¹„ë‹¨ì— ì±„ìƒ‰, 104.4×44.2ãŽ,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왼쪽) ë„9 조지운(1637-1691), <조를 쪼는 메추리>, ë¹„ë‹¨ì— ë‹´ì±„, 15.8×24ãŽ,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오른쪽) ë„10 김양신(1765-?), <ì¡° 아래 메추리>, 종ì´ì— 수묵담채, 31×40.2ãŽ, ë™ì‚°ë°© 소장


ìš°ë¦¬ë‚˜ë¼ ë©”ì¶”ë¦¬ 그림
-ì¡°ì„  초부터 ì§€ì†í•´ 그려ì§

조선시대 메추리 ê·¸ë¦¼ì€ ëŒ€ì²´ë¡œ ì¡°ì„  초부터, 아니면 ì¤‘êµ­ê³¼ì˜ ê´€ë ¨ ì†ì— 고려시대ì—ë„ ê·¸ë ¸ì„ ê°€ëŠ¥ì„±ë„ ì—†ì§€ 않다. 현존하는 메추리 그림 중 비êµì  시대가 앞선 것으로, 16세기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 ì „ì¹­ìž‘ì´ ì•Œë ¤ì ¸ 있다. 배추와 붉게 물든 안래í™é›ä¾†ç´…ì— ìž ìžë¦¬ê°€ 날아드는 초충ë„와 ì§ì„ ì´ë£¬ 한 í­ìœ¼ë¡œ ì¡° ì´ì‚­ì— 매달린 것과 ì´ë¥¼ ë•…ì—서 올려다보는 것으로 한 ìŒì´ 등장한다. í™”ë©´ì— ì˜¤ì—¼ì´ ë§Žê³  ì§€ë©´ì— ì ìœ¼ë¡œ 나타낸 태ì ì€ ì—¬íƒ€ì˜ ì‹ ì‚¬ìž„ë‹¹ 전칭작들과 공통ì ì´ ë³´ì´ë©° 그림으로선 화면 구ë„나 ê° ì†Œìž¬ì˜ í‘œí˜„ì—서 ê¸°ëŸ‰ì´ ë³´ì¸ë‹¤(ë„6).
ì‹ ìž (申潛, 1491-1554)ì˜ ì „ì¹­ìž‘ì¸ ê¶ì¤‘장ì‹í™” 계열 화려한 ì±„ìƒ‰ì´ ë‹ë³´ì´ëŠ” <사계화조ë„四季花鳥圖> 4í­ ì¤‘ ê°€ì„ì— ì¡° ì´ì‚­ 아래 한 ìŒì˜ 메추리가 등장한다(ë„7). ì›ëž˜ 병í’ì„ ì¡±ìžë¡œ 꾸몄으며 현재 4í­ë„ 계절 전개가 맞으나 8í­ ë³‘í’으로 ë³´ì´ë©°, ë„화서 ì†Œì† í™”ì› ê·¸ë¦¼ìœ¼ë¡œ ë³´ì¸ë‹¤. ì´ ê°™ì€ ì±„ìƒ‰í™”ì¡°í™”ì˜ ì „í†µì„ ì´ì€ 것으로 ê¹€í™ë„(金弘é“, 1745-1806ê²½)ì˜ <ì‚¬ê³„í™”ì¡°ë„ 8첩병>ì„ ë“¤ê²Œ ë˜ë©° ì´ ì¤‘ ê°€ì„ì— <국화와 세 메추리>와 ì´ì™€ 별개로 ì±„ìƒ‰ì„ ì ê²Œ 사용한 <국화와 세 메추리>ë„ ì•Œë ¤ì¡Œë‹¤(ë„8-1), (ë„8-2).
