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복 교수의 소재로 살핀 우리 옛 그림 ② 세한삼우 歲寒三友

‘세한삼우’는 추운 겨울의 세 친구란 뜻으로, 사군자 중 매화, 대나무에 소나무를 더한 것이다.
삼우三友는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푸름을 잃지 않고 꽃을 피우는 특성이 있어, 인내와 절개를 상징하는 그림으로 많이 그려졌다. 현존하는 중국과 우리나라의 옛 그림을 통해 지조를 굽히지 않는 군자의 인격을 투영한 세한삼우의 모습을 살펴본다.


세 가지 벗으로 선비의 기개를 나타내다

산야에 아직 잔설이 남아있는데도 시절에 앞서 은은한 향기의 꽃망울을 터뜨리는 매화,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으로 보이나 성장이 빠르고 곧게 자라는 대나무, 십장생十長生에도 포함되며 낙락장송落落長松부터 반송盤松까지 늘 푸른 소나무. 이 셋을 ‘세한삼우歲寒三友(혹은 삼청三淸)’이라 한다.
3이란 숫자는 중국 고동기 중 발이 셋인 솥인 정鼎에서 연유한 삼국정립三國鼎立이나 삼위일체三位一體처럼 안정감을 준다. 《논어論語》에 언급된 이로운 세 벗[益者三友]은 강직하며 아량이 넓고 박식한 이들이다. 하지만 윤선도(尹善道, 1587~1671)가 <오우가五友歌>에서 읊었듯 소나무와 대나무 외에 물·돌·달 등도 친구에 포함된다. 한자문화권인 동아시아 한·중·일 세 나라에선 아주 오래전부터 이 세 소재를 각기, 또는 솔과 대, 대와 매화 등 두 가지, 나아가 셋을 함께 즐겨 그렸다. 이는 일상생활에 사용되는 도자기의 문양으로도 자주 등장한다.
역사적으로 살필 때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으니 조선 시대 그림뿐 아니라 도자기와 목기 등 공예문양으로도 자주 등장하니 소재 면에서 국제적이며 보편적인 양상이다. 그림으론 이들은 낱폭만이 아닌 여러 폭으로도 그려져 화첩이나 병풍으로 제작되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 세한삼우 셋은 고려부터 조선에 이르는 그림에 부친 제시題詩를 문헌에서 살필 때 승려와 문인들이 즐겨 그렸음을 잠작 된다. 하지만 이들 세 소재만을 한 화폭에 담은 명품이 전래된 것은 우리나 중국 모두에서 드물다.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과 《고씨화보顧氏畵譜》 등 중국에서 전래되어 조선 시대 그림 교과서 역할을 한 화본에서도 찾기 힘들다. 하지만 중국은 원元부터, 우리는 고려 시대부터 세한삼우도가 그려진 것은 흔치는 않으나 현존 작품들로 확인된다.

