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당 김은호의 <승무> 초본① – 초본으로 그린 한국화

이당 김은호의 <승무> 초본①
초본으로 그린 한국화

이번에 소개할 초본은 일제강점기 화가인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가 제작한 <승무僧舞> 초본이다. 일반적으로 한국화는 초본 없이 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당의 그림 또한 그동안은 초본 없이 그려진 그림으로 알려져 왔다. 한국화의 대가로 널리 알려진 김은호 화백이 왜 초본을 그렸는지에 대해 살펴보자.

이번에 소개하는 초본은 이당 김은호 화백이 그린 <승무>의 초본이다. 이 초본을 살펴보기 전에 우선 김은호라는 인물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당 김은호, 그는 누구인가
▲ 자화상, 이당 김은호 작, 유화, 개인소장

▲ 자화상, 이당 김은호 작, 유화, 개인소장

이당 김은호는 1892년 경기도 인천에서 태어났다. 그 후 서울로 상경하여 이발사와 필사가筆寫家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던 중, 안중식과 조석진 등에게 전통회화를 사사私事받고 구한말 마지막 어진화사御眞畵師로 활동하였다.
그 이후 이름이 알려져 많은 친일파들의 초상화를 주문받아 그리면서 생계를 이어나갔다. 또한 많은 미술대전에서 수상하면서 명성이 더욱 높아졌다.
김은호는 한때 3·1운동에 참가했다가 옥고를 치른 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우에노 미술학원에서 채색화를 익혔다. 그 후 조선으로 돌아온 그는 조선과 일본에서 개최된 많은 미술대전에서 조선 풍속화를 그려 입상하면서 유명해졌다.
일반적으로 일제강점기 당시 이름을 떨쳤던 화가들은 부유하게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극히 일부에 불과했으며, 김은호 역시 종로에서 미산이발관을 운영했을 만큼 궁색한 삶을 살아야 했다. 김은호는 일제강점기에 그렸던 그림들로 인해 해방후 친일작가명단에 오르는 등 굴곡진 삶을 살았다. 그러나 한편 우리가 보고 있는 역사 속 위인들의 초상화 대부분을 그린 화가로, 또 운보 김기창을 비롯한 수많은 제자들을 가르쳐 한국미술의 맥을 이은 작가로서의 역할은 부정할 수 없다.

이당 김은호의 <승무> 초본

이당 김은호의 <승무> 초본을 자세히 살펴보자. 과거에 소개했던 초본들과 마찬가지로 각 칸에 들어가야 할 색 이름이 한자로 쓰여 있다. 다른 초본들과는 다르게 작품 오른쪽 아랫부분에 김은호의 낙관 두 개가 찍혀있는 것을 통해 초본의 제작자가 이당 김은호임을 명확히 알 수 있다. 그리고 오른쪽 아랫부분에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 있다.

“대소大小는 적당하게 그리게 느리고
주리고 맘음대로”
(크고 작음은 적당하게 그리게 늘이고
줄이고 마음대로)

이 초본을 살펴보면 과거에 소개했던 초본들과 많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음 시간에는 이당 김은호의 <승무> 초본과 <승무>작품들을 자세히 비교해 살펴보고, 김은호가 <승무> 초본을 제작한 이유에 대해 심도 있게 알아보고자 한다. 그 후에는 이당의 초본이 다른 초본과 달랐던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글 : 이다정(가회민화박물관 학예사)
사진제공 : 가회민화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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