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철 교수의 민화재료학 특강 ⑦ 하늘과 가장 가까운 색, 청색靑色

옛날에는 쪽물을 들인 이불이 최고의 혼수였고, 쪽 이불을 덮고 자면 몸에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해주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항균과 탈취 등 쪽 염색의 다양한 효과는 현대인에게 천연 염색에 대한 호감을 부추기기도 했지만, 쪽은 천연 염색 중에서도 염료를 추출하는 방법이 가장 까다롭다. 그러나 선조들은 삼복더위에 쪽을 수확하고, 한 달 넘게 염료를 발효시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며 우리의 하늘을 담은 쪽빛을 만들어냈다.


파랑은 방위로는 동쪽을 뜻하며 해돋이, 밝음, 맑음 등과 연관된 상징성을 갖고 있다. 신생과 약동, 생명과 탄생, 신화 속의 천지개벽이나 천지창조의 첫 순간을 나타내는 색상이다. 파랑은 청구국青丘国, 청구조선이라는 우리나라의 옛 별칭에도 사용될 정도로 선호되어 왔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는 북두칠성北斗七星을 북두칠청北斗七青이라고 적고 있다. 별을 뜻하는 ‘성星’자는 푸르다는 의미의 ‘청青’자와 음가가 비슷하고, 중국의 성운학에서 두 글자는 같은 경운経韻에 속한다. 별과 파란색은 이렇게 서로 통한다. 또한 입신출세하려는 청년의 희망을 ‘청운의 꿈’이라고 하고, 학덕이 높은 사람을 ‘청운지사青雲之士’라 칭했다. 파란색의 상징적인 의미는 여러 시대에 걸쳐 통용되었으며, 물과 차가움을 연상시키는 파랑은 불과 뜨거움을 연상시키는 빨강에 대비되어 왔다.
파란색의 대표적 염료인 쪽은 우리의 일상생활의 여러 곳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쪽의 빛깔은 푸른빛을 대표한다. 맑은 가을 하늘을 ‘쪽빛 하늘’, 푸른 바다를 ‘쪽빛 바다’라고 한다. 쪽을 재배하여 받아낸 쪽물에 석회를 넣어 옷감에 염색하여 푸른빛을 내는 쪽 염색법은 이미 백제 시대부터 거의 2천년 가까이 우리 민족과 함께 해왔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 단절되었던 쪽 염색법은 얼마 전에야 어렵게 재현에 성공하여 그 명맥을 다시 이어가게 됐다. 아주 옅은 옥색 혹은 하늘색에서부터 짙고 검푸른 군청색에 이르기까지 쪽은 염색 횟수나 염액의 농도에 따라 푸름의 정도가 매우 다양하다. 쪽빛은 부단한 노력과 정성이 아니면 결코 얻을 수 없는 한국의 색이다.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 나오는 쪽빛

쪽(학명 Persicaria tinctoria)은 마디풀과에 속하는 한해살이 풀로, 인류 역사상 가장 먼저 사용된 식물성 염료이다. 아시아 온대지방이 원산지로 알려져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옛날부터 심어왔으나 언제부터 심어왔는지 확실하지 않다. 우리나라의 야생에서 자라는 쪽은 대개 인도나 중국에서 전래된 품종이다. 인디고를 소량이라도 포함하고 있는 식물을 ‘함람식물’이라고 하는데, 전 세계에 350여 종이 분포되어 있다. 이들은 생육 온도에 민감해서 적당한 온도가 아니면 함유량에 차이가 있으므로 함람식물이 모두 염료로 이용된 것은 아니다. 오늘날 가장 좋은 염료로 알려져 있는 인도람(Indigofera tinctoria)은 아종만 해도 40종 이상이라고 한다. 가장 대표적인 함람식물에는 인도람, 요람(Polygonum tinctoria L.), 대청(Isatis tinctoria), 유구람(Strobilanthes cusia), 숭람, 산람, 대람 등이 있다.
국내의 재배종은 대부분 일본이 원산지인 쪽이다. 중남부 지방의 고온 다습한 논밭에서 쉽게 재배할 수 있다. 키는 60~70㎝ 가량으로 자라며 거름을 주는 횟수와 재배 방법에 따라 차이가 난다. 줄기에는 마디가 있고 뿌리 근처의 줄기에는 털이 나 있으며 흰색과 붉은색을 띤 이삭 모양의 꽃이 7~8월에 핀다. 잎은 계란형(한국 토종)과 장타원형(일본 종)으로 어긋나며 남빛 색소(Indican)가 들어 있다. 한여름에 수확하여 색소를 분리 추출하여 염료로 사용한다.

