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철 교수의 민화재료학 특강 ④ 품질 좋은 한지를 고르는 법

‘지천년견오백紙千年絹五百’이란 말이 있다. 전통 한지가 강한 내구성과 뛰어난 보존성을 지니고 있어 천 년을 간다고 표현한 것이다. 또한 한지는 변형이 자유롭고, 먹이나 전통 안료와도 잘 어울려 박서보, 전광영처럼 한지의 특징을 살려 작업하는 작가들이 꽤 있다. 그러나 좋은 한지의 기준은 작가의 작업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한지의 특성은 크게 네 가지로 볼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특성은 장기 보존성이다. 우리나라의 장판지, 창호지 등 저피楮皮를 원료로 하여 만들어진 한지는 모두 강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래서 우수한 보존성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그 변형이 매우 쉽다.
작가가 쉽게 느낄 수 있는 한지의 특성은 친수성親水性이다. 동양의 종이는 종이에 표현하고자 하는 재료와 잘 어울리는 점을 이용하여 미술 재료로 발달해왔다. 대표적인 재료인 한지는 물이 없으면 어울리기 힘들다. 먹, 물, 안료 등 재료가 모두 친수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한지와 먹의 어우러짐은 가히 일품이다. 또한 물과 잘 어울리는 종이 말고도 기름과 잘 어울려져 기름을 사용한 종이가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장판지이다. 장판지는 기름을 쓰되 식물성 수지 성분 기름을 사용하여 물은 투과시키지 않고 공기만을 투과시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오랜 시간 바닥에 깔고 사용할 수 있으며 물로 닦아낼 수도 있다. 또한 한지에는 동양 고유의 품격이 있다. 규격화된 서양 종이에 비해 우아한 아름다움을 갖는 한지는 크기를 갖되 정확한 크기를 갖지 않고 각 장마다 같으면서도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생활과 밀접한 한지의 특성은 보온성이다. 한지는 섬유 사이에 적당한 공간을 가지고 있다. 창문에 바른 창호지는 외부 공간과 내부 공간을 잇는 틈을 유지함으로써 계절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해 방 안 습도를 자동으로 조절하는 기능이 있다. 또한 우리 선조들은 방문이나 창호 손잡이 근처에 부분 손상을 막거나 운치를 더하기 위해 단풍잎, 댓잎, 국화잎, 실 등을 넣고 그 위에 창호지를 덧발라 소박하게 치장하였다. 한지 속에서 색상과 아름다움을 더 오래 보존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작가의 작업에 따른 한지의 사용

현재 시중에서 좋은 한지를 고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값비싼 한지를 고르는 것이다. 반드시 가격이 품질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싼 한지일수록 1차 원료의 품질이 좋다. 한지는 기본적으로 원료가 좋아야지만 한지가 지닌 기본적인 성격을 유지할 수 있다. 원료가 좋다는 것은 곧 원료의 가격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며 가격이 비싸다는 것이다. 한지를 파는 상점은 물론이고, 공장도 원가 이하의 한지는 만들지 않는다.
한지는 사용하는 작가별로 원하는 조건이 제각기 다르다. 본인 작품에 맞는 한지의 두께나 바탕 질감, 먹물의 변화, 채색이 묻는 정도 등에 따라 작가마다 원하는 느낌도 다르다. 일반적으로 한국화에서 한지를 사용하는 사람은 채색하는 사람과 먹을 쓰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채색화도 얇은 한지에 담채 산수나 화조를 그리는 경우와 두꺼운 한지에 분채나 석채를 이용해서 그림을 그리는 경우 각각 원하는 한지가 다 다르다. 얇고 잘 번지는 종이, 얇고 질긴 종이, 두껍고 질긴 종이, 입체감이 나타나는 한지 등 사용 용도에 따라 한지의 선호도가 갈릴 수 있다. 먹을 쓰는 사람은 발묵의 형태나 먹의 번짐이 정도가 어떠한 형태 나타나느냐에 따라 한지의 선호도가 다를 수 있다. 시중에 파는 한지는 단섬유인 펄프의 함유량이 많으면 번짐이 예민하고, 닥 섬유의 함유량이 많으면 번짐이 불규칙하다. 이러한 이유로 좋은 한지는 어떤 재료로 무엇을 표현하느냐에 따라 선호하는 한지와 평가가 다르게 나타난다.

좋은 한지를 고르는 5가지 방법

같은 가격일 때 품질 좋은 한지를 고르기 위해서는 첫째, 상점에서 가장 비싸고 좋은 한지를 살펴본 후 원하는 용도의 한지를 고르는 것이 좋다. 사람들은 대개 한지를 구입할 때 가격에 맞추어 구매하기 때문에 최상품 한지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한지를 고를 때 좋은 것을 미리 봐두면 자신에게 필요한 한지를 좀 더 쉽게 선택할 수 있다.
둘째, 겨울에 만든 한지를 사는 것이 좋다. 여름에 만든 한지는 원료가 쉽게 부패하여 냄새가 나거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방부 처리를 많이 하므로 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 한지를 만져보았을 때 너무 푸석거리거나 먼지가 날리는 것은 피한다. 초지 때 원료에 양지가 많이 들어가거나 압착이 덜 되어 한지의 강도가 약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넷째, 닥 원료가 뭉쳐 보이지 않고 표면이 고르며 윤기가 있고 자연색인 한지가 좋다. 다섯째, 만든 지 6개월 이상 된 것을 고르는 것이 좋다. 금방 만든 한지는 닥 원료가 건조되어도 일정 시간이 지나야 균일하게 바닥에 고정되고 안정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한지의 숨을 죽인다고 말한다.

