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복 교수의 소재로 살핀 우리 옛 그림 ⑭ 영지靈芝 장수와 불로의 문장紋章

일찍부터 동아시아에서 약재藥材로 사용된 영지는 오랜 세월 신령스러운 식물로 여겨왔다.
‘지초芝草’로도 불렸고 마르면 단단한 채로 유지되어 ‘불로초不老草’나,
상서로운 것으로 ‘복초福草’라 지칭되기도 한다.

글 이원복 (미술사가)


길상吉祥 바람에 영지를 장신구로 옷에 매달았다. 옥이나 금속 및 나무로 만든 여의如意는 영지를 모방한 형태로 보기도 한다. 상류층 귀인貴人이 휴대했고(도1), 사찰에서 스님이 독경讀經과 설법할 때 지니는 성스러운 물건이었다(도2).
10장생長生에 포함된 영지는 장수長壽와 불로不老의 상징으로 조형미술에 일찍부터 등장한다. 중국 명明 이후 그림이 전하며, 기명절지화器皿折枝畫에서 다른 소재와 함께 등장한다. 드물지만 영지는 독립 주제로도 그려졌다. 벗 사이 맑고 향기로운 고귀한 사귐을 뜻하는 ‘지란지교芝蘭之交’가 암시하듯 난초와 함께, 또는 소나무·매화·수선화 등과 함께 그리기도 한다.


(위) 도1 <입지여의立持如意> 부분, 청淸, 필자미상, 비단에 채색, 12미인도 중
(아래) 도2 <여의如意>, 청淸, 18세기, 길이 50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영지와 신선神仙 – 신선 주변, 버섯의 일종

영지는 모균류帽菌類에 속하는 버섯의 한 종류다. 북반구의 온대 지방에 사는 활엽수 그루터기에서 주로 자란다. 키는 10cm 내외로 마르면 매우 단단해져 마치 광물질처럼 보인다. 둥근 삿갓의 겉은 붉은색·자줏빛·갈색으로 고운 때깔이며, 밑면은 황백색이다. 삿갓의 지름은 5cm부터 20cm가 넘는 것도 있다.
오랜 세월 경험과 동물실험 및 실제 임상실험을 통해 영지의 여러 효능이 밝혀졌다. 거담去痰, 천식喘息 등 기관지 계통의 질병에 효과, 만성 간염이나 각종 알레르기 및 심장병에 좋으며 항암 작용까지 밝혀졌다. 오늘날 건강식품으로 각광 받게 된 영지는 가공한 음료수로 개발되는 등 인공재배를 통해 다량으로 생산한다.
동양에 있어서는 오래 살거나 죽지 않는 열 가지를 ‘십장생’이라 지칭한다. 해·산·물·돌·구름 등 다섯, 동물로는 거북·학·사슴의 셋, 식물로는 소나무와 영지 둘을 꼽았다. 십장생에 포함된 영지는 석채石彩를 사용한 화려한 궁중장식화인 <일월5봉도>·<일월천도도日月天桃圖>(도3)·<10장생도>·<반도도蟠桃圖> 등에 등장한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특히 문인화의 소재로 매화·난초·국화·대나무 등 <사군자>나 소나무 못지않게 즐겨 그려진 식물이다. 땅에 자라난 영지 외에 사슴이나 두루미[鶴] 부리에 물린 형태도 있다.


