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민화> 주관 제8회 해외학술답사를 다녀와서

낯선 여행지에서 문득 나라는 사람이 낯설게 느껴진 적은 없는가.
과거의 삶은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 채, 지금 여기에는 나도 알 수 없는 전혀 낯선 누군가가 서 있다!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이런 ‘모름의 순간’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순간이며성 스러운 순간이다.
바로 그 모르는 순간 속에 당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될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답사를 주관한 월간 <민화>에 감사한다.
답사를 통해 깨달은 체험이 나 자신을 성찰하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민화에 스민 불교와 도교문화의 흔적을 찾아서

여행이란 ‘빛’과 ‘색’의 만남이다. ‘보이는 것’과 ‘보여 지는 것’의 만남이기도 하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낯선 대상’이 빛으로 망막을 통과하면서 여행자의 머리를 지나 가슴으로 들어온다. 그 대상이 여행자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지는 그들의 몫이다. 자신의 의식 수준에 따라 대상은 인식되어 질 터이다.
흐린 하늘과 푸른 들판 사이로 열차가 달린다. 이른 새벽, 오랜만에 열차에 몸을 맡겨본다. 몇 시간 후면 중국행 비행기를 타겠지. 여행이란 빛과 색의 만남인데 빛과 색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외부에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마음에서 비치는 풍경이다. 그 마음을 만나러 떠난다. 떠난다는 것은 설렘이다. 여행은 삶이 아닌 그 삶을 엿보는 것. 엿보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 그 삶이 되기 전까지는….
이른 새벽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 포항에서 한국민화학회와 (사)한국민화센터가 주최하고 국내 유일의 민화 전문잡지 월간 <민화>가 주관하는 해외학술답사를 떠났다. 주제는 ‘우리 민화에 스며있는 불교와 도교문화의 흔적을 찾아서’이고 장소는 중국 산서성에 있는 거대한 불교유적인 운강석굴과 도교회화의 정수라 일컬어지는 영락궁 벽화였다. 미술도 미술이지만, 나로서는 불교와 도교라는 심오한 종교의 정수와 만날 수 있다는 데 큰 흥미와 매력을 느낀 터였다.
종교라는 것은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한다. 인간의 역사는 ‘생’과 ‘사’의 연속이다. 한정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인간들은 행복을 추구한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부와 명예가 가져다주는 행복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래서 모두 그것을 위해 목숨을 건다. 그러나 그것에는 그만큼의 좌절과 불행을 감당해야 하는 의무가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중국 불교와 도교 유적을 찾아 나섰다.

운강석굴의 말없는 외침, “천년세월도 찰나와 같다”

신선과 같은 불로장생이 도교에서 많이 등장한다. 세상의 생과 사의 피할 수 없는 리듬에서 벗어난 초월된 세상을 꿈꾼 것이다. 도교는 불로장생이란 인간의 근원적인 질문에 대해 나름대로 방편을 제시하고 있다.
한편 불교는 또 다른 차원의 세계를 열어준다. 깨달음의 긴 행렬이 말해주듯이 그만큼 불교 세계에서 깨달음은 절실한 화두이다.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영원한 숙제인 ‘생’과 ‘사’를 극복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극복하는가. ‘나 자신이 곧 부처’라고 설파한다.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는가. 보이는 세상은 모두 찰나를 견디지 못하고 사라지는 허상이라고 한다. 그래서 ‘생’과 ‘사’도 허상에 불과하므로 마침내 그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나는 대자유인이 된다는 것이다.
세상은 내 마음에서 비치는 스크린과 같다고 한다. 그래서 내 마음에서 세상이 비치므로 내가 세상을 창조하는 절대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곧 우주의 중심이라는 것을 깨닫기만 하면 ‘생’과 ‘사’에서 벗어나는 해탈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멀고도 긴 이동을 한 후에야 운강석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사암 동굴 속의 상상을 초월하는 부처상을 보는 순간 천 년의 고요가 정수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이 자리에서 천 년 동안 중생구제를 위한 참선을 계속하고 있었음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곳 중국 대륙은 천 년동안 기억조차 하지 못할 파란만장한 역사가 이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역사인 것이다. 부처는 그 자리에서 말없이 중생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흔들림도 없이 천 년 동안 말없이 자비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천년세월이 찰나와 같다는 가르침이 죽비처럼 다가왔다. 그 웅장한 모습의 사방에 새겨진 조각들이 부처의 세계를 말해주는 듯했다. 지금도 엄두를 내기 힘든 거대한 부처상 조각을 천 년 전에 어떻게 이렇게 아름답고 웅장하게 조성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경외감이 들었다. 깨달음을 향한 절박한 신심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어서 저절로 합장했다. 그 아득한 옛날에도 이러한 불상들이 만들어졌다는 데 생각이 다다르자, 과연 역사는 진보한 것이 맞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멀고도 먼 도교문화의 정수로 가는 길

