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복 교수의 소재로 살핀 우리 옛 그림 ⑮ 고양이[猫] 두 얼굴, 귀염과 두려움

도10 변상벽, <고양이와 참새>, 비단에 채색 93.8×43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우리 현대화단에서 민화 작가들이 선호하는 동물 소재로 고양이가 있다.
묘한 매력을 뽐내는 고양이, 옛 그림에 어떤 모습으로 등장했을까?

글 이원복(미술사가)


인류가 남긴 조형미술을 소재별로 살필 때 동물 중 고양이가 점하는 비중이 예상 외로 크다. 미술로의 등장은 고대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오래고 길다. 이집트의 조각과 공예 및 벽화를 비롯해 파울 클레(1879-1940)의 <고양이와 새>(도1)와 현대 팝 아트의 창시자 앤디 워홀(1928-1987)에 이르니 상당량에 이른다. 미술사적 의의가 큰 유명한 화가들을 비롯해 중국엔 직업화가 외에 황제가 그린 고양이 그림이 전하는 등 적지 아니한 명품名品들을 살필 수 있다. 우리 현대화단에선 민화 작가들이 선호하는 동물 소재이다.
베트남을 제외한,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의 띠 동물인 12지支에 고양이는 빠져있으나, 호랑이가 고양이 과科이니 넓은 의미로는 포함된다. 오늘날 신조어 ‘캣맘’이 말해주듯 반려동물로 개에 버금가는 애완동물이다. 크기며 형태와 털색이 다양한 외래종이 국내로 유입되었고, 버려진 ‘길양이’를 주변에서 쉽게 만나게 된다. 40주년을 맞이한 세계적인 뮤지컬 ‘캣츠’, 입가에 맴도는 노래인 ‘검은 고양이 네로’, 고양이를 주제로 한 다양한 출판물 등 현대는 그야말로 고양이 천국이라 하겠다.


“매력적이지만 때로는 오싹한 시선…귀족적인 면모…
부드럽고 우아한 움직임, 늘 깔끔한 모습, 다양한 빛깔과 무늬, 부정할 수 없는 매력…
동화나 그림책·민담·만화·애니메이션에도 등장하도록 했다.”
-스테파노 츄피, 《그림 속의 고양이》에서


(왼쪽) 도1 파울 클레, <고양이와 새>, 1928년, 캔버스에 유채 잉크, 38.1×53.2cm , 뉴욕현대미술관 소장
(오른쪽) 도2 <습지에서의 사냥 장면>(부분), 이집트 18대왕조(기원전 1350년경), 98×83cm , 런던 영국박물관 소장


고양이 – 상징과 조형예술

고양이는 개와 달리 살갑지 않으니 그래서 ‘고양이집사’란 다소 자조적인 명사도 생겼다. 고대 이집트에선 청동 조각, 인체에 고양이 머리를 한 여신상(Bast), 뱀과 쥐 등을 잡는 등 사냥꾼 형태로 등장한다. <습지에서의 사냥 장면>은 기원전 14세기 이집트 고분 내 프레스코벽화로 사냥에 나선 인물을 중심으로 선명한 채색과 사실적 표현에 각종 조류, 물고기와 함께 고양이가 등장하는데 그 곁에 나비도 보여 시선을 끈다(도2).
서양 고대엔 고양이가 영광과 위엄의 대상, 중세엔 악마적 이미지, 르네상스 때는 학자의 서재書齋부터 성화聖畫에 성가족聖家族과 함께, 바로크에선 평화로운 집의 상징, 계몽주의 이후 미녀 등 인물 곁에, 점차 애완동물로 부르주아 집안의 필수적 존재로 등장한다. 오늘날 동서양 구별 없이 애완, 반려동물뿐 아니라 조형예술에서도 전성시대를 맞았다.
우리나라의 고양이와 야옹이, 고대 이집트어의 뮤(miu), 중국 고전 《시경詩經》에서 등장한 ‘집에서 기르는 여우’ 의미의 묘(mao)나 묘猫도 울음소리에서 비롯한 의성어이다. 중국에선 누에 치는 공간에 쥐의 침입을 막을 요량에서 고양이를 그려 붙이기도 했다. 야행성夜行性 동물로 어둠에도 볼 수 있어 악령을 쫓을 힘을 지닌 존재로 믿었다.
한·중·일 3국은 한자문화권에선 고양이와 나비와 국화 그리고 바위를 함께 그렸다. 고양이인 묘猫와 70을 칭하는 모耄, 나비인 접蝶과 80을 의미하는 질耋의 중국어 발음이 같기에 이를 차용借用해 의미를 읽어낸다. 한자는 뜻글자[表意文字]이기에 고양이와 나비를 함께 한 <묘접도猫蝶圖>를 <모질도耄耋圖>로, 10장생長生에 속한 바위와 함께 그려 <모수도耄壽圖> 의미로 축수祝壽를 기원했다. 마찬가지로 국화와 함께 그리면 국菊의 발음이 거居와 같아 국화를 사랑한 진晉의 도연명(陶淵明, 365-427)과 연관된다. 그는 전원시인으로 명문名文인 ‘귀거래사歸去來辭’와 동아시아 파라다이스인 무릉도원武陵桃源의 진원인 ‘도화원기桃花源記’등이 유명하다. 국화·고양이·돌이 함께 그려지면 ‘은거하여 장수를 누림’으로 이해한다.