(왼쪽) 도3 <일월천도도日月天桃圖> 부분, 미상(19세기), 비단에 채색, 330×270.8cm,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오른쪽) 도4 <마고채지麻姑菜芝>, 석경(石敬, 1440-?), 비단에 채색, 21.9×19.0cm,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동아시아에는 공자孔子의 가르침인 유교儒敎와 도교道敎가 공존한다. 이들 사상은 삶 속에서 서로 절충 조화되어 이어졌다. 공자보다 선배인 노자老子가 창시한 도교는 정치 철학이자 윤리를 강조한 유교와 달리 인위적인 것을 배격하고 자연의 흐름에 맡기는 사유체계이다. 예술인의 정신적인 모태로서 문학과 서화 등 예술 창작에 큰 영향을 끼쳤다.
무위자연無爲自然에서 불로장생不老長生이나 신선 사상 등 신비화 과정을 밟은 도교는 영생永生의 바람에서 여러 약藥을 만들기도 했다. 또한 전설적이며 신화적인 신선들도 열거했다. 명말明末 홍자성洪自誠이 편찬한 《홍씨선불기종洪氏仙佛奇蹤》은 도교 신선과 불교 고승들을 약전略傳과 함께 도상圖像으로 구성되었다. 약초를 캐는 신선들이 허리끈에 찬 식물 중에 영지가 보인다.
조선 초 석경(石敬, 1440-?)의 <마고채지麻姑菜芝>에 선녀 마고麻姑가 지닌 바구니에도 영지가 담겨있다(도4). 당唐 때 상인의 딸로 복숭아를 먹고 선녀가 된 하선고何仙姑는 8선仙 중 유일한 여성이다. 그녀는 손에 복숭아를 들거나 연꽃 또는 영지를 담은 바구니를 지니기도 한다. 이들 여인 모습의 선녀들 외 여러 신선들 그림에서도 영지를 살필 수 있다. 신선이 아니라도 약초를 캐는 은사 그림에서도 영지를 엿볼 수 있다. 처음 신선도로 화가의 이름을 얻어 다방면에 두루 능한 ‘조선의 화선畫仙’ 김홍도(金弘道, 1745-1806경)는 신선도를 다수 남겼다. 1779년 그린 신선도 8폭 병풍엔 풍수지리의 대가인 지사地師로 사슴과 함께 그려진 <청오자靑烏子>(도5)·피리 부는 신선인 <선동취적仙童吹笛>(도6) 등에서 영지를 찾아볼 수 있다. 민화 범주의 신선도에서도 영지를 받쳐 든 동자 등도 있다.

지초와 난초를 꿰어 차다[纫佩芝蘭].



(왼쪽) 도5 <청오자靑烏子>, 김홍도, 1779년, 비단에 채색, 130.7×57.6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오른쪽) 도6 <선동취적仙童吹笛>, 김홍도(金弘道, 1745-1806경), 종이에 담채, 106.1x51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중국과 일본의 영지 그림 – 세조청공도(歲朝淸供圖) 외 문인화 범주의 소품

동아시아 삼국에서 소나무와 영지를 함께 짝을 이룸은 상록수로 잎이 싱그럽고 푸른 소나무는 ‘새해’를, 영지는 그 모습이 여의如意와 같아 ‘뜻대로’로 ‘새해를 맞아 품은 뜻을 이루소서’란 의미가 된다. 새해를 맞아 소망이 이루어지길 기원으로 즐겨 그렸다. 중국서 유입한 《개자원화전芥子園畫傳》은 중국 그림의 이해와 함께 일종의 미술교과서 기능으로 조선 후기화단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 화본에 실린 송宋 가상賈祥의 <영지와 소나무>는 일종의 절지화로 같은 의미를 지닌다. 한편 《십죽재화보대전十竹齋畫譜大全》에는 괴석怪石을 배경으로 영지 몇 무더기를 옮긴 호정언胡正言의 그림이 있다. 괴석은 없으나 친연성이 보이는 김홍도 전칭傳稱의 소품도 알려져 있다. 명 서화가 손극홍(孫克弘, 1532-1610)이 76세 때 그린 <죽국도>는 세로 긴 화면을 중앙의 괴석을 중심으로 해 위아래로 죽·국·난에 이어 매화 대신 영지가 등장한다. 마수진(馬守眞, 1548-1604)의 <화훼도권> 부분에 난초와 함께 영지가 등장한다(도7). 1776년 호박胡璞의 <세조청공도歲朝淸供圖>(도8)는 청에 이르러 즐겨 그려진 주제로 화분에 담긴 수선과 청동화병에 매·죽·감·백합 뿌리 등이 함께 등장한다. 진홍수陳鴻壽의 <화과도첩[花果圖]> 12폭은 매 폭 제시가 함께 있는 감상화로 <영지와 수선> 1폭이 있다(도9).
일본은 영지 그림이 의외로 드문 듯 보이나 우라가미 킨[浦上春琴]이 1834년 그린 12폭 <소과어해첩蔬果魚蟹帖> 내 마지막 폭이 <백매·수선·영지>인데 중국과 유사한 양상이다(도10).