쪽은 변이성 건염 염료이다. 다른 색과는 달리 자연 원료 그대로는 바로 원하는 색을 만들 수 없다는 데 가치가 있다. 쪽은 석회와 잿물이 있어야 색을 낼 수 있는 천연염료로, 산화와 환원이라는 화학적 변화를 거쳐 비로소 파란 쪽빛을 얻을 수 있다. 살아 있는 미생물의 발효작용으로 색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시간과 숙련된 노동, 노력이 필요하고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쪽빛에 한국의 푸른 하늘을 담다

쪽색을 흔히 일러 남색藍色이라고 하고, 감색紺色이라고도 하다. 한때 곤색이란 말을 자주 썼는데 이는 일본말이다. 옛말에 제자가 스승을 능가한다는 말을 ‘청출어람青出於藍’이라 했을 정도로 남색은 푸른색을 대표한다. 쪽과 관련된 몇 가지 색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진한 푸른빛은 남藍, 검은 빛을 띤 푸른 빛 혹은 청색과 자색의 간색은 감紺, 고운 남빛은 감청紺青, 감색과 보랏빛은 감추紺緅라 한다. 요즘은 일반적으로 남색보다는 쪽빛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쓰지만, 예전에는 쪽보다 ‘반물’이란 말을 많이 썼던 것 같다. 그래서 쪽물을 들이는 전문가의 집을 ‘반물집’이라고 하였고, 쪽을 물들인 치마를 ‘반물 치마’라고 했다.
쪽을 정의하는 인디고(indigo)라는 용어는 어원적으로 보면 라틴어의 인디쿰(indicum)에서 온 것이다. 이는 쪽이 인도에서 수입됐다는 것을 의미하며 후에 푸른색 염료를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이제 쪽빛은 우리말에서 일반적으로 남색을 의미하지만, 전통적인 쪽염에 의한 쪽빛은 ‘하늘의 색’을 나타낸 것이다. 우리의 전통 쪽 염색은 쪽을 완전히 발효시켜 사용한 것이 아니었기에, 물론 여러 차례 거듭하여 염색하면 흑색에 가까운 현색玄色이 되지만, 생엽염生葉染이나 침전염沈澱染의 초기 단계의 색채는 하늘색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쪽빛 하늘’ 같은 말이 생겨난 것이다.
가장 좋은 쪽 염료는 청대青黛라 한다. 중국 송대宋代에 편찬된 《개보본초開宝本草》에서는 ‘눈썹을 그리는 푸른 먹’을 청대라고 했는데, 옛날 여인들이 눈썹 그리는 데 이것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코피, 내상독, 옹종擁腫 등에 이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인디고보다 어두운 청색을 내는 염색 식물인 대청大靑은 폐염, 후두염, 기관지염 간염, 황달, 토혈, 옹종 등에 응용된다. 쪽잎, 꽃, 씨를 말려서 만든 약은 청혈제로 간을 깨끗이 한다. 간의 기운이 뭉치면 정신병, 우울증 등이 생기는데 쪽은 이것을 풀어주는 작용을 한다.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쪽의 성분이 암 치료에 획기적인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알려졌으며, 중국에서는 쪽이 포함된 생약으로 만든 혈액암 치료제가 이용되어 왔다. 옛날에는 어린이의 몸에 부스럼이나 상처가 생기면 쪽으로 염색한 옷을 입혔다. 뿐만 아니라 쪽으로 염색한 이불을 덮고 자면 잠자는 동안 몸에 뭉친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남성의 기를 높여준다는 말도 있어, 전라도에서는 쪽으로 만든 이불을 결혼 예단으로 해 가는 것이 관례였다.

