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복 교수의 소재로 살핀 우리 옛 그림 ⑥ 포도

이른 더위에 인기를 끄는 여름 과일 중 포도는 오래 전부터 세계적으로 즐겨온 과일이다.
또한 열매와 덩굴 모습이 아름다워 그림에 조형미와 상징성을 담아내기 좋은 소재였다.

글 이원복(미술사가)


포도는 알알이 탐스러운 송이로 커가며 줄기와 덩굴로 뻗어 풍요豐饒와 다산多産, 자손의 번창을 상징하니 이는 한자문화권인 동아시아 한·중·일 삼국이 같다. 조선 초부터 먹물로 그린 포도인 묵포도墨葡萄는 조선 중기화단에서 크게 성행한 묵죽과 묵매처럼 문인화가들에 의해 독자적인 정형定型을 이룩한다. 조선 시대에 줄기차게 그려져 소품과 대작 병풍(도1) 등이 다수 전하며 말기에는 민화로 이어진다.
또한 이웃 나라와 비교할 때, 우리나라 조형예술에서 다루는 포도는 식물 소재 중에서 비중이 높다. 통일신라 와당과 고려청자를 거쳐 회화적인 무늬로 장식한 백자 자기磁器를 비롯해 고비·필통·나전칠기옷상자(도2) 등 공예 전반에서 두루 살필 수 있다.

(왼쪽) 도2 <나전포도문의함>, 17~18세기, 72×43×13㎝, 일본 야마토분가간
(오른쪽) 도3 미상, <정물>(벽화), 기원전후, 폼페이국립박물관

비단길 따라온 과일

서아시아가 원산지인 포도는 주로 온대 지방에서 재배된다. 석류와 토끼풀처럼 중국 한漢나라 때 비단길(silk road)을 통해 전해진 동서 교류의 산물이다. 서양에선 ‘술의 신[酒神]’인 바커스(Bacchus)가 인간에게 포도주 만드는 법을 가르쳐줬다거나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켰다는 등 로마신화와 성경 같은 종교적인 이야기에 자주 등장한다. 일찍이 폼페이 유적 벽화에서 크리스털 그릇에 담긴 포도가 발견됐으며(도3), 이후로도 꽃과 과일, 또는 과일만을 소재로 한 정물화에 빈번하게 등장한다(도4). 불교에도 포도와 원숭이에 관한 이야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포도는 동아시아에서도 서양 못지않게 오랜 세월동안 사랑받아 조형예술 소재임을 알 수 있다.

(왼쪽) 도4 코르넬리스 드 힘, <정물>, 캔버스 유채, 64.5×51.5㎝, 도쿄후지미술관
(오른쪽) 도5 <청자포도동자무늬표주박모양주자와 승반>, 13세기, 높이 34.5㎝, 국립중앙박물관


포도는 포도송이의 모양과 빛깔에 따라 알이 둥근 포도는 초룡주草龍珠, 알이 타원형으로 갸름해 말 젖과 닮은 것은 마유포도馬乳葡萄, 청포도 계열은 수정포도, 짙은 자색은 자포도라고 불린다. 우리나라 토종식물로 왕머루와 개머루, 담쟁이 등은 포도과에 속한다. 국내에서 오늘날과 같은 포도가 재배되기 훨씬 전에 문양으로써 사용됐는데, 중국 당唐나라 때 포도주를 즐겨 마셨다는 기록을 토대로 적어도 통일신라 시대부터 당과의 교류를 통해 사람들이 포도의 존재를 알았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고려 시대에는 절에서 포도를 재배했음을 알려주는 이규보(李奎報, 1168-1741)의 시가 전한다. 중국 송말원초에 일관日觀이라는 스님이 묵포도를 처음 그렸다는 사실과 원元 황실에서 부마국인 고려에 포도주를 하사한 기록도 있다. 이에 포도 덩굴에 매달린 동자들을 익살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낸 표주박모양 청자 주자는 포도주를 담는 용도로 사용되었을 수 있다(도5).
조선 시대에는 15세기 중엽 세조 때 읍의 수령들이 포도를 거둬들이고, 연산군 때 포도를 구하여 바치라고 명령한 기록이나,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許筠, 1569-1618)이 포도를 받아 감사편지를 보낸 글이 전한다. 조선 중기에는 사찰뿐 아니라 민가와 임금님의 초상을 모신 건물 앞에도 포도를 심었다고 한다.

(왼쪽) 도6 일관, <묵포도>, 1291년, 종이에 수묵, 168.3×93㎝, 일본 개인소장
(오른쪽) 도7 서위, <묵포도>, 종이에 수묵, 166.3×64.5㎝, 타이베이 고궁박물원

