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복 교수의 소재로 살핀 우리 옛 그림 ① 밉지 않은 서생원 鼠生員 쥐


그림의 소재는 자연에 실재할 수도 있고, 상상 속에 존재할 수도 있다.
오랜 세월 그림의 소재로서 생명력을 이어온 모티브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번 호부터는 이원복 미술사가와 함께 중국과 일본을 아우르는 관점에서
다양한 소재로 우리 옛 그림을 살펴본다.
그 첫 번째로 경자년庚子年 쥐띠해를 맞이해 쥐의 의미와 상징을 알아본다. (편집자 주)


부富와 신통력을 지닌 쥐의 양면성

쥐는 14세기 서구인구의 ⅓이나 감소하게 한 흑사병을 옮긴 쥐벼룩과 더불어 깨끗하지 못한 동물이란 인식이 지배적이다. 그래서인지 쥐에 대한 인식은 오늘날 지구촌 어디서나 긍정적이지 못하다. 그나마 친근하게 느껴짐은 어린 시절 접한 이솝(기원전 6세기 경)의 ‘시골 쥐와 서울 쥐’와 20세기 디자인의 아이콘인 1928년 탄생한 ‘미키 마우스’ 덕분이 아닌가 한다. 350편의 이야기가 수록된 《이솝우화집》은 동화 버전으로 만들어져 세계 모든 어린이들이 여전히 즐겨 읽는다. 어린 시절 교훈적인 내용과 동화책 표지가 반짝이는 다소 두터운 종이에 원색 그림은 유년기에 대한 추억과 함께 뇌리에 잔상으로 남아있다.
쥐를 칭하는 한자 ‘서鼠’는 흔히 임금 측근의 간신으로 비유되거나 근심을 의미하기도 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명암이 있듯 쥐도 예외가 아니다. 일찍이 《시경詩經》에 있는 석서碩鼠는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는 위정자’ 혹은 ‘세금을 가혹하게 걷어가는 세리나 정권, 탐관오리’를 칭한다. 19세기 중엽 이상적(李尙迪, 1804~1865)이 지은 ‘늙은 쥐[老鼠]’란 시에서도 수탈자나 탐관오리를 빗대고 있다. 쥐는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에서 일반적으로 미천, 왜소, 사소, 약자, 소란스럽고 방정맞음, 간신, 수탈자 등의 의미를 지니니 한자문화권에 보편적인 양상이다.

한편 우리나라 쥐의 털과 같은 잿빛을 지칭하는 서색鼠色은 상서로운 빛은 서색瑞色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이는 한자의 ‘복福’과 박쥐를 칭하는 ‘복蝠’을 같은 동일한 발음에 좋은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 쥐의 수염으로 만든 붓인 서수필鼠鬚筆, 쥐의 털로 만든 붓인 서호필鼠毫筆 등은 고급 붓으로 긍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우리나라에서 쥐는 까마귀와 더불어 미래를 아는 예지적인 영물로도 간주된다. 둔갑을 할 줄 아는 신통력을 지녔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 물과 불을 창조한 존재로까지 나타난다. 이는 쥐에 대한 최상의 위상이 아닐 수 없으니 다른 민족에서 찾기 힘든 매우 희귀한 현상이다. 함경남도 함흥지방 여무 김 쌍돌이의 구술口述을 채록한 것으로 알려진, 우리나라 최초 무가집巫歌集인 손진태(孫晉泰, 1901~?)의 《조선신가유편朝鮮神歌遺篇》 내 ‘창세가’에서 비롯한다.
쥐를 서생원鼠生員이라고 의인화해서 부른 우리 선조들에겐 이 동물에 대한 긍정적인 면도 없지 않다. 열두 띠 동물 가운데 첫 번째를 점하며, 쥐를 닮은 얼굴은 재주와 재물복[財福]이 따르는 것으로 본다. 잽싸고 약삭빠른 쥐는 왕성한 번식력과 쉬지 않고 움직이는 활동성으로 부지런함과 부富를 상징하며, 은혜를 갚을 줄 아는 동물로서 좋은 이미지도 지닌다. 쥐는 곡식을 축내는 점에는 나쁜 동물이나 “쥐가 나가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이 말해주듯 부정과 긍정의 양면성을 지닌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Every dog has his day)”등 적지 아니한 속담과 더불어 쥐불놀이 등 여러 민속놀이가 있다.

