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이태호 교수의 미술사 여담 ⑩ 조선 후기 용과 구름이 휘감은 나무촛대

도1 김세휘, <목제운룡촛대>, 1700년, 은행나무, 높이 66㎝



어두움을 밝히는 촛불은 세상을 여는 부처의 몸이자 말씀에 비유되고, 의례 공간의 정화淨化 기능을 지닌다. 그래서 밀납 초는 향과 더불어서 불교 공양물로 일품에 해당하며, 촛대는 더욱 각별하다. 필자는 최근 제작 시기와 제작자를 밝혀놓은 조선 후기 촛대 걸작 두 점을 만나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글 이태호 (명지대학교 석좌교수, 다산숲 아카데미 원장)


이번 호에는 조선 후기 목칠공예 촛대 명품을 만나본다.
공예工藝는 사람의 솜씨로 만든 생활에 필요한 미술품을 말한다. 회화나 조각처럼 순수예술 영역에 대응해 창의력보다 쓰임새의 기능미를 강조한 예술 분야이다. 공예는 도구의 사용으로 발전한, 인간의 역사와 함께해온 생활예술 영역이다. 보통 흙, 나무, 쇠, 돌, 섬유, 종이 등 재료에 따라 도자공예, 목공예, 금속공예, 석조공예, 지공예, 섬유예술 등으로 분류한다. 이들은 제작 도구의 발달에 따라, 지역과 시대에 따라 각 분야의 성격과 특징을 여실히 드러낸다. 공예라는 명칭에 걸맞게 장인匠人 예술가의 무르익은 솜씨로, 인간의 독창성과 창조성이 발휘된 ‘공교로움의 예술’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공예문화는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다채롭게 발달했다. 한국인의 솜씨를 뽐내는, 한국미의 대표급 보물을 가장 많이 가진 분야이다. 그러면서도 다른 영역보다 눈길을 덜 타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시대를 쌓아온 질그릇, 청자, 분청자, 백자 등 흙으로 빚어 불에 구은 도자예술은 세계에 자랑한다. 청동기시대 거울부터 금관을 비롯한 삼국시대 이후의 귀족적인 금속공예는 정세한 선무늬의 장식미가 뛰어나다. 석조미술은 우리 산천에 지천인 화강암을 다루는 뛰어난 기량을 보여준다. 조선시대 궁궐과 민간의 생활공간에 쓰였던 목가구와 목칠공예는 단순한 것은 간결한 대로, 장식적인 것은 화려한 대로, 이 땅에서 자란 소나무, 느티나무, 은행나무, 오동나무, 대추나무 등의 질감에 어울려 있다.
나는 우리 공예 중 조선시대 목칠공예에서 한국미의 매력을 자주 느낀다. 한국인의 손맛 전통을 크게 자랑할 만한 영역이라 생각한다. 흔히 얘기하듯이 민예民藝의 소박한 아름다움이 그러하고, 궁중이나 사찰의 귀족적 공예품은 장인의 뛰어난 세련미를 뽐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미술사 연구는 물론이려니와 미술시장에서도 홀대를 받는 실정이다. 대개 유물들이 본디 존재했던 현장을 떠난 터에 재질의 특성상 연대가 깊지 않고, 또 제작 시기나 작가가 불분명한 점에 그 원인이 있기도 하다.


도3 이태호, <목제운룡촛대> 거북받침, 2023. 1, 면지에 수묵, 36×51㎝



최근 나는 제작 시기나 제작자를 밝혀놓은 조선 후기 목칠공예로, 촛대 걸작 두 점을 만났기에 여기에 소개한다.
하나는 거북 조각 받침의 외촛대로 처음 공개되는 개인 소장품이다. 이 <목제운룡촛대>는 1700년에 조각가 김세휘가 은행나무로 만들었다. 또 다른 예는 온양민속박물관 소장품으로 1700년 전후 승려 장인 승업이 소나무로 조각한, 사자 받침의 <목제운룡촛대> 한 쌍이다. 이들은 거북과 사자를 조각해 받침으로 활용했고, 그 위에 초를 꽂는 원통형 촛대 기둥을 세웠다. 원통기둥에는 용과 구름, 물고기와 연꽃을 빙 둘러 양각해 넣으며, 조선 명장의 기량이 맘껏 구현되어 있다.

