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복 교수의 소재로 살핀 우리 옛 그림 ③물총새

총알처럼 빠르게 물고기를 사냥한다는 물총새는
청색이 도드라지는 알록달록한 외모로 많은 화가들에게 사랑받아왔다.
옛 그림에 등장한 물총새를 감상해본다.

– 글 이원복(미술사가)


우리 옛 그림 중에는 만개한 연꽃 사이에 깃든 백로·오리·원앙·물총새·제비 등 물새와 여러 물고기가 함께 등장한 <연지수금도蓮池水禽圖>가 다수 전해진다. 물총새가 미술의 소재가 된 것은 역사가 깊으며, 동아시아의 보편적인 양상이기도 했다. 주로 병풍으로 제작된 것이 남아있는데, 병풍 전체가 하나의 그림을 이루는 연폭 병풍과 각 폭의 그림이 계절 따라 독립된 병풍으로 나뉜다. 비단에 진채眞彩를 이용해 화려하고 섬세한 필치로 표현된 화조도 6첩병풍의 <연지수금>(도1)은 화면에 화가 이름은 명시되지 않았으나 기량과 격조로 뛰어난 화원들이 그린 궁중장식화로 사료된다. 이러한 주제는 조선 말기 일반인의 수요가 늘어나 종이에 그려지며 민화 화조도 병풍으로 정착됐다.(도2)

물가에 사는 파랑새

우리나라에서는 호반새·청호반새·뿔호반새·물총새 등 대체로 네 가지 종류의 물총새를 여름철 물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들은 몸에 비해 큰 머리와 부리, 짧은 다리, 청록색 혹은 비취색이 감도는 등판과 날개가 특징이다. 형태에서 비롯한 이름인 비취새·비취조翡翠鳥·취조翠鳥·취벽조翠碧鳥, 물고기를 잘 잡아 붙여진 이름인 啄鳥·수구水狗·천구天狗·조어옹釣魚翁 등 별칭도 있다. 서구에서도 같은 의미로 Kingfisher라 불린다. 이외에 쇄새·철작鐵雀, 북한에선 물촉새라 하니 물총새와 비슷하다. 수컷이 암컷보다 조금 작으며, 부리가 단색인지 아래부리만 붉은지 여부로 암수를 구별한다. 수컷은 울거나 물고기를 잡아 암컷 앞에서 서성거리며 구애행동을 하고, 알을 품은 암컷에게는 물고기를 잡아 부리에 넣어준다.
여러해 전 서울 동소문 밖 성북천은 복구됐다. 비록 하천은 인공으로 흐르나 3킬로미터가 넘는 길이로 청계천까지 이어진다. 이곳에는 왜가리며 백로와 해오라기 및 청둥오리 등이 등장한다. 새끼까지 깐 오리가족의 행렬도 볼거리 중 하나이다. 한두 해 전 이른 여름 이 길을 걷다가 우연히 물총새를 만났다. 직접 실물로 접한 물총새는 참새와 엇비슷한 크기여서 새끼로 생각됐다. 짧은 순간이나 긴 풀 사이로 물 흐름을 따라 빛나는 녹색 날갯짓 몸동작은 눈부셨다. 비단벌레를 연상케 하는 등판과 광택 있는 청록색 깃, 주황색 배로 대비되는 색감이 주는 화사함이 시선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이즈음 탐조가探鳥家들이 촬영해 인터넷에 올린 영상매체나 사진으로 어렵지 않게 살필 수 있다.
중국을 비롯해 우리나라의 여러 문인들이 물총새를 상찬한 조선 시대 시문詩文이 적지 않게 전해지며 종종 비단으로도 비유해 묘사된다. 아름다운 자태는 한중일 삼국이 모두 즐겨 그렸다. 이미 신라의 황실과 상류층이 사용한 장신구에는 동남아에서 수입한 물총새 깃털이 있었다.

중국과 일본의 물총새 그림

화조화의 한 소재로 물총새는 중국과 일본에서도 즐겨 그려졌다. 도자기의 문양으로 등장하는 점도 같다. 중국에선 중국 명·청대 주로 넓적한 큰 접시에 문양으로 등장한다. 국내 화정박물관 소장 청 건륭(乾隆, 1736~1795) 연간 제작된 <분채粉彩 접시>(도3)는 색 비름으로 불리기도 하는 안래홍雁來紅과 들국화 같은 작은 꽃과 나비도 보인다. 화사한 꽃이 만개한 부용 가지에 앉아있고 이를 향해 다가오는 물총새 한 쌍이 주인공이다. 이것보다 회화성繪畫性은 떨어지나 조선 시대 15~16세기경 물총새가 문인들에 의해 그려진 시기에 제작된 흔치 않은 예도 있다. <분청사기 철화 연지조어문 장군>(도4-1)은 몸체 양면에 두 연잎 사이의 백로와 물고기를 물고 나는 물총새가 다소 도안적이나 강한 필치로 생동감 넘치게 묘사됐다. 조선 말기 제작된 <백자 청화 연지조어문 접시>(도4-2)에는 연꽃이 큰 비중을 차지한 연못을 배경으로 물고기와 새우, 연밥을 쪼는 한 마리 물총새가 장식됐다.
중국의 경우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에 이적李迪의 <추지취조秋池翠鳥>가 실려 있다. 버드나무 사이 나는 모습으로 등장하며, 청 양주화파인 화암(華嵒, 1682~1756) 등 소품이 알려졌다. 그림으로는 명 황실의 후예이자 청대 개성주의 화가로 수묵사의화를 최고 경지로 올린 팔대산인 주탑(八大山人 朱耷, 1626~1705경)의 소품을 들게 된다.(도5) 이 작품은 일본 스미토모 컬렉션으로 센오쿠하쿠코칸泉屋博古館에 소장된 《안만첩安晩帖》에 속한 명품이다. 1694년 제작 연대로 화가 나이 70세 이후 완숙한 필치가 돋보인다. 산수는 2폭뿐이며, 화조와 영모가 주류이다. 하나같이 고도의 감필減筆로 수묵 위주로 선종화禪宗畫에 방불하다. 19세기 전반 여송余松도 한 쌍의 물총새를 수묵으로 화조화 영역에서 담백하고 깔끔하게 국화와 여뀌 등 가을 풀숲에 등장시켰다.(도6)