쥐를 소재로 한 중국과 일본의 그림

한자문화권에서 12띠 동물 중 첫째가 쥐다. 12띠는 오랜 세월에 걸쳐 그림 소재로도 긴 생명력을 이어왔다.(도1) 화면에선 쥐보다는 다람쥐가 많이 등장한다. 말이나 소, 고양이나 개만큼은 아니나 시대별로 쥐를 그린 화가들을 찾아볼 수 있다. 다람쥐와 마찬가지로 포도송이를 갉아 먹는 모습, 바위에 숨은 모습, 또 수박을 파먹는 모습 등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각종 쥐 그림도 나타나 있다.
북송 8대 황제 휘종(徽宗, 1082~1135)은 세밀한 기법으로 자연 그대로의 색채와 형태로 그려야 함을 강조했는데 화조화에 능했다. 그의 재위 시 3세기부터 12세기까지 송宋 황궁소장 회화목록으로 화가 253명의 6,396점의 작품명이 명기된 《선화화보宣和畵譜》를 간행했다. 그러나 쥐에 관한 내용으로 찾아보기 어려워 12세기까지 쥐는 즐겨 그린 소재가 아닌 것으로 사료된다. 도자기 문양으로 쥐의 등장은 명청대에 이르러야 비로소 가능하니 이는 설득력을 지닌다.
중국 명 5대 황제인 선종宣宗 주첨기(朱瞻基, 1399~1435)의 <여지와 쥐>(도2)를 진명자陳明自가 1638[崇禎戊寅歲仲春月]년 이모한 그림도 현존한다. 명 황실후예인 팔대산인八大山人 주답(朱耷, 1625?~1705?)에 이르기까지 지식인 문인화가 중심으로 쥐를 그린 점도 주목된다. 다람쥐는 비교적 즐겨 그렸으니 15세기 이래 도자기 문양도 그렇고 화보는 모두 다람쥐일 뿐이다. 이른바 송서松鼠나 율서栗鼠 등이 암시하듯, 비록 쥐를 지칭하는 글자 서鼠를 사용했으나 다람쥐를 그렸으며 도자기 문양의 다람쥐는 동반 식물은 수박과 포도이다.

한·중·일 삼국이 모두 쥐를 그렸으나, 일본은 이른 시기부터 그렸으니 국보로 지정된 <조수인물희화鳥獸人物戱畵>(도3)에는 토끼 곁에 쥐 한 쌍이 등장한다. 이때부터 헤아려도 일본 쥐 그림의 역사가 1천년 가까이 이른다. 교토 고잔지高山寺에 소장된 이 그림의 제작연대가 헤이안시대平安時代 후기(1086~1185)까지 소급된다. 긴 두루마리에 모두 4권이며 이와 별개로 도쿄국립박물관에 잔결殘缺도 전한다. 수묵으로 동물에 옷을 입히기도 해 마치 사람들의 모임인 양 풍자적이며 등장한 동물들이 취한 자세며 그들의 특징을 잘 나타낸 사실적인 묘사가 두드러진다. 이토 자쿠추(伊藤若沖, 1716~1800)의 <수화조수도樹花鳥獸圖> 병풍에는 여러 동물 중 쥐가 등장한다. 1796년 81세 때 그린 <서혼례도鼠婚禮圖>에는 마치 인간의 거주공간처럼 젓가락이 놓인 밥상과 분재가 놓인 상에 각기 다른 자세를 취한 일군의 쥐와 마당에 한 쌍 등 11마리의 쥐가 등장한다. 이는 <조수인물희화>의 전통을 이은 것으로 보인다.
<복수초서도福壽草鼠圖>(도4)는 시라이 나오카타(白井直賢)가 쥐 그림으로 명성을 얻음을 대변하는 그림이다. 쥐가 의미하는 다산多産과 식물의 수복壽福이 어우러졌으니 이른 봄 녹지 아니한 눈 속에서 꽃망울을 터트리는 복수초가 심겨진 화분에 쥐를 그렸다. 화면 상부에 모토이 오히라(本居大平, 1756~1833)의 제시는 그림의 격을 높이는데 일조하며 화사한 채색은 지저분한 동물의 이미지를 벗은 아름다움으로 쥐에 대한 애정이 잘 담겨있다.