조각가 김세휘金世輝가 만들다

거북 형태의 조각 받침대를 갖춘 <목제운룡촛대>는 한 점만 전해온다(도1). 본디 제례祭禮에 쓰이는 촛대의 기능상 한 쌍으로 제작되었을 터이다. 총 높이는 66㎝이고, 받침의 길이 44㎝이다. 원통형 촛대에는 운룡무늬가 빙 둘러 감겨 있고, 받침은 흔히 비석 기단부에 놓이는 귀부龜趺와 닮은 거북이 조각이다. 촛대 제작과 관련된 명문은 촛대의 받침 바닥에 보인다. 또박또박 날카롭게 칼질한 새김에 해서체로 쓴 세필의 붓글씨 맛이 물씬하다(도2).

康熙三十九年 庚辰 九月 日/(廣德寺) 三殿位改造後/世同參記言彔(錄의 오자)
住持 智卞 刻手 出身 金世輝/持殿 胤相 施主 兼 化主 通政 性熙/供養主 密雨
광희39년(1700) 경진년 9월 (광덕사) 삼전위 위패를 개조한 뒤, 승려와 속인이 함께한 기록. 주지는 지변, 각수는 출신 김세휘, 지전은 윤상, 시주 겸 화주는 통정대부 성희, 공양주는 밀우이다.

처음 보았을 때는 두 번째 줄 시작 부분에 절 이름이 지워져서 안타까웠다. 사진의 ‘廣德寺’는 필자가 별지에 써 붙인 것이다. 광덕사라는 사실은 문화재청 전문위원 최선일 박사가 알려주었다. 명문에 나온 승려나 각수에 대하여 불교 관련 인명사전을 펴낸 최선일 박사에게 문의했을 때, 최 박사가 이 촛대를 10여 년 전에 본 유물이라며 그때 찍어두었던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사진에는 ‘廣德寺’가 살아 있었다. 최 박사에게 다시 감사 인사를 드린다. 소장자의 양해로 종이에 묵서로 사명寺名을 써서 지워진 자리에 붙이고 사진을 다시 찍었다.
지금 소장자에게 이동하는 과정에서 절 이름이 지워진 듯하다. 현재 광덕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절인 천안의 광덕사 유물로 오해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불교미술품 명문이나 화기의 경우 사명寺名에는 지명이나 산 이름을 쓰는 데 비해, 여기에는 ‘광덕사’만을 명기했다. 전국 폐사 절터를 확인해보았다. 광덕사지가 4군데 나온다. 경기도 평택 신왕리와 고려 석조보살입상이 현존하는 충북 음성 (두산백과 두피디아), 평남 온천 용월리와 평성시 자신리(《조선향토대백과》)에 동일 이름의 ‘광덕사’가 존재했다.
또 최선일 박사가 제공해준 정보를 토대로 일제강점기초기 《사찰재산조사대장》(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가운데 마곡사 말사인 광덕사 편을 뒤져보았다. 이 나무촛대는 1910년대 광덕사 소장 유물목록에 없다. 그리고 명문대로 촛대는 ‘삼전위패三殿位牌를 개조한 직후’에 만들었는데 현존 천안 광덕사 사적기와 유물에 그런 사례가 없다. ‘삼전위’는 세 부처의 이름을 담은 위패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석가모니불 좌우에 보현보살과 문수보살이, 아미타불에 관음보살과 세지보살이 협시하는 구성에서 불보살명을 기록한 장식물이다. 우리나라 불교 공예품으로 가운데 이름을 쓰고 주변을 운룡이나 꽃장식으로 위엄을 갖춘 불전패 명작이 많이 전한다.


