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민화> 창간 4주년 기념 특별초대전 초대작가 릴레이 좌담③

“현대민화, 작품의 다양화가 과제, 조급해 말고 꾸준한 연구와 시도 계속해야”

월간 <민화>가 창간 4주년 기념 특별전 기간 진행한 토크쇼 마지막, 이번 시간에는 독창적인 작품을 통해 뚜렷한 개성을 선보이는 작가들을 초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들이 바라보는 화단의 현 상황, 그리고 창작에 대한 조언을 들어보았다.


유정서 오늘 모신 분들은 작품세계에서 창작과 전통의 중간 지점에 계신 분들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물이 창작과 가까우면서도 민화적 요소가 짙게 느껴진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요. 여러분 같은 작가 분들의 존재로 인해 현대 민화의 스펙트럼이 한결 넓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번 전시회만 해도 44분 작가들의 작품 90여 점이 전시되었는데, 비슷한 작품이 거의 없어요. 사실은 저희가 작가님들을 선정할 때, 여러 가지 기준을 적용했지만, 작품 경향도 상당 부분 감안해 결정했습니다. 이런 스타일의 전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일단 여러분의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정현 이렇게 다채로운 작품 세계를 지닌 작가들을 폭 넓게 선정해주신 것이 좋았습니다. 다만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이었겠지만, 작가별로 두 점의 작품만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다보니 각자의 개성이 온전히 드러나기에는 부족한 점도 있었다고 봅니다. 다만 작품의 내용을 봤을 때 저를 비롯해 전반적으로 모든 작가들이 더 분발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번 행사를 통해 ‘아, 참 열심히 해야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황은자 월간<민화>에서 이렇게 개성 있는 작가들을 초대해 4주년 행사를 했다는 것이 자랑스러워요. 작가란 예술품을 창작하고 그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고, 여기서 창작이란 독창적인 예술품을 만드는 일이지요.
민화작가 역시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면 작품을 해설해 주는 도슨트가 있는데, 과연 우리의 작품이 도슨트들에 의해 해설되고 설명될 그 무엇이 있는지,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작품이 해설의 대상이 되고 이야기거리가 되기 위해서는 작가의 생각과 개성이 담겨있어야 합니다. 오래된 틀을 당장 깨기는 어렵겠지만, 저는 이러한 전시회가 작가의 개성과 가치관이 담긴 작품을 더 많이 발표되는 풍토를 조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민선 선정 기준에 맞춰 작가를 초대하고, 한 자리에서 다양한 민화의 세계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겨 기쁩니다. 화단이 과도기를 겪고 있지만, 예전보다 작품이 다양하게 구성된 모습을 보며 민화도 뚜렷한 화풍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민화를 창작민화니 재현민화니 하는 말로 구분을 하는 것 같은데, 사실 먼 훗날 돌이켜 보면 스타일만 조금 다를 뿐 궁극적으로 같은 민화로 분류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구분이 굳이 필요할 것인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대신 여러 작품별로 콘텐츠를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민화가 대중과 작가가 가장 잘 소통할 수 있는 그림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정학진 앞에 말씀하신 분들의 생각에 저 역시 동감하고요, 이때까지 보아 왔던 민화 전시회보다 훨씬 다양한 스타일의 민화를 볼 수 있어 매우 뜻깊은 행사라고 생각합니다.

유정서 그러면 이제 여기 모신 작가님들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정현 작가께서는 무신도를 새롭게 해석하셨습니다. 까만 바탕에 천수관음의 여러 손,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불상, 연꽃 등 민화의 전형적인 도상을 통해 메시지를 강화하거나 색다른 해석을 하신 것 같아요. 무신도는 집에 걸어놓고 보기에 부담스러운 작품일 수 있고, 접근이 쉽지 않은데 정현 작가께서는 어떻게 무신도에 천착하시게 됐는지, 종교화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셨습니까?