현재 시판 중인 한지의 문제점

현재 시장에서 판매되는 한지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문제점은 ‘바람을 먹었다’고 통용되는 반점의 형태이다. 이 반점의 형태는 세 가지 조건에서 발생한다. 첫 번째, 종이를 뜰 때 수입 닥, 재생펄프 등 원료에 포함된 ‘니그린’이라는 기름 성분과 종이를 뜰 때 첨가하는 ‘팜’이라는 기름이 완전히 녹지 않거나 잔존되어 종이에 남겨져 있을 때의 자국인 경우가 많다.
두 번째, 종이 보관을 잘못하여 습기에 노출되어 일정량 이상의 습기를 머금음으로 인해 그 부분이 작은 얼룩 형태로 남는 경우이다. 세 번째, 종이공장에서 사용하는 물에 철분기가 많거나, 물에 남아있는 잔여물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반점은 수묵 작업을 하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이다. 채색을 할 때도 물감이 올라가지 않고 얼룩이 남는 경우가 있어 이런 종이는 일반적인 작가들이 꺼려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자기 작품의 특성을 살려 오히려 이런 종이들을 골라 작업하는 예도 볼 수 있다.

반점이 나타나는 원인은 원료의 차이

일반적으로 한지의 원료로는 닥이라는 인피섬유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시중에 파는 한지는 국산 닥과 국산 닥의 대용품으로 사용하는 수입 닥, 마섬유로 되어있는 마닐라삼, 그리고 펄프, 재생 펄프 등이 한지의 원료로 사용되고 있다. 그 함유량이나 사용하는 양, 뜨는 방식에 따라 종이의 품질이나 종이의 종류가 결정된다. 보편적으로 시중에서 가장 좋은 형태의 한지를 장지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장지의 특징은 표백되지 않고 종이 크기가 크고 두꺼운 것을 말한다. 이러한 장지를 고를 때는 가능한 순수한 닥원료를 재료로 만든 한지가 좋다. 순수한 원료란 국산 닥 100%에 자연표백이 되어 있는 원료로 한지의 색깔이 약간 자연스러운 누런색을 띤다.

자연닥 색상을 만들기 위한 첨가물

자연스러운 색상의 한지를 만들기 위해 인위적으로 백닥이 아닌 피닥 껍질을 삶은 후, 이것을 화학약품으로 표백한 후 다시 누런 물을 넣어 자연색 장지를 만드는 경우가 흔히 있다. 그 외에 마섬유의 사용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마섬유에 대해 알 수 있는 내용으로는, 바닷가에서 볼 수 있는 밧줄을 만드는 섬유를 마닐라 삼이라고 한다. 마닐라 삼도 말레이시아나 남쪽에서는 종이 뜨는 원료로 사용하기도 하고 마질의 원료이기도 하다. 실제 마닐라 삼을 삶아서 혼합재료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마닐라 삼은 강도가 질기고 색상을 만드는데도 매우 유용하기 때문에 수입닥과 마닐라 삼을 섞어서 일반적인 시중에 파는 장지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
강제 표백한 종이의 경우 먹색이 탁해질 뿐 아니라, 채색이 올라갈 때 여러 가지 반점이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닥을 삶을 때 첨가제로 사용하는 잿물은 그 안에 불순물로 녹아든 기름 성분인 ‘니그린’이나 기타 불순물 성분이 섞여져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한지를 사용해 보면 바람 먹은 자국이나 얼룩 반점이 나타난다.

원료비를 아끼기 위한 수입 닥의 사용

국산 닥과 수입 닥의 차이는 전문가가 아닌 이상 잘 알지 못한다. 초지 후 건조한 한지의 섬유의 길이를 보면 알 수 있다. 수입 닥을 뜬 종이는 국산 닥으로 뜬 종이보다 강도가 약할 뿐 아니라, 생닥을 사용해 껍질은 벗기고 강제 표백한 상태로 원료가 들어오기 때문에 닥섬유의 질이 좋지 않으며 섬유의 강도도 약하다. 현재 대부분의 한지에서 원료로 수입 닥을 사용하는데, 말레이시아나 태국 등 열대지방에서 들여온 수입 닥에는 ‘니그린’ 같은 기름 성분이 많이 함유되어있다. 그뿐만 아니라 수입과정에서 표백이나 보관을 위해 포르말린을 많이 섞기 때문에 화학성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수입 닥과 국산 닥의 비율은 종이의 끝이나 섬유를 봤을 때 길이와 푸석한 정도로 확인할 수 있다. 섬유의 길이가 짧거나 섬유의 길이가 엉성해 보이면 수입 닥의 비율이 높은 것으로 보면 된다. 현재 수입 닥이나 국산 닥 가격의 차이는 5배 이상 차이가 나고, 표백 닥과 미표백 닥의 가격 차이도 비슷하다.

번짐 효과와 종이 두께를 늘리기 위한 펄프 사용

한지 원료로 펄프를 사용하는 것이다. 한지 원료를 섞을 때 수입 닥의 20분의 1 가격인 양지 펄프를 섞는 것이다. 펄프는 두꺼운 한지를 뜰 때 특히 많이 사용한다. 두꺼운 한지를 뜰 때 많이 사용하는 이유는 원료의 양을 늘림으로써 종이 두께를 쉽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펄프 함유를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종이 끝을 살짝 뜯어보면 섬유 끝에 몽글몽글 흰색 알갱이가 붙어있으면 이것이 펄프이다. 펄프가 눈에 보일 정도면 그 한지에는 50% 이상 펄프가 섞여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펄프가 섞여 있는 한지는 번짐이나 두께가 주는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한지의 강도가 굉장히 약해져서 물을 먹었을 때 종이가 심하게 쳐지거나 힘을 받지 못한다. 다음 연재는 천연염료를 통해 자연색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계속〕



글·사진 이승철(동덕여자대학교 회화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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