ì´ë¦„ì„ ê°ì¶”ê³  싶었으나 ì´ë¦„ì´ ì•Œë ¤ì§„ 민화작가 ì„ê°• 황승규

월간 민화 ë‹µì‚¬íŒ€ì´ ë°©ë¬¸í•œ 황승규 ìƒê°€
민화작가 ì„ê°• 황승규

민화작가 ê°€ìš´ë° ìœ ì¼í•˜ê²Œ 세ìƒì— 알려진 화가는 ì„ê°• 황승규다. ì„ê°• 황승규는 ê·¸ì˜ ìž‘í’ˆì— ë‹¹ë‹¹í•˜ê²Œ ìžì‹ ì˜ ì´ë¦„ì„ ì¨ë„£ì—ˆë‹¤. ê·¸ê²ƒì€ ê·¸ ìžì‹ ì´ ê·¸ë¦¼ì„ ê·¸ë¦¬ê³  있다는 ê²ƒì— ëŒ€í•œ ê¸ì§€ì™€ ìžì‹ ì˜ ìž‘í’ˆì— ëŒ€í•œ ìžì‹ ê°ì—서 비롯ë˜ì—ˆë‹¤. ì„ê°• í™©ìŠ¹ê·œì— ëŒ€í•œ ì´í•´ëŠ” ìš°ë¦¬ë‚˜ë¼ ë¯¼í™”ë¥¼ ì´í•´í•˜ëŠ”ë° ì¤‘ìš”í•œ ì˜ì˜ë¥¼ 가진다.

민화는 ë¯¼ì¤‘ì„ ìœ„í•˜ì—¬ 민중 í™”ê°€ì— ì˜í•´ì„œ 그려진 그림ì´ë‹¤. 그러나 ë¯¼í™”ì— ëŒ€í•œ ê´€ì‹¬ì€ ê·¸ë¦¬ 오래ë˜ì§€ 않았다. 민화가 미술사ìƒìœ¼ë¡œ 훌륭한 ì—…ì ì„ 남겼ìŒì—ë„ ë¶ˆêµ¬í•˜ê³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ê²ƒì€ ì§€ë°°ì¸µ ì¤‘ì‹¬ì˜ ì—­ì‚¬ì¸ì‹ì—서 ë¹„ë¡¯ëœ ê²ƒì´ë‹¤. ì—­ì‚¬ì˜ ì£¼ì²´ë¥¼ ì§€ë°°ì¸µì´ ì•„ë‹Œ 피지배층 즉 민중 ì¤‘ì‹¬ì˜ ì—­ì‚¬ê´€ì´ ì •ë¦½ë˜ë©´ì„œ ë¯¼í™”ì— ëŒ€í•œ ê´€ì‹¬ì€ ë³¸ê²©í™”ë˜ì—ˆë‹¤.
민화는 ì˜ˆìˆ ì„ ìœ„í•œ ì˜ˆìˆ ì´ ì•„ë‹ˆë¼ ì‚¶ì„ ìœ„í•œ 예술ì´ë‹¤. 민화는 ì¼ë°˜ ë¯¼ì¤‘ì˜ ì‹¤ìš©ì ì¸ ìš”êµ¬ì— ë”°ë¼ ê·¸ë ¤ì§„ 소박하고 꾸밈없는 그림ì´ë‹¤. ë”°ë¼ì„œ 민화는 ì¼ì •한 장소와 때가 있었다. 민화는 ì˜ˆìˆ ì  í–‰ìœ„ë¥¼ 통한 ê·¸ë¦¼ì´ ì•„ë‹ˆë¼ ì‚¬ìš©í•  장소와 시기가 ê²°ì •ëœ ì´í›„ì— ìž‘ì—…ì„ ì‹œìž‘í•˜ì—¬ 완성한 그림ì´ê¸° 때문ì´ë‹¤. 민화는 공간ì ìœ¼ë¡œ ì¸ê°„ì´ ìƒí™œí•˜ëŠ” ìƒí™œê³µê°„ì„ ìž¥ì‹í•˜ëŠ” ë° ì´ìš©ë˜ì—ˆë‹¤. ìƒí™œê³µê°„ì„ íŽ¸ì•ˆí•˜ê³  아늑하게 때로는 훈시ì è¨“示的으로 장ì‹í•˜ê¸° 위해 ì´ìš©ëœ 실ìƒí™œì—서 없어서는 안 ë  ìƒí™œí™”였다. 민화는 시간ì ìœ¼ë¡œ ì‹œê¸°ì— ë”°ë¼ ê·¸ ìš©ë„와 기법, 주제를 달리하였다. 민화는 회갑ì´ë‚˜ 혼례 ë“±ì˜ í–‰ì‚¬ì™€ ì¼ ë…„ 중 중요한 절기 때마다 사용ë˜ëŠ” 그림으로 살아가는 ì‚¶ ê·¸ ìžì²´ë¥¼ 표현한 것ì´ì—ˆë‹¤. ì´ì²˜ëŸ¼ 민화가 실용ì ì¸ 그림ì´ë¼ëŠ” ì¸ì‹ì€ ë¯¼í™”ì˜ ë³´ì¡´ì— ì•…ì˜í–¥ì„ 미쳤다. 즉 민화는 ì“°ê³  버리는 것ì´ë¼ëŠ” ìƒê°ìœ¼ë¡œ ë³´ì¡´ì—는 ì‹ ê²½ì„ ì“°ì§€ 않아 연대가 올ë¼ê°€ëŠ” 민화가 ë§Žì´ ë‚¨ì•„ 있지 않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민화는 ë¯¼ì¤‘ì˜ ê¿ˆê³¼ 사랑, 믿ìŒì„ 표현한 그림ì´ë‹¤. 민화는 ë¯¼ì¤‘ë“¤ì˜ ê°€ìŠ´ ì†ì— 공유한 꿈과 í¬ë§ì„ 솔ì§í•˜ê²Œ 표현한 그림으로 ë¯¼ì¤‘ì˜ ì‚¶ê³¼ 얼과 ë©‹ì„ ëŠë‚„ 수 있다. 민화ì—는 ë¯¼ì¤‘ì´ ê°€ì§€ëŠ” 해학과 여유가 넘ì³í른다. 새로운 창조를 위한 기êµë¥¼ 부리기보다는 몇 번씩ì´ê³  ì¤‘ì²©ëœ í™”ë©´ì„ ê·¸ë ¤ë‚´ëŠ” 과정 ì†ì—서 능숙하고 넉넉한 ì‚¬ëž‘ì´ ë„˜ì¹˜ëŠ” ê·¸ë¦¼ì„ íƒ„ìƒì‹œì¼°ë‹¤. ì´ë“¤ì´ 그려낸 꾸밈없고 순순한 ë¯¼í™”ì˜ ì„¸ê³„ ì†ì—는 어린ì´ì˜ ê¿ˆê³¼ë„ ê°™ì€ ì›ìƒ‰ì ì¸ ì•„ë¦„ë‹¤ì›€ì´ ìžˆë‹¤. ì´ ê°™ì€ ë¯¼í™”ì˜ ê¸°êµì  서투름과 ì‚¶ì— ëŒ€í•œ 솔ì§í•œ í‘œí˜„ì€ ì—­ì„¤ì ìœ¼ë¡œ 민화를 ì˜ˆìˆ ì  ê²½ì§€ë¡œ 승화시키고 있다.
민화는 작가가 드러나지 ì•Šì€ ê·¸ë¦¼ì´ë‹¤. 민화는 ë¯¼ì¤‘ì„ ìœ„í•´ 민중 í™”ê°€ì— ì˜í•´ì„œ 그려진 그림ì´ê¸° ë•Œë¬¸ì— ìž‘ê°€ì™€ 제작연대가 알려져 있지 ì•Šì€ ê²ƒì´ íŠ¹ì§•ì´ë‹¤. 민화가 민중들ì—게 ìƒë‹¹í•œ ì¸ê¸°ë¥¼ 누리고 ìžˆì—ˆìœ¼ë©´ì„œë„ ê·¸ 작가가 알려지지 ì•Šì€ ê²ƒì€ ë‘ ê°€ì§€ ì´ìœ ì—서 비롯ëœë‹¤. 첫째, ë¯¼í™”ì˜ ëª©ì ì´ ìƒí™œ ì†ì˜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한 실용ì ì¸ 것ì´ì§€ 개성ì´ë‚˜ ë…ì°½ì„±ì„ í‘œí˜„í•˜ê³ ìž í•˜ëŠ” ê²ƒì´ ì•„ë‹ˆì—ˆê¸° 때문ì´ë‹¤. 둘째, 민화를 그리는 ìž‘ê°€ì— ëŒ€í•œ ì‚¬íšŒì  ì¸ì‹ì´ 그리 높지 않았기 때문ì´ë‹¤. 조선시대 ë„í™”ì„œì˜ í™”ì›ì„ ì–‘ë°˜ì´ ì•„ë‹Œ ì¤‘ì¸ ì‹ ë¶„ìœ¼ë¡œ 차별대우한 것과 마찬가지로 민화를 그리는 화가들ì—게 사회ì ìœ¼ë¡œ 정당한 지위를 부여하지 ì•Šì€ ê²ƒì€ ì–´ì©Œë©´ 당연한 것ì¸ì§€ë„ 모르겠다.

