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민화> 창간 4주년 기념 특별초대전 초대작가 릴레이 좌담 ①

전통이라는 탄탄한 주춧돌 위에 현대 민화의 집 지어야


월간 <민화>는 창간 4주년을 맞이해 지난 5월 2일~8일 이를 기념하는 특별 전시회를 열었다. ‘오늘의 민화, 내일의 민화’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이 전시회에는 현재 우리 민화화단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중견작가 44인이 초대되어 저마다 개성적인 작품세계를 선보여 큰 화제를 모았다. 전시 기간 동안 3회에 걸쳐 전시 작가들을 초대해 토크쇼를 열었다. 토크쇼에서 오간 이야기를 요약해 3회에 걸쳐 소개한다. 첫 번째 토크쇼에 참여한 작가는 대체로 모사와 재현에 방점을 둔 작품 활동을 해 온 그룹이다.

재현 작업의 중요성, 새롭고 정당하게 인식되어야

유정서 : 반갑습니다. 저희 월간 <민화>가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것은 창간 4주년을 기념하는 뜻도 있지만, 그보다는 이 기회에 현대 민화화단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고 계시는 작가님들의 작품을 한 자리에 모셔, 우리 민화의 오늘을 확인하고, 내일의 가능성을 예견하는 자리를 마련해 보자는 취지가 더 컸습니다.
이렇게 작품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으니 전시를 주최한 저희들도 우리 민화의 세계가 이처럼 다양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곤 깜짝 놀랐습니다. 전시회를 둘러보신 많은 분들도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작품의 스타일별로 작가님들을 모셔서 이야기를 나눠보는 기회를 갖기로 했습니다. 오늘 참석하신 분들은 대체로 재현과 창작 중 재현 쪽에 무게를 두신 작품 활동을 오래 해 오신 분들로 알고 있습니다. 먼저 재현을 중심으로 한 작품 활동의 의의에 대해 한말씀씩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박진명 : 사회자가 말씀하신대로 현대민화는 다양한 유형과 스타일로 발전하는 것이 바람직할뿐더러 당연하다고 봅니다. 다만 그 다양한 경향 속에는 전통을 흔들림 없이 계승하는 ‘재현’이 당당하고 무게 있게 자리해야 한다고 봅니다. 요즘 불고 있는 창작민화의 열기에 밀려 모사를 중심으로 한 재현 작품이 본의 아니게 폄하되거나 소홀이 대접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전통의 재현은 민화의 아주 중요한 경향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조영옥 : 본을 사용해서 작품을 창조하는 것은 전통시대의 아주 중요한 작품 활동이었어요. 많은 대가들도 이른바 ‘전이모사轉移模寫’의 과정을 통해 새로운 작품 세계를 열곤 했지요. 사실 진정한 창작도 훌륭한 옛 작가의 작품을 충실히 답습하는 과정을 통해서 얻어진다고 봅니다. 전통은 물론, 민화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 등 아무런 계획 없이 창작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어려운 일 아닐까요? 저는 전통 민화를 제대로 배운 뒤 그것을 바탕으로 끊임없는 정진이 이루어져야 진정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이 탄생할 수 있다고 봅니다.

남윤희 :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최근 많은 분들이 민화를 배운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저 막연한 의욕만으로 창작을 하겠다고 나서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은 안타깝게도 이도 저도 아닌 정체불명의 작품인 경우가 많지요. 창작은 의도해서 되는 경우도 있기는 하겠지만, 대체로는 오랜 작품 활동을 하는 동안 기량이 스스로 익고 여물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영감이 스멀스멀 나와서 저절로 작품을 만들어 낼 때 진정한 창작이 탄생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창작 작품을 어설프게 흉내 내는데 그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요즘엔 오히려 우리 전통 민화를 정말 탄탄하고 확실하게 가르쳐 주고 이어줄만한 선생님들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전통의 계승 또한 현대 민화작가들의 큰 사명의 하나인데, 이러한 사명이 벽에 부딪쳐서는 안 될 것 같아요.