일본의 경우 물가의 붓꽃을 배경으로 이토오 자쿠쥬(伊藤若冲, 1716~1800)의 <연자화소금도燕子花小禽圖>
(도7)와 야마무라 고카(山村耕花, 1885~1942)의 <연자화燕子花>(도8)가 있다. 둘 다 채색이 돋보이며 소재의 결합에서 타국과 구별되는 일본적인 특징을 보인다.

우리 옛 그림 속 물총새 모습

물총새 그림의 역사는 조선 초 문인들의 시를 통해 이른 시기로 올라가며 근대화단까지 이어진다. 전해진 작품이 없어 단언키는 힘들지만 고려 시대부터 그려졌을 가능성이 크다. 아울러 문인들에 의해 수묵과 수묵담채로 그려진 것과 화원 등 직업화가에 의해 짙은 채색의 병풍으로 그려진 것, 나아가 변형된 형태로 보다 익살스럽고 재미있게 표현된 민화가 눈길을 끈다. 이는 문화의 속성상 매우 일반적이며 자연스런 흐름이기도 하다.
현존하는 그림 중에는 먼저 문인화가의 그림에서 물총새의 모습을 살필 수 있다. 조선 중기화단의 김식(金埴, 1579~1662)이 사계영모로 구성된 일괄화첩의 여름 폭에 연못에 날아드는 당당한 주인공으로 그린 작품을 첫 번째로 꼽게 된다.(도9)
18세기 최고의 수장가인 김광국(金光國, 1727~1987)이 성첩한 《화원별집畫苑別集》에는 시적정취가 물씬 풍기는 조속(趙涑, 1595~1668)의 <잔하수금도殘荷水禽圖>(도10)와 심사정(沈師正, 1707~1769)의 <홍련紅蓮>(도11-1)과 윤양근尹養根의 <백련白蓮>(도11-2)이 있다.

작품명은 화첩 서두에 적혀있는데 세 점 모두 연지의 물총새를 그린 것으로, 화조화의 소재로 연꽃과 더불어 물총새가 얼마나 즐겨 그려졌는지를 잘 보여준다.
선조의 손자인 종친 이건(李健, 1614~1662)은 화면 상부에 1711년 숙종이 쓴 어제가 첨부된 <연지수금蓮池水禽>에는 백로와 같은 비중으로 등장한다.(도12) 이런 흐름은 후기 화단 문인들에게 이어져 윤득신(尹得莘, 1669~1752)의 <물총새> 두 점이 전해진다.(도13)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의 일괄병풍 등에서 살필 수 있다. 이들 문인들의 그림은 화첩에 속한 소품 위주로 수묵이나 수묵담채가 주류를 이룬다. 정선(鄭敾, 1676~1759)이나 김홍도(金弘道, 1745~1806경)의 유작에선 살피기 어려우나 이들도 그렸을 가능성은 배제하기 힘들다.

그리고 철종 때인 1850, 1857, 1872년 자비대령화원 녹취재祿取才에 영모화목에 물총새 시구가 화제로 등장했다. 조선 말기엔 조선화단의 최후를 마지막 불꽃처럼 장식한 장승업(張承業, 1843~1897)과 채용신(蔡龍臣, 1850~1941)에 이어 근대에는 허백련(許百鍊, 1891~1977)·박승무(朴勝武, 1893~1980)·이한복(李漢福, 1897~1940)·최우석(崔禹錫, 1899~1964)·이용우(李用雨, 1902~1953)·허건(許楗, 1908~1987) 등 화가들의 화조화 병풍이나 소품 같은 유작이 전한다. 부산박물관에 소장된 이용우의 <수금도>에서는 새로운 감각을 발견하게 된다.(도14)
조선 시대 줄기차게 이어온 그림들을 바탕으로 조선 말기 민화에서 더욱 다양하게 변화를 읽게 된다. 특히 일본 아타카[安宅] 컬렉션 민화를 인수한 선문대학교박물관 민화 등을 통해 화조화 영역에서 이 소재의 다양한 변화를 읽을 수 있다. 궁중장식화를 옮겨 그린 것도 없지 않으나 구성과 표현에서 다양한 시도로 진일보한 새로운 양상도 감지된다.(도15)

우리나라 옛 그림의 흐름과 변천을 시대 순으로 살필 때 수묵 및 수묵담채와, 채색화가 공존한다. 이는 물총새 그림에서도 마찬가지다. 민화의 모든 주제는 창작의 주체가 문인이든 직업화가이든 간에 일반감상화에서 비롯된다. 우리 전통회화에서 민화가 차지하는 회화사적 의미를 넘어, 자유분방하고 해학적인 다양한 구성이나 표현기법 등 이른바 민화적인 요소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도16) 이점에서 오늘과 내일의 우리 그림, 즉 한국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차원에서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며, 일반회화와 또 다른 중차대한 의미를 지닌다하겠다. 〔계속〕


이원복 | 미술사가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 경기도박물관장 등을 역임하며
42년간 박물관 현장에 몸담았다.
현재 동국대 객원교수, (사)역사여성미래 공동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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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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