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복 교수의 소재로 살핀 우리 옛 그림 ⑧ 파초

파초는 잎이 크고 아름답다. 강인한 생명력 덕분에 문인들의 사랑을 받아
다양한 시와 그림으로 남겨졌으며, 민화 속에서 새로운 조형성을 보여주었다.

글 이원복(미술사가)


파초는 대나무와 같이 높은 기온에 성장이 매우 빠르다. 단단한 줄기는 없으나 대나무의 강인함과는 비교되며, 푸르고 너른 잎은 부드러움과 풍성함을 느끼게 한다. 뙤약볕 아래 그늘마저 주니 복된 식물이 아닐 수 없다. 파초의 꽃말은 ‘기다림’이며, ‘미인’을 지칭하기도 한다. 파초의 잎 모양으로 만든 부채인 파초선芭蕉扇은 도교의 팔선八仙의 지물 중 하나였고, 삼정승 출행 때 머리 위를 가릴 때 사용됐다.

도1 김농, <옥천선생전다도>, 종이에 담채, 24.4×31㎝, 중국 베이징고궁박물원

이국적 풍취의 파초

동아시아에서 그림 소재 중 잎이 너른 식물로는 연꽃과 오동나무 그리고 파초를 들게 된다. 우리 강토에 야생 파초는 없으며, 중국에서 들어와 제주도를 비롯한 남부지역에서 자란다. 서울 등 그 외 지역에선 화분에 옮겨져 실내나 온실에서 겨울을 난다. 파초 과에는 바나나를 비롯해 이들보다 작은 꽃을 보기 위해 재배되는 미인초美人蕉도 포함된다.
화가들은 꽃보다는 2m에 이르는 타원형의 싱그러운 긴 잎을 화면에 옮겼다. 특히 건축과 조경을 살필 때 청淸 김농(金農, 1687-1763)의 <옥천선생전다도玉川先生煎茶圖>가 보여주듯 대나무와 더불어 빠질 수 없는 식물이 파초이다(도1). 조선 후기 그림들을 통해 조선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짐작하게 된다.

(왼쪽) 도2-1 미상, <파초>, 19세기, 종이에 채색, 90.4×32㎝, 개인소장
(가운데) 도2-2 미상, <파초>, 20세기 전반, 종이에 수묵담채, 89×38㎝, 개인소장
(오른쪽) 도2-3 미상, <문자도 10첩 병풍> 중 제10폭, 20세기 전반, 종이에 수묵담채, 101.8×48.2㎝, 호림박물관



파초가 전래한 시기는 명확하지는 않으나 청자와 청동거울 그리고 정병 등 공예품의 문양으로 파초가 등장해 늦어도 고려 시대는 존재가 알려진 듯하다. 강희안(姜希顏, 1417-1464)의 《양화소록養花小錄》·홍만선(洪萬選, 1643-1715)의 《산림경제山林經濟》·이건창(李建昌, 1852-1898)의 <파초부> 등 문헌에 등장한다. 교과서에 실렸던 김동명(金東鳴, 1900-1968)의 대표적 시인 ‘파초’가 입가에서 맴돈다.
파초는 조선 후기에 문인화의 한 소재로 그려지기 시작해 나름대로 특징과 양식을 이뤘다. 말기 장승업(張承業, 1843-1897) 등에 의해 동아시아 삼국의 공통성을 엿보게 양식으로 국제적 흐름도 확인된다. 특히 일괄 병풍으로 이루어진 민화의 구성과 필치에서 새로운 감각과 과감한 변형으로 이전과 다른 국면을 보여주어 주목된다(도2-1, 도2-2, 도2-3).

