ì´ì›ë³µ êµìˆ˜ì˜ 소재로 ì‚´í•€ 우리 옛 그림 â‘§ 파초

파초는 ìžŽì´ í¬ê³  아름답다. ê°•ì¸í•œ ìƒëª…ë ¥ ë•ë¶„ì— ë¬¸ì¸ë“¤ì˜ ì‚¬ëž‘ì„ ë°›ì•„
다양한 시와 그림으로 남겨졌으며, 민화 ì†ì—서 새로운 ì¡°í˜•ì„±ì„ ë³´ì—¬ì£¼ì—ˆë‹¤.

글 ì´ì›ë³µ(미술사가)


파초는 대나무와 ê°™ì´ ë†’ì€ ê¸°ì˜¨ì— ì„±ìž¥ì´ ë§¤ìš° 빠르다. 단단한 줄기는 없으나 ëŒ€ë‚˜ë¬´ì˜ ê°•ì¸í•¨ê³¼ëŠ” 비êµë˜ë©°, 푸르고 너른 ìžŽì€ ë¶€ë“œëŸ¬ì›€ê³¼ í’ì„±í•¨ì„ ëŠë¼ê²Œ 한다. 뙤약볕 아래 그늘마저 주니 ë³µëœ ì‹ë¬¼ì´ ì•„ë‹ ìˆ˜ 없다. íŒŒì´ˆì˜ ê½ƒë§ì€ ‘기다림’ì´ë©°, ‘미ì¸â€™ì„ ì§€ì¹­í•˜ê¸°ë„ í•œë‹¤. íŒŒì´ˆì˜ ìžŽ 모양으로 만든 ë¶€ì±„ì¸ íŒŒì´ˆì„ èŠ­è•‰æ‰‡ì€ ë„êµì˜ íŒ”ì„ å…«ä»™ì˜ ì§€ë¬¼ 중 하나였고, 삼정승 출행 때 머리 위를 가릴 때 사용ë다.

ë„1 ê¹€ë†, <옥천선ìƒì „다ë„>, 종ì´ì— 담채, 24.4×31ãŽ, 중국 ë² ì´ì§•ê³ ê¶ë°•물ì›

ì´êµ­ì  í’ì·¨ì˜ íŒŒì´ˆ

ë™ì•„시아ì—서 그림 소재 중 ìžŽì´ ë„ˆë¥¸ ì‹ë¬¼ë¡œëŠ” 연꽃과 오ë™ë‚˜ë¬´ 그리고 파초를 들게 ëœë‹¤. 우리 ê°•í† ì— ì•¼ìƒ íŒŒì´ˆëŠ” 없으며, 중국ì—서 들어와 제주ë„를 비롯한 남부지역ì—서 ìžëž€ë‹¤. 서울 등 ê·¸ 외 지역ì—ì„  í™”ë¶„ì— ì˜®ê²¨ì ¸ 실내나 온실ì—서 ê²¨ìš¸ì„ ë‚œë‹¤. 파초 ê³¼ì—는 바나나를 비롯해 ì´ë“¤ë³´ë‹¤ ìž‘ì€ ê½ƒì„ ë³´ê¸° 위해 재배ë˜ëŠ” 미ì¸ì´ˆç¾Žäººè•‰ë„ í¬í•¨ëœë‹¤.
í™”ê°€ë“¤ì€ ê½ƒë³´ë‹¤ëŠ” 2mì— ì´ë¥´ëŠ” 타ì›í˜•ì˜ ì‹±ê·¸ëŸ¬ìš´ 긴 ìžŽì„ í™”ë©´ì— ì˜®ê²¼ë‹¤. 특히 ê±´ì¶•ê³¼ ì¡°ê²½ì„ ì‚´í•„ 때 ì²­æ·¸ ê¹€ë†(金農, 1687-1763)ì˜ <옥천선ìƒì „다ë„玉å·å…ˆç”Ÿç…ŽèŒ¶åœ–>ê°€ 보여주듯 대나무와 ë”불어 빠질 수 없는 ì‹ë¬¼ì´ 파초ì´ë‹¤(ë„1). ì¡°ì„  후기 ê·¸ë¦¼ë“¤ì„ í†µí•´ ì¡°ì„ ë„ í¬ê²Œ 다르지 않ìŒì„ ì§ìž‘하게 ëœë‹¤.

