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서예가 김양동

빛살로 그려낸 원초적 한국美

근원 김양동 계명대학교 석좌교수는 서화각이 어우러진 작품으로 한국 미술의 원형을 탐구해온 원로서예가이다. 서예의 경계를 허물고 전각은 물론, 민화적 요소까지 적극 도입한 그의 작품에서 ‘전통의 현대화’에 대한 단초를 읽을 수 있다.

글 문지혜 기자 사진 우인재 기자


서書·화畵·각刻을 통합한 작업으로 한국 미술의 원형을 탐구해온 근원 김양동 계명대학교 석좌교수가 오는 11월 18일(토)까지 계명대학교 행소박물관에서 <근원 김양동 기증 작품전>을 개최한다. 팔순을 맞이한 김 교수가 계명시민교육원 개원 3주년을 기념해 여는 이번 전시에서는 서예, 전각, 회화의 조형 요소들을 자유롭게 융합하여 완성한 작품 40여 점을 선보인다. 김양동 교수는 고대문양 및 민화 등의 회화와 전각의 조형요소까지 자유롭게 혼융하여 장르의 경계를 허물고 혁신적인 시도를 거듭해왔다.
“‘서예’라고 하면 화선지에 한문을 쓰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현대생활과 괴리가 생길 수밖에요. 서예가 소외되는 이유기도 하고요. 옛 것을 가지고 오면서도 현대적으로 풀어내는 작업이 절실했죠. 원로 서예가로서 이정표를 제시해야 한다는 생각에 서예에 전각적 요소인 각새김, 전통회화를 믹스해서 ‘한국식 비빔밥’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는 흙으로 만든 도판 위에 전각의 기법으로 도상을 새겨 구워낸 뒤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자연스러운 요철을 한지로 탁본하듯 떠내어 말린 후 시서화를 한데 표현한다. 일찍이 대거 수집해 둔 묵은 한지를 활용, 고풍스런 분위기를 가미한 것이 특징이다.

김양동, <황정야우(黃亭 夜雨)>, 송(宋) 육유(陸游, 1125~1210) 시, 2023, 한지, 먹, 토채, 73×48㎝

태양 숭배 사상이 빛살로, 神으로

김양동 교수의 독자적 작품세계는 우리 미술의 원형에 대한 깊은 사유와 통찰에서 비롯된다. 그 시발점은 바로 한국의 고대 ‘무늬’다.
“우리 미술의 근원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미술가들이 대답을 못해요. 서예 역시 미술의 한 부분 아니겠어요. 저 역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가 어려웠지요. 한국 서예사에 대한 책을 쓰려고 보니 글자의 기본인 ‘획’을 정의하는 대목부터 벽에 가로막힌 느낌이었으니까요. 몇 년을 끙끙 앓다가 우연찮게 중국 서예사 책을 보았어요. 중국에선 중국 신석기 문화인 앙소문화의 도자기 문양을 서예, 문자의 기원으로 서술해 놓더군요. ‘아, 우리도 도자기에 남겨진 획부터 시작하는 게 옳겠구나’ 싶었죠. 무늬가 시대의 사유를 반영한 것일 테니까요. 이때 주목한 것이 ‘빗살무늬’였습니다.”
한국 신석기시대 토기를 대표하는 빗살무늬토기의 명칭은 ‘즐문토기櫛文土器’에서 유래했다. 일제강점기 고고학자 후지다 료사쿠가 토기 문양을 보고 ‘머리빗’의 살과 닮았다하여 이름 붙인 것이다. 김양동 교수는 그 명칭에 의문을 품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빗살’에는 조상들의 사유가 담겨있지 않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문득 토기의 바닥에서 위를 본 모양을 평면도로 치환했을 때 도상이 태양과 닮았다는 점을 알고 무릎을 쳤다.
신석기 시대 농경사회로 진입했을 당시 가장 중요한 태양의 ‘빛살’을 형상화했음을 간파한 것이다. 이 빛살은 한자 ‘神(신령 신)’에 대한 획기적인 해석으로 이어진다. ‘神’은 ‘示(보일 시)’와 ‘申(원숭이 신)’으로 파자할 수 있으며 음音이 같은 ‘申’은 한줄기 빛과 같은 모양의 ‘|’와 이를 감싸고 있는 ‘臼(학 구)’자로 분리된다. 김양동 교수는 빛살을 형상화한 ‘|’를 태양의 정기를 품은 남자의 불알로, ‘臼’을 여성의 음부라 분석했다. 한마디로 남녀가 교접하는 형상 즉, 인간을 탄생시키는 인간 개개인이 신이라는 의미로 보았던 것이다. 누구든 정진하면 성불할 수 있다고 역설하는 ‘불교’,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 사상을 설파한 ‘동학’ 등 인본주의 사상이 담긴 동양철학과 맥이 맞닿아있다. 인간과 신을 개별적 존재로 분리해서 보는 서양과는 대조되는 대목이다.
“고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종족보존이었어요. 그러니 이를 가능하도록 힘을 내려주는 태양을 숭배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글자 ‘神’에서 알 수 있듯 남녀의 결합은 가장 숭고한 의식입니다. 사람을 탄생시키는 사람이 곧 신인 겁니다. 결국 신화라는 것도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어디 사람과 관련 없는 신화가 있던가요?”
2015년에는 오랜 연구결과를 집대성하여 저서 《한국 고대문화 원형의 상징과 해석》을 발간, ‘빛살문’을 비롯해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 필요함을 주창했다.