청출어람의 푸르름, 쪽 염색의 방법

얼마 전에 미국 서부의 탄광지대에서 120년 된 청바지가 발견된 적이 있었다. 폐탄광에서 발견된 그 청바지는 쪽으로 염색한 것이었다. 왜 수많은 색깔 중에 유독 청색 바지를 입게 되었을까? 파란색은 인디언들이 몸에 바르거나 옷감에 색을 들이는 데 사용하였던 ‘인디언 쪽’, 즉 ‘인디고 블루(indigo blue)’이다. 면으로 된 두꺼운 천에 인디고 블루로 염색한 바지는 말을 탈 때도 가죽을 입었을 때와 달리 엉덩이가 짓무르지 않고, 착용감이 좋고, 벌레도 덜 달려드는 등 굉장히 좋아서 사람들이 입에 입을 통해서 전해지다가 ‘청바지’가 된 것이다. 그러나 요즘 입는 청바지는 쪽 대신에 대량 생산이 쉬운 화학 염료로 염색한 것이다.
쪽에서 추출하는 인디고는 물에 녹지 않는 색소이다. 알칼리성 환원제에 의하여 백람 즉, 무색의 화합물로 환원되어 용해된다. 이 화합물이 섬유에 흡착한 뒤 공기 중에서 산화함으로써 원래의 불용성 염료를 재생하는 것이 염색의 과정이다. 염색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생잎의 즙액을 이용한 ‘생잎 염색’이고, 다른 하나는 쪽이 우러난 물에 알칼리성 수용액을 넣어 염료를 제조해서 염색하는 ‘발효 염색’이다. 생잎 염색은 즙액에 직접 염색하는 것이고, 발효 염색은 자연 매염제를 사용하여 발효한 쪽으로 염색하는 것이다. 발효 방법에는 냉염색과 가온염색, 화학 발효가 있다. 화학 발효에는 하이드로설파이드, 아연 분말, 녹반 등의 약품을 사용한다.

단색염색이나 복합염색을 할 때의 과정은 침전에 의한 쪽물 짓기는 잿물만 쓰는 침전제조법, 잿물 침전물과 생엽 침출액을 섞어서 사용하는 복합제조법, 또는 숙람과 생람의 복합염 그리고 석회나 조개껍질 회만으로 제조하는 침전제조법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그중 잿물만으로 쪽 짓기를 한 것이 가장 투명한 색을 물들일 수 있다. 하지만 짙은 색을 내려면 20회 정도 염색과 수세를 반복해야 하므로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쪽이 제철이 아닌 시기에는 숙람과 생람을 사용하여 복합염을 한다. 말려둔 쪽잎을 가열하여 10~11월에 채취한 생람과 복합하여 사용한다. 이는 짙은 색이 아닌 담색을 낼 때나, 중간색으로 하염할 때, 다른 염재로 복합염을 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복합염으로 물들일 때는 가능하면 백→청→황→홍→흑의 순서를 따르는 것이 좋다. 하지만 염색의 순서는 염료의 성질이나 원하는 색상의 짙고 옅음에 따라 다르게 할 수 있다. 물론 순서를 무시해도 색이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만약 특이하고 미묘한 색감을 내고 싶다면 홍이나 황을 먼저 물들이고 청을 물들여도 된다.
좋은 쪽물은 식물성 섬유에 염착이 잘 된다. 잘 마른 모시를 염색할 때는 염료가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몇 번을 반복해서 염색한 것은 세탁할 때 처음 몇 번은 염료가 빠져 나오기도 하지만 그 후에는 탈색되지 않는다. 한번 염색되면 염료가 빠지지 않도록 고착하는 일이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과제이다. 〔계속〕



글·사진 이승철(동덕여자대학교 회화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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