(왼쪽) ë„2-1 미ìƒ, <파초>, 19세기, 종ì´ì— 채색, 90.4×32ãŽ, ê°œì¸ì†Œìž¥
(가운ë°) ë„2-2 미ìƒ, <파초>, 20세기 ì „ë°˜, 종ì´ì— 수묵담채, 89×38ãŽ, ê°œì¸ì†Œìž¥
(오른쪽) ë„2-3 미ìƒ, <문ìžë„ 10첩 병í’> 중 ì œ10í­, 20세기 ì „ë°˜, 종ì´ì— 수묵담채, 101.8×48.2ãŽ, 호림박물관



파초가 전래한 시기는 명확하지는 않으나 ì²­ìžì™€ ì²­ë™ê±°ìš¸ 그리고 정병 등 ê³µì˜ˆí’ˆì˜ ë¬¸ì–‘ìœ¼ë¡œ 파초가 등장해 ëŠ¦ì–´ë„ ê³ ë ¤ 시대는 존재가 알려진 듯하다. ê°•í¬ì•ˆ(姜希é¡, 1417-1464)ì˜ ã€Šì–‘í™”ì†Œë¡é¤Šèбå°éŒ„》·í™ë§Œì„ (æ´ªè¬é¸, 1643-1715)ì˜ ã€Šì‚°ë¦¼ê²½ì œå±±æž—ç¶“æ¿Ÿã€‹Â·ì´ê±´ì°½(æŽå»ºæ˜Œ, 1852-1898)ì˜ <파초부> 등 ë¬¸í—Œì— ë“±ìž¥í•œë‹¤. êµê³¼ì„œì— ì‹¤ë ¸ë˜ ê¹€ë™ëª…(金æ±é³´, 1900-1968)ì˜ ëŒ€í‘œì  ì‹œì¸ â€˜íŒŒì´ˆâ€™ê°€ ìž…ê°€ì—서 ë§´ëˆë‹¤.
파초는 ì¡°ì„  í›„ê¸°ì— ë¬¸ì¸í™”ì˜ í•œ 소재로 그려지기 시작해 나름대로 특징과 ì–‘ì‹ì„ ì´ë¤˜ë‹¤. ë§ê¸° 장승업(張承業, 1843-1897) ë“±ì— ì˜í•´ ë™ì•„시아 ì‚¼êµ­ì˜ ê³µí†µì„±ì„ ì—¿ë³´ê²Œ ì–‘ì‹ìœ¼ë¡œ êµ­ì œì  íë¦„ë„ í™•ì¸ëœë‹¤. 특히 ì¼ê´„ 병í’으로 ì´ë£¨ì–´ì§„ ë¯¼í™”ì˜ êµ¬ì„±ê³¼ 필치ì—서 새로운 ê°ê°ê³¼ ê³¼ê°í•œ 변형으로 ì´ì „ê³¼ 다른 êµ­ë©´ì„ ë³´ì—¬ì£¼ì–´ 주목ëœë‹¤(ë„2-1, ë„2-2, ë„2-3).

중국과 ì¼ë³¸ì˜ 파초ë„

파초 ì‹¬ì´ ë‹¤í•˜ë‹ˆ 새 가지 íŽ¼ì³ ë§ë¦° 새심 ì†ìžŽ 슬며시 ë”°ë¼ ë‹ëŠ”ë‹¤.
새 마ìŒìœ¼ë¡œ 새 ë• ê¸°ë¥´ê¸¸ 배우길 ë°”ë¼ë‹ˆ ì´ì–´ 새잎 ë”°ë¼ì„œ 새로운 ì§€ì‹ ë”°ë¥´ë¦¬.
[èŠ­è•‰å¿ƒç›¡å±•æ–°æž å¿ƒå·æ–°å¿ƒæš—己隨 願學新心長新德 施隨新葉起新知]
– ìž¥ìž¬ì˜ <파초>