ê·¸ë¦¼ê°™ì€ í™©ìŠ¹ê·œì˜ ìƒì• 
황승규 산소. ìƒê°€ë¥¼ 내려다보고 있다.

▲황승규 산소. ìƒê°€ë¥¼ 내려다보고 있다.

í™©ìŠ¹ê·œì˜ í˜¸ëŠ” ì„강石岡ì´ë©°, ë³¸ê´€ì€ í‰í•´å¹³æµ·ì´ë‹¤. 그러나 그는 호보다는 ‘황노ì¸â€™ì´ë¼ëŠ” ë³„ì¹­ì´ ë” ì•Œë ¤ì ¸ 있었다. ê·¸ì˜ ê·¸ë¦¼ê³¼ 글씨를 â€˜í™©ë…¸ì¸ ê·¸ë¦¼â€™ â€˜í™©ë…¸ì¸ ê¸€ì”¨â€™ë¼ê³  불렀다. 황승규는 1886ë…„ 11ì›” 5ì¼ ì•„ë²„ì§€ ê±´ê³¼ 어머니 김녕 김씨 사ì´ì— 외ë™ì•„들로 태어나서 1962ë…„ 5ì›” 12ì¼ì— 향년 76세를 ì¼ê¸°ë¡œ 졸하였다. í™©ìŠ¹ê·œì˜ ì´ë¦„ì€ ì…‹ì´ë‹¤. 호ì ìƒì˜ ì´ë¦„ì€ í™©ì‘선黃應先ì´ë©°, í‰í•´í™©ì”¨ 족보ì—는 황기ì˜é»ƒçŽ˜è‹±ìœ¼ë¡œ ë˜ì–´ 있다. 실제 ë¶ˆë €ë˜ ì´ë¦„ì€ í™©ìŠ¹ê·œé»ƒæ˜‡å¥Žë¡œ 알려져 ìžˆëŠ”ë° ì¡±ë³´ì—는 ìžå­—ê°€ 승규昇奎로 ë˜ì–´ 있다.
실제 ì‚¬ìš©í–ˆë˜ ì´ë¦„ì€ í™©ìŠ¹ê·œì¸ë° 호ì ìƒì— 황ì‘선으로 오른 ê²ƒì€ ì¼ì œì‹œëŒ€ 창씨개명 때문으로 ìƒê°ë˜ë©°, ì¡±ë³´ì— í™©ê¸°ì˜ìœ¼ë¡œ ëœ ê²ƒì€ í•­ë ¬ìžë¥¼ 따서 ì´ë¦„ì„ ë°”ê¾¸ì–´ ì¡±ë³´ì— ë“±ìž¬í•˜ì˜€ê¸° 때문ì´ë‹¤. í‰í•´ 황씨 족보ì—는 황승규가 기ì˜çŽ˜è‹±ìœ¼ë¡œ 기ë¡ë˜ì–´ 있다.
황승규는 ê²½ë¶ í‰í•´ì 기성ì—서 태어나 ê°•ì›ë„ 삼척시 ê·¼ë•ë©´ ë™ë§‰ë¦¬ë¡œ ì´ì£¼í•˜ì˜€ë‹¤. ê·¸ì˜ ì•„ë²„ì§€ í™©ê±´ì€ í‰í•´ 기성면 ë•실ì—서 황대구黃垈ä¹ì˜ 둘째로 태어났으며, 결혼 후 삼척으로 ì´ì£¼í•œ 것으로 ìƒê°ëœë‹¤. 당시 장ìžìš°ìœ„ì˜ ìƒì†ìœ¼ë¡œ 선대로부터 별다른 ìž¬ì‚°ì„ ë¬¼ë ¤ë°›ì§€ 못한 í™©ìŠ¹ê·œì˜ ì•„ë²„ì§€ í™©ê±´ì€ ë™í•´ì•ˆì„ ë”°ë¼ ì˜¬ë¼ì™€ 삼척시 ê·¼ë•ë©´ ë™ë§‰ë¦¬ì— 정착하였다. ë”°ë¼ì„œ í™©ìŠ¹ê·œì˜ ê°€ì„¸ëŠ” 한미할 ìˆ˜ë°–ì— ì—†ì—ˆë‹¤.
황승규는 함창 ê¹€ì”¨ì™€ì˜ ì‚¬ì´ì— 외ë™ì•„들 ë³‘í•œç‚³æ¼¢ì„ ë‘었으며, ë³‘í•œì€ ì„¸ ì•„ë“¤ì„ ë‘었다. í™©ìŠ¹ê·œì˜ ë§ì†ìžê°€ 창회昌會ì¸ë°, 족보ì—는 í•­ë ¬ìžë¥¼ 따서 재회載會로 기ë¡ë˜ì–´ 있다. í™©ìŠ¹ê·œì˜ ê³„ë³´ë¥¼ 살펴보면 다ìŒê³¼ 같다.
황승규는 ê¸°ê³¨ì´ ìž¥ëŒ€í•œ 6ì²™ 거구였으나 í’ˆì„±ì€ ì¸ìží•˜ê³  온순하였다. 남ì—게 ì‹«ì€ ì†Œë¦¬ë¥¼ í•  줄 모르고 ë‚¨ì˜ ë¶€íƒì„ 받으면 거절하지 못하는 성미였다.
ì–´ëŠ ë‚  친구로부터 화투 한 벌만 그려달ë¼ëŠ” ë¶€íƒì„ 받고 밤새 화투 한 ë²Œì„ ì •ì„±ìŠ¤ë ˆ 그려 다ìŒë‚  아침 친구ì—게 건네주었다. ì´í›„ ë™ë„¤ 화투는 ê·¸ì˜ ëª«ì´ ë˜ì—ˆë‹¤. ë”°ë¼ì„œ ê·¸ì—게는 늘 ë§Žì€ ì¹œêµ¬ê°€ 함께 했으며, ì¸ê·¼ì˜ ì¹­ì†¡ì´ ìžìží•˜ì˜€ë‹¤.
황승규가 가장 ê°€ê¹ê²Œ ì§€ëƒˆë˜ ì‚¬ëžŒì€ ì˜¥ëžŒçŽ‰è— í•œì¼ë™éŸ“溢æ±ì´ì—ˆë‹¤. 한ì¼ë™ì€ 당시 ê°•ì›ë„ 근대 서화가를 대표한 ì¸ë¬¼ì´ì—ˆë‹¤. 황승규는 한ì¼ë™ë³´ë‹¤ 7ì‚´ 연하였다. ë‘ ì‚¬ëžŒì€ ë§ìˆ ì„ 마다하지 ì•Šì„ ì •ë„였으나 ìˆ ì— ì·¨í–ˆë‹¤ê³  하ë”ë¼ë„ 한 ì  í트러ì§ì´ 없었다. í™©ìŠ¹ê·œì˜ ìƒê°€ì— ê±¸ë ¤ìžˆë˜ â€˜çŸ³å²¡â€™ì´ë¼ëŠ” 현íŒì€ 바로 한ì¼ë™ì˜ 작품ì´ë‹¤. 한ì¼ë™ì´ í™©ìŠ¹ê·œì˜ í˜¸ë¥¼ 지어주고 ì§ì ‘ 글씨를 ì¨ì„œ 보내준 것ì´ì—ˆë‹¤. 그러나 ì§€ê¸ˆì€ ë„난당하여 ìƒê°€ì—서 ì´ë¥¼ 확ì¸í•  수 없다.
황승규는 다재다능하여 ‘칠능七能’ì´ë¼ê³  불렀다. 시詩·서書·화畵·기棋·주酒·재담æ‰è«‡ì— 뛰어난 ëŠ¥ë ¥ì„ ë°œíœ˜í•˜ì˜€ë‹¤. ë‚˜ì´ 20ì„¸ì— ë™ë„¤ 사람들로부터 ‘문장가 어른’ ë˜ëŠ” ‘황문장黃文章 어른’으로 불릴 ë§Œí¼ ë¬¸ìž¥ë ¥ì´ ë›°ì–´ë‚¬ë‹¤. 그리고 그는 ê¸°ì–µë ¥ì´ ë›°ì–´ë‚˜ê³  ë°°ìš°ê³ ìž í•˜ëŠ” ì§‘ë…ì´ ëŒ€ë‹¨í•˜ì—¬ ìž¥ê¸°Â·ë°”ë‘‘ì€ ìŠ¤ìŠ¤ë¡œ ìµí˜€ 그를 당해낼 ìžê°€ 없었다. ê·¸ì˜ ì†ìž¬ì£¼ ë˜í•œ 뛰어났다. ë’·ê°„ì—서 ìš©ë³€ì„ ë³´ëŠ” ë™ì•ˆ 한지를 꼬아서 만든 지승紙繩 씨앗 바구니를 만들어서 ë‚˜ì˜¤ê¸°ë„ í•˜ì˜€ë‹¤. 특히 ê·¸ì˜ ìž¬ë‹´æ‰è«‡ì€ ì¢Œì¤‘ì„ ì••ë„하였고 한번 시작하면 ëë‚  ì¤„ì„ ëª°ëžë‹¤. ì‚¬ëž‘ë°©ì— ëª¨ì—¬ ë“  ì‚¬ëžŒì„ ìƒëŒ€ë¡œ 얘기를 시작하여 ë§ë¬¸ì´ 터졌다 하면 삼국지는 한 ë‹¬ì´ ê±¸ë ¤ë„ ë나지 않았다. 구수하고 재치 있게 ëŒì–´ê°€ëŠ” ë§ì†œì”¨ëŠ” ì´ì•¼ê¸°ì±… ì†ì˜ 주ì¸ê³µê³¼ ë‹¹ì‹œì— í•¨ê»˜ ì‚´ì•˜ë˜ ë“¯ì´ ìƒë™ê°ì´ 있어서 듣는 ì‚¬ëžŒë“¤ì€ ë°¤ìƒˆë„ë¡ ë³´ì±„ê³  성화를 대었다.