(왼쪽) 도3 전 모익毛益, <접시꽃 아래 고양이>, 12세기, 비단에 채색, 25.3×25.8cm , 일본 야마토분가간 소장
(오른쪽) 도4 명 선종宣宗, <괴석 아래 고양이>, 1399-1435, 종이에 채색, 41.5×39.3cm , 타이베이 고궁박물원 소장


중국과 일본의 고양이 그림 – 독립된 소재로 오랜 역사

중국은 당唐 8세기 이후 위무첨(韋無忝, 8세기), 변란(邊鸞, 8-9세기), 조광윤刁光胤, 오대五代 이애지(李靄之, 10세기) 등 화조화에 능한 이들이 모란·월계화·접시꽃·대나무·원추리·패랭이꽃 등 화목花木을 배경으로 고양이를 그려 이름을 남긴 이들이 여럿이다. 송대엔 어린이들이 어린 고양이를 지켜보는 <동일영희도冬日嬰戱圖>가 전한다. 때로는 벌·나비·참새를 노리거나 물고기를 입에 문 모습, 무리를 이루거나 어미 주변의 새끼들로 짙은 모성애로 따스하고 따스한 가정을 떠올리게 한다. 이는 동아시아 삼국이 크게 다르지 않다. 사군자四君子 화목처럼 직업화가와 문인화가 모두가 즐겨 그린 소재이다.
일본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송宋 모익(毛益, 12세기) 그림으로 전하는 한 쌍의 그림엔 각기 고양이와 개 가족이 주인공이다. 이 중 <접시꽃 아래 고양이[蜀葵遊猫]>는 접시꽃 아래 흰 어미 고양이와 털색과 무늬가 각기 다른 네 새끼 고양이가 등장한다(도3). 이른바 화려한 채색에 섬세한 필선 등 남송 원체화풍院體畫風의 전형이다. 강아지엔 땅강아지가, 고양이 주변엔 나비가 등장하여 평안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로 나비와 고양이 및 괴석 등 장수를 기원하는 소박한 바람도 담겨있다.
명明 5대 황제인 선종宣宗 주섬기(朱贍基, 1399-1435)는 북송의 8대 황제 휘종徽宗 조길(趙佶, 1082-1135)만큼 서화를 즐겼다. 황실 정원 한 자락 정경인 양 국화를 함께 한 쌍의 고양이를 그린 <괴석 아래 고양이[花下貍奴]>를 남겼다(도4). 큰 그림은 아니나 유려하고 섬세한 필치로 줄무늬에 검은 얼굴과 흰털이 많고 흰 얼굴의 두 녀석은 앙증맞고 귀여운 모습에 놀란 듯 호기심이 어린 표정이 잘 드러난다.
명대 문인화가 심주(沈周, 1427-1509)는 68세(1494년) 때 《사생첩寫生帖》을 그렸다. 닭과 연꽃 등 주변에서 접하기 쉬운 동물과 꽃 등 16폭으로 구성되었다. 이 중 제3폭은 배경 없이 그린 <고양이>이다(도5). 이 화첩 내 다른 그림들과 마찬가지로 윤곽선 없이 몰골로 신속하게 그렸다. 일상에서 이들 소재에 대한 화가의 남다른 애정과 관심, 관찰력이 응축된 완숙한 그림으로 속기 없는 맑고 담백한 마음이 전해진다. 고양이가 잘 취하는 모습으로 잔뜩 몸을 웅크려 공 같은 형태이며 세로로 길고 가는 검은 동자는 그린 시기가 환한 밝은 때임을 알 수 있다. 종이에 먹만으로 그렸으나 속도감 있는 필치와 농담처리가 돋보이며 화면 일정 공간을 점한 제사題詞는 감지된다. 이 같은 양상은 청淸 개성주의 화가는 물론 조선에서도 살필 수 있다.
화조화에 능했고 고양이 그림도 즐겨 그린 청淸 심전(沈銓, 1682-1760경)은 일본에 머물며 그곳 화단에 영향을 끼쳤다. 이웃 나라와 비교할 때 원숭이를 즐겨 그린 일본은 상대적으로 고양이는 드문 동물 소재이다. 복과 장수를 기원한 모리 입포[森一鳳, 19세기]의 <고양이와 박쥐[猫蝙蝠圖]>와(도6) 무사武士이자 난초 학자이며 화가인 와타나베 카잔[渡邊崋山, 1793-1841]의 메뚜기를 노리는 <고양이> 등이 알려져 있다. 일본 중요미술품으로 지정된 후자는 이데미츠 미술관서 개최한 ‘일본의 회화백선’(1983.10.15.-1984.2.15) 기획전에도 출품되었다(도7). 19세기 중엽 석판화와 일본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활동한 츠구하루 후지타(1886-1968)의 <잠자는 고양이>도 전하나, 헤이안 시대 말기인 12세기 원숭이·토끼·쥐·개구리·여우 등을 의인화한 풍속적 성격이 짙은 <쵸주기가[鳥獸戲畫]> 두루마리[卷]에도 고양이가 보이질 않는 점에서도 이를 입증한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도5 심주, <고양이>, 1494년, 종이에 수묵, 34.7×55.4cm , 타이베이 고궁박물원 소장
도7 와타나베 카잔, <고양이>, 비단에 수묵담채, 101×32.4cm , 일본 이데미츠미술관 소장
도6 모리 입포, <고양이와 박쥐>, 19세기, 종이에 수묵담채, 35.8×52.8cm , 일본 센오쿠하쿠코간 소장


