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복 교수의 소재로 살핀 우리 옛 그림 ⑤ 장미

6월은 장미의 계절이다. 장미는 꽃 피는 기간이 길어 ‘영원한 청춘’의 상징으로 옛 그림에 즐겨 그려졌으며,
장수를 의미하는 소재와 함께 길상의 의미를 더욱 확대하기도 했다.

– 글 이원복(미술사가)


장미薔薇는 영국을 비롯해 유럽 여러 나라의 나라꽃[國花]이다. ‘꽃의 여왕’이라는 호칭에 걸맞게 모양과 색깔 및 향기가 두드러져 지구촌 도처에서 오랜 세월 변함없는 사랑을 받아온 꽃이다. 한자문화권에선 개화開花 기간이 길어 ‘영원한 청춘靑春’을 상징하여 즐겨 그리게 됐다. 꽃말은 기쁨·사랑·질투·순결·고독·불가능 등 색에 따라 다르다. 장미는 동서의 합작품으로 십자군원정 이후 유럽에서 재배가 크게 유행했다. 18세기 이후 유럽과 아시아의 교류가 빈번해지자 중국서 수입한 월계화月桂花에 유럽종자를 교배시켜 오늘날의 장미가 탄생했다.

이에 앞서 유럽에서는 일찍이 기원전 2천년 경 바빌론 궁전에서 이 꽃을 재배했다. 독일의 한 고고학자는 크레타 섬에서 기원전 1600년경 그려진 장미벽화를 발견했다. 로마인은 장미를 제사와 잔치 등 의식을 위해 이집트 등지에서 수입하기도 했다.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기원전 1200년경)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 등 긴 서사시와 성경에도 장미가 등장한다. 장미는 문학과 음악, 미술에 이르기까지 빈번히 등장하며 지대한 영향을 준 꽃 소재 중 하나이다.
한·중·일 동아시아 삼국에서 1천년 이상 장미를 그려왔고, 현대에도 장우성과 박노수 같은 한국화가 뿐 아니라 김인승, 임직순 등이 유화로도 즐겨 그렸다(도1, 도2). 옛 그림을 살피면 장미는 나비와 벌, 개, 사슴, 고양이, 각종 새, 버들과 소나무 등 여러 자연물과 함께 그려진다. 또한 프랑스 왕실의 초상화가 르브랭(ÉLISABETH VIGÉE-LE BRUN, 1755-1842)이 러시아의 왕족을 1797년 그린 <유스포프 왕녀>(도3)나 중국 옹정雍正 때 제작한 12미인도 중 4폭의 <여의를 지닌 미인[立持如意]>(도4)의 예처럼 미인과 왕자 등 인물의 배경으로 장미가 등장해 아름다움을 배가시켰다.

영원한 청춘을 상징한 장미꽃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꽃 중 첫 번째가 장미라고 한다. 장미과에 속한 꽃나무로는 아가위로 불리는 산사나무, 산당화로 불리는 명자나무, 각종 벚나무와 매화와 복숭아, 비파 등도 포함된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장미를 백합百合과 마찬가지로 서양 꽃으로 알고 있으나, 중국을 비롯한 동양에서는 적어도 1천년을 넘게 장미를 그려왔다. 한국에도 들장미로 불리는 찔레꽃, 해당화海棠花 등 재래종인 야생화가 있다. ‘조선의 그림 신선[畫仙]’ 김홍도(金弘道, 1745-1805경)가 38세 때(1782년) 부채에 찔레꽃과 세 마리 나비를 그린 명품도 전한다.
신라 3대 문장가로 꼽히며 이두吏讀를 지은 학자인 설총(薛聰, 655-?)의 《화왕계花王戒》는 사람을 모란·장미·할미꽃 등에 비유해 임금을 충고한 명문장이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에선 7세기경 장미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으며, 장미를 읊은 고려시대 시도 전한다. 또한 그림에 부친 제시題詩를 통해 조선 초 장미 그림의 존재가 확인된다. 조선 초 문인화가 강희안(姜希顏, 1417-1464)이 지은 원예서 《양화소록養花小錄》에는 월계화란 명칭으로 재배법과 장미란 이름도 등장한다. 그는 장미를 복숭아, 치자, 파초, 흰 철쭉 등과 함께 꽃의 9등급 중 5품으로 등급을 매겼다.

중국에선 장미를 꽃 피는 기간이 길어 젊음을 오래 유지한다는 뜻을 담아 장춘화長春花라 불렀으며, 우리나라와 일본도 같은 양상이다. ‘영원한 청춘’을 상징하는 장미는 괴석과 사슴, 고양이 등 장수를 의미하는 소재와 함께 그려 의미를 확대하는 효과를 꾀했다.

천년 역사의 동아시아 장미 그림

장미라는 소재를 통해 한·중·일 동아시아 세 나라의 회화 교류를 확인할 수 있다. 중국은 10세기 이후 장미 그림이 전하는데, 장미가 회화의 소재로서 모란보다 나중에 등장했다고 사료된다. 송 8대 황제인 휘종徽宗 조길(趙佶, 1082-1135) 때 황실소장 그림목록인 《선화화보宣和畫譜》에 장미는 보이지 않으나, 당唐 양광梁廣이 그린 <사계화도>나 <해당화도> 등 작품명이 나타나 당대 장미를 그렸음이 확인된다. 그러나 현존하는 그림으로 시대가 이른 것은 요遼 귀족 소융蕭瀜(11세기)의 <화조도>에 대나무와 함께 흰색과 분홍색의 두 들장미가 보인다.
《고씨화보顧氏畫譜》에는 명明 진괄陳栝이 그린 장미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조선후기 화단에서 그 영향이 확인된다. 《개자원화전芥子園畫傳》에는 애선艾宣의 그림을 방倣한 것으로 바위에는 새가 등장하고 그 뒤로 장미가 제법 큰 비중으로 나타나 있다. 그림에는 ‘빽빽한 가시는 꽃을 꺾는 여인의 고운 손을 막고, 교태를 머금은 꽃은 아리따운 아가씨 얼굴을 질투 하네’의 두 줄의 시가 곁들여있다.