지초와 난초가 향기를 함께 하다[芝蘭並芬].



(위) 도7 <화훼도권> 부분, 마수진(馬守眞, 1548-1604), 종이에 채색, 21.7x103cm, 무석시박물관 소장
(아래) 도9 <영지와 수선>, 진홍수陳鴻壽, 종이에 채색, 26.7×37.5cm, 상해박물관 소장



도8 <세조청공도歲朝淸供圖> 부분, 호박胡璞, 1776, 비단에 채색, 92.0×46.5cm, 절강성박물관 소장


조선시대 그림 속 영지 – 부분에서 독립된 주제

중국 원元에서 시작한 묵포도가 우리나라에서 즐겨 그려진 것처럼, 영지의 경우도 영지와 소나무, 영지와 난초 등 18세기 이후 화원과 문인 모두가 참여해 대작과 명품들을 남겨 중국보다 더 활발하게 그려 격조 면에서도 진일보進一步한 양상이 확인된다. 우리 옛 그림에서 영지는 먼저 조선 초기부터 산수나 영모의 배경으로 등장한다. 문인화가와 화원 모두가 그렸고, 민화와 청화백자 도자기의 십장생 문양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다.
사대부 출신 유자미(柳自湄, ?-1462) 전칭작인 <지곡송학芝谷松鶴>은 깊은 계곡에 큰 소나무와 한 쌍의 학이 등장한다. 소나무 아래 붉은색의 영지들이 보인다. 장생도 계열에 포함되는 청록산수로 조선 초 문인화가의 높은 격조를 엿볼 수 있다. 풍속화와 남종문인화의 선구를 점하며 <자화상>도 남긴 윤두서(尹斗緖, 1668-1715)는 산수 및 초충도 등도 그렸다. 대폭의 <심산지록深山芝鹿>엔 주인공인 사슴 외에 영지·국화·대나무·향나무 등도 함께 그렸다.
진경산수를 창출해 조선 산수화의 어엿함을 이룩한 정선(鄭敾, 1676-1759)은 80세 되는 1755년 축수祝壽를 위한 대작 <노송영지老松靈芝>를(도11), 소나무를 즐겨 그린 김홍도 또한 같은 주제의 대작을 남겼는데 화면 중앙 상하로 화면을 벗어난 굵은 노송이 강조되며 영지는 상대적으로 작게 표현했다(도12).


(왼쪽) 도10 <백매ㆍ수선ㆍ영지>, 우라가미 슌킨[浦上春琴], 1834년, 비단에 담채, 23.5X25.7cm, 센오쿠 하쿠 소장
(오른쪽) 도14 <지란병분>, 권돈인, 1854년, 종이에 수묵, 26.5×32.5cm, 개인



(왼쪽) 도11 <노송영지老松靈芝>, 정선(鄭敾, 1676-1759), 1755년, 종이에 수묵담채, 147x103cm, 인천시립미술관 소장
(오른쪽) 도12 <노송영지>, 김홍도, 종이에 수묵, 106.8cx71.2cm,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학문과 예술 양 분야에 걸쳐 업적이 지대한 예원의 총수 김정희(金正喜, 1786-1856)는 잘 알려진 16점으로 이루어진 <난맹첩蘭盟帖> 내 영지와 난초에 ‘세상 밖 신선 향기[世外僊香]’로 제사 한 것과 선면에 그린 대원군 이하응·권돈인(權敦仁,1783-1859)·홍우길 등 묵서가 있는 것 등 2점의 <지란병분(芝蘭並芬)>이 전한다(도13).
김정희와 유사한 권돈인도 둘이 합작한 서화첩에 두 사람의 맑고 고상한 우정이 깃든 <지란병분>(도14)을 남겼다. 영지와 난초를 그린 것으로 글씨와 어우러진 문인화의 정수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조선말에서 근대로 이어지며 기명절지도 병풍에 다른 소재와 함께 영지도 등장한다.

이원복 | 미술사가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장과 학예연구실장,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경기도박물관장 등을 역임하며 42년간 박물관 현장에 몸담았다.
현재 동국대학교 객원교수, (사)역사여성미래 공동대표이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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