중국과 일본의 파초도

파초 심이 다하니 새 가지 펼쳐 말린 새심 속잎 슬며시 따라 돋는다.
새 마음으로 새 덕 기르길 배우길 바라니 이어 새잎 따라서 새로운 지식 따르리.
[芭蕉心盡展新枝 心卷新心暗己隨 願學新心長新德 施隨新葉起新知]
– 장재의 <파초>

도3 정운붕, <자다도>, 종이에 채색, 140.5×57.6㎝, 중국 무석시립박물관



중국의 회소(懷素, 725-785)와 장재(張載, 1020-1077)가 파초와 관련된 고사故事는 조선에서도 잘 알려진 것이었다. 회소는 어려서부터 글씨 쓰기를 좋아했고, 잠시 승려생활은 거친 후 독학으로 글씨에 전념해 초서草書의 대가로 당 서예사에 높은 위치를 점하게 된다. 그는 매우 가난해 비싼 종이 대신 파초 잎을 따 그 위에다 글씨 연습을 했고 시를 쓰기도 했다. 너무 열심히 쓴 탓에 주변의 연못을 온통 검게 물들였다고 한다.
송에 이르러 유학은 형이상학적 성리학으로 발전된다. 그 서두에 크게 기여한 장재는 파초를 남달리 사랑해 시를 남겼다. 성리학을 국시國是로 탄생한 조선왕조의 선비들도 그의 시 <파초>를 애송했다.
파초는 독립된 소재만이 아니 여러 범주에 걸쳐있다. 당唐부터 그려진 파초는 산수나 인물 및 화조화의 부분으로 등장했고, 별서나 문인 서재 그림에도 자주 등장했다. 송宋 종친 조백구趙伯駒의 <한궁도漢宮圖>에는 괴석 사이에 파초가 그려졌으며, 원元 초까지 활동한 전선(錢選, 1235-?)의 <노공팽다도魯公烹茶圖>, 정운붕(鄭蕓鵬, 1547-1628)의 <자다도煮茶圖>는 꽃까지 그린 파초 아래서 차를 즐기는 ‘차 그림’ 범주이다(도3). 이 외에 여인을 주제로 한 미인도의 배경으로도 파초가 등장하는 것은 조선도 마찬가지이다. 17세기에 활동한 화원의 <비파 타는 여인>, 윤두서(尹斗緖, 1668-1715)와 윤덕희(尹德熙, 1685-1766) 부자의 <독서하는 여인>이 그 예이다.
명明 문징명(文徵明, 1470-1559)의 <괴석과 파초>나 서위(徐謂, 1521-1593)의 <파초>는 모두 유려한 필치로 풀어냈으며, 한쪽 면에 2행의 제시題詩가 있어 문인화의 운치를 더한다. 이와 같이 파초나 괴석을 곁들여 그린 소품들은 청淸에 이르러 크게 유행한다. 초기 주답(朱耷, 1625경-1705경)이나 고봉한(高鳳翰, 1683-1743) 등 개성주의 화가들에 의해 추상성까지 느껴지는 그림들도 그려졌다. 12점 《산수화훼책》에 속한 탕태분(湯胎汾, 1778-1853)의 <파초와 죽>은 산뜻한 설채設彩로 아름다운 그림이다(도4).


도4 탕태분, <파초와 죽>, 종이에 채색, 26.7×37.5㎝, 중국 상해박물관



(왼쪽) 도5 이토 자쿠추, <파초와 학>, 종이에 수묵, 123.4×50.6㎝, 교토국립박물관
(가운데) 도6 원휘, <설초쌍학도>, 18세기, 비단에 채색, 160×95㎝, 중국 광동성박물관
(오른쪽) 도7 강세황, <파초>, 비단에 수묵, 28.5×22.3㎝, 국립중앙박물관



한편 임이(任頤, 1840-1896) 등 일본 영향을 보이는 해상화파海上畫派는 파초에 말을 비롯한 동물과 인물을 함께 그렸다. 이는 한·중·일에서 드러난 국제적인 양식이라 하겠다. 화사한 꽃을 즐겨 그린 일본의 <사계화조화>나 <화목도>, 두루마리 꽃병에 꽂힌 꽃들을 그린 <입화도> 등 꽃그림에서 파초는 드문 편이다. 교토에서 화조화를 전문으로 그린 이토 자쿠추(伊騰若冲, 1716-1800)의 <파초웅계도>와 <파초와 학>(도5), 화첩 내 <파초> 등이 전한다. 제목이 암시하듯 파초와 함께 새를 그린 것들로, 조선의 심사정과 장승업이 고양이나 닭을 그린 것과 통한다. 청 원휘袁輝의 <설초쌍학도雪蕉雙鶴圖>(도6)는 그 일면이다.