ë„3 ì •ìš´ë¶•, <ìžë‹¤ë„>, 종ì´ì— 채색, 140.5×57.6ãŽ, 중국 무ì„시립박물관



ì¤‘êµ­ì˜ íšŒì†Œ(懷素, 725-785)와 장재(張載, 1020-1077)ê°€ 파초와 ê´€ë ¨ëœ ê³ ì‚¬æ•…äº‹ëŠ” ì¡°ì„ ì—ì„œë„ ìž˜ 알려진 것ì´ì—ˆë‹¤. 회소는 어려서부터 글씨 쓰기를 좋아했고, 잠시 승려ìƒí™œì€ 거친 후 ë…학으로 ê¸€ì”¨ì— ì „ë…í•´ ì´ˆì„œè‰æ›¸ì˜ 대가로 당 ì„œì˜ˆì‚¬ì— ë†’ì€ ìœ„ì¹˜ë¥¼ ì í•˜ê²Œ ëœë‹¤. 그는 매우 가난해 비싼 ì¢…ì´ ëŒ€ì‹  파초 ìžŽì„ ë”° ê·¸ 위ì—다 글씨 ì—°ìŠµì„ í–ˆê³  시를 ì“°ê¸°ë„ í–ˆë‹¤. 너무 열심히 ì“´ íƒ“ì— ì£¼ë³€ì˜ ì—°ëª»ì„ ì˜¨í†µ 검게 물들였다고 한다.
ì†¡ì— ì´ë¥´ëŸ¬ ìœ í•™ì€ í˜•ì´ìƒí•™ì  성리학으로 발전ëœë‹¤. ê·¸ 서ë‘ì— í¬ê²Œ 기여한 장재는 파초를 남달리 사랑해 시를 남겼다. ì„±ë¦¬í•™ì„ êµ­ì‹œåœ‹æ˜¯ë¡œ 탄ìƒí•œ ì¡°ì„ ì™•ì¡°ì˜ ì„ ë¹„ë“¤ë„ ê·¸ì˜ ì‹œ <파초>를 애송했다.
파초는 ë…ë¦½ëœ ì†Œìž¬ë§Œì´ ì•„ë‹ˆ 여러 ë²”ì£¼ì— ê±¸ì³ìžˆë‹¤. 당å”부터 그려진 파초는 산수나 ì¸ë¬¼ ë° í™”ì¡°í™”ì˜ ë¶€ë¶„ìœ¼ë¡œ 등장했고, 별서나 ë¬¸ì¸ ì„œìž¬ 그림ì—ë„ ìžì£¼ 등장했다. 송宋 종친 ì¡°ë°±êµ¬è¶™ä¼¯é§’ì˜ <한ê¶ë„漢宮圖>ì—는 ê´´ì„ ì‚¬ì´ì— 파초가 그려졌으며, ì›å…ƒ 초까지 활ë™í•œ ì „ì„ (錢é¸, 1235-?)ì˜ <노공팽다ë„魯公烹茶圖>, ì •ìš´ë¶•(鄭蕓鵬, 1547-1628)ì˜ <ìžë‹¤ë„煮茶圖>는 꽃까지 그린 파초 아래서 차를 ì¦ê¸°ëŠ” ‘차 그림’ 범주ì´ë‹¤(ë„3). ì´ ì™¸ì— ì—¬ì¸ì„ 주제로 한 미ì¸ë„ì˜ ë°°ê²½ìœ¼ë¡œë„ íŒŒì´ˆê°€ 등장하는 ê²ƒì€ ì¡°ì„ ë„ ë§ˆì°¬ê°€ì§€ì´ë‹¤. 17ì„¸ê¸°ì— í™œë™í•œ í™”ì›ì˜ <비파 타는 ì—¬ì¸>, 윤ë‘서(尹斗緖, 1668-1715)와 윤ë•í¬(尹德熙, 1685-1766) ë¶€ìžì˜ <ë…서하는 ì—¬ì¸>ì´ ê·¸ 예ì´ë‹¤.
명明 문징명(文徵明, 1470-1559)ì˜ <ê´´ì„ê³¼ 파초>나 서위(å¾è¬‚, 1521-1593)ì˜ <파초>는 ëª¨ë‘ ìœ ë ¤í•œ 필치로 풀어냈으며, 한쪽 ë©´ì— 2í–‰ì˜ ì œì‹œé¡Œè©©ê°€ 있어 문ì¸í™”ì˜ ìš´ì¹˜ë¥¼ ë”한다. ì´ì™€ ê°™ì´ íŒŒì´ˆë‚˜ ê´´ì„ì„ ê³ë“¤ì—¬ 그린 ì†Œí’ˆë“¤ì€ ì²­æ·¸ì— ì´ë¥´ëŸ¬ í¬ê²Œ 유행한다. 초기 주답(朱耷, 1625ê²½-1705ê²½)ì´ë‚˜ 고봉한(高鳳翰, 1683-1743) 등 ê°œì„±ì£¼ì˜ í™”ê°€ë“¤ì— ì˜í•´ ì¶”ìƒì„±ê¹Œì§€ ëŠê»´ì§€ëŠ” ê·¸ë¦¼ë“¤ë„ ê·¸ë ¤ì¡Œë‹¤. 12ì  ã€Šì‚°ìˆ˜í™”í›¼ì±…ã€‹ì— ì†í•œ 탕태분(湯胎汾, 1778-1853)ì˜ <파초와 죽>ì€ ì‚°ëœ»í•œ 설채設彩로 아름다운 그림ì´ë‹¤(ë„4).


