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연 작가의 희망을 응축한 채색화 – 설렘을 붓끝에 품고 그린 책거리

나에게 책거리는 채색화와 맺은 인연이 다다른 곳이자,
길상의 상징을 응축하고 색을 채워 긍정의 영감을 불어넣는 공간이다.

글·그림 이수연 작가


요란한 북소리, 꽹과리 소리에 끌려 멈춰 선 곳은 굿판. 석촌 호수 옆 서울놀이마당의 무대에서 신명 나게 뛰는 무녀의 붉은 옷자락과 오방색은 나를 흥분시켰다. 그즈음 수묵화(수묵담채화) 위주의 그림이 활개를 치던 미술계에서는 동양화 대신 ‘한국화’라는 명칭이 본격적으로 사용됐다. 대학에서 한국화를 전공하며 수묵화가 전부인 양 먹물 번진 작업복을 입고 있었지만,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에 열광했고 박생광의 강렬한 색채와 잭슨 폴록(Paul Jackson Pollock)의 액션 페인팅에 감동하곤 했다. 결국 1988년 동덕아트갤러리에서 열린 졸업전에는 수묵화가 아닌 200호 크기의 화면에 오방색을 가득 채운 작품 <무희>가 걸렸다. 나는 그렇게 중요무형문화재 김금화의 대동굿을 통해 채색화와 첫 번째 인연을 맺었다.

인연 속에서 민화 책거리를 만나다

그 후 우연히 마주한 두 번째 인연은 민화다. 2003년부터 故 김만희 민화장의 전수조교인 정승희 선생님을 사사하면서 필치의 유연함을 구사할 수 있게 됐고, 당시 창작의 모티브가 되어준 건 책거리였다. 책거리에는 조선 후기 상류사회의 청대 문물에 대한 동경과 사치, 학문에 대한 열망과 출세의 집착이 고스란히 그려져 있다. 사대부의 사치 풍조가 극에 달할 때, 정조는 이를 나무라며 신랄하게 비판했다고 한다. 그의 일침은 나를 통쾌하게 만들었고, 곧바로 책가도 작품 <청화, 푸른 빛에 책을 더하다>(도1)에 절제의 미학을 담았다. 사치의 상징인 청대의 도자기와 문방구, 골동품, 청동기, 시계 등을 최대한 걷어 내고, 국보 제219호 백자청화매죽문항아리를 비롯해 부귀영화와 무병장수의 의미를 지닌 그림이 그려진 다양한 모양의 청화백자와 복주머니, 부채, 모란, 동백꽃 등으로 서가를 채웠다.(도1-1) 서가와 책갑에는 길상문 패턴을 균일하게 넣고 톤만 다르게 표현한 주황빛으로 채색했다.
그리고 작년 봄, 제자들과 함께 ‘온도’ 첫 회원전 <온도溫圖–A Warm Day in April>을 개최하며 <책거리와 색의 조우 1, 2>(도2)를 제작했다. 작품에는 비현실적인 공간 처리와 치밀한 짜임새가 돋보이는 책거리를 모티브로 하여 입체와 평면의 경계를 오가며 길상의 상징들을 담았다. 기하학적인 무늬로 표현한 기물, 저채도와 흑백 대비의 색면으로 변주한 책거리는 <공존 Coexistence>(도3)으로 이어졌다. 이 작품은 정면을 응시한 파란 눈의 여인, 호피 무늬의 삭스부츠, 파초와 뱅갈고무나무, 공작 두 마리, 촘촘히 쌓아올린 책거리와 길상 문양이 한데 모여 있다. 과거와 현재, 동물과 식물, 입체와 평면처럼 이질적인 이미지들이 혼재되어있지만, 녹색과 보라색의 저채도 색감으로 연결되며 공존하는 세계를 보여준다.
민화로 이어가는 일상에 희망이 주는 설렘이 있듯, 작품에 나만의 감성을 색으로 표출하며 긍정의 영감을 불어넣는 과정에는 설렘이 가득하다. 그 설렘을 붓끝에 품고 있는 한 소중한 인연은 계속되지 않을까.


이수연 작가는 동덕여자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에서 한국화를 전공했으며, 아록 정승희 작가를 사사했다. 2015 코리아 아트 페스타 운영위원을 역임했으며, 2018년부터 2019년까지 2년간 서울 화원중학교 창체 동아리 민화 강의를 진행했다. 현재 (사)한국미술협회 회원, (사)대한민국전통공예협회 이사, 대한민국전통공예대전 운영위원, 아록 전통민화연구회 회원, 민연회 홍보이사, ‘온도’ 회장을 맡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서 이수연 민화 STUDIO를 운영하며, 고양시청 문화의 집 민화 강의를 하고 있다.

전시
2013 대한민국 전통공예협회 창립전
2015 대한민국 전통공예 페스타
2016~2017 고양아람누리 ‘그리다’전
2017 대한민국 대표 작가전
2018 고연민화 ‘이수연의 민화이야기’
2019 제1회 ‘온도’ 회원전
2019 한국화 구상회 회원전
민연회 회원전 외 다수

수상
2019 제5회 대한민국 민화대전 장려상
2020 제4회 전국민화공모대전 장려상
2020 제8회 대한민국전통공예대전 최우수상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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