다양한 장르에 걸쳐 그려진 파초

파초만 그린 것은 아니나, 파초가 등장한 계회도 성격의 그림이 일본에 있는 <파초야우도芭蕉夜雨圖>이다. 이 작품은 15세기 초 조선 화원 그림으로 보기도 해 조선과 일본 양국의 회화 교류 입장에서도 주목된다. 조선 중기에 그려진 파초는 현존하는 사례를 찾기 힘들다. 18세기에 이르러서야 문인화가들이 수묵으로 그린 파초 그림을 발견할 수 있어, 파초가 문인화의 한 소재로 부각됐음을 알 수 있다. 감상화의 소재로서 파초는 수묵과 수묵담채로 그려진 것들이 주류이다. 조선에서도 중국처럼 차 그림이 유행하면서 그 배경에 파초가 빈번하게 등장했다. 실제로 파초를 접하긴 쉽지 않았으나 《개자원화전芥子園畫傳》이나 《당시화보唐詩畫譜》 등 화본의 영향이 감지된다.
조선의 파초도는 18세기부터 시작해 후기와 말기로 이어졌다. 나아가 조선 말 민화에서 새로운 감각의 명품을 만날 수 있다. 파초는 우리 옛 그림 식물 소재 중 사군자에 비길 바는 아니나 소나무와 모란, 연꽃과 오동 등과는 견줄만하다. 19세기 이후 화단에서는 사군자에 이들을 포함해 일괄 화첩이나 대폭 병풍으로 꾸몄다. 이런 변화에는 문인화가들의 역할이 컸으며, 파초의 형태가 단순해 그리기 쉬운 점도 일조했을 것이다.


(왼쪽) 도8 정수영, <파초>, 종이에 수묵담채, 31×35㎝, 개인소장
(오른쪽) 도9 정조, <파초>, 종이에 수묵, 84.2×51.3㎝, 동국대박물관, 보물 제743호



대나무와 함께 그려졌으나 파초가 주연인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의 그림(도7)과 정수영(鄭遂榮, 1743-1831)의 산뜻한 소품(도8), <국화>와 쌍을 이뤄 격조가 돋보이는 정조(正祖, 1752-1800)의 대작(도9)은 압권이다. 인물과 파초 잎만 등장한 김홍도(金弘道, 1745-1806경)의 <포의풍류>나 허련(許鍊, 1808-1893)의 유작들도 전한다. 파초가 주 소재인 그림은 화폭 크기에 상관없이 파초와 괴석으로만 이루어진 사뭇 간단한 구성이 일반적이다. 파초가 괴석 뒤에 배치되어 밑동이 가려지거나 괴석이 파초 뒤에 그려지는 등 대체로 파초의 본줄기와 괴석이 수직을 이룬 유사한 구도이다. 괴석은 ‘ㄴ’자 같은 형태이며, 파초 잎은 농도를 달리해 세 방향으로 접히거나 꺾이고 갈라져 변화를 보인다.
화조화 범주에서는 심사정의 작품이 여러 점 전한다. 상고재尙古齋는 파초와 말똥구리를 함께 그려 초충첩에 남겼고(도10), 장승업은 화조영모화 영역에서 사슴 또는 다른 식물과 함께 파초를 그렸다. 화본풍이 짙은 윤두서의 <한일관수도>는 이른 시기에 파초가 등장한 그림으로 섬세한 필치의 소품이다. 장재의 시를 주제로 한 정선(鄭敾, 1776-1759)의 <횡거영초橫渠詠蕉>(도11)나 회소의 고사를 담은 이재관(李在寬, 1783-1837)의 <파초제시도>(도12)는 각각 동일한 주제를 즐겨 그린 듯 여러 점이 전한다.


(왼쪽) 도10 상고재, <파초>, 종이에 수묵, 41.2×31.5㎝, 국립중앙박물관
(오른쪽) 도12 이재관, <파초제시도>, 종이에 수묵담채, 37×59㎝, 고려대박물관



이원복 | 미술사가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장과 학예연구실장,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경기도박물관장 등을 역임하며 42년간 박물관 현장에 몸담았다.
현재 동국대학교 객원교수, (사)역사여성미래 공동대표이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