도2 <목제운룡촛대> 밑바닥에 음각한 명문



바닥 명문에 인물들의 명단인 ‘세동참기록’에서 ‘동참同參’은 승려와 속세 신도가 함께 참여했다는 의미이다. 주지는 지변이다. 지변은 1707년 금릉 직지사 천불전 중창기에 전주지前住持로 나오며, 1710년과 1712년 직지사에서 발간한 《묘법연화경》의 ‘인경장황기印經裝黃記’에 각수로 기록되어 있어 조각가 겸 공예가였던 것 같다. 법당 관리 및 예불을 이끄는 지전持殿은 윤상이고, 공양주는 밀우이다. 재무 담당 격인 시주 겸 화주는 통정 성희이다. 성희가 정3품 품계의 통정대부 벼슬을 받았던 모양이다. 1708년 포항 보경사 궤불 제작에 참여했을 때 직함이 예불이나 공양을 준비하는 ‘별좌別座 산중대덕山中大德’이었다. 성희는 1702년 성주 선석사 궤불 제작 명단에도 올라 있다.
‘각수刻手’만 김씨 성을 가졌으니 세속인으로 보인다. 지금으로 치자면 조각가이다. 그런데 이도 ‘출신出身’이라 했다. ‘출신’은 승과 급제자로 아직 승적에 오르지 않은 상태를 이른다. ‘각수’이면서 승적에 오르기 직전이어서, 김세휘를 그렇게 표기했다. 세상을 빛나게 한다는 ‘세휘世輝’는 촛대 제작자로는 제격의 이름이다. 세휘는 고성 취운사翠雲寺에서 1724년 간행한 묘법연화경 후미後尾의 승려 이름 비구 명단에 등장한다. 이상 《조선시대 불서 인명 DB》에서 확인
촛대 받침대의 동물이 비석의 기단부에 해당하는 귀부龜趺 조각이어서 눈길을 끈다. 등에는 네 가장자리를 접어 올린 녹색 연잎이 덮혀 있다. 고개를 뒤로 잔뜩 젖혀 촛불을 향하게 깎은 조형미는 조각가이자 공예가인 각수 김세휘의 창의적 해석이랄 수 있겠다. 불을 품은 듯 아가리를 벌린 채 눈을 부릅 튼 용면과 꼬리를 위로 향하도록 묘사한 설정과 더불어서, 목각 거북의 세찬 기운이 강렬하다. 가히 명장의 솜씨라 할만하다. 나는 거북의 이런 표정을 살리고 싶어, 비스듬하게 놓고 드로잉해 보았다(도3).
이 귀부龜趺는 거북의 머리가 아니라 용면龍面이다. 돌비석의 기단인 귀부와 마찬가지로 용의 아들인 비희贔屭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하여는 성호 이익이 “용이 새끼아홉을 낳았는데, 용이 되지 않고 각기 좋아하는 것이 있었다. 첫째 아들이 비희贔屭였다. 형상은 거북과 흡사하고, 무거운 짐을 좋아했다. 지금 비석 받침돌이 바로 그 유상遺像이다”라고 밝혀놓은 바 있다. 李瀷, 《星湖僿說》 卷六, <萬物門>, ‘龍生九子’


도4 <목제운룡촛대> 기둥, 중앙 여의주와 두마리 용두 부분



거북 형태 ‘비희’의 등 가운데에는 0.5㎝ 두께로 5㎝가량의 나무못이 솟아 있고, 여기에 2.5㎝ 지름에 48㎝가량 높이로 원통형 받침 기둥을 꽂게 설계했다. 기둥 위에는 초꽂이 나무못이 뾰족하고, 몸에는 얕은 부조로 조각된 운룡이 빙 둘러 새겨져 있다(도4). 용은 두 마리이다. 가운데 여의주를 중심으로 위에서 내려오는 황룡과 아래에서 오르는 청룡이 원통을 감고 스스로 뒤엉켜 몸을 용트림하는 모습이다. 격정을 살린 묘사가 일격이다. 꼭대기에는 구름과 태양이, 아래에는 영지가 자란 산들이 이어진다. 연녹색 바탕에 용 조각 사이사이에는 구름과 여의주 무늬가 공간을 채운 편이다. 채색이 변하고 퇴락되어 연륜을 느끼게 하지만, 300년 전에는 초록색을 기저로 빨강, 노랑, 파랑, 흰색이 어울려 화려한 장식 기둥이었을 법하다. 귀부 받침에 구름과 용이 새겨진 긴 원통형 촛대는 호법신護法神의 이미지이니, 불전 부처님 앞에 불을 밝히는 의례 장엄구였던 품새를 상상하게 한다.
이 <목제운룡촛대>의 용과 거북의 도상 구성을 보면, 지난 호의 부안읍성 당산 가운데 서외리 당간과 남문 당산을 떠오르게 한다. <월간 민화>, 2023년 1월호 부안읍성 당산의 원조인 고려 폐사지에 현종12년(1671) 세운 ‘부안 서외리 당간지주’(전라북도 유형문화재)에는 돌기둥을 감싸고 오르는 양각의 용과 거북 조각이 보인다. 또 숙종15년(1689) 경에 이를 계승해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부안읍성 남문안 당산(전라북도 민속자료)은 석조신간石造神竿의 돌기둥에 거북이 세 마리가 양각되어 있으며, 땅바닥 기단부에는 돌기둥을 떠받는 질박한 자연석 상태의 귀부가 보인다.
<목제운룡촛대>은 이러한 야외 조형물을 축소한 실내용 미니어처 같다. 하긴 제의적 역할과 수호신의 상징성에서는 유사한 점도 없지 않겠다.