ìƒê³„를 위해 ë°°ìš´ 민화

황승규가 민화를 ì²˜ìŒ ë°°ìš´ ê²ƒì€ ì´ì´ˆì‹œ 어른으로 알려진 ì´ê·œí™©æŽåœ­ç’œì´ë‹¤. ì´ê·œí™©ì€ í™©ìŠ¹ê·œì˜ ìƒê°€ê°€ 있는 삼척시 ê·¼ë•ë©´ ë™ë§‰ë¦¬ì˜ ê°• 건너편 삼척시 ê·¼ë•ë©´ ë¶€ë‚¨ë¦¬ì— ì‚´ë©´ì„œ 대대로 민화를 그려온 집안ì´ë‹¤. ì´ê·œí™©ì€ 아들 ì´ì¢…하ì—게 민화를 전수하였다. ì´ê·œí™©ì€ 1868ë…„ìƒìœ¼ë¡œ 황승규보다는 18세 연장ìžì˜€ë‹¤. ì´ê·œí™©ì€ ê·¸ì˜ ì•„ë“¤ ì´ì¢…하æŽé¾å¤ì™€ 황승규ì—게 민화를 가르쳤다. 황승규는 ê·¸ë¦¼ì— ëŒ€í•œ ì‹¤ë ¥ì´ ì¶œì¤‘í•˜ê³  ì†ìž¬ì£¼ê°€ 뛰어나 ì´ê·œí™©ì—게 그림공부를 시작한 ì§€ ë°˜ë…„ë„ ëª»ë˜ì–´ ë” ì´ìƒ 배울 ê²ƒì´ ì—†ì—ˆë‹¤. ì´í›„ 스스로 ìžì‹ ì˜ ì†ìž¬ì£¼ë¥¼ 바탕으로 지혜를 모아 ë…í•™ì„ í•˜ì˜€ë‹¤.
재주가 좋고 ê·¸ë¦¼ì„ ìž˜ 그린다는 ì†Œë¬¸ì´ í¼ì§€ë©´ì„œ ì£¼ë¬¸ì´ ì‡„ë„하였다. 당시 병í’ì˜ ìˆ˜ìš”ëŠ” ìƒë‹¹ížˆ ë§Žì€ íŽ¸ì´ì—ˆë‹¤. ì›¬ë§Œí¼ ì‚¬ëŠ” ì§‘ì—서는 다양한 ìš©ë„ì˜ ë³‘í’ì„ ë§ˆë ¨í•˜ê³ ìž í•˜ì˜€ë‹¤. í˜¼ë³‘å©šå±›ì€ ë¶€ë¶€ì˜ ì¸ì—°ì„ ë§ºì„ ë•Œ 쓰는 모란 병í’, ì‹ ëž‘, ì‹ ë¶€ì˜ ì‹ ë°© 분위기를 ê°ì‹¸ì£¼ë˜ 화조병í’ì´ ìžˆì—ˆë‹¤. ì œë³‘ç¥­å±›ì€ ì œì‚¬ë‚˜ ìž¥ë¡€ì‹ ë•Œ 사용하는 것으로 글씨나 사군ìžë¥¼ 색깔 ì—†ì´ ê·¸ë ¸ë‹¤. ì´ì™¸ì— ì¼ìƒë³‘日常屛으로 ë…¸ì¸ë°© 외í’ì„ ë§‰ì•„ì£¼ëŠ” 머리병í’, 아낙네가 화장할 때 가려주는 가리개 ë³‘í’ ë“±ì´ ìžˆì—ˆëŠ”ë°, ì´ë“¤ì€ ê°ìƒìš©ì´ ì•„ë‹ˆë¼ ìž¥ì‹ì„ 위주로 하는 실용ì ì¸ 병í’ì´ì—ˆë‹¤.
황승규는 ê·¸ë¦¼ì„ ê·¸ë¦´ 때 침ì‹ì„ ìžŠì„ ì •ë„로 몰ë‘하였다. 아침 ì¼ì° 작업 시작하는 ê²ƒì„ ë³´ê³  ê°€ì¡±ë“¤ì´ ì´ì›ƒ ë™ë¦¬ 잔치를 보러 갔다가 ì €ë…ì´ ë˜ì–´ ì§‘ì— ëŒì•„와 ë³´ë©´ ì•„ì¹¨ì— ë– ë‚  때 ìžˆì—ˆë˜ ê·¸ ìžë¦¬ì—서 ì¡°ê¸ˆë„ ìžì„¸ë¥¼ í©íŠ¸ë¦¬ì§€ 않고 ìž‘í’ˆì— ëª°ë‘하고 있었다. ì ì‹¬ì„ 걸러가며 ë¼ë‹ˆë¥¼ ìžŠì€ ì±„ ì¼ë§Œ í•  때가 많았다. 때로는 먼 ê³³ì—서 ì£¼ë¬¸ì´ ë“¤ì–´ì˜¤ë©´ í•œë‘ ë‹¬ ì§‘ì„ ë– ë‚˜ ìœ ëž‘í™”ê³µæµæµªç•µå·¥ ë…¸ë¦‡ë„ í•˜ì˜€ë‹¤. 호구지책으로 ê·¸ë¦¼ì„ ê·¸ë¦°ë‹¤ê³  하ë”ë¼ë„ 황승규는 ê·¸ë¦¼ì„ ê·¸ë¦¬ëŠ” ê·¸ ìžì²´ë¥¼ ì¦ê²¼ë‹¤.
