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철 교수의 민화재료학 특강 ⑥ 풍요를 나타내는 희망의 색, 황색黃色

근세에 서양 사람들이 조선을 ‘황금의 나라’라고 경탄하며 침을 삼킨 적이 있다. 우리나라 근해를 처음 항해하던 배가 멀리서 볏짚을 엮어 이은 초가지붕을 보고 황금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농경민족인 우리에게 친근한 황색은 봄이 되면 산과 들에 지천으로 피는 노란 꽃이고 추수를 앞둔 황금들판의 빛깔이었다. 왕성한 생명력과 풍요의 상징인 자연의 흙색은 황제를 상징하는 황색이 되기도 하며 생활 속에서 다양한 모습을 드러냈다.


봄소식을 우리에게 가장 먼저 알려주는 자연의 색은 황색이다. 보통 계절의 시작은 녹색이라고 알고 있는데, 봄을 알리는 대표적인 식물인 산수유, 개나리, 유채꽃, 수복화, 민들레 등은 노란 꽃이 잎보다 세상에 먼저 나온다. 황색은 눈을 녹이며 땅에서 솟아올라 계절이 바뀌는 것을 알려주는 색이다.

황색이 지닌 양면적 의미

황색은 동서양 모든 지역에서 양면적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는 색이다. 긍정적인 의미로 황색의 특징은 태양을 닮아 가장 밝고, 희망과 화사함, 명랑하며 쾌활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또한 황색은 평화·지성·풍요·부드러움·따뜻함·결단력의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완벽함을 나타내는 색이다. 특히 힌두교, 도교, 불교 등에서 제일 좋아하는 색이기도 하다. 스님의 의복이나 사원이나 불상에 황색을 많이 사용하며, 러시아의 그리스정교나 중동지역의 모스크사원들에서 모두가 황금색을 사용한다. 신앙를 상징하는 의복이나 상징물, 하늘을 찌르듯이 치솟은 사원의 돔과 첨탑은 종교가 지향하는 이상향과 희망을 뜻하며 사용된 황금색은 부와 사치의 극치를 말하는 것이다.

동양에서 황색은 최고의 권위와 힘, 부를 나타내며 이것은 곧 황제를 상징한다. 이집트에서도 황금색은 태양이나 파라오의 권좌를 상징하는 색이다. 이러한 영향 때문에 동양에서는 고귀한 것, 소중한 것에 대한 이름에 대부분 ‘황黃’자가 많이 사용되고 있다. 황제가 입는 옷을 황룡포黃龍袍, 황제가 출입하는 문을 황문黃門, 풍수에서 이장移葬할 때 명당 무덤 속에서 나온 뼈를 황골黃骨이라 말하고, 사람이 죽어 좋은 곳으로 가는 곳을 황천黃泉이라 한다.
부정적인 의미로 황색의 특징은 교만·간음·배신·비겁·퇴폐 등을 연상하게 한다. 황색이 부정적 의미로 작용하면 극히 파괴적일 수 있으며 속임수, 기만, 음흉함, 지배욕, 계산적인 행동, 악의, 복수심, 아첨, 감언이설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서양 일부에서는 황색이 예수를 배신한 유다의 옷 색깔이라는 점과 북유럽을 잔인하게 침략한 황인종(칭기즈칸)에 대한 공포심이 서양 사회에 황색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지니게 했다. 그러나 황색의 의미는 보편적으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황금의 영향으로 좋은 의미가 강하다.
현대에서 황색은 힘의 상징이면서 곧 커뮤니케이션의 상징이기도 하다. 황색은 명도가 높아 시각적으로 눈에 잘 들어오기 때문에 자기 의사를 타인에게 분명히 알리고, 밝고 따뜻하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을 촉진시키는 색으로 인식되고 있다. 집회나 정치 사회단체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노란색 리본을 선호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점 때문일 것이다.

고귀한 신분을 나타난 의복의 황색

옛날 의복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 하나는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의복의 색상이나 차림새로 신분을 알려주는 것이다. 왕이나 지배층은 일반 백성과는 구별되는 옷을 입으며, 아무나 호사스러운 복색으로 자신을 치장할 수 없도록 규제했다. 이런 효과를 노린 정책 수단이 바로 복색의 금령이다.
오방색에서 황색은 네 방향의 중심에 위치한 색으로 인간, 즉 왕을 의미한다. 중심의 색인 황색의 옷은 태양의 빛깔로서 황제 혹은 왕만이 입을 수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 임금은 황색 황룡포가 아닌 검붉은색의 곤룡포를 입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황색을 중국 황제의 고유색이라 하여 왕은 물론, 관료와 백성들에게까지 황색의 옷을 착용하지 못하게 했다. 황색 복색의 금령 기록은 삼국시대 때부터 나타나고, 고려나 조선에서도 황색금지령은 복색금지령 중에서 가장 높은 빈도를 나타내고 있지만 황색이 모든 시대에서 왕이나 상류층의 색은 아니었다. 고구려에서 황염색은 중하위의 색으로서 왕은 황초리黃草履를 신었고, 악공인樂工人들은 황대수黃大袖를 착용했다. 조선의 임금은 광무 원년(1897)에 고종이 칭호를 황제로 바꾸고 《대명회전》을 근거로 새롭게 제정한 복제개혁을 통해 처음으로 황룡포를 입게 됐다.

