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李白, 풍류 시인, 강물에 비친 달을 잡다

도 1. <이백기경도李白騎鯨圖>, 상주 남장사 극락보전 벽화

▲도 1. <이백기경도李白騎鯨圖>, 상주 남장사 극락보전 벽화

이백李白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한국사람치고 그 가사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할 만큼 대중적이고 대표적인 전래 동요의 한 구절이다. 그런데 이 노래에 등장하는 이태백은 중국 당唐시대의 시인으로, 태백은 자字이고, 이름은 백白이다. 이백은 주옥같은 명시를 많이 남겨 시선詩仙 혹은 적선謫仙이라 불리며 중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오랜 세월 사랑받아왔다. 전래 동요에도 등장하는 이태백은 민화에서도 인기리에 다루어진 대상이었다. 민화에서는 이백의 시를 주제로 한 시의도詩意圖 보다는 달을 즐기며 술을 마시던 이백의 풍류를 그린 고사인물도가 더 인기가 있는 듯하다. 이백이 강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다 물에 빠져 죽었고, 이후 신선이 되었다는 ‘착월捉月’의 고사를 그린 그림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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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좋아한 천재 시인

이백은 천부적 소질의 천재 시인으로 일찍이 당 현종의 부름을 받아 궁정에서 활동하였다. 이백과 함께 쌍벽을 이루었던 시인 두보杜甫는 그에 대해 “붓을 들어 글을 쓰면 비바람이 놀라고, 시가 이루어지면 귀신조차 울었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백은 자유분방한 기질의 소유자로 술과 도교에 심취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이백에게는 하늘에서 인간 세계에 떨어진 신선이라는 뜻으로 ‘적선謫仙’ 또 술을 좋아했던 호방함으로 인하여 ‘주선酒仙’이라는 칭호가 주어졌다.
이백은 사실 유교적 가치관을 지닌 인물로 정치적 야망도 컸으나 ‘관직에 올라 천하를 구제하겠다’는 그의 출사出仕의 꿈은 끝내 실현되지 못하였다. 여기서 비롯된 좌절과 분노를 그는 방탕한 행동과 술로 풀었고, 도교에 심취하였다. 이백이라는 인물상은 그의 죽음 이후 미화되고 신화적으로 각색되기도 하였다. 수도 장안에서 지낸 궁정시인으로서의 그의 삶은 만족스럽지 못했는데, 현종이 연꽃 핀 연못에 배를 띄우고 연회를 베풀면서 이백을 부르니 환관 고력사高力士(684~762)가 술 취한 이백을 부축하여 배에 오르게 하였다거나, 이백이 술에 취해 고력사에게 자신의 신을 벗기게 했다는 등의 일화는 자유분방하고 권력에 아부하지 않은 그의 기백을 부각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고래를 타고 신선이 된 시인

이백의 신비한 일화는 그의 죽음에 얽힌 이야기에서 정점을 찍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이백이 달밤에 최종지崔宗之와 함께 배를 타고 채석강采石江을 노니는데, 이백이 술에 만취한 채 강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고래를 타고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상주 남장사 극락보전의 벽화 중에 <이백기경상천도李白騎鯨上天圖>가 있다(도 1). 이 이야기는 “고래를 타고 가는 이백을 만나거든[若逢李白騎鯨魚]”이라는 두보杜甫의 시구절로 말미암아 와전되어 훗날의 사람들이 그렇게 믿게 된 것이다. 송나라 때의 시인 매요신梅堯臣(1002~1060)은 이백의 죽음을 두고 “응당 굶주린 교룡의 입에 떨어지지 않고 고래를 타고 푸른 하늘로 올라갔으리[不應暴落飢蛟涎 便當騎鯨上靑天]”라 노래하였다(「采石江贈郭公甫」). 또 송나라 시인 마존馬存(?~1096)도 이백을 노래한 시가 있는데(「燕思亭」), 이는 조선시대 선비들의 필독서였던 《고문진보》 전편에도 실려 있어서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시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李白騎鯨飛上天 이백이 고래 타고 하늘로 날아가니,
江南風月閑多年 강남의 풍월은 한가하게 여러 해 보냈네.
縱有高亭與美酒 설령 높은 정자와 좋은 술은 있다 하나,
何人一斗詩百篇 어느 누가 술 한 말에 시 백편을 지어 내랴?

강물 속의 달을 잡는 이백

민화 고사인물도에 그려진 이백의 이미지는 강물 속에 비친 달을 잡으려 두 손을 한껏 뻗은 풍류 시인 이백의 모습이다. 동아대 박물관 소장의 <시설농월도時仙弄月圖>(도 2)는 ‘시선 이백이 달을 희롱하다’는 뜻으로 이백은 화면 중앙 강물에 뜬 배 위에서 두 팔을 내밀고 있다. 강 물결 아래에 달이 잠겨 있고, 화면의 상단 먼 산 너머의 하늘에 떠 있는 둥근 달이 이에 호응한다. 때는 가을이라 울긋불긋 단풍이 든 산과 나무가 화려하고, 특히 이백이 입고 있는 녹·홍·청색의 옷이 시선을 잡아끈다.
계명대 박물관의 고사인물도 병풍 중에도 이백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도 3). 그림에 화제畵題가 없으므로 ‘채석강에서 달을 잡는다’는 뜻으로 ‘채석착월采石捉月’이라는 제목을 사용하고자 한다. 이 그림에서 산수 배경은 수묵으로 흑백처리 하였다. 산과 언덕에는 밧줄을 풀어놓은 듯한 해삭준 계열의 준법을 쓰고, 강의 물결은 그물망처럼 표현하였는데 여백을 남기지 않고 꼼꼼하게 붓질하였다. 반면 인물에는 채색을 짙게 사용하여 배경과 인물이 이질적인 듯하면서도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단, 이백이 잡고자 하는 달이 물속에도 하늘에도 보이지 않는다.
개인소장의 <채석착월도>(도4)는 좀 더 자유분방한 표현을 구사하여 이백의 호방한 기질을 강조해주는 듯하다. 인물과 배가 화면 상단에 가득 차게 그려져서 시원스러운 느낌이다. 강물에 비친 달과 하늘에 뜬 둥근 달이 서로 호응하였는데, 하늘의 달에는 방아 찧는 토끼가 그려졌다.
영남대 박물관의 산수병풍 중에도 이백의 주제가 그려진 화폭이 있다(도 5). 상하로 길쭉한 화면에 근경·중경·원경의 삼단 구성을 한 산수화 한 폭인데 자세히 보면 근경에 그려진 배를 탄 인물이 두 팔을 뻗어 물속에 비친 달을 잡으려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도 6). 이에 호응하는 하늘의 달은 화면 맨 위에 배치된 원경의 산 너머로 빠끔히 얼굴을 내밀고 있다.

대중이 사랑하고 꿈꾸었던 삶, 풍류 시인의 삶

이백은 황제 현종의 아낌을 받은 시인이기도 했지만 정치적 좌절을 경험하고 천하를 주유하기도 하였고, 안록산의 난이 일어나자 영왕永王의 막부에 종군하기도 하였다. 파란만장한 그의 생애에서대중이 기억하고 사랑했던 것은 무엇보다 풍류시인으로서의 이백의 면모였다고 할 수 있다. 강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 물에 빠져 죽었다는 낭만적 풍류객의 이미지는 대중이 기억하고 싶은 이백의 모습이었고 그들이 꿈꾸었던 이상적 삶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글 : 유미나(원광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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