그러나 후ì†ì—게는 민화를 그리는 í™”ì—…ç•µæ¥­ì„ ì „ìˆ˜í•˜ì§€ 않았다. â€˜ê·¸ë¦¼ì„ ê·¸ë¦¬ë©´ ëˆˆì´ ë¹ ì§„ë‹¤â€™ê³  í•  ë§Œí¼ íž˜ë“  작업ì´ê¸°ë„ 했지만 ë¬´ì—‡ë³´ë‹¤ë„ í™˜ìŸì´ë¼ëŠ” ì‚¬íšŒì  ë©¸ì‹œë¥¼ 전수하고 ì‹¶ì§€ ì•Šì•˜ë˜ ê²ƒì´ë‹¤. ê³ í–¥ì„ ë– ë‚˜ì™€ì„œ ìƒí™œ ê¸°ë°˜ì„ ë§ˆë ¨í•˜ê¸° 위해 민화를 그리기는 하였지만 민화 ìž‘ê°€ì— ëŒ€í•œ 당시 ì‚¬íšŒì  ì§€ìœ„ëŠ” 매우 열악하였다.
황승규는 민화를 그리는 것과 함께 표구하여 병í’으로 만드는 ìž‘ì—…ë„ ì†ìˆ˜í•˜ì˜€ë‹¤. 10í­ ë³‘í’ì„ ê¸°ì¤€ìœ¼ë¡œ 종ì´ì— 그릴 경우ì—는 15ì¼ ì •ë„ê°€ 걸렸으며, ì˜¥ì–‘ëª©ì— ê·¸ë¦´ 경우ì—는 한 달 ì •ë„ê°€ 걸렸다. 당시 ë³‘í’ í•œ í‹€ì˜ ê°€ê²©ì´ ìŒ€ 3~4가마 ì •ë„였ìŒì„ 고려하면 민화를 그려서 겨우 ìƒê³„를 유지할 ì •ë„ì— ì§€ë‚˜ì§€ 않았ìŒì„ 알 수 있다.
황승규는 단청작업ì—ë„ ì°¸ì—¬ 하였다. 오대산 월정사를 비롯하여 ê·¼ë•ë©´ì— ìžˆëŠ” ì‹ í¥ì‚¬ì˜ 단청 ìž‘ì—…ì— ì°¸ì—¬í•˜ì˜€ë‹¤. 단청 ìž‘ì—…ì€ ê³ ë„ì˜ ê¸°ìˆ ì„ í•„ìš”ë¡œ 하는 ê³³ì´ì—ˆì„ ë¿ë§Œ ì•„ë‹ˆë¼ ëª©ëˆì„ 만질 수 있는 기회였다. í™©ìŠ¹ê·œì˜ ìž‘í’ˆì„ ë³´ë©´ 유채油彩보다는 분당채粉å”彩가 ë§Žì´ ë°œê²¬ë˜ëŠ” ê²ƒì€ ë¯¼í™”ë¥¼ 그리면서 단청안료를 ë§Žì´ ì‚¬ìš©í•˜ì˜€ìŒì„ 알 수 있다.
황승규는 글씨ì—ë„ ì¡°ì˜ˆê°€ 깊었다. í•´ì„œæ¥·æ›¸Â·í–‰ì„œè¡Œæ›¸Â·ì´ˆì„œè‰æ›¸ 3ì²´ 모ë‘를 잘 ì¼ë‹¤. 민화ì—는 í”치 않는 화제畵題를 ì§ì ‘ ì¼ë‹¤. 그리고 병í’ì˜ ë’·ë©´ì—ë„ í–‰ì„œè¡Œæ›¸ë‚˜ ì´ˆì„œè‰æ›¸ë¡œ 글씨를 ì¨ì£¼ì—ˆë‹¤. ê·¸ì˜ ê¸€ì”¨ëŠ” 가장 가까운 친구로 ì§€ëƒˆë˜ ì˜¥ëžŒçŽ‰è— í•œì¼éŸ“溢æ±ì˜ ì˜í–¥ì´ í° ê²ƒìœ¼ë¡œ ìƒê°ëœë‹¤.
ê·¸ëŸ°ë° í™©ìŠ¹ê·œì˜ ê¸€ì”¨ ê°€ìš´ë° ì£¼ëª©ë˜ëŠ” ê²ƒì€ ì†Œìœ„ ‘민서民書’ë¼ëŠ” 것ì´ë‹¤. 민서民書는 민화와 대칭ë˜ëŠ” 것으로 회화ì ì´ê³  ìƒí˜•ì ì¸ 글씨를 ë§í•œë‹¤. 민서民書는 ì¸ê°„ì˜ ë³¸ëŠ¥ì ì¸ 작태作態·êµíƒœå¬Œæ…‹Â·ì¶˜ì˜æ˜¥æ„ ë“±ì„ ì€ìœ ì ìœ¼ë¡œ ì“´ 글씨를 ì¼ì»¬ìœ¼ë©°, 작위ì ì´ê³  í•´í•™ì ì¸ ê´€ë…세계와 ì˜ˆìˆ ì  ì‹œê°ì—서 형ìƒí™”ëœ ê¸€ì”¨ë¼ í•  수 있다. ìµì‚´ìŠ¤ëŸ½ê³  ë¹ˆì •ê±°ë¦¼ì— ì ˆë¡œ 웃ìŒì„ ìžì•„내는 민서民書는 ì‚¬ëŒ€ë¶€ì˜ ì‚¬ëž‘ë°©ê³¼ ê°™ì€ ìž¥ì†Œì—는 절대 금물ì´ì—ˆìœ¼ë‚˜ ì‹ í˜¼ë°©ì˜ í™”ì¡°ë³‘í’ ë’¤ì— ì¢…ì¢… 등장하였다.