청淸에선 여러 꽃을 일괄로 그린 화첩 중에 장미가 포함되며, 금낭화나 등을 함께 그리기도 했다. 양주화파楊州畫派로 활동이 두드러진 화암(華嵒, 1682-1756)의 <취우화명도翠羽和鳴圖>가 전한다. 중국서 활동한 예수회 신부 낭세영(郞世寧, 1688-1766)에 의한 서양화풍이 감지되는 <들장미와 유리조>(도5)와 더불어 일본에서 잠깐 활약한 심전(沈銓, 1682-1762 이후)의 유작 중 <장미와 고양이>(도6)가 주목된다. 특히 심전은 이 작품 외에 토끼와 원앙을 장미, 매화 등 다른 화목과 함께 그려 하나의 정형定型을 보여준다. 일본의 소 시세키(宋紫石, 1715-1786)가 그린 <홍장미쌍금도紅薔薇双禽圖>(도7)에 심전의 영향이 보인다. 다니 분쵸(谷文晁, 1763-1840)의 <고목에 앉은 산비둘기[枯木山鳩圖]>(도8)는 중국 역대 그림과 서양화풍까지 섭렵해 간토關東 문인화단의 중신답게 국제성을 띤 작품으로 보인다.
조선의 박제가(朴齊家, 1750-1805)와 교유한 나빙(羅聘, 1733-1799)이 남긴 화첩에는 <박제가상> 외에 절지화로 그린 <노란 장미>가 국내에 현존한다. 청말 이육(李育, 1843-1904)은 바위 아래 난초와 한 쌍의 새가 깃든 장미를 수묵담채로 묘사한 <화조도>(도9)를 통해 탈속한 문인화의 높은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조선후기 화조영모화 속 장미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의 전칭작 중에 장미 그림도 있으나 전술한 중국서 유입된 화풍으로 시대가 조선후기로 떨어진다. 현존하는 우리 전통화화에서 장미의 등장은 18세기 이후 그림에서 살필 수 있다. 소품인 감상화 외에 장식성이 큰 화조 병풍과 19세기 이후 민화 병풍에서 등에서 살필 수 있다(도10). 장미가 주인공인 것과 화조와 영모화 배경에 조연으로 등장한 것 등 두 유형이다. 화조화에도 능한 심사정(沈師正, 1707-1769)의 <장미와 나비[薔薇蝴蝶]>(도11) 등 소품이 몇 점 전한다. 버드나무에 깃든 한 쌍의 까치와 한쪽 모서리를 점한 장미 그림은 ‘버드나무[柳]’과 ‘머물다[留]’가 발음이 같은 것을 이용해 기쁨(까치)과 젊음(장미)이 오래 이어지길(버드나무)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고양이 그림의 대가로 ‘변 고양이’란 별명이 붙은 변상벽(卞相璧, 1730-?)의 <나비를 노리는 고양이>(도12)는 괴석 뒤로 연분홍 꽃망울을 터트린 장미에 나비가 살포시 앉은 작품이다. 조선 후기에 활동한 도화서 화원 김수규(金壽奎, 18-19세기 초)도 같은 주제를 그린 바 있으며, 비록 낙관은 있으나 김홍도 그림이 아닌 필자미상으로 간주된 <장미>도 있다. 조선 말기 화단에 이르면 바위나 지면의 표현 없이 장미에 나비와 함께 나타낸 소폭의 그림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꽃 그림을 잘 그리는 신명연(申命衍, 1809-1892)은 물론, 백은배(白殷培, 1820-1904 이후)의 화첩에는 전술한 화본의 영향을 보이는 <장미와 나비>(도13)가 현전한다.

장미가 다른 소재와 함께 화면 일부분을 점하는 것으로는 남계우(南啓宇, 1811-1890)의 <화접도> 대련(도14)과 그를 이은 이경승(李絅承, 1862-1927)의 <화접도> 병풍이 있다. 조선화단의 최후를 장식한 장승업(張承業, 1843-1897)의 작품에는 중국 심전의 영향을 받은 듯 고양이와 장미를 함께 그린 것이 있고, 바위를 배경으로 핀 장미
주위에 사슴과 영지가 등장하는 것도 있다(도15, 도16).
옛 그림에서 아름다운 외양을 지녀 단독으로 그려지거나, 길상吉祥의 의미를 담아 다른 소재와 함께 그려진 장미는 오늘날에도 즐겨 그리는 회화 소재의 하나이다. 과거만이 아닌 현대 민화의 영역에서의 장미의 역할도 자못 기대된다.


이원복 | 미술사가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장과 학예연구실장,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경기도박물관장 등을
역임하며 42년간 박물관 현장에 몸담았다.
현재 동국대학교 객원교수, (사)역사여성미래 공동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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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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