조선시대 쥐 그림의 경향

현존하진 않으나 조선 초기 쥐 그림 존재는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의 문집 《사가집四佳集》 내 ‘화수주수도수花樹走獸圖十首’로 알 수 있다. 작품 제목이 보여주듯 새 종류는 없고 하나같이 네 발 달린 김 짐승들로 봄꽃 속에 잠든 노루·고양이·원숭이·토끼·다람쥐·쥐·소 등 열 가지 동물을 여러 화목을 배경으로 해서 등장시켰음을 시를 통해 읽어낼 수 있다. <연방점서蓮房點鼠>의 작품제목으로 연꽃과 함께 그렸음을 알 수 있다. 화원이 그린 궁중장식화로도 사료되니 초충도 아닌 동물그림에서 쥐가 어엿하게 주인공으로 그려진 사실이 주목된다.
15세기에 이어 문신이며 학자인 홍가신(洪可臣, 1541~1615)의 《만전집晩全集》에는 서거정이 김시(金禔, 1524~1593)의 그림에 부친 제시인 ‘화산서장자畫山鼠障子’가 실려 있다. 조선중기의 쥐 그림의 존재를 알려주는 소중한 기록으로 16세기 후반 화단에서 위상이 큰 절파계浙派系로 대표 문인화가가 쥐 그림도 그렸음이 확인된다. 이는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의 초충도 범주에서 쥐가 등장하는 사실과는 별개로 동물화 범주에서 <산서도山鼠圖>가 그려진 것으로 짐작된다.
강희안의 그림에 부친 제시를 통해 신사임당에 앞서 조선 초부터 초충도가 그려졌음이 확인된다. 신사임당은 일괄 초충도 그림에 쥐가 반드시 속하니 그의 <수박과 들쥐>(도5)는 짙은 채색에 지면에 작은 태점苔點을 반복해 나타낸 점, 소재의 유사점 등 공통점이 적지 않게 감지된다. 사각형에 가까운 화면의 10폭으로 구성됐으며, 8폭의 그림과 문중의 전래과정과 이 그림에 대한 신경(申暻, 1696~1766)이 1718년 쓴 발문과 오세창(吳世昌, 1864~1953)이 1946년 쓴 제시가 2폭이 있다.
조선의 화성畫聖이라 불리는 정선(鄭敾, 1676~1759)이 남긴 10폭으로 이루어진 화첩은 비단으로 된 화면 가장자리에 좀 벌레에 의한 충식蟲蝕이 심하나 중앙의 그림 부분은 비교적 온전하다. 다만 초충도 범주에서 쥐는 포함되나 이 화첩에는 닭이 2점, 고양이까지 등장해 4점 동물이 포함된 화첩이다. 신사임당과 비교할 때 실물에 가까운 뛰어난 묘사력, 소재 사이의 자연스런 조화와 논리적인 전개, 질서정연한 화면구성, 고운 채색 등 두루 돋보인다. 신사임당처럼 동화적인 분위기와는 다르다. 제5폭 <수박과 도둑 쥐[西瓜偸鼠]>(도6)은 수박을 파먹는 다소 불안하고 주변에 신경을 쓰는 쥐의 행동거지를 잘 묘사하고 있다.
강희맹(姜希孟, 1424~1483)의 10대 손부인 월성김씨(月城金氏, 1730?~?)의 유작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수박과 도둑 쥐[西瓜偸鼠]>(도7)는 지면 표현이 없는 절지초충으로 농담이 잘 드러난 청신한 채색인 담록淡綠, 찾기 어려운 수박과의 노란색 꽃이 돋보인다. 등장 식물들의 잎과 덩굴 그리고 크기를 달리는 열매 등 자연스런 전개와 주변을 살피는 듯 쥐가 취한 동작은 사실감을 더한다.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최북의 <쥐가 순무를 파먹다[鼠囓紅菁]>(도8)는 순무 밑동을 열심히 갉아먹는 쥐 한 마리를 털 하나하나 신경 써서 세밀하게 나타냈다. 여백에 있는 관지나 도장 또한 공간 구성의 한 요소 기능까지 보여주어 화가의 의도적인 세심한 배려를 읽을 수 있다. 그에 앞서 심사정도 같은 내용의 그림을 남겼다.(도9)
김홍도의 <군선도群仙圖>에는 두루마리를 펼치자 그림 속에서 한 마리 쥐가 튀어나오는 모습으로, 하찮은 존재가 아닌 제법 진기하게 보이는 것도 있다. 또한 아주 드문 예로 개인소장 화첩 끝 그림으로 배경 없이 쥐 한 마리만을 주인공으로 그린 것도 공개되었다. 오늘날도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실제와 똑같은 모습이다. 그린 화가의 도장이나 이름은 화면에 없으나, 황기천(黃基天, 1760~1821)이 제발을 썼고, 화첩에 속한 그림이기에 다른 면에 있는 글의 내용으로 김홍도가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문인과 화원의 그림 속 쥐 표현