김양동, <증행화촌주인(贈杏花村主人)>, 운초(雲楚) 김부용(金芙蓉) 시, 2023, 한지, 먹, 토채, 48×73㎝
김양동, <청서(淸暑)>, 당(唐) 백거이(白居易, 772~846) 시, 2023, 한지, 먹, 토채, 133×48㎝

서예와의 운명적인 만남

경북 의성 출신의 김양동 교수는 애초 서예가가 되리란 생각조차 없었다. 으레 유교적 성향이 짙은 안동, 의성 지방에서 그러하듯 선비의 교양으로 여겨 취미 삼아 붓을 잡았을 뿐이었다. 서예에 입문했을 당시 나이는 27세 때, 시골 고등학교 국어교사를 거쳐 배치고사에 합격한 뒤 상경한 직후 운명처럼 철농 이기우 선생의 전시 포스터를 만난 것이 계기가 됐다.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뜬 그는 이기우 선생을 찾아가 배움을 청했고, 현대 서예와 전각의 선구자였던 스승의 문하에서 기본기를 익혔다. 또한 한학자 임창순 선생과 우전 신호열 선생으로부터 고전과 서화 골동의 감식안을 배우고, 한국일보 논설위원을 역임한 문화연구가 예용해 선생과 유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전통문화에 대한 소양과 인문학적 토대를 일궜다.
“다른 흥밋거리를 찾을 수 없어서 글씨를 시작했습니다(웃음). 돈도 안 들고, 혼자서도 할 수 있으니. 글씨 쓰는 재주가 뛰어난 것도 아니었어요. 사실 재주가 특출난 것도 좋진 않아요. 술術이 학문의 도를 방해할 수 있으니까요. 글씨의 조형은 그릇일 뿐예요. 담기는 내용이 중요하지요. 사유가 깊어져야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김양동 교수는 국내에 서예과를 탄생시킨 주역이기도 하다. 인문정신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심신을 수련하고 사유의 지평을 넓히는 서예문화를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 1989년 국내 최초로 원광대학교 서예과를 설립하고 후학을 양성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남다른 책임감에 늘 자중했던 그는 1996년 그의 나이 53세가 되어 인사동 공평아트센터에서 느지막이 첫 개인전을 개최했다. 서화각이 한데 어우러진 실험적인 작품에 수많은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뤘고, 매스컴도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출품작 53점을 완판한 것은 물론이다. 지난해에는 한국 서예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제8회 일중서예상을 수상했으며 내년 5월에는 수상기념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현대 민화, 원시적 상상력으로 생동감 불어넣어야

김양동 교수는 스스로의 그림을 ‘나이브 아트(naive art,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작가들이 그린 미술로 기교 이전의 순수한 즐거움과 자연스러운 소박미 등이 특징)’라 칭한다. 제도권 교육을 받지 않고 자생적으로 그려낸 것이라는 점에서 민화와도 상통한다. 실제로 민화의 구도, 소재 등을 적극 활용한다는 그는 오늘날 민화 작가들이 민화의 본질을 꿰뚫어야한다고 지적했다.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옛날 민중들이 기발한 상상력으로 그려낸 그림이 민화의 원류인데, 최근 민화에서는 옛 민화가 지닌 원시성이 사라졌어요. 다들 세련되거나 예쁘장하게만 그리려고 하니 패턴, 구성, 조형, 색깔이 비슷비슷해졌죠. 무한한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피카소가 아프리카 미술의 원시적 조형미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녹여냈던 것처럼 말이죠. 오늘 민화에 기운생동미가 있나요? 자고로 작품에는 생명력이 있어야 합니다. 억셈이라든가 강한 파워도 줘야지, 너무 곱게만 그리려고 하면 그림의 에너지가 죽어버려요.”
일평생 한국미의 원형을 연구해온 원로 서예가가 민화 화단에 건네는 일침이 따끔하다. 원초적 미감을 어떻게 현대화할 것인가? 태초의 기운이 꿈틀대는 그의 작품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0월 18일(수)~11월 18일(토)
계명대학교 행소박물관 1층 동곡실(특별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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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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