ì¡°ì„  중기 화단ì—서 ì „ë°˜ì˜ ì¢…ì¹œ ì´ê²½ìœ¤(æŽæ…¶èƒ¤, 1545-1661)ê³¼ ì´ì§•(æŽæ¾„, 1581-1674) ë¶€ìžì²˜ëŸ¼, í›„ë°˜ì˜ ì¡°ì†(趙涑, 1595-1668)ê³¼ 조지운(趙之耘, 1637-1691) ë¶€ìžëŠ” 그림ì—서 ëª…ì„±ì´ ì»¸ë‹¤. ì¡°ì§€ìš´ì˜ <조를 쪼는 메추리>는 비êµì  잘 알려진 그림ì´ë‹¤(ë„9). ì´ì‚­ 아래 떨어진 ë‚±ì•Œì„ ë°”ë¼ë³´ëŠ” 모습으로 간략하고 단순한 구성ì´ë‚˜ ê¸°ëŸ‰ì´ ìž˜ 드러난다. 선비화가 ì¡°ì˜ì„(趙榮ç¥, 1786-1761)ì€ ë©”ì¶”ë¦¬ë¥¼ 스케치한 ê·¸ë¦¼ë„ ì „í•˜ë©°, 한 때는 ì‹ ìœ¤ë³µì˜ ì•„ë²„ì§€ 신한í‰ì˜ 그림으로 보다가 최근엔 조선후기 ê¹€ì‘í™˜ì„ ë¹„ë¡¯í•´ ë§Žì€ í™”ì›ì„ 배출한 개성 김씨 ë¬¸ì¤‘ì˜ í™”ì› ê¹€ì–‘ì‹ (金良臣, 1765-?)ì´ ê·¸ë¦° 것으로 보는 <메추리>ë„ ì•Œë ¤ì ¸ 있다(ë„10).
ì¡°ì„  후기엔 사실ì ì¸ ì˜ëª¨ë“¤ë¡œ 소재별로 한 ë¶„ì•¼ì— ì´ë¦„ì„ ì „í•˜ëŠ” ê°œ ê·¸ë¦¼ì˜ ê¹€ë‘량金斗樑과 ê¹€í™ë„, ê³ ì–‘ì´ì˜ ë³€ìƒë²½(åžç›¸ç’§, 1730-?), ë¬¼ê³ ê¸°ì˜ ìž¥í•œì¢…(張漢宗, 1768-1815), ë§¤ì˜ ì •í™ëž˜(鄭弘來, 1720-1791 ì´í›„), ë©”ì¶”ë¦¬ì˜ ìµœë¶(崔北, 1712-1786ê²½) 등 ì§ì—…í™”ê°€ë“¤ì´ ì—¬ëŸ¿ì— ì´ë¥¸ë‹¤. ì´ˆìƒí™”ì— ëŠ¥í•œ ë³€ìƒë²½ì€ 변고양åžå¤ç¾Š, ì œë„ê¶Œì— ì†í•œ í™”ì›ì€ 아니나 최ë¶ì€ 최메추리[崔鶉]로 불린다. 성가를 ë§í•˜ë“¯ 최ë¶ì€ 여러 ì ì˜ ì´ ì†Œìž¬ ê·¸ë¦¼ì´ ì „í•œë‹¤(ë„11-1), (ë„11-2). 메추리는 ì¼ë°˜ ê°ìƒí™” ì™¸ì— ë¯¼í™”ì—ë„ ë¹ˆë²ˆí•˜ê²Œ 등장해 새로운 ì–‘ìƒìœ¼ë¡œ ì „ê°œë˜ë©° 화단ì—서 새로운 변모를 기대하게 한다(ë„12-1), (ë„12-2).


(왼쪽) ë„11-1 최ë¶(1712-1786ê²½), <조를 쪼는 메추리>, 종ì´ì— 담채, 27.5×17.7ãŽ,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오른쪽) ë„11-2 최ë¶(1712-1786ê²½), <국화와 메추리>, ë¹„ë‹¨ì— ë‹´ì±„, 23.8×18.2ãŽ, 고려대학êµë°•물관 소장



ë„12-1 <메추리>, ê°œì¸ ì†Œìž¥



ì´ì›ë³µ | 미술사가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장과 학예연구실장, 문화재청 문화재위ì›,
경기ë„박물관장 ë“±ì„ ì—­ìž„í•˜ë©° 42ë…„ê°„ 박물관 í˜„ìž¥ì— ëª¸ë‹´ì•˜ë‹¤.
현재 ë™êµ­ëŒ€í•™êµ ê°ì›êµìˆ˜, (사)역사여성미래 ê³µë™ëŒ€í‘œì´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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