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복 교수의 소재로 살핀 우리 옛 그림 ④모란

‘꽃 중의 왕’이라 불리는 모란은 탐스러운 모습으로 부귀를 상징하며 각종 기물과 회화에 등장했다.
한중일의 모란 그림에 나타난 장식적인 미와 격조 있는 멋을 감상해본다.

– 글 이원복(미술사가)


모란[牡丹]은 20세기 초까지 중국의 나라꽃[國花]이었다. 한자문화권에서 ‘꽃 중의 왕[花王]’이란 칭호에 걸맞게 크고 화사하고 화려하며 탐스러운 꽃이다. 부와 명예를 상징해 부귀화富貴花로도 지칭되며, 야생의 청초한 풀꽃들과는 구별되니, 농염하고 풍성한 모습은 귀부인의 아름다움에 비유되며, 양귀비와 더불어 미인美人의 대명사였다. 중국의 자기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도 그림만이 아닌 고려청자에 조선백자에 이르기까지 모란이 주된 무늬로도 등장한다. 오랜 세월 변함없이 사랑을 받아온 꽃으로 민화에서도 다양한 형식의 모란을 살필 수 있다. 먼저 궁중장식화와 일반 회화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부귀와 미모의 대명사

모란은 동아사아에서 여름 연꽃, 가을 국화, 겨울 매화처럼 봄을 대변한다. 원산지는 중국 중서부로 3세기경부터 재배되었다. 수隨부터 ‘꽃 중의 왕’으로 불렸으며, 당唐에선 황궁 정원에 심어 임금이 사랑하고 아꼈다. 모란을 낙양화洛陽花라 부르듯 기원전 8세기 동주東周 이래 아홉 왕조의 수도였던 뤼양의 봄 ‘모란 축제’는 대단하다.
오늘날 조선 시대 궁궐이나, 비록 화면엔 작가명이 없으나 대규모의 뛰어난 궁중 화원이 그린 <모란도 10첩 병풍>(도1)의 같은 맥락이다. 우리나라엔 신라 진평왕(眞平王, 재위 579~632) 때 당에서 모란이 수입됨이 《삼국사기三國史記》, 조선 시대 중국과 일본에서 온 사신들이 색깔별 모란을 요구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전한다. 김영랑(金永郞, 1903~1950)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에서처럼 이 꽃이 지고 나면 여름이 성큼 다가온다. 새봄이 와 한반도 전역이 분홍 진달래로 물들고 대지가 연두색이 번질 무렵 모란은 꽃망울을 터트린다.
예로부터 많은 시인 묵객들이 이 꽃을 읊었고, 화가들은 즐겨 화폭에 옮겼다. 고려 시대 이규보(李奎報, 1168~1241)는 여인과 모란이 아름다움을 다투는 시도 남겼다.

조선 초 화단의 대표적 문인화가 강희안(姜希顏, 1417~1464)은 꽃을 9등급으로 분류하면서 모란을 두 번째에 넣었다. 매화·난초·국화·대나무 등 그윽한 운치가 사군자에 미치지 못하나, 파초·작약·왜철쭉 등과 같은 위치에 포함했다. 4군자와 더불어 모란·목련·파초·솔·오동·연꽃 등을 더해 일괄로 8군자 또는 10군자 병풍을 꾸미기도 한다.

중국과 일본의 모란도

신라에서 중국에 공작을 보내오자 당唐 덕종(德宗, 재위 780~804)은 궁중 화가 변란邊鸞(8세기 말~9세기 초)을 시켜 이를 그리게 했다. 송宋 휘종(徽宗, 재위 1100~1105)의 궁정회화 목록인 《선화화보宣和畫譜》의 작품명을 살피면 모란 외에 모란과 공작, 모란과 닭, 모란과 황새를 함께 그렸음이 확인된다. 이로써 7세기 초 당나라 태종이 신라에 모란만이 그려진 그림을 보낸 것과 더불어, 당대 여러 종류의 새들이 모란과 함께 그려졌음도 알 수 있다. 특히 여러 꽃을 그린 꽃바구니인 <화롱도花籠圖>, 화첩과 긴 두루마리 그림인 <백화도권百花圖卷> 등에서 비중이 큰 꽃이다.
이 같은 전통은 일본의 카이호오 유우쇼오(1595~1600)의 금지채색화인 <모란도>를 비롯해 일본의 에도막부로부터 진상 받은 가노바이쇼 모노로부수가 1762년 그린 <모란도 6첩 병풍>(도2), 친잔(椿山, 1801~1854)의 <화롱도>와, 간쿠(岸駒, 1749?~1839)의 화사한 <모란공작도>(도3) 등을 통해 엿볼 수 있다. 17세기 <화거도花車圖> 병풍, 호아미 코호(本阿彌光甫, 1601~1682)의 3점 족자에 일괄로 그린 등藤·모란·단풍도 전한다. 조선에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이 74세 때인 1786년 별폭에 <죽석모란도>(도4)를 그린 일괄 작품이 공개됐다.