평요 고성에서 만난 도교 성황묘는 왠지 낯설지 않았다. 어린 시절 각종 토속신에 무엇인가를 비는 모습에서 익히 봐왔던 것이었다. 그것들이 도교에서 유래한 것이었음을 알게 됐다. 놀라운 것은 지옥도를 연출해 놓은 것이었다.
천당과 극락, 그리고 지옥은 어쩌면 인간의 상상 속에 존재할지도 모른다. 중국 평요 고성에 있는 도교 신앙의 중심인 성황묘에서 지옥을 만났다 불교의 지옥도와 흡사했다. 이곳에서 지옥도를 보리라곤 상상을 못했다. 불교와 도교가 혼재한 중국이기 때문에 가능해 보인다. 지옥도는 이승을 이별한 사람들이 저승의 길목에서 염라대왕으로부터 생전의 죄가 있는 만큼의 갖가지 형벌을 받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어떻게 이런 잔인한 형벌을 기획했을까할 정도로 참혹하다. 상상력이 놀랍기만 하다.
도교 사원 영락궁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수 천 킬로를 달리고서야 만났다. 그래서 감회는 새로웠다. 영락궁 가는 길 중국 산서성 임분을 떠난 버스가 도교 사원인 영락궁을 향했다. 들판 평원을 달리던 버스가 어느 순간 자욱한 안개에 둘러싸였다. 평지를 떠나 산악지대로 접어든 버스는 좌우 안개 사이로 언뜻언뜻 모습을 드러내는 아스라한 고산 준봉들의 호위를 받았다. 마치 선계에 들어온 듯하다.
이윽고 버스는 긴 터널을 달렸다. 터널이 끝나자 환한 햇살에 고개를 한껏 하늘로 향하고 있는 들판의 해바라기가 일제히 우리를 반겼다. 잠시 들른 이름 모를 휴게소에서 만난 꽃과 식물들이 반가웠다. 잠시 거닐다가 만난 대나무에 핀 꽃을 보고 감탄했다. 대나무꽃은 좀처럼 보기 힘들어 상서로운 꽃으로 알려졌다. 도교 선계 길목에서 상서로운 대나무꽃을 보다니 하는 생각에 마치 선계에 온것과 같은 감동이었다. 일행에게 우리는 선계에 왔다고 알리려고 다시 꽃을 살피는 순간 아뿔싸!! 꽃은 대나무꽃이 아니라 대나무를 감고 올라온 줄기식물이 피운 흰 꽃이었다. 교묘했다. 그러나 줄기식물도 그렇게 자리 잡기도 힘들 텐데 선계인 모양이라고 생각을 되돌렸다.

나를 성찰하는 좋은 계기가 된 뜻깊은 학술답사

도교 팔선인 여동빈을 모시는 영락궁은 삼문협 댐 건설로 현재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고 한다. 삼청전을 비롯한 사원의 벽화는 부처님 일대기를 그린 그림의 형식이었다.
고색창연한 벽화는 수백 개의 조각으로 이어져 있고 목조조각도 정교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도교 연구가나 학술답사가 아니면 누가 이곳 먼 길을 마다치 않고 오겠는가. 아쉬운 것은 벽화의 기능적인 설명에 이어 도교 철학에 대한 소개가 이어지지 못한 점이었다. 노자와 장자 여행을 다짐했다.
여행 말미에 법상 스님의 글이 떠오른다.

낯선 여행지에서 문득 나라는 사람이 낯설게 느껴진 적은 없는가. 과거의 삶은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 채, 지금 여기에는 나도 알 수 없는 전혀 낯선 누군가가 서 있다!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이런 ‘모름의 순간’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순간이며 성스러운 순간이다. 바로 그 모르는 순간 속에 당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될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문득문득 알 수 없는 낯선 모름의 순간으로 떠나 보라. 불현듯, 과거에 만들어 놓은 모든 나의 정체성을 떠나보내고 알 수 없는 모르는 자에게 물어보라. 그러면 ‘너는 누구냐’, ‘오직 모를 뿐!’

답사를 주최한 한국민화학회와 (사)한국민화센터에 감사드린다. 특히 여행 전반을 주관한 월간 <민화>에 정말 수고했다는 치하의 뜻을 전하고 싶다. 답사를 통해 깨달은 체험이 나 자신을 성찰하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동행한 도반들과의 좋은 인연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글 곽성일 경북일보 편집국 행정사회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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