유정서 : 여러분의 말씀을 듣다보니 중국의 현대화가 장대천이 떠오릅니다. 장대천은 본래 그렇게 뛰어난 화가가 아니었는데, 돈황의 벽화를 치열하게 모사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급격한 기량의 향상과 함께 새로운 작품세계에 눈을 떠 누구보다도 독창적인 화풍을 구축한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 말씀하신 ‘기본의 소중함’, 혹은 ‘모사와 재현의 가치’를 증명해 주는 사례가 아닌가 싶습니다.

김제민 : 물론 모사와 재현 작업이 평가절하 돼서는 안 되지만, 탄탄한 기초를 바탕으로 창작을 지향하는 자세는 좋은 것이라고 봅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저런 소스의 단순한 조합, 심지어 전통적 소재들을 짜깁기 한 것이 무슨 창작이냐 라는 말씀도 하시는데, 저는 그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봐요. 지금의 민화화단은 여러 가지 실험이 이루어지는 과도기라고 보는데, 짜깁기든 뭐든 창작을 위한 실험을 자꾸 하다보면 뭔가 새로운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유정서 : 김 선생님께서 첫 주제를 아주 잘 정리해 주셨군요.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고 민화는 재현과 창작이라는 날개로 난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모사를 중심으로 한 재현민화를 추구하시는 작가와 창작 위주의 작품 활동을 하시는 작가들이 조화를 이뤄 민화화단의 경향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가꿔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실제로 이번 전시회가 그런 경향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이번에는 작가님들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추구하시는 작품세계나 앞으로 해나가고 싶은 작업 이런 점들에 대해서 말이지요.

박진명 : 제가 출품한 작품들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전통그림인데, 무엇보다 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그림입니다. 20년 넘게 민화를 그리다보니 정말 다양한 화목을 두루 그려보았는데 그 중에서도 나비가 가장 마음에 들더군요. 언젠가 나비를 집중적으로 그리고 싶습니다.

유정서 : 이번에 도록에 작가소개를 쓰기 위해 박 선생님의 옛날 개인전 도록을 꼼꼼히 펼쳐보았는데, 정말 온갖 화목을 다양하게 그리셨더라구요. 화조도에서 인물화, 심지어 의궤 그림까지 종횡무진하셨어요. 여기 계셔서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정말 감탄했습니다. 대단하세요.

박진명 : 과찬이세요. 오래 그림을 그리다 처음 하는 개인전이다보니 그 동안 그린 그림을 모두 발표해서 그렇게 된 거예요. 누구나 한 20년 그리면 그렇게 되는 거랍니다.

조영옥 : 저 역시 주로 재현민화를 그렸는데요, 전통을 충실히 재현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다만 색상만큼은 현대인의 감각을 고려, 강렬한 오방색 대신 제 나름대로의 생각해 낸 온화한 색상으로 표현했습니다. 무조건 오래 한 것이 자랑은 아닙니다만, 저도 1990년대 중반부터 도린회 초창기 회원으로서 민화를 그리기 시작해서 20년이 훌쩍 넘었어요. 지난해 70세를 기념해 작품 80여점을 모아 도록을 만들었는데, 많은 분들이 좋은 말씀들을 해 주셨습니다. 앞으로는 제 취향에 따라 화조도를 작심하고 그려볼까 합니다.

남윤희 : 민화에는 매력적인 소재가 정말 많지요. 그런데 저는 어느 한 가지에만 집중하기보다 다양한 작품을 두루 보여드리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편식하는 작가가 아니라 어느 장르든 할 수 있고, 심지어 잘 드러나지 않는 것까지 끌어낼 수 있는 작가가 됐으면 합니다. 그래서 저는 옛 민화의 도록들을 빠짐없이 구해서 봅니다. 아직 잘 소개되지 않은 그림이나 기발하지만 숨어있었던 그림을 재현해 내는 것이지요.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그림을 찾아야 하고 그러려면 전시도 많이 다니고 책도 많이 보며 공부해야 한다’고 말이지요. 그런 노력을 통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창작을 할 수 있는 기량이 갖춰진다고 봅니다.