ë„4 탕태분, <파초와 죽>, 종ì´ì— 채색, 26.7×37.5ãŽ, 중국 ìƒí•´ë°•물관



(왼쪽) ë„5 ì´í†  ìžì¿ ì¶”, <파초와 í•™>, 종ì´ì— 수묵, 123.4×50.6ãŽ, êµí† êµ­ë¦½ë°•물관
(가운ë°) ë„6 ì›íœ˜, <설초ìŒí•™ë„>, 18세기, ë¹„ë‹¨ì— ì±„ìƒ‰, 160×95ãŽ, 중국 ê´‘ë™ì„±ë°•물관
(오른쪽) ë„7 강세황, <파초>, ë¹„ë‹¨ì— ìˆ˜ë¬µ, 28.5×22.3ãŽ, 국립중앙박물관



한편 ìž„ì´(任頤, 1840-1896) 등 ì¼ë³¸ ì˜í–¥ì„ ë³´ì´ëŠ” í•´ìƒí™”파海上畫派는 íŒŒì´ˆì— ë§ì„ 비롯한 ë™ë¬¼ê³¼ ì¸ë¬¼ì„ 함께 그렸다. ì´ëŠ” 한·중·ì¼ì—서 드러난 êµ­ì œì ì¸ ì–‘ì‹ì´ë¼ 하겠다. 화사한 ê½ƒì„ ì¦ê²¨ 그린 ì¼ë³¸ì˜ <사계화조화>나 <화목ë„>, ë‘루마리 ê½ƒë³‘ì— ê½‚ížŒ ê½ƒë“¤ì„ ê·¸ë¦° <ìž…í™”ë„> 등 꽃그림ì—서 파초는 드문 편ì´ë‹¤. êµí† ì—서 화조화를 전문으로 그린 ì´í†  ìžì¿ ì¶”(伊騰若冲, 1716-1800)ì˜ <파초웅계ë„>와 <파초와 í•™>(ë„5), 화첩 ë‚´ <파초> ë“±ì´ ì „í•œë‹¤. ì œëª©ì´ ì•”ì‹œí•˜ë“¯ 파초와 함께 새를 그린 것들로, ì¡°ì„ ì˜ ì‹¬ì‚¬ì •ê³¼ ìž¥ìŠ¹ì—…ì´ ê³ ì–‘ì´ë‚˜ ë‹­ì„ ê·¸ë¦° 것과 통한다. ì²­ ì›íœ˜è¢è¼ì˜ <설초ìŒí•™ë„雪蕉雙鶴圖>(ë„6)는 ê·¸ ì¼ë©´ì´ë‹¤.