í‰í•´ 황씨 족보ì—는 황승규가 기ì˜çŽ˜è‹±ìœ¼ë¡œ 기ë¡ë˜ì–´ 있다.

â–²í‰í•´ 황씨 족보ì—는 황승규가 기ì˜çŽ˜è‹±ìœ¼ë¡œ 기ë¡ë˜ì–´ 있다.

í™©ìŠ¹ê·œì˜ ìž‘í’ˆì˜ ì„ ê³¼ 색

황승규 ë¯¼í™”ì˜ íŠ¹ì§•ì€ ì„ ê³¼ ìƒ‰ì— ìžˆë‹¤. ëŒ€ë¶€ë¶„ì˜ ì„ ì€ ë‘툼하고 힘차다. ê·¸ëŸ¬ë©´ì„œë„ ì˜¨ìœ í•˜ê³  매ë„럽다. 그래서 황승규 ë¯¼í™”ì˜ í˜•ìƒë“¤ì€ ì›ë§Œåœ“滿으로 ê°€ë“ ì°¨ìžˆë‹¤. í™©ìŠ¹ê·œì˜ ìƒ‰ì€ â€˜ìƒ‰ì˜ ë§ˆìˆ ì‚¬â€™ë¼ê³  불릴 ë§Œí¼ ìƒ‰ì„ êµ¬ì‚¬í•˜ëŠ” ëŠ¥ë ¥ì´ ë›°ì–´ë‚¬ë‹¤.
ì èµ¤ ·청é‘·황黃·í‘é»‘Â·ë°±ç™½ì˜ ìƒ‰ê¹”ì„ ì‚¬ìš©í•˜ë©´ì„œ 색ìƒì˜ 대비, ì¡°í™”, 균형, 비례가 기막힌 관계를 ì´ë£¨ë©° 색다른 ë©‹ì„ ë³´ì—¬ì£¼ê³  있다.
í™©ìŠ¹ê·œì˜ ë¯¼í™”ë³‘í’ì€ ëª‡ë°± í‹€ì´ ë„˜ì„ ë§Œí¼ ë§Žì€ ìž‘í’ˆì´ ì „í•´ì§€ê³  있다. ê·¸ 수만í¼ì´ë‚˜ 산수ë„, 화조ë„, ì±…ê°€ë„, ì˜ëª¨ë„, 문ìžë„ 등 다양한 ê·¸ë¦¼ì„ ë³´ì—¬ì£¼ê³  있다. ì´ ê°€ìš´ë° ê°€ìž¥ ë§Žì€ ê²ƒì€ ë¬¸ìžë„다. ì „ì²´ ë¯¼í™”ì˜ ì•½ 80%ê°€ 문ìžë„다. 황승규 문ìžë„ì˜ íŠ¹ì§•ì€ ì •í˜•í™”ëœ ë¬¸ìžë„ ì†ì— ìƒê°í•œ 듯 ìƒì§•ì„±ì„ ê·¸ë ¤ 넣고 문ìžë¥¼ 중심으로 ìƒë‹¨ì´ë‚˜ í•˜ë‹¨ì— ì‚°ìˆ˜, 화조, 책거리 ë“±ì„ ì²¨ê°€í•˜ì—¬ ì´ì¤‘구ë„를 ì´ë£¨ê³  있다. 그리고 반드시 화제畵題를 ì ì—ˆìœ¼ë©°, 강렬한 ë‹¨ì²­ë¥˜ì˜ ì±„ìƒ‰ì„ í•˜ê³  있는 것ì´ë‹¤.
ê°€íšŒë°•ë¬¼ê´€ì— ì†Œìž¥ë˜ì–´ 있는 화조문ìžë„花鳥文字圖는 ê·¸ì˜ í›„ê¸°ìž‘ìœ¼ë¡œ 추정ë˜ëŠ” 걸작ì´ë‹¤. 문ìžë„는 ì‚¼ê°•ì˜¤ë¥œä¸‰ç¶±äº”å€«ì˜ êµí›ˆì ì´ê³  길ìƒì ì¸ ëœ»ì„ ì§€ë‹Œ 문ìžë¥¼ 통해 소ë§í•˜ëŠ” ê²ƒì„ ì´ë£¨ê³ ìž 하는 ì˜ë„ì—서 ì œìž‘ëœ ê·¸ë¦¼ì´ë‹¤. 특히 효제ë„는 문ìžë„를 대표하는 것으로 효å­Â·ì œæ‚ŒÂ·ì¶©å¿ Â·ì‹ ä¿¡Â·ì˜ˆç¦®Â·ì˜ç¾©Â·ì—¼å»‰Â·ì¹˜æ¥ì˜ ì—¬ëŸ ê¸€ìžì— íšŒí™”ì  ìš”ì†Œë¥¼ 가미한 그림ì´ë‹¤. 그리고 화조ë„는 꽃과 새가 í•œë° ì–´ìš¸ëŸ¬ì ¸ 아름다운 조화를 ì´ë£¨ëŠ” 그림ì´ë‹¤. 화조문ìžë„花鳥文字圖는 ì´ ë‘ ê°€ì§€ë¥¼ ìƒÂ·í•˜ë‹¨ì— ì´ì¤‘으로 배치한 그림ì´ë‹¤.
ê°€íšŒë°•ë¬¼ê´€ì— ì†Œìž¥ë˜ì–´ 있는 책거리 문ìžë„는 ê·¸ì˜ ëŒ€í‘œìž‘ì´ë¼ 할만하다. ì±…ê±°ë¦¬ê·¸ë¦¼ì€ ì±…ì„ ì¤‘ì‹¬ìœ¼ë¡œ 문방사우나 í˜¹ì€ ì´ì™€ ê´€ë ¨ëœ ë¬¼ê±´ë“¤ì„ ê·¸ë¦° 것으로 주로 ì„ ë¹„ë“¤ì˜ ì‚¬ëž‘ë°©ì´ë‚˜ 서재를 장ì‹í•˜ì˜€ë‹¤. 책거리그림ì—는 ì„ ë¹„ë“¤ì˜ ì• ìž¥ë¬¼ì¸ ì±…ê³¼ 문방사우를 중심으로 ì‚¬ëž‘ë°©ì˜ ê¸°ë¬¼ì¸ ë„ìžê¸°Â·í™”병·화분·부채 등과 ì„ ë¹„ì˜ ì—¬ê°€ ìƒí™œê³¼ ê´€ë ¨ëœ ìˆ ë³‘Â·ìˆ ìž”Â·ë‹´ë±ƒëŒ€ ·악기·ë„검·활·투호·바둑íŒÂ·ì‹œê³„·대모 안경 ë“±ì„ ì±… 사ì´ì— ì ì ˆí•˜ê²Œ 배치하여 조화를 ì´ë£¨ê²Œ 하였다. 책거리 문ìžë„는 책거리그림과 문ìžë„를 ìƒÂ·í•˜ë‹¨ì— ì´ì¤‘으로 배치한 그림ì´ë‹¤.
ì´ë“¤ 문ìžë„ì—는 ê° ê¸€ìžë§ˆë‹¤ 4ê°€ì§€ì˜ ê³ ì‚¬ë¥¼ 화제畵題로 기ë¡í•˜ê³ , ê¸€ìž ì†ì— 그림으로 그려 넣었다. íš¨å­ ê¸€ìžì—는 효와 관련하여 화제로 ‘대순탄금大舜彈ç´, 왕ìƒë¹™ë¦¬çŽ‹ç¥¥æ°·é¯‰, 맹종ì죽孟宗泣竹, 황향선침黃香扇枕’를 ì¼ë‹¤. 그리고 ì´ì™€ ê´€ë ¨ëœ ê³ ì‚¬ë¥¼ 그렸다. 진나ë¼ì˜ ì„ ë¹„ì¸ ì™•ìƒì´ 계모를 위해 ì–¼ìŒì„ 깨고 잉어를 잡아드렸다는 고사, ìˆœìž„ê¸ˆì´ ëˆˆë¨¼ 아버지와 계모 ì´ë³µë™ìƒì˜ 구박 ì†ì—ì„œë„ íš¨ì‹¬ì„ ì§€ì¼œ 요임금으로부터 양위를 받았다는 ì´ì•¼ê¸°, 오나ë¼ì˜ ë§¹ì¢…ì´ í•œ 겨울 눈 ì†ì—서 노모를 위해 뜨거운 눈물로 ì£½ìˆœì„ ìžë¼ê²Œ 했다는 고사, 후한 í™©í–¥ì´ í™€ë¡œëœ ì•„ë²„ì§€ë¥¼ 위해 여름ì—는 ë¶€ì¹œì˜ ì´ë¶€ìžë¦¬ì™€ 베개를 부채로 ë¶€ì³ ì‹œì›í•˜ê²Œ 하고, 겨울ì—는 ìžì‹ ì˜ 몸으로 ì´ë¶€ìžë¦¬ë¥¼ ë°ì›Œ 따뜻하게 해드렸다는 고사를 그렸다.