유정서 : 지난해, 남선생님의 개인전에서 옛 책가도의 유실된 폭까지 추정해서 그리신 작품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재현 중심의 작품 활동이 결코 녹록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신 좋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정영애 : 저도 민화를 꽤 오래 그렸지요. 그러니 전통 민화의 여러 화목을 거의 모두 그려보았는데, 요즘에는 창작에 관심을 두고 작업을 하고 있고, 또 하려고 합니다. 이번에 출품한 작품도 모란을 소재로 하되 옛 작품을 재현하지 않고, 저 나름대로 화려하고 고귀한 모란꽃의 만개한 모습을 화폭 가득히 담아 넘치는 기쁨을 나타내고자 했습니다. 연속무늬 스타일로 모란을 배치하고 개인적으로 즐겨 사용하는 검정색을 배경색으로 사용했습니다. 저도 그렇지만,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지요. 손주가 4명이나 있어서 그런지 앞으로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물을 소재로 동화같이 예쁜 그림을 민화풍으로 그리고 싶습니다.

유정서 : 정 선생님의 경우가 오랜 정진 끝에 기량이 무르익다 못해 흘러 넘쳐 저절로 창작이 우러난 케이스가 아닌가 합니다. 제가 도록의 작품 해설에서 썼듯이, 정 선생님은 요즘 창작민화라고 불리는 그림에서 흔히 보는 소재의 지나친 생략이나 변형 없이도 얼마든지 신선하고 창의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계신 것 같습니다. 정 선생님의 모란도는 저도 참 좋아하는 그림입니다.

김제민 : 저는 처음에는 불화를 그렸는데, 불화가 인물 중심의 그림이다보니 배경을 좀 더 잘 그리고 싶다는 욕심으로 민화에 입문했다가 민화에 완전히 빠져버린 케이스입니다. 그 이후 주로 전통 민화를 재현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 왔는데, 지금은 창작에 욕심을 내기 보다는 제가 좋아하는 다른 장르와 접목하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를테면 저는 고가구와 도자기를 좋아하는데, 앞으로 이러한 공예품에 민화를 접목시킨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민화의 속성이 생활의 그림인 만큼, 생활소품에 민화를 스며들게 하는 작업은 민화라는 그림의 본령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성급함은 금물, 차분히 기본 실력 쌓아야

유정서 : 네, 말씀 잘 들었습니다. 그림에 대한 각 작가분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는데요, 저희 잡지가 ‘갤러리 5인 5색’이나 ‘작가가 말하는 나의 그림 이야기’ 등의 코너를 마련한 이유도 독자들이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접하고, 현재 민화화단의 작품 경향을 읽으면서 작품 활동에 영감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입니다.
오늘 모신 작가님들은 이른바 1세대 작가들에게 민화를 배우고 본인들도 활발한 교육활동을 통해 많은 제자를 양성하고 있는 중견으로 현대 민화화단의 실제적인 주역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민화화단의 미래를 위해 또는 제자들이나 민화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분들을 위해 도움이 될 만한 부탁이나 충고를 한 말씀씩 해주십시오.

김제민 : 아까 모두가 이야기했듯 일단 민화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절대 서두르지 말고 차근히 전통의 기초를 쌓아나간다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남다른 작품에 욕심이 앞서 기초도 다져지지 않은 상황에서 성급히 창작에 나서기보다 재현과 모사를 통해 충분히 기량을 연마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봐요.