도5 <목제운룡촛대> 한 쌍, 1700년경, 소나무, 높이 1m, 온양민속박물관 소장


승려 장인 승업勝業이 만들다

이 귀부 받침의 운룡무늬 외촛대에 비해, 온양민속박물관 소장 사자 받침의 <목제운룡촛대>는 두 기로 제작되었다. 촛대의 용도로 보면, 이처럼 쌍촛대가 맞다.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잘 알려진 명작이다. 현재 온양민속박물관 전시실에 공개 진열되어 있다. 보존상태가 너무 좋고, 특히 세월의 때를 잔뜩 묻혔으나, 여전 단청 색깔이 유지된 편이다.
이번에 명문 묵서 글씨와 더불어 조각 도상을 치밀하게 재검토한 것은 온양민속박물관의 관장을 역임하고 현재 고문인 신탁근 선생님과 학예연구사들의 도움이 컸다. 사진 자료도 박물관에서 제공해 주었다. 1978년 박물관 창설부터 참여해 관장을 역임했고, 지역문화재를 조사 연구해온 원로 민예·민속학자이다. 마침 신 고문이 청년 학예연구사 시절 인근 광덕사 유물을 전수 조사했다 해서 앞의 거북 받침 외 촛대를 여쭈었더니, 본 기억이 없단다. 또 쌍촛대를 충남문화재 지정을 위한 보고서 작성자 한서대학교 문화재학과 장경희 교수의 조언도 받았다.
사자 조각 받침에 운룡 연화문을 장식한 <목제운룡촛대> 한 쌍은 1m가량 크기의 촛대 구성의 조형미와 조각 솜씨가 뛰어나다. 표면 채색 상태도 양호하며, 소나무로 만들었다. 두 점 모두 3단으로 구성된다(도5).
맨 아래는 웅크린 사자 조각이 받침대 역할을 한다. 바닥에 옆으로 웅크려 앉아 머리를 정면으로 제낀 자세와 덥수룩한 녹색 수염에 흰 이를 내민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이 비슷한데, 두 사자는 몸 색깔이 다르다(도6).


1) 도6 <목제운룡촛대> 한 쌍, 사자받침과 죽절문 기둥
2) 도8 <목제운룡촛대> 한 쌍, 기둥 밑면 동청과 서백 먹 글씨
3) 도7 <목제운룡촛대> 사자받침 밑면, 화원 승 승업, 제작자 이름 먹 글씨



한 마리는 노란 몸에 주황색 점무늬이고, 또 한 마리는 녹색과 남색 바탕의 점무늬이다. 사자형 촛대 받침은 신라 이후 조성된 ‘석조사자석등’과도 상통하는 동물이다. 특히 불과 관련한 점에서 그렇다. 본디 불교에서 사자는 호법신으로 부처의 자리 사자좌獅子座를 의미하고, 부처님 말씀을 사자후獅子吼에 비유할 정도이다. 또 지혜의 문수보살과 함께한다. 그런데 이 <목제운룡촛대>의 사자 한 쌍은 이런 사자와는 거리가 멀다. 소담하고 귀여운 이미지이다. 익숙지 않은 이미지의 조선식 사자상으로 읽혀 흥미롭다. 호랑이를 해학 넘치게 표현하는 한국적 맹수 표현양식과 여일한 점도 없지 않겠다.
사자 등에 꽃잎무늬를 장식하고, 죽절형태의 기둥을 끼워 맞추어 중단을 이루었다. 앞의 김세휘가 만든 촛대에는 없는, 촛불을 높이 설치한 장엄 구조물이다. 이 죽절 기둥은 위에 둥근 접시를 얹어서, 마치 유기로 만든 보통의 촛대를 나무로 카피한 듯하다. 여기에 원통형 촛대 기둥을 한층 더 세웠다. 원통기둥에는 운룡문과 연화문 등이 가득 양각되었고, 그 위에 초를 꽂게 했다. 초를 꽂는 곳에는 못이 없고 둥근 홈만 파여 있다. 이 구멍에 초꽂이 못을 별도 장식물로 설치했는지도 모르겠다.
두 촛대 기둥도 사자와 마찬가지로 각각 다른 색조와 다른 무늬를 보인다. 노란색 사자 기둥에는 구름과 용을 중심으로 새겼고, 녹청색 사자에는 운룡과 더불어 연꽃이 핀 연못을 묘사했다. 마침 촛대 기둥 바닥에는 ‘동청東靑’과 ‘서백西白’이라는 거친 묵서가 남아 있다(도8). 예배 대상을 향해 동과 서, 좌우에 배치하라는 표시이다. 이동과 서의 색 맞춤은 접시 밑바닥에 표시했다. 노란 사자의 것은 흰색 바탕에 초록 꽃잎으로 ‘西白’을, 녹청 사자의 것은 붉은색 바탕에 푸른 꽃잎으로 ‘東靑’을 나타낸 것이다.


