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미술사학자 문명대 – 민화, 무한한 확장성과 가능성 지닌 민족의 그림

문명대 교수는 우리나라 미술사학, 특별히 불교미술사에 독보적이라 해도 좋을 뚜렷한 족적을 남긴 원로 미술사학자로 우현 고유섭을 필두로 한 이른바 ‘개성학파’의 뒤를 이어 한국 미술사 연구의 지평을 크게 넓힌 이른바 ‘제2세대 미술사학자’ 그룹을 대표하는 학자의 하나이다. 그가 설립한 한국미술사연구소의 부설 공간인 ‘갤러리 한옥’을 통해 ‘불화/민화’ 공모전을 준비 중인 노 학자에게 듣는 민화의 오늘과 앞날.


‘갤러리 한옥’과 원로 미술사학자

서울 인사동 쪽에서 길을 건너 북촌 한옥길에 들어서면 초입 왼편으로 난 첫 번째 골목 어귀에 예쁘고 조그마한 갤러리가 하나 눈에 들어온다.
‘갤러리 한옥’. 이름처럼 전통 한옥을 개조해 꾸민 전시 공간이다. 전시장은 한옥의 본래 구조를 자연스레 살린 두 개의 방으로 나뉘어 있는데, 좁은 느낌이 드는 대신 산만하지 않고 오밀조밀 정겨운 맛이 감도는 게 여간 정겨운 것이 아니다. 대체로 조촐한 규모의 개인전을 열기에 알맞은 크기이다.
이처럼 이 갤러리는 겉모습만으로는 그저 예스런 서울의 명소 북촌에 한 줌 예술의 향내를 더해주는 작은 문화공간의 하나 정도로 비쳐질 수 있겠으나, 실은 그렇게만 보아 넘길만한 예사 공간이 아니다. 알 만한 사람은 다들 알고 있듯이, 이 작은 갤러리가 주는 중량감은 덩치만으로는 결코 가늠할 수 없는 수준인 것이다.
무엇보다 이 갤러리는 우리 미술사학의 깊이와 넓이를 획기적으로 개척해온 저명한 연구기관 ‘한국미술사연구소’의 부설 공간이다. 갤러리 안 쪽 더 넓고 깊숙한 곳에는 한국미술사, 특히 불교미술사에 관한 수준 높은 강의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연구소가 자리 잡고 있다.
한국미술사연구소는 지난 1980년도 창립된 이래 ‘한국미술사연구회 박물관대학’으로 명명된 미술사 강좌를 현재까지 52회째나 진행해 왔으며 우리나라 미술사학계를 대표하는 학술지 중 하나인 <강좌-미술사>를 반년간으로 51째나 발간해왔다. <강좌-미술사>는 매호 10편 이상의 수준 높은 논문을 수록, 그간 수백편의 논문을 학계에 제공해 온 유서 깊은 학술지로서 특히 불교미술사 분야의 학술지로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미술사연구소가 우리나라 미술사학계에 끼친 공로와 영향은 이처럼 압도적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대단한 연구소가 많은 예산과 조직에 의해 움직이는 국공립 연구기관이 아니라 우리나라 미술사 연구에 평생을 바쳐온 한 열정적인 학자가 설립해 혼신을 다해 운영해 온 개인연구소라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미술사학계를 대표하는 학자 중 한 사람으로 특히 불교미술사 분야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긴 원로 미술사학자 문명대 교수가 바로 그 사람이다.
그러니까 북촌에 자리잡은 예쁘고 아담한 전시장 ‘갤러리 한옥’은 문명대 교수가 설립한 한국미술사연구소의 부설공간으로 학문연구와 병행해 동시대(Contemporary) 예술의 조망을 위해 운영하는 의미 있는 공간인 셈이다.
갤러리 한옥은 근 15-6년 전인 2000년대 초에 소박한 규모로 오픈했으나 지금과 같은 시설과 모양으로 리모델링해 본격적인 전시 공간으로 거듭난 것은 지난 2013년의 일이다. 개관 기념전으로 한국화가 이종상李鍾祥 교수의 개인전을 연 이후, 주로 동양화 전시회를 유치했다. 문 교수의 말에 따르면 동양화 교수들 중에는 여기서 전시회를 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그러던 갤러리 한옥이 최근 들어 부쩍 민화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얼마 전 몇몇 민화작가의 전시회를 연이어 유치, 민화계에도 존재감을 인식시켜 가는가 하더니 이번엔 과감하게도 ‘민화공모전’을 주최한다고 발표, 민화계 안팎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 배경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갤러리 한옥’ 주관, 불화/민화 공모전