타이베이 국립고궁박물원에는 송대 등창우滕昌祐와 서희徐熙가 그린 것으로 전하는 모란도가 있다. 궁정의 화려함과 온화하면서도 부귀한 심미취향審美趣向인 황전화파黃筌畫派에 속한 북송 등창우의 <모란도>는 꽃을 태석太石과 함께 그렸다. 여러 색 모란이 등장하나 나비와 새는 보이지 않는다. 조선에서도 먹물로 괴석을 함께 나타내고 있으니 그 연원은 수백 년을 올라간다. 이런 조형은 줄기에 비해 꽃이 큰 모란 아래에 바위를 함께 그려 안정감을 주는 한편, 바위의 상징을 통해 부귀와 장수를 함께 염원하기 위한 것이다.
‘황가부귀黃家富貴 서희야일徐熙野逸’로 지칭되듯, 등창우와 동시대 서희는 황전과 달리 포의적布衣的인 사의寫意로 구별된다. 하지만 채색에도 능해 모란만이 아닌 목련과 해당화 등 화려한 봄꽃과 아름다운 새들까지 함께 그린 <옥당부귀도玉堂富貴圖>가 전한다. 원元에서도 연꽃과 더불어 모란만을 즐겨 그린 식물 소재의 하나로 여겨진다. 원말 명초 왕연王淵의 그림으로 전하는 두 <모란도>가 보여주듯 바위 없이 모란 밑 둥지부터 전체를 나타내되 여러 색 모란과 지면에는 민들레나 질경이 등을 그리기도 했다.(도5)

청淸 장정석(蔣廷錫, 1669~1732)이 먹만으로 그린 <묵모란> 및 채색을 사용하긴 하였으나 먹 중심에 약간의 색을 입힌 고봉한(高鳳翰, 1683~1747 이후)의 파격적인 구도의 <모란도> 걸작도 있다. 이 둘 모두는 작은 그림으로 전자는 모란이 주인공이되 괴석과 난초 그리고 풀이 함께 등장하고, 후자는 바위틈 사이로 바라본 모란이 몇 줄의 시와 더불어 고아함을 보여 장식화 영역과 구별되는 정갈하고 격조 있는 멋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 모란 그림

우리나라의 <모란도>는 비록 작품은 전하지 않으나 삼국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1천 3백 년에 이르는 긴 역사를 지닌다. 비록 감상화는 아니나 고려 불화의 부분에서 모란을 살필 수 있다. 특히 조선 시대 국가와 왕실의 위엄이 깃든 각종 궁중행사와 국상國喪 등 의례, 혼전魂殿과 어진 봉안 장소에 모란도 병풍이 사용됐다.
1993년 12월 호암갤러리에서 개최된 고려 불화 특별전 <고려, 영원한 미>에서는 모란이 있는 <관경변상도觀經變相圖>가 공개되었는데, 이 작품은 일본 사이후쿠지[西福寺]와 치온인[知恩院] 소장으로 각기 2m가 넘는 대작이다.(도6-1, 6-2) 화려하고 장엄하며 섬세한 불화에 탐스러운 모란이 수반水盤과 병에 꽂힌 헌화獻花로 등장한다. 이는 송宋 묘실 입구 상부벽화와 요遼 탑 벽화에 <공양천녀供養天女>에서도 같은 양상의 모란이 보인다.


모란은 문양 소재로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고려 시대 청자의 접시, 병, 항아리, 연적은 물론, 베개와 기와에 이르기까지 각종 기물에 모란을 상감과 양각, 철화 등 다양한 기법으로 나타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고려청자상감모란무늬항아리>의 모란 문양도 한 폭의 그림에 핍진하게 묘사됐다.(도7) 고려 시대 문집에도 모란 그림에 관한 기록이 보여 당시 그림으로도 즐겨 그려졌음을 짐작게 한다. 도자기 문양은 동아시아 공통적인 양상으로 조선백자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조선 시대 모란도 중 압권은 화원이 남긴 여러 폭 병풍으로 제작된 궁중장식화들이며 이에 연유한 민화를 들게 된다. 대표적인 궁중장식화로 기량 있는 화원이 병풍 전체를 한 폭으로 전술한 <모란도 4첩 병풍>을 들게 된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으로 진채로 섬세하고 화사한 그림이다. 이와 달리 매폭 독립된 대작 병풍들도 다수 전한다.(도8) 혼례 등 일반의 수요에 힘입어 다수 제작되어, 다양한 양식인 민화로 전개된다.
나아가 문인화가를 비롯한 직업화가의 일반감상화를 들게 된다. 18세기 중엽에 활동한 심사정(沈師正, 1707~1769)과 최북(崔北, 1712~1786경)의 모란 등을 살필 때 화본을 통해 익혔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도9, 10) 수묵 위주로 먹의 농담을 잘 살려 단순히 아름다운 장식적인 그림이라기보다는 격조를 높여 문인화의 소재로 선뜻 승격시키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말기화단의 허련(許鍊, 1808~1893)은 수묵 위주의 <묵모란墨牡丹>을 즐겨 그려 뛰어난 그림을 많이 남겼다.(도11) 괴석을 함께 그린 병풍과 모란첩 등 모란은 전해 내려온 작품 수에서도 단연 선두다. 그는 조선 전체를 통해 묵모란을 가장 즐겨 그린 화가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남나비’란 별명이 말해주듯 <화접도花蝶圖>(도12)로 명성을 얻었던 남계우(南啓宇, 1811~1890)나 신명연(申命衍, 1809~1892)은 채색을 사용한 사실적인 모란 그림을 남기고 있어 구별되는 두 흐름을 읽을 수 있다. 그런 부류와 별개로 민화에서도 다소 도식적이긴 하지만 다양한 변모를 보이는 장식 병풍이 많이 그려지며 모란 그림의 맥을 이어 새로운 국면을 전개한다. <다음호에 계속>

이원복 | 미술사가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장과 학예연구실장, 경기도박물관장 등을 역임하며
42년간 박물관 현장에 몸담았다.
현재 동국대학교 객원교수, (사)역사여성미래 공동대표이다.


– 정정합니다 –

지난 4월호 도9 김식의 <물총새> 도판을 정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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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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