제悌 글ìžì—는 í˜•ì œê°„ì˜ ìš°ì• ì™€ ê´€ë ¨ëœ í™”ì œë¡œ ‘춘회재분春回載盆, ìƒì²´í™”í™å°™èŠ±ç´…, ì¼ë‚œëª…ì›æ—¥æš–鳴園, 척령화명和鳴’를 ì¼ë‹¤. 그리고 ê´€ë ¨ëœ ê³ ì‚¬ë¥¼ 그려 넣었다. 옥매화는 형제 ìš°ì• ê°€ 좋아야 옥매화처럼 번창한다는 ê²ƒì„ ì˜ë¯¸í•˜ë©°, 산앵ë‘ë‚˜ë¬´ì˜ ê½ƒê³¼ 꽃받침, 꽃과 ìžŽì€ ì„œë¡œ ë•ê³  ì˜ì§€í•˜ëŠ” 형제애를 ìƒì§•한다. 할미새 ë‘ ë§ˆë¦¬ê°€ 정답게 벌레나 ê½ƒìžŽì„ ë‚˜ëˆ„ì–´ 먹는 ëª¨ìŠµì€ í˜•ì œì• ë¥¼ 보여주며, 시ë„럽게 우는 ëª¨ìŠµì€ í˜•ì œê°„ì— ë‹¤ê¸‰í•  때 서로 알려준다는 ì˜ë¯¸ì´ë‹¤.
ì¶©å¿  글ìžì—는 임금ì—게 충성하고 êµ°ì‹ ê°„ì˜ í™”í•©ê³¼ 관련하여 화제로 â€˜ë¹„ìš°ê°„ìŸæ¯”于諫爭, 용봉ì§ì ˆé¾é€¢ç›´ç¯€, 어변성룡魚變æˆé¾, 하합ìƒí•˜é°•蛤相賀’를 ì¼ë‹¤. 그리고 ê´€ë ¨ëœ ê³ ì‚¬ë¥¼ 그려 넣었는ë°, 잉어가 ìš©ë¬¸ì„ ì°¨ê³  올ë¼ì„œ ìš©ì´ ë˜ì—ˆë‹¤ëŠ” 소위 어변성룡魚變æˆé¾ì€ ê³¼ê±°ì— ê¸‰ì œí•˜ì—¬ 임금ì—게 ì¶©ì„±ì„ ë°”ì¹˜ëŠ” ê²ƒì„ ì˜ë¯¸í•œë‹¤. 새우鰕와 조개蛤는 ê·¸ ë°œìŒì´ 화합和åˆê³¼ 유사하여 êµ°ì‹ ê°„ì˜ í™”í•©ì„ ì´ë£¨ì–´ 충성하는 ê²ƒì„ ì˜ë¯¸í•œë‹¤.
ì‹ ä¿¡ 글ìžì—는 화제로 ìƒë¦¼ì¶”í’上林秋風, 백안전신白é›å‚³ä¿¡, 요지벽ë„瑤池碧桃, 청조애남é‘鳥哀를 ì¼ë‹¤. 그리고 ì´ì™€ 관련하여 요지춘ê¶ç‘¤æ± æ˜¥å®®ìœ¼ë¡œë¶€í„° 서왕모西王æ¯ê°€ 온다는 소ì‹ì„ 전하는 ì²­ì¡°é‘鳥와 ìƒë¦¼æ¡‘æž—ì—서 편지를 물고 온 í°ê¸°ëŸ¬ê¸°ë¥¼ 그렸다. ì´ëŠ” 믿ìŒì´ 서로 약ì†í•˜ê³  ì˜ì‚¬ë¥¼ 전하는 것ì—서부터 시작ëœë‹¤ëŠ” ê²ƒì„ ì˜ë¯¸í•œë‹¤.
예禮 글ìžì—는 화제로 â€˜ë‚™ê·€ë¹ˆë„æ´›é¾œè² åœ–, 천지절문天地節文, í–‰ë‹¨ì¶˜í’æå£‡æ˜¥é¢¨, 강론시서講論詩書’를 ì¼ë‹¤. 예禮 글ìžì™€ ê´€ë ¨ëœ ê·¸ë¦¼ìœ¼ë¡œ ì±…ì„ ì§„ ê±°ë¶ì´ë¥¼ 그렸다. ì±…ì„ ë“±ì— ì§„ ê±°ë¶ì´ëŠ” 중국 하ë„낙서河圖洛書 고사와 관련ëœë‹¤.
ì˜ç¾© 글ìžì—는 화제로 ‘ë¡í•˜ì§€ë‹¹ç¥¿è·æ± å¡˜, 관저화조關雎和鳥, ë„ì›ê²°ì˜æ¡ƒåœ’çµç¾©, 작작기화ç¼ç¼å…¶èŠ±â€™ë¥¼ ì¼ë‹¤. ê·¸ë¦¼ì€ ì‚¼êµ­ì§€ì— ë‚˜ì˜¤ëŠ” 유비, 관우, 장비가 ë„ì›æ¡ƒåœ’ì—서 ì˜í˜•제를 맺는 ë„ì›ê²°ì˜æ¡ƒåœ’çµç¾©ì™€ ì£¼ë‚˜ë¼ ë¬´ì™•ì´ ì€ë‚˜ë¼ë¥¼ í† ë²Œí•˜ìž ë°±ì´, 숙제는 ì´ë¥¼ ë¶€ë„ëŸ¬ì´ ì—¬ê¸°ê³  ìˆ˜ì–‘ì‚°ì— ìˆ¨ì–´ë“¤ì–´ 고사리와 나물로 연명하였다는 고사를 그렸다.
염廉 글ìžì—는 ‘염계한천廉溪寒å·, 전진후퇴å‰é€²å¾Œé€€, 율리송국栗里æ¾èŠ, 울림재ì„鬱林載石’를 ì¼ë‹¤. 관련 ê·¸ë¦¼ì€ ìˆ˜ì²œë§Œ 리를 ë‚ ê³  ë°°ê°€ ê³ íŒŒë„ ì¡°ë¥¼ ì¡°ì•„ 먹지 않고, 오ë™ë‚˜ë¬´ 그늘ì—서만 ìž ì„ ìž”ë‹¤ëŠ” ì²­ë ´í•¨ì„ ìƒì§•하는 ë´‰í™©ì„ ê·¸ë ¸ë‹¤. 염치를 아는 êµ°ìžëŠ” 들어설 때와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한다는 ì˜ë¯¸ì—서 뒷걸ìŒì§ˆ 치는 게를 그려 넣었다. 그리고 요임금 때 허유許由는 ë¬¸ì™•ì´ ì œìƒì˜ ìžë¦¬ë¥¼ ë§¡ì•„ 달ë¼ëŠ” ìš”ì²­ì„ ë°›ê³  당장 ëƒ‡ë¬¼ì— ê·€ë¥¼ 씻었고, ì´ ì†Œë¦¬ë¥¼ ë“¤ì€ ì†Œë¶€å·¢çˆ¶ëŠ” ìžê¸°ì˜ 소가 ê·¸ ë¬¼ì„ ë§ˆì‹¤ê¹Œ ë‘려워했다는 ë‚´ìš©ì„ ë‹´ê³  있다.
ì¹˜æ¥ ê¸€ìžì—는 화제畵題로 ‘수양매월首陽梅月, ì´ì œì²­í’夷齊淸風, 유유ë„중悠悠途中, 사금불수辭金ä¸å—’를 ì¼ë‹¤. ë°±ì´ì™€ 숙제가 ìˆ˜ì–‘ì‚°ì— ë“¤ì–´ê°€ 고사리를 ìºë¨¹ê³  ì‚´ì•˜ëŠ”ë° ê·¸ë“¤ì„ ëŒì•„오게 하려고 ì‚°ì— ë¶ˆì„ ì§€ë¥´ë‹ˆ 그냥 ì‚°ì†ì—서 타죽었다는 ì¼í™”와 관련한 ê·¸ë¦¼ì„ ê·¸ë ¸ë‹¤. ë°±ì´ì™€ ìˆ™ì œì˜ ìˆ˜ì–‘ë§¤ì›”é¦–é™½æ¢…æœˆë¥¼ 형ìƒí™”한 매화와 ê·¸ë“¤ì˜ ë¬´ë¤, 위패, ì›”ìƒë„를 그려 넣었다.

