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숙 작가의 기록화 이야기
– 만복萬福이 있는 곳으로 색色과 함께하는 여정

기준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행복과 아름다움을 마다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염원하는 그림에 매료되어 20여년 전부터 무궁무진한 민화의 세계를 여행하고 있다는 이영숙 작가.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했던가. 그 여정에서 기록화를 벗 삼아 아름다운 순간순간을 되새기고 있다는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편집자주)


성가대와 봉사활동으로 열정적인 나날을 보낸 30대, 그리고 민화를 시작해 바쁘게 살았던 40대가 아득히 멀게 느껴진다. 속절없이 세월이 흘렀다. 시아버지인 故 정완섭 화백의 제자인 송규태 선생님을 만난 후로, 삶의 매순간에 숨은 빛을 찾으며 붓을 잡고 있다. 민화를 그리지 않았으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짧은 교직 생활을 끝내고 서예와 전통공예, 공필화 등 배울 거리를 찾아다닌 나는, 전통민화를 배우며 손에 착 감기는 맛에 시간을 잊을 만큼 몰입했다. 요즘은 역사적 이야기가 얽혀 있는 기록화를 그리는 재미에 빠져 있다. 기록화는 완성하는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그림과 함께 먼 곳으로 떠나는 듯해서 마음에 든다.
18세기 최고의 기록화에 속하는 <화성능행도>는 정조가 8일간에 걸쳐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묘소에 행차한 모습을 그린 8폭 병풍이다. 화성능행도 중 <한강주교환어도>(도1)와 <환어행렬도>(도2)에는 기존의 궁중행사도와 달리 풍속화적인 성격이 강한 구도가 드러나 사료적 가치가 크다고 한다. 특히 77척의 배를 이용해 다리를 만들어 강을 건너고, 행렬하는 동안 어머니의 안위를 신경 쓰는 장면은 왕의 효심이 잘 전달된다. 그림을 그리며 현대인들과 다르지 않은 모습을 발견할 때면 동질감을 느끼곤 한다.

인생의 만복을 기원하는 그림과 동행하다

최근에 작업한 <곽분양행락도>(도3)는 안록산의 난을 평정한 당나라의 명장 곽자의(郭子儀, 697-781)가 분양왕汾陽王에 봉해져서 누린 평생의 안락함을 주제로 한 그림이다. 출세, 부귀, 장수, 다남 등 전통시대 사람들이 바라던 만복萬福이 모두 표현되어 있다. 화면 중간에는 노년의 곽자의가 저택에서 연회를 베푸는 장면이 묘사된다. 조선 시대 민간 화가들은 인물과 경물을 강조하거나 생략하여 화면을 재구성했다고 하는데, 나는 여러 박물관과 미술관에 소장된 원본과 비교하며 지붕이나 의복, 장신구 등에서 소박한 무늬와 맑은 채색으로 변용을 시도했다.
또 도상적 해석이 가능하다는 공통점에 착안해 성화(icon)와 민화를 접목해 창작민화를 그리고 전시를 열었다. 중국에 있을 때 종교의 자유가 없는 나라에도 ‘북경성모님’이라는 성화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한복을 입으신 성모자>(도4)를 통해 한국의 성모님을 서민적이면서도 기품 있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어쩌면 인생은 고단한 일상 속에서도 가장 좋은 순간을 떠올리고, 나름의 방식으로 기록하며 살아가는 게 전부일지도 모른다. 가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과 그림을 그리는 행복, 소중한 기억이 인생의 마지막까지 함께하기를 바랄뿐이다.



글·그림 이영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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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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