우리나라 고양이 그림 -문인과 화원 모두 즐겨 그림

토기 표면에 부착한 신라 토우土偶 중 매우 드문 예이나 고양이도 보인다(도8). 조선백자표면에 청화로 그린, 일반적으로 호랑이와 까치[虎鵲]무늬로 간주되는 항아리에 호랑이가 아닌 드문 고양이와 까치가 각기 2마리씩 등장한다(도9). 조선왕조 이전 그림에선 고양이를 찾아보기 어렵다. 16세기 이후 조선왕조 전체에 걸쳐 고양이 그림이 현존한다. 그림으론 당당한 주인공, 고양이와 강아지가 함께 그린 것, 풍속화 등 화면 모퉁이를 점한 고양이 등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동물 그림 가운데 소·말·개 ·호랑이·닭 등 띠 동물은 빈번히 그렸다. 고양이는 토끼와 원숭이나 뱀과 쥐보다는 많이 그려진 듯 전래된 작품이 수적으로도 우세이다.
조선 그림의 특징과 독자성이 두드러진 진경산수와 풍속화가 크게 유행한 조선 후기화단(1700경-1850경)에 사실적인 화풍의 동물화도 큰 변화를 보인다. 한 소재로 이름을 얻은 직업화가들이 화단을 화사하게 장식한다. 매를 잘 그려 최 메추리[崔鶉]로 불린 최북(崔北, 1712-1786 이후), 정홍래(鄭弘來, 1791-1851 이후)의 매, 김두량(金斗樑, 1696-1763)의 개, 장한종(張漢宗, 1768-1815)의 물고기 등이며, 초상화에 뛰어난 변상벽(卞相璧, 1730-)은 고양이와 닭 그림을 잘 그려 ‘변 고양이’와 ‘변계卞鷄’란 별명을 얻었다. 현존하는 여러 고양이 그림 중 <고양이와 참새[猫雀]>가 대표작이다(도10). 조선시대 고양이 그림 명품은 다음과 같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도8 <고양이 토우>, 신라, 4.2cm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도11 이암, <고양이와 강아지>, 종이에 채색 87×44cm , 북한 조선미술박물관 소장
도9 <백자 청화 고양이 까치 무늬 항아리>, 18-19세기, 높이 44.1m, 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소장



(왼쪽부터) 도12 정선, <가을날 한가로운 고양이>, 1742년, 비단에 채색, 30.5×20.8cm ,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도14 신윤복, <고양이와 개>, 비단에 담채, 31.8×16.8cm , 이화여대박물관 소장



종친宗親으로 강아지와 고양이 그림에 능한 이암(李巖, 1507-1566)의 <고양이와 강아지[花鳥猫狗]>(도11)는 병풍에서 떨어져 산락된 것으로 현재 3점이 확인된다. 화사한 선홍鮮紅 동백이 두드러진다. 조선의 화성畫聖 정선(鄭敾, 1676-1759)의 8폭으로 된 《화훼영모초충첩》에 속한 명품으로 핍진한 묘사가 확연한 <가을날 한가로운 고양이[秋日閑猫]>(도12), 귀양길에 친구의 장수를 기원하며 그린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모질도耄耋圖> 등이다.
김홍도(金弘道, 1745-1806경)의 섬세한 필치에 채색이 돋보이는 <노란 고양이가 나비를 놀리다[黃猫弄蝶]>(도13), 신윤복(申潤福, 1758?-1813이후)의 현재 3점이 확인되는 《영모도첩》에 속했던 서로 으르렁대는 <고양이와 개[猫犬圖]>(도14), 김득신(金得臣, 1754-1822)의 <병아리를 훔치는 고양이[野猫盜雛]> 등 풍속화의 3대가, 기우는 조선왕조 말기 화단을 화려하게 장식한 장승업(張承業, 1843-1897)은 여러 대작 영모병풍에 형태와 자세가 다양한 고양이를 살필 수 있다. 조선을 대표하는 거장巨匠과 대가大家들의 고양이 그림 걸작은 우리 그림의 높은 격조와 위상을 대변한다. 단 민화의 동물 소재 중 고양이는 드문 편이다.


도13 김홍도, <노란 고양이가 나비를 놀리다>, 종이에 채색, 30.1×46.1cm ,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이원복 | 미술사가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장과 학예연구실장,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경기도박물관장 등을 역임하며 42년간 박물관 현장에 몸담았다.
현재 동국대학교 객원교수, (사)역사여성미래 공동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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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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