정영애 : 저는 재현 작업을 열심히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틈틈이 자기만의 방식을 연구하고 실험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작품은 멀리서 봐도 누구의 것인지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개성이 뚜렷해야 한다고 봅니다. 기량의 숙련과 함께 자기만의 표현을 꾸준히 고민하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남윤희 : 처음 민화를 배우려고 들어온 제자들을 보면 1년 정도면 금세 민화를 다 배울 것 같이 쉽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요. 그러나 막상 배우기 시작하면 습작인데도 이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는지 몰랐다며 고개를 흔듭니다. 사실 재현만을 올바로 하는데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인내심이 필요한 일인데도 다른 데 문제가 있는 걸로 잘못 알고 더 나은 선생님을 찾아 여러 군데 기웃거리는 일도 있습니다. 이런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 곳만 파면 머지않아 샘물이 나올 텐데 두더지처럼 여기저기 조금씩만 파고 다니면 샘물 맛도 못보고 헛수고만 하게 됩니다. 한 선생님 밑에서 진중히 배우고 노력하다보면 분명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가지게 될 날이 오게 됩니다.

조영옥 : 맞는 말씀입니다. 뭐든 제대로 하는 건 쉽지 않고, 민화는 더욱 그렇지요. 저도 한 선생님 밑에서 10년이나 배우고 또 다른 선생님 밑에서도 오랜 기간 배웠어요. 얼마 전 민화에 입문한 지인이 민화를 빨리 잘 그리는 법이 뭐냐고 묻더라구요. 그래서 ‘그런 건 없고 세월이 다 해결해 준다’고 말해주었어요. 노력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인 연륜이 필요한 법입니다. 마음이 급한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아요.

박진명 : 동감입니다. 제자들이 많이 묻지요. ‘왜 선이 안 될까요?’, ‘바림이 왜 잘 안 될까?’, ‘저는 언제쯤 잘 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말입니다. 그런데 저도 20년이나 민화를 그렸지만 아직도 많은 부족함을 느낍니다. 조급히 생각하면 안 되고 꾸준히 하다보면 바림도, 선도 다 됩니다. 의욕과 끈기를 가지고 꾸준히 그려야하죠. 일단 밑바탕을 탄탄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두가 화합하는 민화계 되길

유정서 : 이제 말씀을 정리하실 시간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현재 우리 민화화단을 사실상 이끌고 계시는 중견 작가로서 특히 창간 4주년을 맞은 저희 월간 <민화>에 대해 바람이나 꼭 충고해 주실 점이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기탄없이 말씀해 주십시오. 잘 듣겠습니다.

정영애 : 월간<민화>가 그 동안 해 온 여러 일들에 대한 치하는 많은 분들이 해 주셨으니까 여기서 다시 되풀이 하지는 않겠습니다. 저는 특히 민화인들 간에 통합의 장을 마련해 주신데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 점에 더욱 신경을 써 주셨으면 합니다. 예를 들어 민화계의 발전을 위해 정말 필요한 일이다 싶으면 사소한 이해관계를 떠나 민화인이라는 점만으로 너나없이 참여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데 좀 더 애써주시기를 바랍니다.

조영옥 : 월간 <민화>의 탄생 자체가 그 자체로 민화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또 잡지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민화가 전파되고 민화에 대한 인식도 날로 높아지고 있어 기쁘고 감사합니다. 월간 <민화>의 무궁한 발전을 거듭 기원합니다.

남윤희 : 민화계의 저변이 크게 넓어지다 보니 크고 작은 단체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자칫 분열로 이어지거나 그렇게 비쳐질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월간 <민화>가 중재자가 되어 화합을 도모하고 좋은 일은 퍼뜨려주고, 안 좋은 일은 잠재우며 민화인 모두가 서로를 도와주고 보듬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데 힘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유정서 : 해주신 당부의 말씀 깊이 새기고 그렇게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우리나라의 척박한 매체 환경 속에서도 지난 4년간 월간 <민화>가 순조롭게 성장해 올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우리 민화인들의 사랑과 격려의 덕택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소중한 시간 내주시고 좋은 말씀 들려주신데 대해 거듭 감사드립니다.


참석 작가 김제민, 남윤희, 박진명, 정영애, 조영옥
진행 유정서 편집국장 사진 이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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