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민화> 지상 초대전

‘월간 <민화> 지상초대전’은 월간 <민화>가 올바른 민화 비평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선보이는 기획입니다. 이 초대전에 초대되는 작가는 월간 <민화>의 의사가 아닌 해당 평론가의 결정에 따라 선정됩니다. 다만 평론가가 특별히 지목하는 작가가 없을 경우, 여러 명의 후보 작가를 복수로 추천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본 초대전에 초대되기를 원하는 작가는 편집국으로 작가 약력과 대표작 8~10점을 메일을 통해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타 초대전과 관련된 질문도 담당기자에게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고양이, 현대인의 애틋한 자화상되다

손유영 작가의 그림에는 고양이들이 많이 등장한다. 잘 짜인 정적인 공간에 느닷없는 고양이의 등장은 눈길을 사로잡는다. 고양이들은 배경이 없는 기물과 등장하거나 일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아침인사, 봄이, 설레임, 휴식…’ 등의 제목에서 보듯이 시선은 과장되거나 왜곡됨이 없이 평화롭다. 그러나 그 공간들은 다층적인 공간으로 확장되도록 교묘하게 계획되어져 있다. 그래서 우리의 시선들을 일상과는 다른 공간의 차원으로 옮겨 놓는다. 그것은 현실적인 공간의 곳곳에 숨겨놓은 ‘민화적인 장치’들과 ‘고양이의 시선’ 때문이다.
작가가 전통 민화를 해석하는 능력은 매우 탁월하고, 접근법에 있어서 매우 자유로운 의지를 갖고 있다. 작가는 현대적인 소재와 자연의 공간들 속에 무심한 듯 민화의 한 조각을 던져 넣는다. 그것은 마치 한 잔의 물속에 던져진 한 조각의 오렌지 조각처럼 강렬하고 상큼한 향으로 화면을 전혀 다른 차원으로 도치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민화의 퍼즐들이 갖는 강렬한 에너지일 수 있지만 작가는 그 대단한 가치를 미리 눈치챘을 것이다. 민화의 어떤 모티브이든 작은 부분만으로도 그림 전체를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민화의 그런 에너지가 현대적인 공간을 묘하고 환상적인 공간 속으로 치환시키며 동시에 고양이의 묘妙한 눈빛과 부드러운 움직임은 감상자들에게 현실과 비현실의 틈을 열어 보여준다. 이러한 작품을 통해서 작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려고 한 것일까?

“고양이 특유의 몸짓과 표정을 통해서 현대인들의 사랑, 행복, 꿈, 기다림, 설렘, 외로움 등을 표현하고 싶었다.” -2016. 작가노트

작가가 자신 속에 품어온 메시지들은 결국 자신과 타자들에 대한 한없는 ‘사랑’이다. 삶의 여러 모습들을 민화에 기대어 환상적이며 동화적인 시선으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작가의 독특한 예술적 양식이 존재한다. ‘외로움’과 한없는 ‘기다림’까지도 작가의 시선으로 풀어낸 공간은 따뜻하고 정겹다. 생生이 한번이라도 우리에게 준비된 시간을 마련해 놓았을까? 반문하면서 그 순간들의 느닷없는 기쁨, 혹은 절망까지도 작가는 따뜻하게 포용하고 사랑하며 희망을 가지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작가는 버려진 길 고양이들을 많이 그렸다. 그 고양이들에게 드리운 따뜻한 시선은 작가가 우리에게 건네는 위안의 메시지에 다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하게 살아라.’ 위로가 필요한 모든 이에게 작가가 건네는 사랑의 말이다. 이러한 순수한 서정들은 우리에게 잃어버린 시간들을 찾아준다. 상처받은 영혼들이 문득 풍겨오는 라일락 향기에 엄마와의 어린 시절을 추억하고 그 행복했던 기억들로 현실의 고통들을 지워가듯이 그의 그림에는 그런 위안이 있다. 예술의 순수성에 있는 정화淨化의 기능이 작용하는 것이다. 근원적으로는 그것이 민화가 가진 공감과 치유의 마력이다.

또 하나의 시점은 고양이라는 대상을 통해 인간의 다양한 모습과 삶을 투영함으로써 보다 객관적으로 우리들의 모습들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 있다. 작가의 이력이나 수상들을 살펴보면 한편의 드라마처럼 민화의 발전과 저변확대를 위한 노력을 한순간도 게을리하지 않았음을 보게 된다. 즉 작가의 탁월한 묘수妙手는 삶의 진정성을 누구보다도 열심히 추구하면서도 그것을 순수하고 동화적인 설정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한다는 점에 있다. 열정과 성실로 민화의 예술과 일상성을 일구고 있는 작가의 작품들을 바라보면 T.S 엘리엇의 「지혜로운 고양되기 위한 지침서」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캣츠」가 떠오른다.