정현 지금 여기에 걸린 작품이 정확히 무신도는 아니에요. 하지만 제가 관심을 둔 소재가 꼭두, 무신도, 제사 그림과 같은 종교적 그림이라 작품의 기저에 그러한 분위기가 깔려있죠.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건 무엇보다 제가 종교가 없기 때문일 거예요. 왜곡이나 희화화의 비난에서 자유롭고, 제가 해석하고 보이는 대로 그릴 수 있거든요. 제가 그린 작품은 베이비박스 시리즈 중 하나로, 아이를 책임지지 못한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아이들에게 사랑을 나누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아이들 모두 이 세상의 선물이기 때문이죠. 권위를 상징하는 불상조차도 자신의 가슴을 드러내서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것처럼 우리 사회도 아이들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기도하는 손, 포장된 선물 박스 등을 통해 아이들에게 줘야 할 사랑과 응원을 표현해보았습니다.

유정서 네, 말씀 잘 들었습니다. 민화가 얼마든지 현실적 발언의 창구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
습니다. 다음은 황은자 작가께 여쭤보겠습니다. 황 작가께서는 문자도의 조형성에 대해 연구하시지요? 대체로 유교 문자도라고 불리는 문자도는 ‘효제충신예의염치’를 나열한 것이 일반적인데 황 작가께선 그 여덟 글자를 한 폭에 아우르기도 하고 현대적으로 해석해 새롭게 배열하거나 캘리그라피 등을 활용해 문자도의 멋을 새롭게 발견하셨습니다. 아직도 실험을 계속하고 계신데요 앞으로도 계획과 문자도의 매력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황은자 기존의 문자도는 병풍 형식에 걸맞는 것이 대부분이라, 쓰임새가 현대에는 많지 않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여덟 글자를 한 화면에 담을 수 있거나 가리개로 쓸 수 있는 정도의 축약된 문자도를 연구해보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탐방과 역사 공부의 결과를 문자도에 적용하기도 하고 캘리그라피를 활용해 한글 문자도도 그리고 있어요. 아직 완성 단계는 아니고 실험 단계라 여러모로 미흡하지만 문자도의 세계를 확장시켜 나가는 작업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유정서 두 분의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작가라면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림에 대한 본질을 알기 때문에 거기서 무한한 변형이나 응용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그저 피상적인 문자도나 종교화를 했다면 이런 작품이 나올 수는 없었을 겁니다. 지민선 작가의 작품은 색이 곱고 질감이 삼베를 연상시킵니다. 여러 가지 다양한 메시지를 조합해 그림을 그리셨는데, 작품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지민선 지금 걸린 작품이 사실은 한 쌍입니다. 지난번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양쪽 벽이 마주보는 작품의 주제가 이어지도록 그림을 그렸어요. 한쪽에는 봉황도, 반대쪽에는 호랑이의 눈에 원더우먼의 로고를 그려넣었죠. 양쪽으로 바라봤을 때 서로 상통하는 내용인데, 왕비로 상징되는 봉황의 여성성과 호랑이가 봉황을 봤을 때 직감적으로 원더우먼의 강인한 여성성을 꿰뚫는 모습을 그려보았습니다. 또한 그림에 천의 느낌을 낸 이유는 복식에서 착안한 것인데 봉황도가 왕비의 의복에 사용됐기 때문이죠. 저는 앞으로도 직감적인 작품을 그리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민화를 공부해야 알 수 있는 작품보다 그저 보기만 해도 ‘좋은 이미지구나’ 감상할 수 있도록 말이죠.

유정서 미술의 세계는 꿈보다 해몽이라고도 하지요. 오늘날 그림에 대해 평론가가 많은 이야기를 하지만 작가가 의식하지도, 반박하지도 않습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달리 해석할 수 있는 것이 그림의 매력이니까요. 특히 지민선 작가의 섬세한 필력이 놀랍습니다. 오랜 필력이 작가와 감상자의 소통을 돕는다는 점에서 민화에서도 필력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정학진 작가께서는 최근 괴석 시리즈를 통해 굉장히 개성적인 세계를 열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일반적으로 괴석은 화조도 등 여러 그림의 베이스가 되고 장수를 뜻하지만 괴석 자체가 메인이 되는 경우는 흔치 않죠. 이름도 비슷한 정학교라는 화가는 조선시대 말기 서예가로, 괴석 그림을 잘 그리긴 하지만 문인화에 가깝습니다. 정학진 작가께서는 괴석을 통해 과감한 실험을 하고 계시는데 앞으로 어떤 괴석을 선보일 예정이신가요?