다양한 ìž¥ë¥´ì— ê±¸ì³ ê·¸ë ¤ì§„ 파초

파초만 그린 ê²ƒì€ ì•„ë‹ˆë‚˜, 파초가 등장한 ê³„íšŒë„ ì„±ê²©ì˜ ê·¸ë¦¼ì´ ì¼ë³¸ì— 있는 <파초야우ë„芭蕉夜雨圖>ì´ë‹¤. ì´ ìž‘í’ˆì€ 15세기 ì´ˆ ì¡°ì„  í™”ì› ê·¸ë¦¼ìœ¼ë¡œ ë³´ê¸°ë„ í•´ ì¡°ì„ ê³¼ ì¼ë³¸ ì–‘êµ­ì˜ íšŒí™” êµë¥˜ 입장ì—ì„œë„ ì£¼ëª©ëœë‹¤. ì¡°ì„  ì¤‘ê¸°ì— ê·¸ë ¤ì§„ 파초는 현존하는 사례를 찾기 힘들다. 18ì„¸ê¸°ì— ì´ë¥´ëŸ¬ì„œì•¼ 문ì¸í™”ê°€ë“¤ì´ ìˆ˜ë¬µìœ¼ë¡œ 그린 파초 ê·¸ë¦¼ì„ ë°œê²¬í•  수 있어, 파초가 문ì¸í™”ì˜ í•œ 소재로 ë¶€ê°ëìŒì„ 알 수 있다. ê°ìƒí™”ì˜ ì†Œìž¬ë¡œì„œ 파초는 수묵과 수묵담채로 그려진 ê²ƒë“¤ì´ ì£¼ë¥˜ì´ë‹¤. ì¡°ì„ ì—ì„œë„ ì¤‘êµ­ì²˜ëŸ¼ ì°¨ ê·¸ë¦¼ì´ ìœ í–‰í•˜ë©´ì„œ ê·¸ ë°°ê²½ì— íŒŒì´ˆê°€ 빈번하게 등장했다. 실제로 파초를 접하긴 쉽지 않았으나 《개ìžì›í™”전芥å­åœ’畫傳》ì´ë‚˜ 《당시화보å”詩畫譜》 등 í™”ë³¸ì˜ ì˜í–¥ì´ ê°ì§€ëœë‹¤.
ì¡°ì„ ì˜ íŒŒì´ˆë„는 18세기부터 시작해 후기와 ë§ê¸°ë¡œ ì´ì–´ì¡Œë‹¤. 나아가 ì¡°ì„  ë§ ë¯¼í™”ì—서 새로운 ê°ê°ì˜ ëª…í’ˆì„ ë§Œë‚  수 있다. 파초는 우리 옛 그림 ì‹ë¬¼ 소재 중 사군ìžì— 비길 바는 아니나 소나무와 모란, 연꽃과 ì˜¤ë™ ë“±ê³¼ëŠ” 견줄만하다. 19세기 ì´í›„ 화단ì—서는 사군ìžì— ì´ë“¤ì„ í¬í•¨í•´ ì¼ê´„ 화첩ì´ë‚˜ ëŒ€í­ ë³‘í’으로 꾸몄다. ì´ëŸ° 변화ì—는 문ì¸í™”ê°€ë“¤ì˜ ì—­í• ì´ ì»¸ìœ¼ë©°, íŒŒì´ˆì˜ í˜•íƒœê°€ 단순해 그리기 쉬운 ì ë„ ì¼ì¡°í–ˆì„ 것ì´ë‹¤.


(왼쪽) ë„8 정수ì˜, <파초>, 종ì´ì— 수묵담채, 31×35ãŽ, ê°œì¸ì†Œìž¥
(오른쪽) ë„9 ì •ì¡°, <파초>, 종ì´ì— 수묵, 84.2×51.3ãŽ, ë™êµ­ëŒ€ë°•물관, 보물 ì œ743호