책거리 효제문ìžë„ 8í­ ë³‘í’, 황승규 作, 지본채색, 33×104cm,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책거리 효제문ìžë„ 8í­ ë³‘í’, 황승규 作, 지본채색, 33×104cm,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후ì†ì—게 남겨준 산수화

민화ì—서 산수화는 ì •í†µíšŒí™”ì˜ ê´€ë…산수ì—서 í¬ê²Œ 벗어나지는 않지만 보다 ìžìœ ìŠ¤ëŸ½ê³  ë…ì°½ì ì¸ ë©´ì´ ìžˆì–´ ì´ë“¤ 그림과 구분ëœë‹¤. 산수민화山水民畵는 소ìƒíŒ”경과 ê´€ë™íŒ”ê²½ì„ ì£¼ë¡œ 그렸다. í™©ìŠ¹ê·œì˜ ì‚°ìˆ˜ë¯¼í™” ê°€ìš´ë° ëŒ€í‘œìž‘ì€ ì†ìž 황창회가 소장하고 있는 작품ì´ë‹¤. 소ìƒíŒ”ê²½ì„ ê¸°ë³¸ìœ¼ë¡œ 하면서 ìžì‹ ì˜ 모든 ì •ì—´ì„ ìŸì•„서 그린 10í­ì˜ ê´€ë…산수ë„ì´ë‹¤.
황승규가 ì´ ìž‘í’ˆì„ ì™„ì„±í•˜ê²Œ ëœ ì˜ë„는 ìƒì—…ì ì¸ 목ì ì´ ì•„ë‹ˆë¼ í›„ì†ì—게 남겨주기 위한 것ì´ì—ˆë‹¤. 옥양목ì´ë‚˜ 종ì´ì— 그린 다른 작품과는 달리 비단ì—다 온갖 ì •ì„±ì„ ìŸì•„서 완성하였다. 그리고 ë³‘í’ ë’·ë©´ì—ë„ ìžì‹ ì˜ 글씨로 후ì†ë“¤ì´ 지켜야 í•  ì¼ë“¤ì„ ìœ ì–¸í•˜ë“¯ì´ ì“°ê³  있다. 황승규는 ë³‘í’ ë’·ë©´ì˜ ê¸€ì”¨ë¥¼ 다른 ì‚¬ëžŒì˜ ê¸€ì”¨ë¥¼ ë°›ê³ ìž í•˜ì˜€ë‹¤. 그러나 ì†ìž 황창í¬ëŠ” 다른 ì–´ë–¤ ì‚¬ëžŒì˜ ê¸€ì”¨ë³´ë‹¤ ì¡°ë¶€ì˜ ê¸€ì”¨ë¡œ ì¨ ì¤„ ê²ƒì„ ìš”ì²­í•˜ì˜€ê³  황승규는 ì†ìžì˜ ì²­ì„ ë°›ì•„ë“¤ì—¬ ì§ì ‘ ë³‘í’ ë’·ë©´ 8í­ì— 글씨를 ì¼ë‹¤.
산수ë„는 민화í’ì´ê¸°ëŠ” 하지만 ì •í†µì‚°ìˆ˜í™”ì— ê°€ê¹Œìš´ ê±¸ìž‘ìž„ì„ ì•Œ 수 있다. 황승규는 ìžì‹ ì´ 민화를 그린 환ìŸì´ê°€ ì•„ë‹ˆë¼ ì •í†µ 산수화를 그린 문ì¸í™”가로 후ì†ë“¤ì—게 기억ë˜ê¸¸ ë°”ëžë˜ 것ì´ë‹¤. 그래서 ê·¸ì˜ ìµœí›„ì˜ ìž‘í’ˆì€ ëª¨ë“  ì—­ëŸ‰ì„ ìŸì•„서 그린 것으로 ê·¸ì˜ ìž‘í’ˆ ê°€ìš´ë° ê°€ìž¥ 뛰어난 작품ì´ë‹¤. ì†ìž í™©ì°½íšŒë„ ì´ ë³‘í’ì„ ì¡°ë¶€ 황승규를 ëª¨ì‹œë“¯ì´ ê·¹ì§„í•œ 마ìŒìœ¼ë¡œ 보관하고 있다. 황승규는 떠났지만 í™©ìŠ¹ê·œì˜ ì‚°ìˆ˜í™”ëŠ” 안방ì—서 ì§‘ì•ˆì˜ ìš¸íƒ€ë¦¬ì²˜ëŸ¼ 후ì†ì„ 지켜보고 있다.
ì†ìž ì‚¬ëž‘ì€ ìž‘í’ˆìœ¼ë¡œ 승화ë˜ê³ 
í™©ìŠ¹ê·œì˜ ìž‘í’ˆì€ ì†ìžì— 대한 사랑ì´ë‹¤. 황승규는 í‰í•´ì—서 ê°“ ì´ì£¼í•´ì™€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불안전한 ìƒí™œì„ 하였다. 황승규는 ì§‘ì•ˆì„ ëŒë³´ê¸°ë³´ë‹¤ëŠ” ê·¸ë¦¼ì„ ê·¸ë¦¬ë©´ ì „êµ­ì„ ëŒì•„ 다니는 유랑ìƒí™œì„ 하였다. ê·¸ì˜ ìœ ëž‘ìƒí™œì€ ì•„ë“¤ì— ëŒ€í•œ êµìœ¡ì„ 소홀히 í•  ìˆ˜ë°–ì— ì—†ì—ˆë‹¤.
그러나 ì†ìžê°€ 태어나면서 ì†ìžì— 대한 극진한 ì‚¬ëž‘ì€ í™©ìŠ¹ê·œì˜ ìƒí™œì„ 바꾸었다. 유랑ìƒí™œë¡œ ì•„ë“¤ì„ êµìœ¡ì‹œí‚¤ì§€ 못한 황승규는 ì†ìž êµìœ¡ì„ 통해서 ì§‘ì•ˆì„ ì¼ìœ¼ì¼œ 세워야 한다는 ìƒê°ì„ 했다. 그래서 초등학êµë¥¼ 졸업하고 3년째 ì§‘ì•ˆì„ ë•ê³  있는 ì†ìž 황창회를 삼척공업고등중학êµì— 입학시켰다. ê·¼ë•ë©´ ë™ë§‰ë¦¬ì—서 40리 떨어진 ì‚¼ì²™ì‹œë‚´ì— í•˜ìˆ™ì„ ì‹œí‚¤ë©° ì†ìžë¥¼ 공부시켰다.
한편 그림 그리는 ê³³ì— ì†ìžê°€ 들어오는 ê²ƒì„ ê¸ˆì§€ì‹œì¼°ë‹¤. 당시 민화 작가는 환ìŸì´ë¼ëŠ” ì´ë¦„으로 차별 대우를 받았기 ë•Œë¬¸ì— ë¯¼í™”ë¥¼ 그리는 ì¼ì„ 가업으로 전수하고 ì‹¶ì§€ 않았다. 환ìŸì´ë¡œ 불리며 ë°›ì•˜ë˜ ì„¤ì›€ì„ ì†ìžì—게는 물려주고 ì‹¶ì§€ ì•Šì•˜ë˜ ê²ƒì´ë‹¤. ì†ìžì—ê²Œë§Œì€ ì‹ ì‹ êµìœ¡ì„ 통해 ê°€ë¬¸ì˜ ìž…ì§€ë¥¼ 세워 줄 ê²ƒì„ ê¸°ëŒ€í•˜ì˜€ë‹¤.
ì´ë•Œë¶€í„° 황승규는 ì†ìžë¥¼ 공부시키기 위해 ê·¸ë¦¼ì„ ê·¸ë¦¬ê¸° 시작하였다. í™©ìŠ¹ê·œì˜ ì†ìžì— 대한 ì‚¬ëž‘ì€ ë¯¼í™”ë¡œ 승화ë˜ì—ˆë‹¤. ì†ìž êµìœ¡ì´ë¼ëŠ” 뚜렷한 목ì ìœ¼ë¡œ í™©ìŠ¹ê·œì˜ ë¯¼í™”ëŠ” ì ˆì •ì— ì´ë¥´ë €ë‹¤. ê·¸ì˜ ì†ìžì— 대한 ì‚¬ëž‘ì€ ì‹œê°„ê³¼ ê³µê°„ì„ ì´ˆì›”í•œ 것ì´ì—ˆë‹¤. ì†ìžê°€ 그리우면 40리 ë°¤ê¸¸ì„ ê±¸ì–´ì„œ ì†ìžì˜ í•˜ìˆ™ì§‘ì„ ì°¾ì•„ê°€ 등êµí•˜ëŠ” ì†ìžì˜ ì–¼êµ´ì„ ë³´ê³  ì˜¤ê¸°ë„ í•˜ì˜€ë‹¤. 그리고 주ë§ì´ë©´ 사랑방 ë¬¸ì„ ì—´ê³  신작로 ì •ë¥˜ì†Œì— ì†ìžê°€ 버스ì—서 내리기를 기다렸다.
ì†ìž 황창회는 í• ì•„ë²„ì§€ì˜ ì†Œì›ì„ 절대ì ìœ¼ë¡œ ì‹¤ì²œí•˜ê³ ìž í•˜ëŠ” 효ì†å­å­«ì´ì—ˆë‹¤. í™©ìŠ¹ê·œì˜ ì†Œì›ì€ ì†ìžê°€ 결혼하여 ì¦ì†ìžë¥¼ 보는 것과 ê³µì§ìœ¼ë¡œ 나아가 환ìŸì´ë¡œ 살아오면서 ë°›ì•˜ë˜ ì„¤ì›€ì„ ë–¨ì³ë²„리는 것ì´ì—ˆë‹¤. ì†ìž 황창회는 24ì‚´ì— ê²°í˜¼í•˜ì—¬ í™©ìŠ¹ê·œì˜ í’ˆì— ì¦ì†ìžë¥¼ ì•ˆì„ ìˆ˜ 있ë„ë¡ í•˜ì˜€ìœ¼ë©°, í‰ìƒ 공무ì›ìœ¼ë¡œ 근무하다가 최근 산림조합 조합장으로 정년퇴임하였다. 그리고 최근ì—는 ë¬˜ì—­ì„ ì •ë¹„í•˜ì—¬ í• ì•„ë²„ì§€ì— ëŒ€í•œ 효ë„를 마무리했다.

월간 민화 ë‹µì‚¬íŒ€ì´ ë°©ë¬¸í•œ 황승규 ìƒê°€

▲월간 민화 ë‹µì‚¬íŒ€ì´ ë°©ë¬¸í•œ 황승규 ìƒê°€

황승규 ìƒê°€. ì†ìž 황창회가 ìƒê°€ë¥¼ 둘러보고 있다.

▲황승규 ìƒê°€. ì†ìž 황창회가 ìƒê°€ë¥¼ 둘러보고 있다.