사실 문명대 교수가 민화계와 전혀 관련을 맺은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미 지난 2013년, ‘불교문화와 민화’를 주제로 열린 한국민화학회 학술대회에서 문 교수는 불교미술과 민화의 관계를 테마로 기조강연을 하고 그의 제자들 여럿이 발표자로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민화학계의 요청에 따른 학문적 행보였을 뿐, 당대의 그림인 현대 민화와 관련된 것은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현대 민화를 대상으로 공모전을 주최한다는 것은 민화계, 특히 민화화단으로서는 반가우면서도 놀라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갤러리 한옥의 안쪽에 있는 한국미술사연구소 연구실에서 마주한 문명대 교수는 예의 인자하면서도 편안한 웃음으로 궁금증에 대해 입을 열었다.
“사실 올해 봄, 당대 미술에 대해 발언해야 하는 갤러리 본연의 소임도 다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큐레이터와 상의해서 일반 미술을 대상으로 ‘청년작가공모전’을 개최했어요. 그런데 처음 우려와는 달리 그 반응이 엄청났어요. 당연히 이 행사는 계속해야겠지만, 여러 가지 준비상황이라든가 이런 문제를 감안, 매해 하는 것 보다는 격년으로 치르기로 했지요. 대신 그 사이에 있는 해에는 ‘불화佛畵공모전’을 열기로 했어요. 그리고 불화공모전을 하는 김에 민화도 함께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지요.”
문 교수는 불교미술사의 권위자일 뿐 아니라, 불화를 그리는 ‘실기교육’의 선구자이자 개척자라는 점에서 불교공모전은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행사이다. 그러나 민화는 여전히 조금 낯선 분야이다.
“불화와 민화는 공통점이 많은 분야이지요. 둘 다 전통 미술 중 대표적인 채색화이고 가장 한국적인 그림이고 또 염원의 그림이지요. 함께 어울려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특히 최근 들어 민화가 크게 붐을 일으키고 있지 않아요? 그러니 민화와 함께하면 공모전의 범위를 자연스럽게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를테면 공통점이 많고 서로 친숙한 그림인 민화와 불화를 한데 아울러 이른바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겠다는 것이 이런 성격의 공모전을 기획한 까닭이란 말일 것이다. 사실 그의 말처럼 불화와 민화의 밀접한 관계에 대해서는 이미 학문적으로도 상당부분 정리가 된 상태이다. 두 그림 간 도상의 유사함은 물론, 민화의 모티브가 된 소재의 많은 부분이 불화에서 비롯되었다든가 다양한 민화작가의 계층에서 화승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했다는 사실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런가 하면 현대 민화작가들 중 불화작가 출신이 적지 않다는 점 등도 시대를 초월한 불화와 민화의 친숙함을 말해주는 증거들이다. 그런 점에서 갤러리 한옥의 첫 전통미술 공모전의 주제가 불화와 민화인 것은 나름 당위성과 타당성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성사된 갤러리 한옥의 ‘2019 불화/민화 공모전’은 새해 첫날인 1월1일부터 공모에 들어가 1월15일까지 접수를 하고, 불화 민화 분야의 권위있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의 엄정한 심사를 거쳐 1월30일 당선자를 발표한다. 대상 당선자에게는 소정의 상금과 함께 갤러리 한옥 초대전의 기회가 주어진다.
그러나 상금이나 부상보다도 더 큰 대가는 따로 있다. 가장 권위 있는 우리나라 미술사학의 요람에서 선정하는 작가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그것이다.