채색 초충도에서 묵포도로

중국 송宋대에는 진천민陳天民이라는 포도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가 있었고, 휘종(徽宗, 1082-1135) 때 궁정 작품목록인 《선화화보宣和畫譜》에 <석류포도도>와 <포도비파도> 같은 작품 제목이 보이나 채색화로 사료된다. 남송의 화원 임춘林椿의 소품이나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임인발(任仁發, 1255-1327) 그림 등은 초충도 범주이다. 이와 달리 포도만 먹물로 그린 묵포도墨葡圖는 전술한 일관 스님이 최초다. 그는 화면에 곤충이나 동물의 등장 없이 포도 덩굴과 포도송이를 유려한 글씨의 제시와 함께 나타내 문인화의 어엿함을 보여준다(도6). 명明대에는 서위(徐渭, 1521-1593)(도7), 치바이스(齊白石, 1863-1957) 등이 이 양식을 계승했다. 포도만 소재로 삼지 않고 풀벌레를 함께 그린 초충도와 쥐·청설모·다람쥐 등을 함께 그린 또 다른 계열은 묵포도보다 앞선 양식인데, 시대가 내려오며 혼용를 보이나 대작 병풍은 찾아보기 어렵다.
일본에서는 일관 스님의 묵포도와 그것을 바탕으로 조선 시대 양식화된 묵포도 화풍을 따른 일련의 그림들을 살필 수 있다. 특히 에도 시대 거장 이토 자쿠추(伊藤若冲, 1716-1800)는 금각사 대서원의 장벽화 중 4면에 포도를 그렸으며(도8), 그밖에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다니 분초(谷文晁, 1763-1841)의 <포도율서도葡萄栗鼠圖>(도9)와 가노 나가노부(狩夜榮信, 1775-1828)의 <월야포도도> 등의 대폭 병풍이 전한다.

도8 이토 자쿠추, <포도도> 부분, 종이에 담채, 각 168.3×93㎝, 교토 녹원사



도9 다니 분초, <포도율서도> 12첩 병풍, 종이에 수묵, 각 163.3×58㎝, 국립중앙박물관

포도 그림의 왕국, 조선

동아시아 삼국 중 조선에서는 문인화가들이 사군자와 더불어 포도를 묵희墨戱로 즐겨 그려 5백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시대별로 격조 높은 작품들이 전해졌다. 풍속화이자 기록화인 <회혼례> 등을 통해 집안 잔치에 포도 병풍을 드리웠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으며, 포도 그림이 그려진 다양한 양상을 짐작할 수 있다(도10). 15세기에는 성삼문, 강희안, 신숙주 등 이름난 문사들이 포도를 그렸으나 아쉽게도 유작은 전하지 않는다. 16세기에 이르러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 또한 포도로 명성을 얻었고, 비록 몇 점 안 되는 황집중(黃執中, 1533-1593 이후)의 소품들은 동시대 묵매와 묵죽에 필적하는 독자적인 양식과 담백한 미감으로 우리 포도 그림의 위상을 대변한다(도11). 뿐만 아니라 묵포도와 비슷하게 포도가 표현된 백자 접시도 있다(도12).

도10 미상, <회혼례도>, 18세기, 비단에 채색, 33.5×45.5㎝, 국립중앙박물관



(왼쪽) 도11 황집중, <묵포도>, 모시에 수묵, 27.7×21.8㎝, 국립중앙박물관
(오른쪽) 도12 <백자청화포도문접시>, 16세기, 입지름 22㎝, 일본 개인소장



조선 중기 화단에선 17세기 전반의 이계호(李繼祜, 1574-1645 이후), 후반의 홍수주(洪受疇, 1642-1704)가 대표적인 묵포도 화가인데, 홍수주의 경우는 먹물을 올린 비단에 이금泥金이나 송화松花로 포도를 묘사하기도 했다. 앞선 시대와 달리 족자나 병풍 등의 형태가 등장해 화가별로 대작과 소품들이 함께 전하는데, 채색을 풀거나 머루즙을 섞는 시도마저 감지되어 눈길을 끈다. 더불어 17세기 이래 청화 또는 철화로 포도를 그린 수준급의 백자 항아리(도13-1)가 여럿 전해 내려오며, 이 중에는 원숭이가 등장하는 것도 있다(도13-2).

(왼쪽) 도13-1 <백자철화포도문호>, 17세기 후반, 높이 53.8㎝, 국보 107호,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오른쪽) 도13-2 <백자청철화포도원숭이문호>, 18~19세기, 높이 34.4㎝, 국립중앙박물관



(왼쪽) 도14-1 심정주, <포도도>, 종이에 담채, 16×10㎝, 서울대학교박물관
(오른쪽) 도14-2 심사정, <묵포도>, 종이에 수묵, 27.6×47㎝, 간송미술문화재단



조선 후기에는 심정주(沈廷冑, 1678-1750)·심사정(沈師正, 1708-1769) 부자의 작품(도14-1, 도14-2), 김홍도의 스승인 강세황(姜世晃, 1713-1791), 정조(正祖, 1752-1800)와 이인문(李寅文, 1745-1824 이후) 등이 포도 그림을 남겼다(도15, 도16). 19세기로 접어들면 포도 덩굴의 힘찬 동세를 진한 먹으로 표현해 ‘포도 명인’으로 불리는 최석환崔奭煥의 그림이 국내외에 다수 전한다. 이 시기에 제작된 고비에 선비들의 그림과 닮은 포도가 양각으로 새겨지기도 했다. 묵포도에 대한 수요와 함께 도식적으로 묘사된 민화가 등장하면서, 전과 다른 구성과 표현기법을 보이는 새로운 감각의 포도 그림들이 주목됐다. 이런 변화의 흐름은 포도라는 소재의 현대적인 재해석과 전개를 기대하게 만든다(도17).
<다음호에 계속>

(왼쪽) 도15 정조, <묵포도>, 종이에 수묵, 145×60㎝, 개인소장
(오른쪽) 도16 이인문, <포도도>, 종이에 담채, 36.8×30.8㎝, 도쿄예술대학



도17 미상, <포도도>(문자도 6첩 병풍 뒷면), 19세기,
종이에 수묵, 44.5×23.5㎝, 개인소장


이원복 | 미술사가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장과 학예연구실장,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경기도박물관장 등을 역임하며 42년간 박물관 현장에 몸담았다.
현재 동국대학교 객원교수, (사)역사여성미래 공동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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