황색을 만드는 다양한 염료식물

황색의 사용은 우리 문화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불교에서 경전은 황색의 종이나 황색비단에 경문을 쓰고 표지를 만들며, 불상은 어떤 재료로 만들었든 간에 그 표면은 금니金泥를 칠하거나 노랗게 도금했다. 이러한 점은 우리의 고분벽화와 고건축의 단청에서도 나타난다. 고분벽화나 단청에서도 나무나 회벽 위에 묵선과 적, 갈, 황, 청, 녹색 등이 사용하였는데 그중에 황, 갈색의 색채가 두드러져 있다. 그림의 황색은 등황藤黃(초자황이라는 식물의 껍질 진액에서 채취하는 식물성 염료), 대자代赭, 황토黃土, 치자, 괴화, 황벽, 울금 등 에서 황색을 추출하여 사용한다. 음식에 황색을 물들일 때는 치자를 재배하여 염재로 사용하여 떡, 다식, 한과 등을 만드는데 사용한다. 황색계 염료식물에는 노목, 메밀, 치자, 회화나무, 물푸레나무, 신나무, 소삼, 양파, 제비꽃, 조개풀, 홍화, 당리목, 금잔화, 황벽, 황련, 정향나무, 자소, 울금, 박태기나무, 참싸리, 침쑥, 석류 등이 있다. 황색을 만드는 데 주로 사용되는 염재인 치자, 황벽, 울금, 황련, 괴화에 대하여 설명하겠다.

① 아황색-치자
붉은빛이 나는 노랑, 치자梔子는 노란색 염색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대중적인 염료이다. 치자는 붉은색에 가까운 노랑(자황빛)으로 염색된다. 염색은 쉽지만, 갈변하거나 빛이 바래는 단점이 있다. 치자가 염색 물감으로 사용해온 역사는 오래됐다. 중국에서는 주나라 이전부터 생활에 쓰였다. 중국의 《신농본초경神農本草経》 <중품>에 ‘지자枝子’라고 기재되어 약용으로 설명되어 있고, 우리나라 문헌에는 《고려사高麗史》 <여복조>에 ‘복치황의服梔黃衣’라 하여 예식 중에 치자로 물들인 노란 옷을 입었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에 치자나무가 수입된 것은 이미 1500년 전의 일이다. 이외에 치자는 장판에 색을 내거나 음식, 특히 빈대떡의 색을 내는 데도 사용됐다.

② 녹황색-황벽
연둣빛이 강한 노랑, 황벽黃蘗은 가장 선명한 노란색 염료이다. 치자가 붉은색 기가 있는 반면 황벽은 연둣빛이 강한 노란색이다. 중국에서는 늦어도 5세기부터 염색에 이용되어 왔다. 바깥쪽 껍질은 색소보다 이물질이 많으므로 제거하고 사용한다. 《산림경제》에 “황백은 일명 황벽이라 한다”고 하였고, 《규합총서閨閤叢書》에 염색법이 소개되어 있다. 종이에 황벽을 염색하는 방법은 6세기경 중국의 농업기술서인 《제민요술齊民要術》에 나와 있다. 우리나라 고서 장정에는 한지에 황벽으로 능화판 문양을 새겨 장식한 것을 볼 수 있다. 서책에 황벽을 염색하는 것은 매우 오래된 기술이다. 굳이 황벽으로 염색한 까닭은 방충성이 있어 좀벌레의 해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③ 카레 빛깔-울금
울금鬱金은 생강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식물로 심황深黃, 을금, 걸금, 천을금, 옥금, 울금초, 금모세, 마슬, 황제족이라고도 한다. 뿌리에서 노란색을 얻는 직접성 염료로 각종 식품의 착색제로 이용되기도 하며 카레의 원료이다. 울금의 색소는 주로 뿌리에서 얻어지며 매염제에 따라 색상이 변하는 다색성 염료이다.

④ 적황색-황련
황련黃蓮은 일명 깽깽이풀이라고 하며, 현재는 약초로 재배되고 있다. 뿌리줄기를 반쯤 말려 잔뿌리를 없앤 후 염료로 사용한다. 비단에 염색하면 기품 있는 노란색이 나온다. 색상은 자황에 가까운 고급스런 황색이다. 황련으로 염색한 옷에는 벌레가 슬지 않으며, 몸의 열을 없애고 붓기를 내리게도 한다. 소염 작용이 있어 옛날에는 아기 낳은 사람에게 황련으로 염색한 옷을 입혔다.

⑤ 간색-괴화
괴화槐花는 회화나무의 꽃을 말한다. 《산림경제》와 《규합총서》에 의하면 5월이나 6월경에 괴화의 꽃이 다 피기 전에 따서 말린 뒤 쇠붙이가 아닌 도구로 볶은 뒤 달여서 염색한다. 간색을 낼 때 특히 녹색을 나타나게 할 때 사용한다. 잿물 매염에서 노란색을 내는데, 이것을 다시 쪽물에 넣으면 녹색이 나오는 다색성 매염염료이며 철매염에서 올리브색, 백반 매염에서 노란색(황벽에 비해 푸르고 붉은 기가 돈다)이 된다. 〔계속〕



글·사진 이승철(동덕여자대학교 회화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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