민화, 한계보다 가능성이 더 큰 민족의 그림

비록 여러 가지 긍정적 결과를 기대하며 불화와 함께 하는 민화 공모전을 기획하기는 했지만, 그렇더라도 민화에 대한 이해와 애정 없이 이런 행사가 기획되기는 어렵다. 여기에는 우리 미술사학의 원로로서 민화를 바라보는 시각과 인식이 깊게 개입돼 있을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간단하게나마 민화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듣기로 했다.
현대 민화가 주류 미술계에서 오랫동안 미술 대접을 받지 못했듯이, 학문으로서의 민화도 미술사학계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민화인으로서는 당연히 아쉽고 서운한 일이겠지만, 냉철하게 보면 학문의 대상으로서 민화가 지닌 몇 가지 큰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학문의 대상으로서 민화가 지닌 한계를 물으셨습니까? 그렇습니다. 몇 가지 큰 한계가 있어요. 가장 큰 것은 작가와 절대 연대가 밝혀진 것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미술사 연구에서 연대와 작가는 매우 중요하고도 결정적인 요소입니다. 이걸 가지지 못했다는 건 아주 치명적인 한계입니다. 아마 미술사학계에서 민화를 연구대상으로 선뜻 인정하기 어려웠던 것도 민화를 달리 생각하거나 폄하해서가 아니라 이런 한계를 심각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또 하나의 한계로 그는 전해지는 민화의 거의 대부분이 조선 후기, 그것도 19세기 후반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한 마디로 제작된 기간이 너무 짧다 보니 연구의 폭이 좁고 짧을 수밖에 없어요. 시대에 따른 양식의 변화라든가 서로 다른 시대적 배경이 반영될 여지가 거의 없는 것이지요. 이 또한 민화에 대한 학문적 연구를 어렵게 하는 중요한 요인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한계는 말 그대로 연구를 어렵게 하는 치명적인 요소일 뿐 미술사의 연구 대상이 되고 안 되고와는 별개의 문제라고 강조한다. 특히 최근 들어 미술사학을 정식으로 공부한 소장 학자들이 다양한 방법론으로 민화 연구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는 것을 대단히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렇다면 민화가 지닌 이런 한계를 극복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민화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는 것이 바람직할까?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할 수 있겠지만, 불교미술사를 오래 공부한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우선 불화를 주목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봐요. 앞서도 이야기 했지만 불화와 민화는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행이 조선시대 불화의 경우, 민화와는 달리 작가와 연대가 밝혀진 것이 많습니다. 민화적 요소가 많은 사찰 건물도 연대가 뚜렷한 것이 많습니다. 불화와의 교차 연구 등을 통해 민화 연구의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나아가 민화가 지닌 일정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학문적 연구든, 당대 미술로서의 현대 민화이든 발전 가능성은 매우 크다고 미래를 낙관했다.
“중요한 것은 누가 뭐래도 민화가 가장 한국적인 그림, 한국 사람의 보편적인 심성을 가장 많이 담고 있는 그림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어요. 그런 점에서 ‘한국적인 요소’라 할 만한 것은 우선 민화에서 찾을 수밖에 없어요. 이런 점은 한계의 반대편에 있는 굉장한 장점이지요. 그런 점에서 지속적인 발전과 연구의 확장 가능성은 매우 크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그가 말한 ‘지속적인 발전과 연구의 확장’을 위해 민화계가 해야 할 중요한 과제에 대해서 물었다.
“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지금으로서는 학문적 연구와 실기를 병행하는 전문적인 교육과정이 대학에 개설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학부에 전문 학과가 생기면 실기와 이론을 동시에 가르칠 수 있습니다. 이건 제가 대학에서 불화작가들을 대상으로 커리큘럼을 개발하고, 실기와 이론을 교육해 전문가로 양성한 경험에 비춰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민화 발전에 중대한 분수령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 노력을 범 민화계 차원에서 벌벌여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시들지 않는 열정, 용솟음치는 노익장