조선시대 쥐 그림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화훼초충도花卉草蟲圖 일괄 화첩 중에 한 소재로 등장한 것과 말이나 소처럼 독립된 영모화 즉 동물화 영역에서 그려진 경우이다. 전자는 신사임당부터 조선 후기 정선과 월성김씨처럼 수박을 훔쳐 먹는 모습이 일반적으로 조선 초부터 시작해 후기로 지속된다. 신사임당 양식이란 일련의 형식은 줄기차게 이어져 시대를 달리하면서 여러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쥐는 결코 지저분한 존재가 아닌, 나비보다도 작고 방아깨비와 비슷한 크기로 쥐를 등장시킨 점에서 귀엽게 보인다.
조선후기 심사정의 예처럼 초충도 범주로 속에 쥐가 등장한 예가 없는 것은 아니나, 영모화의 한 소재로 독립된 한 폭만이 그려짐이 일반적이다. 주로 쥐는 무와 함께 한 등장하며 정선, 심사정, 최북, 강세황, 김홍도, 이유신 등의 작품을 통해 조선후기에 유행한 것으로 보인다. 동반식물은 홍당무로 간주되나 잎과 꽃 및 뿌리를 살필 때 홍당무보다는 순무로 봄이 옳다.
두 범주 모두 소품들로 하나같이 쥐는 사실감이 돋보이는 정확한 묘사이며 주변을 의식한 다소 긴장된 눈초리며 익살스러운 자세를 취하고 있다. 포도나 소나무일 경우는 예외 없이 쥐가 아닌 다람쥐가 등장된다. 또한 이들 쥐 그림은 대작은 찾아보기 힘들고 화첩 크기의 작은 그림들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17~18세기 <흑칠나전함>에도 포도와 다람쥐 무늬가 등장해 주목된다. 또한 조선 말기 민화 속에 그려진 동물화로 소, 개, 사슴과 더불어 민들레나 산사나무 열매와 함께 묘사된 <연밥을 갉는 쥐>도 전한다. 지저분하고 해로운 존재로서만이 아닌, 어느 정도 익살을 담고 있는 모습들로 귀엽게 그리고 사실적으로 표현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우리 민족 특유의 따듯한 정감이 잘 드러난 그림들이 아닐 수 없다. 〔계속〕



글 이원복(미술사가, 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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