정학진 저는 그동안 궁중회화풍의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제가 좋아하는 원화에는 거의 괴석이 들어가 있었어요. 괴석을 그리면서 질감, 입체감, 조형에 매력을 느끼고 ‘내가 괴석을 굉장히 좋아하는구나’ 라는 사실을 깨닫게 돼 괴석을 한 번 부각시켜 그려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정형화된 틀에서 깔끔하고 예쁜 그림만 그리다가 괴석이 지닌 거친 터치감이라든가 자유로움을 표현하다보니 다른 주제를 그릴 때보다 행복감이 더하더군요. 그러나 개인적으로 먼저 주제에 대해 크게 의식하고 작업하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자연스럽게 나오는 그런 그림을 그리려고 합니다

유정서 어찌 보면 이 네 분들의 작품세계가 전통을 현대적으로 표현하려는 경향을 띠고 있으며, 창작세계의 안전하고 바른길을 보여주는 분들이라고 볼 수 있어요. 자기가 좋아하는 한 부분만을 떼어와서 특별히 좋아하는 화목만을 갖고 색다른 그림을 그리는 것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오늘날 작가들에게 좋은 방향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 더 질문을 드리자면, 지민선 작가가 말씀하셨듯 재현이냐 모사냐 라는 논란이 먼 훗날 모두 민화라는 바운더리 안에 묶이긴 하겠지만 다이나믹한 현재 민화 화단의 상황을 어떻게 보시는지,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좋을지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정학진 일단 민화라고 하지만 그 속에는 동양화, 서양화, 팝아트까지 아우를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뿌리는 민화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신선한 발상과 능력 있는 작가들이 많이 나오고 있어 작품 생활 1, 2년 만에 주목받는 경우도 있는데 제가 고루해서인지는 모르지만 전통 세계를 좀 착실히 배우고 창작을 해나가는 것이 좋지 않나 생각합니다.

유정서 작가님의 말씀처럼 일단은 기량이 밑받침되지 않으면 새로운 시도들이 빛을 발하기 어려워요. 민화로서의 기법에 충실하고 솜씨나 기량이 원숙한 상태에서 기량을 펼치는 것이 화단이나 개인적으로 바람직하겠지요.

지민선 현대 민화가 여기까지 오기까지는 선생님들의 역할이 컸고 저도 아직은 선생님들을 따라가는 입장이긴 한데, 지금 화단이 과도적인 상황이어서 민화의 정의나 기법이 제대로 정립이 되어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가르치는 입장에서 민화적 기법을 진채화, 한국화, 불화 등에서 차용하긴 하는데 이 기법들이 민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러한 내용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된다면 민화계의 기반이 좀더 단단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황은자 문자도는 삶의 지침서도 되지만 화조도나 책거리 등 안 어울리는 것이 없습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민화에서도 민화가 서로 조화를 이루는 분위기가 됐으면 해요. 제가 이론 강의를 해보면 실기수업에 비해 참여율이 낮습니다. 옛 말에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고, 그리기 전에 도상에 대해 잘 알면 그림에 대한 이해가 더욱 쉽고 편해집니다. 이론적인 내용을 통해 도상을 알면 즐거워지고 민화가 학문적으로도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요? 민화의 실기와 이론이 잘 병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정현 창작이라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조급해 해서는 안됩니다. 한 10년 후에 돌아보면 현대민화, 창작민화 등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있을거에요. 제가 작업을 할 때는 두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 민화에는 일단 상징성,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단순한 메시지로 누구든 공감할 수 있는 단순명료한 그림이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기법적인 것으로 개인적으로는 민화의 기법은 ‘자유로움’이라고 생각합니다. 못그리기 때문에 핑계일 수도 있지만 구도에서 자유롭고 싶어요. 이 두 가지 원칙에서 그림을 그리지만 저는 제 그림이 민화라는 이름을 벗어나 ‘회화’가 되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모사가 됐든 창작이 됐든 500점은 그렸을 때 작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저 역시 아직은 작가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아직 그 과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정서 전시회를 기획하며 많은 보람도 느끼고 저도 많이 배웁니다. 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모아놓고 보니 우리 민화 화단의 현주소가 어디쯤인지, 앞으로 어느 정도까지 진화하고 발전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오늘 자리해주신 작가님들께서 작품을 그릴 때 더 힘을 쏟으셔서 민화계 발전에 힘을 보태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석 정학진, 정현, 지민선, 황은자
진행 유정서 본지 편집국장
사진 이주용 기자
정리 문지혜 기자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