중국의 세한삼우를 대표하는 조맹견의 그림

또 화조화나 산수화 및 산수인물화에 있어 새가 깃든 나무, 배경에 등장한 나무 중에서도 삼우를 살필 수 있다. 조맹견(趙孟堅, 1199~1295)의 소품이나 2폭 <세한삼우도>가 전한다. 그는 남송이 멸망하자 원元 조정에서 벼슬살이를 거부한다. 세상과 담을 쌓고 은거해 시詩·서書·화畫에 잠심하며 고서화 수집과 감식에도 일가를 이룬다. 그가 즐겨 그린 그림 소재로는 자신의 심회를 드러낸 듯 먹만으로 그린 수묵백묘법水墨白描法 위주의 죽석竹石과 매화·난초·수선水仙 등으로 해맑은 격조를 지닌 명품들이 전한다.
조맹견의 <세한삼우도>는 중화인민공화국 상해박물관(도1-1)과 타이베이고궁박물원(도1-2)에 각기 한 점씩 전한다. 비단에 먹만을 사용해 유려한 필치로 그린 그림에는 절지折枝 형태로 화판을 펼친 백매白梅와 가는 잎의 솔가지, 그리고 짙은 먹색의 잎이 돋보이는 대가 서로 잘 어우러진다. 조선 초기서단에 큰 영향을 낀 송설체松雪體를 창안한 조맹부(趙孟頫, 1254~1322)가 그의 사촌 아우[從弟]이다. 새 왕조인 원에 출사한 조맹부를 달갑게 여기지 않은 그는 조맹부가 다녀간 자리의 먼지를 모두 털어냈다고 전한다. 원말 사대화가 중 예찬(倪瓚, 1301~1374)의 벽오청서碧梧淸暑 고사에 필적하는 결벽潔癖이 아닐 수 없다.
삼우는 중국과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산수화와 산수인물화 그리고 화조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남송원체파南宋院體派를 정립한 화원 마원(馬遠, 12~13세기)의 <화등시연도華燈侍宴圖>(도2), 명明 착색화조의 궁정화풍으로 이름난 변문진(邊文進, 15세기)의 <삼우백금도三友百禽圖>(도3) 등이 그러하다. 전자는 화면에서 건물과 산을 제외하면 하단에 매림梅林, 건물 뒤로 가로로 죽림竹林, 상하로 길게 뻗은 쌍송雙松 등 세 가지 나무가 숲을 이룬다. 후자도 작품 제목이 증거 하듯 새와 바위를 빼면 골격으로 삼우가 선명히 드러난다.

고려 고분벽화에서 발견된 세한삼우

우리나라 세한삼우는 고려 시대까지 소급된다. 중국 송宋에 앞서 칭제건원稱帝建元을 기치로 당당한 황제국가로 탄생한 고려, 그 첫 번째 황제인 태조 왕건(王建, 877~943)의 능인 현릉顯陵(북한 국보 제179호) 내부 벽화(도4)에서 살필 수 있다. 주변의 능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현릉은 현재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에 있다. 태조가 붕어하자 능을 송악산 기슭에 조성했다가 현종 1년(1010) 거란의 2차 침입 때 태조의 관을 부아산負兒山 향림사香林寺로 옮겼고, 1016년 정월 다시 현릉에 이장했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전통을 이어 돌방무덤으로 축조한 이 고분 내부 네 벽에 벽화를 그렸으나 남북은 훼손이 심해 확인이 힘들다. 동벽엔 청룡과 매화와 대, 서벽엔 솔과 호랑이가 산악 표현과 함께 크게 점해 주된 소재로 등장한다. 같은 공간 내 삼우를 등장시킨 예로 지금까지 확인된 가장 이른 시기임이 주목된다. 고분벽화라는 한계가 있으나, 동시대 일반 건축의 벽면이나 감상용 그림으로 그렸을 가능성은 크다 하겠다.

본격적인 감상화 범주의 일본 묘만지[妙滿寺] 소장 <세한삼우도>(도5)는 한때 화면 왼쪽 상단에 제시를 쓴 승려는 해애海涯 그림으로 보기도 했다. 하지만 해애는 그림이 아닌 제시만 남긴 인물로 봄이 일반적이다. 화면은 하단에 바위, 중앙에 큰 비중으로 쌍송雙松, 그 좌우에 매화와 대를 협시처럼 등장시켰다. 볼륨 있는 규모에 유려한 필선이 감지되는 수묵화로 제작 시기는 고려 말(14세기)로 추정한다. 1995년 호암갤러리에서 열린 ‘대고려국보전大高麗國寶展’을 통해 국내에서도 일반에게 공개됐다.
아울러 일본에서 공개되어 고려그림으로 비정된 개인소장 <고사자오도高士自娛圖>(도6)는 고사인물화가 시선을 모은다. 차茶를 준비하는 하단의 인물을 제외하면 6명의 고사풍의 선비가 등장하는데 송宋 이래 문인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는 이상적인 삶을 주제로 한 ‘금기서화琴棋書畵’ 범주라 하겠다. 인물의 배경에는 솔과 대, 그리고 중앙에 책상을 앞에 앉은 주인공격인 인물이 <묵매墨梅>를 감상하는 모습이어서 결국 삼우를 의도적으로 등장시킨 듯 보여 흥미를 끈다.