엘리엇의 「지혜로운 고양되기 위한 지침서」 우화집은 여러 종류의 고양이들을 소개한 우화 시집이다. 작품은 하나의 이야기로 전개 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저런 사연을 가진 고양이들의 모습을 엘리엇의 아름다운 시어로 그려낸 작품이다. 이 우화집의 고양이들은 빅토리아 시대의 다양한 인물들의 유형들을 그려낸다. 뮤지컬로 만들어진 「캣츠」는 ‘고양이는 아홉 개의 삶을 산다.’는 서양 속담에서 착안하여 새로운 삶을 선택받은 젤리클 무도회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고양이들의 캐릭터는 다양하다. 매혹적인 고양이 그리자벨라(Grizabella), 반항아 고양이 럼 터 터거(Rum Tum Tugger), 그 외에도 부자고양이, 마법사 고양이 등이 등장한다. 극중의 음악들은 각기 고양이의 성격과 특성을 드러내는 다양한 음악적 스타일로 무대를 채운다. 작가의 그림의 장식적으로 사용된 민화의 모티브들도 캣츠의 곡을 고르는 것처럼 그림의 주제에 따라 다양하게 차용된다. 우산을 쓰고 있는 두 마리 다정한 고양이 그림에서는 우산 안에 풍요로운 모란꽃을 가득 그려 넣어 둔 것도 꼼꼼히 설계한 의도가 보인다.

작가는 뮤지컬의 선지자 고양이처럼 민화에 새로운 가능성과 영역을 확장해 가고 있다. 선지자 고양이 올드 듀터러너미(Old Deuteronomy)는 지혜롭고 현명하며 존경과 사랑을 받는다. 매년 젤리클 축제에서 한 고양이를 선택하여 헤비사이드 레이오로 보내어 새 삶을 주는 역할을 한다. 뮤지컬 캣츠의 고양이처럼 손유영 작가의 고양이들은 다양한 인간의 유형을 대변하며, 영리한 눈매와 유연한 몸매로 아름다운 민화의 바다를 누빈다. 그 고양이들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토끼처럼 고양이의 시선을 따라 무대처럼 장식된 민화의 가상의 공간속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작가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와 보여주고 싶은 민화의 아름다움은 고양이를 통해 뮤지컬처럼 노래의 리듬과 움직임을 보여준다.
뮤지컬 공연의 무대는 T.S 엘리엇의 유명한 시 ‘황무지’의 배경이 되는 쓰레기장을 무대로 하였다. 고양이의 시각으로는 실제 사물들이 매우 크게 보이는 것을 고려해서 무대 소품으로 쓰이는 폐타이어, 구두, 타자기 등을 실제 크기보다 3배에서 10배까지 크게 제작되었다. 손유영 작가의 그림에서도 눈앞에 멋지게 등장한 화려한 여성의 하이힐은 거대하다. 그것을 바라보는 고양이의 눈을 따라 우리는 구두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부여받는다. 마치 한 번도 보지 않았고 사용하지 않았던 그런 시각으로 말이다.
즉 확대된 사물들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무심하게 보는 사물들에 대해 객관화하여 볼 것을 요구한다. 사물과 사람, 사람과 사람의 관계성은 필연적으로 시각의 차이가 존재하며, 타인의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을 때에만 우리는 ‘완전한 관계’를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가는 조선시대 화원화가 변상벽의 고양이로부터 전통적인 상징성과 전통의 기법을 고스란히 계승하면서 현대의 민화를 그려내고 있다. 장중하게 끝나는 캣츠의 노래가 추억을 떠올리면서 희망을 노래하듯이 작가노트의 한 구절은 옛 법을 익혀 새로움에 다가가는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저는 제가 하는 작업을 통해 고단하고 외롭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공감과 위안을 전하고 싶습니다.”


해설 이경숙 박물관 수 관장

경북대학교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미술교육과에서 「조선후기 농역화 연구」(1993)로 석사학위를, 경주대학교 대학원에서 「19세기 불화에 나타난 연꽃의 상징과 표현」(2001)으로 석사학위를, 대구대학교 대학원에서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난 연화의 양식적 특성과 상징성에 관하여」(2005)로 조형예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계명대학교 행소박물관에서 학예사로 일했으며, 박물관 수를 개관하여 「오복을 부르는 꽃·수전-복주머니와 자수베갯모」(2011), 「오복을 부르는 꽃·수전-한국의 근대십자수」(2011), 「태극 무궁화 특별전」(2011), 「유물 속 과학이야기」(2012), 「한국인의 삶-목각 인형전」(2014), 「그림으로 떠나는 세계여행」(2015) 등을 기획하여 전시하였으며, 2014년부터 (사)대구광역시 박물관협의회 회장과 (사)한국사립박물관협회 이사를 맡고 있다. 민화와 자수에 대한 연구와 더불어 어린이민화지도사 양성 등 민화의 저변확산에 관심이 많다.

해설 이경숙(박물관 수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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