앞서 잠깐 말했듯이 문명대 교수는 우리나라 미술사학, 특별히 불교미술사에 독보적이라 해도 좋을 뚜렷한 족적을 남긴 원로 미술사학자이다.
우리나라 미술사학의 계보는 보통 미술사를 전공한 최초의 한국인 학자 우현又玄 고유섭高裕燮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본다. 그는 1933년 약관 28세의 나이로 개성부립박물관에 부임, 타계한 1944년까지 만 11년 동안 박물관장으로 재직하며 우리 미술사를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한편, 그의 뒤를 잇게 될 몇 명의 훌륭한 제자를 두게 된다.
이들이 바로 해방 이후 우리나라 미술사학을 주도한 황수영, 진홍섭, 최순우 등인데, 이들은 흔히 스승 고유섭과 함께 ‘개성학파’라는 이름으로 지칭된다. 이를테면 개성학파야말로 한국 미술사의 창세기를 개척한 선구자, 즉 ‘제1세대 미술사학자’인 셈이다.
문명대 교수는 이들 1세대 미술사가의 뒤를 이어 한국 미술사의 체계를 잡고 깊이를 더한 이른바 제 2세대 미술사학자 그룹을 대표하는 학자이다.
1940년 경상북도 경산 태생으로 경북대 역사학과를 나와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고 황수영 교수를 스승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후 동국대학교 박물관 연구원을 거쳐 1976년 동국대학교 교수로 임용되었다. 1983년 이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로 재직하다 1987년 다시 동국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 교수로 복귀, 2006년까지 재직했다.
문명대 교수는 한국 미술사 전반에 걸쳐 다양한 업적을 남겼지만, 그의 독보적인 성과가 집중된 분야는 불교미술,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불교조각사와 불교회화사라 할 수 있다. 그의 불교조각사 연구의 출발점은 박사 학위 논문의 테마였던 <석굴암 불상조각 연구>인데, 이 논문은 석굴암의 석굴 구조와 본존불을 포함한 석굴암 내부의 여러 불상들을 세부적으로 정밀하게 고찰한 최초의 연구로 지금까지도 석굴암 연구의 기념비적 성과로 거론되고 있다.
석굴암에서 출발한 그의 연구는 중국 등 국내와 외국의 석굴사원 연구를 넘어 한국 석굴사원과의 비교연구로 까지 지평을 넓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12월 8일 열린 한국미술사연구소 제42회 학술대회에서 그는 경주의 골굴석굴과 중국 운강석굴 제6굴을 비교 분석한 논문을 발표했다.
불교조각사와 관련해서는 불교가 전래된 4세기에서 조선 후기까지 수 천 년을 가로지르는 통사적通史的 연구로 한국조각사의 체계를 잡았고, 불교회화사 분야에서도 1백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하며 역시 시대를 종횡으로 누비는 묵직한 족적을 남겼다. 현재까지 50여 권의 크고 작은 저서와 약 300여 편에 이르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렇듯 빛나는 학문적 연구에 가려 널리 알려지지 않은 업적이 하나 있다. 처음으로 불교미술 실기교육의 모델을 만들어낸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동국대 미술학과에서 오랫동안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불화의 종류, 용어, 어휘, 불교회화사 등의 이론과 함께 실기 방법론이 어우러진 창의적인 커리큘럼과 교수법으로 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많은 뛰어난 제자들을 양성했다. 그는 어느 때 민화도 대학에 정규과정이 생긴다면 자신의 교육모델이 매우 유용한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의미 있는 웃음을 지었다.
그의 나이도 어느새 팔순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여러 면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서 지켜 볼만한 연배인데도 그의 정열적인 행보는 깜박 나이를 잊게 할 정도다. 요즘에도 그는 자신이 설립한 한국미술사연구소를 중심으로 강의를 계속하는 한편, 방대한 저서의 집필에 파묻혀 산다. 그 중 가장 굵직한 일이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새롭게 집필하고 있는 <한국불교회화사>와 <한국조각사>의 집필이다. 두 권 모두 불교 전래기에서 조선 후기까지를 종단하는 통사적 저술로 최신 연구 성과를 반영 전면 개편에 가깝게 집필되는 거작이다.
그런 와중에 갤러리 한옥을 통해 당대의 미술을 조망하기 위해 공모전을 준비한다. 용솟음치는 노익장老益壯이다.


글 유정서 기자 사진 이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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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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