삼우 요소를 활용한 조선 시대 회화

조선 시대 초기화단(1392~1550년경) 그림은 주지되듯 전래작이 몹시 드물다. 먼저 산수인물화에 등장한 삼우를 살피면, 강희안(姜希顔, 1417~1464)이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절매삽병도折梅揷甁圖>(도7)가 있다. 화원 안견(安堅, 15세기)과 더불어 조선 초 가장 활동이 두드러진 문인화가 강희안의 이모는 세종의 왕비이다. 이에 그는 안평대군 이용(李瑢, 1418~1453), 문종, 수양대군인 세조와 이종사촌이 된다. 원예에 관한 조선에서 최초의 저술인 《양화소록養花小錄》도 그의 저술이다.
<절매삽병도>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괴석怪石 뒤에 심겨진 매화나무 잔가지에 꽃망울이 벙긋하자 동자가 가지를 꺾어 병에 담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다. 이 그림은 우리나라 15세기 중엽 서울 양반가의 조경造景 일면을 알려준다. 뜰에는 화분에 담긴 분재盆栽들도 있고, 솔·대·매 삼우를 중심으로 찾을 수 있다. 멀리서 귀가하는 주인인 <고사도교도高士渡橋圖>, 그를 맞이하려 문을 열고 기다리는 <소동개문도小童開門圖> 등과 함께 이어져 한 폭에서 잘린 것들로 사료된다. 또 1910년 1월 22일 이왕가박물관이 스즈키[鈴木鍷次郞]에게 구입한 일괄 7점으로 된 화첩(유물번호 덕수궁 2192)에 속해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송하보월도松下步月圖>(도8-1, 8-2)는 1933년에 간행된 《이왕가박물관소장품사진첩 회화지부》와 이듬해 발간된 《조선고적도보14 회화》에 이상좌(李上佐, 1485?~1549이후) 그림으로 명기됐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 우리나라를 찾은 한 중국학자가 이 그림이 송대 마원 그림일 가능성을 언급하자 ‘작자미상’으로 간주됐다. 구도 등 형식은 남송원체화풍의 영향이 보이나 전술한 삼우가 있는 마원의 <화등시연도> 외에 다른 유작 중에 삼우가 보이지 않는 점과 세부적인 면에서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컸다. 이에 다시 ‘이상좌 전칭’쪽으로 기울었다. 안견의 제자 석경石敬의 <마고채지麻姑採芝>(도9)에서도 <절매삽병도>처럼 삼우를 살필 수 있다. 고려부터 조선 초 산수화의 구성요소로 삼우의 기능과 역할이 감지된다.

<연방동년일시조사계회도蓮榜同年一時曹司契會圖>(도10)는 1531년 실시된 과거에 급제한 김인후(金麟厚, 1510~ 1560) 등 급제동기 7인이 1542년 다시 모임을 갖고 이를 기념해 제작한 기록화이다. 2점이 현존하니 비단에 그려진 국립중앙박물관 것은 상태가 양호하지 않다. 울산김씨 대종중에서 국립광주박물관에 기증한 것은 상태가 매우 좋다. 이들은 하단 좌목 좌우에 묵매와 묵죽을 그려 상부 계회도 내 소나무와 함께 삼우를 의도적으로 안배한 듯 여겨진다. 실제로 일정시기 계회도에서 같은 구성으로 정형定型을 보인다. 아울러 동시대 일련의 산수화에서도 같은 양상을 엿볼 수 있다. 이들 세팅을 이룬 소재는 이들이 지닌 상징성으로 근대까지 이어져 문인화 범주에서 그린 김용진(金容鎭, 1878~1968)의 <세한삼우도>(도11) 등도 알려져 있다.
솔·대·매화로 구성된 세한삼우는 우리 회화사의 흐름 속에 등장한 역사가 오래다. 고려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고분벽화·화조·산수·산수인물·사군자 등 여러 장르에 걸쳐 단순한 그림 소재를 넘어 길고 오랜 생명력으로 화면에 묘사된다. 우리 그림의 시대화풍 형성과 고유색固有色과 독자성獨自性, 그리고 중국과 구별되는 특징 형성에 큰 기여가 돋보이는 소재이기도 하다. 〔계속〕



글 이원복(미술사가, 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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