황승규가 남긴 ì‚¶ì˜ í”ì 

í™©ìŠ¹ê·œì˜ ìƒê°€ëŠ” 삼척시 ê·¼ë•ë©´ ë™ë§‰ë¦¬ì— 있다. 7번 êµ­ë„ë³€ì— ìžˆëŠ” ìƒê°€ëŠ” 황승규가 ì§ì ‘ ì§€ì€ ì§‘ì´ë‹¤. ê°•ê°€ì˜ ëŒì„ 가져다 ëŒë‹´ì„ 쌓고 ì •ë©´ 5칸, 측면 2ì¹¸ì˜ ë¹„êµì  í°ì§‘ì„ ì§€ì—ˆë‹¤. 그리고 ì§‘ 주위ì—는 배나무와 살구나무 ê°ë‚˜ë¬´ 그리고 호ë‘나무까지 울타리를 ì¹˜ë“¯ì´ ì‹¬ì—ˆë‹¤. 그곳ì—서 그는 사랑방 ë¬¸ì„ ì—´ê³  사랑하는 ì†ìžê°€ 버스 내리는 ëª¨ìŠµì„ ê¸°ë‹¤ë ¸ë˜ ê²ƒì´ë‹¤.
그러나 ì§€ê¸ˆì˜ ìƒê°€ëŠ” ë” ì´ìƒ ì˜ˆì „ì˜ ëª¨ìŠµì´ ì•„ë‹ˆë‹¤. ì‚¬ëžŒì´ ì‚´ì§€ 않으면서 안방 처마 ë°‘ì— ìžˆë˜ â€˜çŸ³å²¡â€™ì´ë¼ëŠ” 현íŒì€ 물론 ê¸°ë‘¥ì— ê±¸ë ¤ìžˆë˜ ì£¼ë ¨æŸ±è¯ë„ ë„난당하였다. ìƒˆë§ˆì„ ìš´ë™ìœ¼ë¡œ ì§€ë¶•ì€ ì§™ì€ í•˜ëŠ˜ìƒ‰ì˜ ìŠ¬ë ˆì´íЏ 지붕으로 바뀌고, ì¸ì‹¬ë„ 변하여 들어오는 ëŒ€ë¬¸ë„ ì§‘ 앞ì—서 옆으로 바뀌었다. 최근ì—는 íƒœí’ ë£¨ì‚¬ë¡œ ì¸í•´ 기둥만 겨우 ë‚¨ì•˜ë˜ ì§‘ì„ ëŒ€ëŒ€ì ì¸ 보수를 하여 ì„ê°• 황승규가 ì‚´ì•˜ë˜ ë‹¹ì‹œì˜ ëª¨ìŠµì€ ì°¾ì•„ë³´ê¸° 어렵다. ê·¸ëž˜ë„ í—ˆë¬¼ì–´ì§„ ëŒë‹´ 사ì´ë¡œ ì‚´êµ¬ê½ƒì´ í”¼ê³ , ê°ë‚˜ë¬´ 위ì—서 까치가 울면 ì´ê³³ì´ 민화가 ìƒì‚°ë˜ì—ˆë˜ ì˜ˆìˆ ê°€ì˜ ì§‘ì´ì—ˆìŒì„ ëŠë¼ê²Œ 한다.
í™©ìŠ¹ê·œì˜ ì‚°ì†ŒëŠ” ìƒê°€ 건너편 ì–¸ë•ìœ„ì— ìžë¦¬í•˜ê³  있다. 2000ë…„ ë™í•´ì•ˆ 산불로 ì‚°ì— ìžˆë˜ ëª¨ë“  ë‚˜ë¬´ë“¤ì´ ë¶ˆíƒ”ëŠ”ë° í™©ìŠ¹ê·œ ì‚°ì†Œì˜ ì†Œë‚˜ë¬´ëŠ” 산소를 지키는 호위병처럼 10ì—¬ 그루가 남아 있다. 소나무가 산소를 ì§€ì¼œì£¼ë“¯ì´ í™©ìŠ¹ê·œëŠ” ì£½ì–´ì„œë„ í›„ì†ì„ ëŒë³´ê³  있다. 그가 살았고 후ì†ë“¤ì´ ì‚´ê³  있는 삼척시 ê·¼ë•ë©´ ë™ë§‰ë¦¬ê°€ 바로 눈 아래 있다. ê·¸ ë§ˆì„ í•œê°€ìš´ë° ìˆ²ì†ì— ìƒê°€ê°€ 바로 ë³´ì¸ë‹¤. 그는 ì£½ì–´ì„œë„ í›„ì† ê³ì„ 떠나지 않았다.
후ì†ë“¤ì€ 언제나 울타리가 ë˜ì–´ì£¼ëŠ” ì¡°ë¶€ì˜ ë¬˜ì—­ì„ ì •ë¹„í•˜ê³  비ì„ì„ ì„¸ì› ë‹¤. 그러나 ê·¸ì˜ ë¹„ì„ì—는 í™©ìŠ¹ê·œì˜ ì˜ˆìˆ ì˜ ì„¸ê³„ì— ëŒ€í•œ 기ë¡ì€ í•œë§ˆë””ë„ ì—†ë‹¤. 민화를 그리는 환ìŸì´ë¼ëŠ” ì‚¬ì‹¤ì„ ìˆ¨ê¸°ê³  ì‹¶ì–´ í–ˆë˜ í™©ìŠ¹ê·œì˜ ë§ˆìŒì„ 후ì†ë“¤ì´ 배려한 것ì¼ê¹Œ? ê·¸ì˜ ì‚¶ì— ëŒ€í•´ ë¹„ë¬¸ì€ â€œä»æ…ˆí•˜ê³  溫厚한 性å“ì— å‹¤å‹‰èª å¯¦í•˜ë©°, 隣å‹ç›¸åŠ©í•˜ê³  上敬下愛하는 å­è¦ª 등 å´‡ç¥–æ€æƒ³ì´ 투철하여 隣近ì—서 ì¹­ì†¡ì´ ìžìží•˜ì˜€ë‹¤â€ë¼ê³  기ë¡í•˜ì˜€ë‹¤. 푸른 ë™í•´ë°”다를 ë”°ë¼ì„œ ë°±ë‘ëŒ€ê°„ì´ í르고 ê·¸ ì‚¬ì´ ì–¸ë• ìœ„ì—서 ì„ê°• 황승규는 진정한 ë¯¼ì¤‘ì˜ ëª¨ìŠµìœ¼ë¡œ ì˜ì›í•œ ì‚¶ì„ ëˆ„ë¦¬ê³  있었다.

ì œ1회 월간 <민화> 학술답사 차장섭 êµìˆ˜ 특별강연

차장섭 êµìˆ˜ì›”ê°„ <민화> ì œ1회 학술답사를 ë”ìš± ëœ»ê¹Šì€ í•™ìˆ í–‰ì‚¬ê°€ ë˜ê²Œ 한 것 중 하나는 차장섭 삼척대 êµìˆ˜ê°€ ë§¡ì€ í•´ì„¤ê³¼ 세미나였다. ë™í•´ì˜ ë™í•´ì²™ì£¼ë¹„와 죽서루 ë‹µì‚¬ì— ì´ì–´ 시립삼척박물관 세미나실ì—서 열린 특강ì—서 ì°¨ êµìˆ˜ëŠ” ê°•ì›ë„ ë¯¼í™”ì˜ ì„±ê²©ê³¼ íŠ¹ì§•ì— ëŒ€í•œ 명쾌한 ê°•ì˜ë¡œ ë§Žì€ í˜¸ì‘ì„ ë°›ì•˜ë‹¤. ‘민화는 작가가 없는 그림’ì´ë¼ëŠ” 통ë…ì„ ê¹¨ê³  유ì¼í•˜ê²Œ ì´ë¦„ì´ ì•Œë ¤ì§„ ë¯¼í™”ìž‘ê°€ì¸ í™©ìŠ¹ê·œì— ëŒ€í•œ ì´ì•¼ê¸°ëŠ” 특히 관심과 í¥ë¯¸ë¥¼ 모았다. 본래 ê°•ì›ë„ 민화 ìž‘ê°€ì˜ ì¡´ìž¬ì™€ 계보가 ì²˜ìŒ ë°œí‘œëœ ê²ƒì€ ë³¸ì§€ 발행ì¸ì´ê¸°ë„ 한 윤열수 ê°€íšŒë¯¼í™”ë°•ë¬¼ê´€ìž¥ì˜ ë…¼ë¬¸ì„ í†µí•´ì„œì˜€ë‹¤. 아래 소개하는 ì°¨ êµìˆ˜ì˜ 특강 ì›ê³ ëŠ” ì´ëŸ¬í•œ ì‚¬ì‹¤ì„ ë³´ë‹¤ 알기 쉽게 요약하고 정리한 것ì´ë‹¤. ì°¨ êµìˆ˜ì˜ 특강 ì›ê³ ë¥¼ 전재한다.

참고문헌
윤열수,『민화ì´ì•¼ê¸°ã€ë””ìžì¸ 하우스, 1995
윤열수,『민화〠Korean Art Book 예경, 2000
가회박물관,『문ìžë„ã€ê°€íšŒë°•물관출íŒë¶€, 2004
ê¹€ì˜í•™,『민화ã€ë¹›ê¹”있는 책들 147, 대ì›ì‚¬, 1994
ìž„ë‘빈,『민화란 무엇ì¸ê°€ã€ì„œë¬¸ë¬¸ê³ , 1997
유용태, 「ì„ê°• 황승규ã€ã€Žæ±ŸåŽŸì˜ ç¾Žã€ì œ1ì§‘, ê°•ì›ì¼ë³´ì‚¬, 1993

 

글 : 차장섭(ê°•ì›ëŒ€í•™êµ êµì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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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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