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철 교수의 민화재료학 특강 ③ 우리가 알아야할 한지 이야기

많은 사람들이 한지와 화선지를 동의어처럼 알고 있지만, 화선지는 전통한지가 아닌 중국에서 유입된 종이이다. 조선 후기 북학파가 득세하면서 화선지가 본격적으로 유입되었고, 화선지가 지니는 발묵 위주의 그림이 대두했다. 현재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화선지와 사라져가는 전통한지. 이번 시간에는 새로운 한지 문화를 위해 한지의 종류에 대해 알아본다.


한지는 크게 건조판에서 바로 나온 생지와 생지를 가공한 숙지로 나눌 수 있다. 생지는 질기지만 표면이 매우 거칠다. 또한 섬유질이 고르지 못해 수분과 물감 같은 이물질을 고르게 흡수하지 못하며 불규칙하다. 숙지는 대부분 생지에 물을 품어 밟거나 도침搗砧, 다듬잇돌에 다듬어 부드럽고 질기게 표면 가공하여 만든 한지를 말한다. 필요에 따라 물을 품거나 거품 질하거나 염색, 표백하여 도침하는데 일광 표백종이를 말린 다음 다시 적시고 도침하여 다시 말리는 방법을 되풀이하면 햇볕에 누런 종이가 표백되어 하얗게 되며 이렇게 만든 종이는 오랜 기간이 지나도 변색되거나 부패하지 않으며 표면이 고르고 윤이 난다.

오늘날 쓰이는 한지

조선시대에는 원료原料, 색채色彩, 광협廣狹, 장단長短, 후박厚薄, 외양, 용도 등에 의하여 한지의 종류를 분류하였다. 그러나 현대에는 한지의 종류를 다음과 같이 분류하고 있다.
첫째, 용도에 따라 창호지, 초배지, 도배지, 화선지, 장지, 순지, 표구지배접지, 장판지, 포장지, 운용지, 요철지, 팬지 용지, 책지, 문양지, 색지 등이 있다. 창호지는 주로 창문을 바를 때 사용하는 종이이며, 초배지는 도배하기 전 벽에 처음 바르는 종이이고, 화선지는 그림이나 글씨를 쓸 때 쓰는 종이를 말한다. 장지는 전라도 지방에서 생산하는 지질이 질기고 두꺼운 큰 한지의 종류가 가장 많았던 종이로서 주로 그림용으로 사용하며, 순지는 100% 닥을 써서 만든 종이로서 대체로 얇은 한지를 말한다. 근래 생긴 종류인 표구지(배접지)는 2급지로서 원래는 100% 순닥만 써야 하나 현재 펄프를 섞어서 만들고 있다. 장판지는 장판으로 사용하는 종이로서 현재 90% 양지를 원료로 한 기계지를 쓴다. 요철지는 종이를 일정한 틀에 가두어 떠서 건조하는데 요철이 그대로 남아 있어 요철지라고 하며 1970년대 후반 이후 나타나기 시작한 종이이다.
둘째, 크기에 따라 창호지, 초배지, 화선지, 순지, 장지가 있다. 창호지는 대발지2자 2치×3자 3치, 중발지1자 9치×3자 2치로 분류되며 초배지는 주문자 크기에 따라 대초배지1자 9치×3자 2치, 중초배지1자 7치×2자 7치, 소초배지1자 반×2자 반로 나눌 수 있다. 현재 소초배지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화선지와 순지는 일정한 크기 없이 다양하게 생산된다.

대화선지 국전지 180×100㎝, 일반 화선지 130×70㎝, 소화선지 4자×2자2치, 보통 화선지 120×65㎝가 대표적이다. 여기에 나열한 치수는 발틀 크기를 나타낸 것이며 곧 화선지의 실제 크기와도 같다. 장지는 발 크기에 따라 100호지 130×160㎝, 120호지 140×170㎝, 150호지, 200호지 등으로 나누어지며 그림용으로 많이 쓰인다.
셋째, 첨가물에 따라 태지苔紙, 색지色紙, 운용지, 피지, 닥지가 있다. 태지는 이끼를 섞어 만든 종이로서 병풍, 실내 장식에 쓰이며, 색지는 물을 들인 한지를 말한다. 운용지는 색지에 닥 원료를 넣은 종이를 말하며, 피지와 닥지는 원료에 닥 원료 피를 넣어 뜬 종이를 말한다.
넷째, 두께에 따라 몇 장을 습지를 겹쳐서 만드것에 따라 홑지, 이합지, 삼합지, 육합지 등으로 나누고 있다. 현재는 일본의 무게 기준인 몸메(1몸메=6돈=3.75g)를 쓰기도 한다.