대나무와 함께 그려졌으나 파초가 ì£¼ì—°ì¸ ê°•ì„¸í™©(姜世晃, 1713-1791)ì˜ ê·¸ë¦¼(ë„7)ê³¼ 정수ì˜(鄭邿¦®, 1743-1831)ì˜ ì‚°ëœ»í•œ 소품(ë„8), <êµ­í™”>와 ìŒì„ ì´ë¤„ 격조가 ë‹ë³´ì´ëŠ” ì •ì¡°(正祖, 1752-1800)ì˜ ëŒ€ìž‘(ë„9)ì€ ì••ê¶Œì´ë‹¤. ì¸ë¬¼ê³¼ 파초 잎만 등장한 ê¹€í™ë„(金弘é“, 1745-1806ê²½)ì˜ <í¬ì˜í’류>나 허련(許éŠ, 1808-1893)ì˜ ìœ ìž‘ë“¤ë„ ì „í•œë‹¤. 파초가 주 ì†Œìž¬ì¸ ê·¸ë¦¼ì€ í™”í­ í¬ê¸°ì— ìƒê´€ì—†ì´ 파초와 ê´´ì„으로만 ì´ë£¨ì–´ì§„ 사뭇 간단한 êµ¬ì„±ì´ ì¼ë°˜ì ì´ë‹¤. 파초가 ê´´ì„ ë’¤ì— ë°°ì¹˜ë˜ì–´ ë°‘ë™ì´ 가려지거나 ê´´ì„ì´ íŒŒì´ˆ ë’¤ì— ê·¸ë ¤ì§€ëŠ” 등 대체로 íŒŒì´ˆì˜ ë³¸ì¤„ê¸°ì™€ ê´´ì„ì´ ìˆ˜ì§ì„ ì´ë£¬ 유사한 구ë„ì´ë‹¤. ê´´ì„ì€ â€˜ã„´â€™ìž ê°™ì€ í˜•íƒœì´ë©°, 파초 ìžŽì€ ë†ë„를 달리해 세 방향으로 접히거나 꺾ì´ê³  ê°ˆë¼ì ¸ 변화를 ë³´ì¸ë‹¤ï¼Ž
화조화 범주ì—서는 ì‹¬ì‚¬ì •ì˜ ìž‘í’ˆì´ ì—¬ëŸ¬ ì  ì „í•œë‹¤. ìƒê³ ìž¬å°™å¤é½‹ëŠ” 파초와 ë§ë˜¥êµ¬ë¦¬ë¥¼ 함께 그려 ì´ˆì¶©ì²©ì— ë‚¨ê²¼ê³ (ë„10), ìž¥ìŠ¹ì—…ì€ í™”ì¡°ì˜ëª¨í™” ì˜ì—­ì—서 사슴 ë˜ëŠ” 다른 ì‹ë¬¼ê³¼ 함께 파초를 그렸다. 화본í’ì´ ì§™ì€ ìœ¤ë‘ì„œì˜ <한ì¼ê´€ìˆ˜ë„>는 ì´ë¥¸ ì‹œê¸°ì— íŒŒì´ˆê°€ 등장한 그림으로 섬세한 í•„ì¹˜ì˜ ì†Œí’ˆì´ë‹¤. ìž¥ìž¬ì˜ ì‹œë¥¼ 주제로 한 ì •ì„ (鄭敾, 1776-1759)ì˜ <횡거ì˜ì´ˆæ©«æ¸ è© è•‰>(ë„11)나 íšŒì†Œì˜ ê³ ì‚¬ë¥¼ ë‹´ì€ ì´ìž¬ê´€(æŽåœ¨å¯¬, 1783-1837)ì˜ <파초제시ë„>(ë„12)는 ê°ê° ë™ì¼í•œ 주제를 ì¦ê²¨ 그린 듯 여러 ì ì´ 전한다.


(왼쪽) ë„10 ìƒê³ ìž¬, <파초>, 종ì´ì— 수묵, 41.2×31.5ãŽ, 국립중앙박물관
(오른쪽) ë„12 ì´ìž¬ê´€, <파초제시ë„>, 종ì´ì— 수묵담채, 37×59ãŽ, 고려대박물관



ì´ì›ë³µ | 미술사가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장과 학예연구실장, 문화재청 문화재위ì›,
경기ë„박물관장 ë“±ì„ ì—­ìž„í•˜ë©° 42ë…„ê°„ 박물관 í˜„ìž¥ì— ëª¸ë‹´ì•˜ë‹¤.
현재 ë™êµ­ëŒ€í•™êµ ê°ì›êµìˆ˜, (사)역사여성미래 ê³µë™ëŒ€í‘œì´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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