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실 작가의 옻칠민화 – 내가 나로 발견되는 ê³³

이영실 작가는 약사이자 민화연구자, 그리고 옻칠민화작가라는 다채로운 이력으로 ‘민화인생’을 사는 작가이다. 그녀는 올해 서울과 경주에서 세 번째 개인전을 펼치고 제8회 부산미술협회 국제아트페어(BFAA), 지리산국제환경예술제(JIIAF)에 참가하는 등 민화를 옻칠 기법으로 풀어내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영화 <라라랜드>처럼 민화로 자신만의 라라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편집자주)


2016년에 개봉한 영화 <라라랜드(La La Land)>는 재즈 피아니스트인 세바스찬과 배우 지망생인 미아가 로스앤젤레스에서 만나 사랑에 빠지고 헤어지지만, 각자 꿈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 줄거리이다. 나는 이 영화를 몇 번이나 다시 보았다. 영화 속 두 주인공이 꿈을 이루기 위해 때로는 다투고, 때로는 응원하던 모습에서 젊은 날의 자신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세바스찬은 미아에게 이렇게 말한다.
“자기 캐릭터를 직접 써 봐요. 허접한 오디션은 쓰레기통에나 버리고. 루이 암스트롱을 봐요. 밴드에서 나팔이나 불며 살 수 있었죠. 그런데 안 그랬어요. 뭘 했을까요? 역사를 다시 썼죠.”
나도 그저 약사로만 살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민화를 그렸다. 그림만 그릴 수 있었지만 조자용의 민화운동을 연구했고, 수묵화를 그릴 수 있었지만 옻칠민화를 배웠다.

내 가장 가까운 곳에서 빛나는 별

남들보다 조금 늦은 29살 무렵부터 미술학원에서 수채화와 유화를 배우며 화가의 꿈을 키웠다. 그리고 10년 전 파인 송규태 선생님을 사사하면서 민화를 그리다가, 향토적이고 자전적인 요소가 묻어나도록 작품세계를 확장하기 위해 경주에서 활동하는 소산 박대성 선생님에게 한국화를, 옻칠민화의 장인으로 불리는 통도사 성파 스님에게 옻칠민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민화를 그리며 3년에 걸쳐 조자용의 민화운동을 주제로 박사과정을 마치고 나니, 민화에 그려진 마음은 정안수를 떠놓고 소원을 비는 우리네 어머니들의 마음과 닮아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머니들이 바란 꿈과 사랑, 행복은 민화에 가득했다. 마치 라라랜드처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환상의 세계 라라랜드. 나는 늘 나만의 라라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 생각의 끝에는 당연하게도 민화가 있었다.
내 고향이자 경주가 신라新羅의 천년고도인 점에 착안해 ‘라羅’를 붙인 <羅羅 Land>로 개인전을 준비하며 개막 전날까지 그렸던 작품이 <영축산일월오봉도>(도1)이다. 1년 반이 걸린 대작이기도 하지만, 첫 라라랜드는 작품의 전환점인 옻칠민화가 시작된 통도사를 무대로 펼쳐졌다.
이 작품은 일월오봉도의 도상에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영축산을 독수리모양으로 표현하고, 산의 풍경을 민화적 기법으로 자유롭게 담아봤다. 그림 곳곳에 호랑이, 거북이, 조랑말, 통도사 사리탑을 숨겨놓고 소나무에는 인연의 연결고리가 가장 튼튼하게 이어졌다고 생각하는 삼각형 무늬를 넣어 동화의 한 장면을 보는듯했다. 특히 산 아래 물결 속에 보이는 떨리는 듯 강한 선묘는 박대성 선생님의 영향이 드러난 부분이다. 영축산보다 큰, 넘어야 할 산 앞에서는 서두르지 않고, 걸음걸음마다 기쁨, 슬픔, 외로움, 사랑을 모두 담으며 넘겠다고 다짐해본다.

민화에서 찾은 나만의 라라랜드

옻칠민화는 여러 재료를 함께 사용해 다양한 질감과 중후한 입체감을 자아낼 수 있어 매력적이다. 4년 전부터 경남 양산에 있는 통도사 서운암에서 옻칠민화를 배우며, 통도사와 인접한 곳에 화실을 마련해 작업하고 있다. 옻은 변색될 수 있기 때문에 건조 과정이 중요하다. 그런 정해지지 않은 기다림이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가끔 우연으로 얻어지는 결과에 감탄하기도 한다. 인내로 경험하는 기다림의 미학은 그 어떤 작업의 기쁨과도 비교할 수 없어, 옻이 오르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나는 작업 아이템을 제대로 만났다고 생각했다.
<영축산호랑이, 낮>(도2)은 가을 영축산을 배경으로 통도사 해장보각海藏寶閣의 벽에 그려진 호랑이를 모티프로 그렸다. 이맘때쯤 통도사에는 노란 수술을 가진 흰색 차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아름답다. <현월> 시리즈는 둘이 하나가 되는 ‘락도’의 2폭을 그린 것이다. <현월 1>(도3)에는 거위 두 마리와 연꽃이 서로 엇갈린 모습으로 춤을 추는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고목 매화나무 위에는 닭처럼 보이는 봉황이 있는데, 그 뒤로 크고 검은 달을 그려 넣어 제목을 붙였다. <현월 2>(도4)에는 바람에 흔들리는 해당화가 만발하고 산철쭉 나무 위에 봉황이 자태를 뽐내며 앉아 있다. 가장 어두울 때 밝게 빛나는 현월玄月을 작업하면서 가장 어려운 순간에 피는 희망을 노래하고 싶었다. 태평성대에만 등장한다는 봉황이 있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이 작품은 내가 꿈꾸고 바라던 라라랜드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희망과 열정이 가득한 나의 라라랜드는 영축산에서 경주로, 또 지리산으로 뻗어나가 어머니 품 같은 넉넉함으로 모두를 반길 것이다.



글·그림 이영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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