조선시대 전통한지의 종류

조선시대 전통한지는 쓰임새와 용도, 제작방법, 크기, 원료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누어졌다. 《세종실록지리지》, 《산림경제》, 《임원십육지》 등의 문헌에 나오는 조선시대 한지의 종류만 100가지 이상이 되며 대략적으로 나누어보면 아래 표와 같다.

우리가 알고 있는 화선지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한지 이름의 대부분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이름이 ‘화선지畵宣紙’이다. 화선지는 과연 우리 전통 종이일까?
조선시대 우리나라 종이 종류를 기록한 대표적인 책이 《동국여지승람》과 《세종실록지리지》이다. 여기에는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종이를 생산지별로나 원료의 명칭이나 크기, 염색, 도료, 또는 용도별로 명칭을 조사한 기록이 남아 있다. 여기에 현재 사용하는 화선지라는 명칭이 없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화선지는 선지, 화지, 옥판지, 옥판선지 등의 별칭이 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화선지는 해방 이후 언제부터인가 서書나 화畵의 휘호에 사용된 종이로 통칭됐다.
원래 화선지의 명칭은 중국의 선지에서 출발한 이름이다. 선자宣子가 붙었으니깐 천자天子의 칙지勅旨, 즉 선하문을 쓰는데 사용해서 ‘선지’라 불렀다는데 억측일 가능성이 크다. 선지는 중국 안징성 신성에서만 생산되는 특산물의 종이로, 예전부터 그 지역 인근에서 생산되는 종이가 신성에 집합되어 각지로 판매됐다. 신성현이 화선지의 집산지였기 때문에 선지, 선성지라 불리다 선지宣紙가 된 것이다. 그럼 화선지라는 명칭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중국 선지의 제조법이 알려지지 않았을 당시, 일본인들이 선지를 모방해 만든 종이가 가센시(がせんし: 화선지)였다. 그래서 중국 선지도 일본어로 가센시라 발음한다. 일본 화선지는 화선(훌륭한 화인의 경칭)이 쓰는 종이라는 의미로 이름을 붙였다. 선지(화선지)는 청단피라는 단섬유의 원료를 발효시켜 만들었으나, 오늘날 화선지는 양지의 원료 목재 펄프를 90~95% 이상 사용하고 닥을 5~10% 정도만 사용하여 번짐 효과를 내고 있다.

화선지가 한국화에 사용된 이유

중국의 선지를 모방해 제작한 화선지가 우리나라 회화에 등장한 이유가 무엇일까. 화선지는 북학파 득세 이후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 유입되었으며, 장승업의 그림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것으로 본다. 사실 북학파 이전에도 중국의 종이가 많이 들어오기는 했지만, 우리나라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였다. 조선 후기 북학파가 청의 문물을 수용할 때 상당량의 지물이 함께 들어왔다. 당시 사대부들은 조선지를 서화에 사용하는 것을 꺼리고 중국지를 동경했으며, 유교의 ‘숭문천기崇文賤技’ 사상에 따라 문기를 숭상하며 그림을 즐겼다. 또한 ‘시서화일체詩書畵一體’를 근간으로 발묵 위주의 문인화가 발달했다.
전래 한지에 주로 사용되어 왔던 적묵법이나 파묵법보다 화선지가 지니는 발묵 위주의 그림이 회화 전반에 대두되기 시작했다. 겸재 정선이나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의 그림과 북학파 득세 이후 대표화가인 오원 장승업의 작품을 비교해보면 기법이 사뭇 다른 것에서 볼 수 있다. 김홍도의 그림 먹색은 한지 자체가 지닌 중첩에 의한 적묵법과 파묵법이나, 장승업의 작품은 화선지의 발묵에 의한 표현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어느 사이엔가 국적 불명의 ‘화선지’가 우리 종이로 돌변하여 한지 사용자 대부분의 인식과 기법을 바꾸어 놓았다. 한번쯤은 화선지에 대한 쓰임과 용도, 그리고 그에 따른 기법이 우리 문화에 미치는 영향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현재 대부분의 서화의 초심자나 입시 한국화에서 화선지에 기법과 필법을 익히어 기초를 닦고 있다. 과연 이들이 이러한 문제점을 얼마나 알 것이며, 그러한 기초 위에서 우리의 전통한지가 살아남을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그러나 화선지는 우리 문화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중국에서 유입되었다고 우리 것이 아니라 할 수는 없다. 다만 그것을 좀 더 올바르게 알고 체계화하여 새로운 장르의 한지 문화를 만들었으면 싶다. 다음 연재는 한지만의 특성과 질 좋은 한지의 선별법을 설명하고자 한다. 〔계속〕



글·사진 이승철(동덕여자대학교 회화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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