도9 <목제운룡촛대> 한 쌍, 촛대기둥



서백 촛대가 동청의 것보다 커 보인다. 총 높이가 105㎝이고, 바닥의 넓이가 33㎝이다. 동청 촛대는 총높이가 100㎝이고, 바닥의 넓이가 35㎝이다. 그리고 원통 촛대기둥은 서백이 59㎝, 동청이 58㎝이다. 촛대의 제작자를 밝힌 수묵 글씨는 동청 쪽 녹색 사자 조각의 바닥 밑부분에 있다(도7). ‘화원畵圓 승僧 승업勝業’이라 거칠게 썼다. ‘畵圓’은 ‘畵員’의 오자이다. 이 승려 장인이 직접 쓴 듯 잘못 표기한 듯하다. 거친 묵서 탓에 승려 ‘勝業’을 ‘業尒(爾와 같은 자)’로 오인해왔다. 흔히 승려 장인인 제작자를 ‘각수’ 외에도, 조각이나 공예 작품에 채색을 가한 탓인지 불화를 그리는 화원 내지 화공, 혹은 화승, 금어金魚라 지칭하기도 했다.
제작 시기를 가늠할 ‘승업’이라는 공예가의 이름을 새로 밝히게 된 점은 이번 호 ‘미술사 여담’ 글쓰기의 큰 성과이다. 촛대를 만든 조각가이자 공예가 격인 ‘승업勝業’을 검색해보니, 숙종 21년(1695) 지리산 쌍계사에서 간행한 목판본 《화엄현담회현기(華嚴懸談會玄記)》에 나온다. 이 책 제작에 참여한 명단 가운데 24쪽 난외欄外에 ‘勝業’이 찍혀 있다. <목제운룡촛대> 한 쌍은 1700년 전후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앞의 외 촛대와 함께 구조와 형식은 물론이려니와 제작 시기도 유사할 거라는 첫인상을 구체화하게 되어 반가웠다.
58㎝ 남짓의 두 촛대 기둥도 사자상과 마찬가지로 입체감 나는 조각의 수법이 비슷하다(도9). 상하에 연판 무늬와 여의주 무늬 띠는 같지만, 몸에 조각한 도상 구성이나 채색에서 차이가 또렷하다. 녹청 사자 받침의 ‘동청’ 촛대 기둥에는 원통형을 빙 둘러 연꽃과 연잎, 부용꽃 같은 5엽화, 그리고 4마리 잉어가 노는 연못이 형상화되어 있으며, 그 사이사이로 청룡과 황룡이 구름과 어울려 빈틈없이 빼곡하다. 연못 상단 정면으로 포착한 청룡 안면이 순해 보인다. 노랑 점백이 사자 조각 받침에 꽂힌 ‘서백’의 원통형 촛대 기둥에는 구름들과 어울려 청룡과 황룡이 뒤엉켜 감겨 있다. 옆모습의 용면은 앞의 ‘동청’ 기둥에 비해 사나운 표정이며 대각선 구성이 드라마틱한 편이다.


도10 궁중행사용 촛대 도면, 원행을묘정리의궤, 1795년



도11 화성능행도8폭병풍 중 봉수당진찬, 1795년. 동국대학교박물관


불전의 제례祭禮 장엄에서 궁중문화로

개인 소장 <목제운룡촛대> 촛대기둥과 온양민속박물관 소장 한 쌍의 촛대 기둥은 본래 밀납 초의 장식무늬를 나무로 새겨 조각한 것으로 여겨진다. 원통형에다 운룡이나 연꽃무늬 장식이 그러하다. 이러한 모양새는 조선 후기 궁중 의궤도권이나 반차도에서 확인된다. 《원행을묘정리의궤》에 실린 목판본 궁중행사용 촛대 도면이 그 좋은 사례이다. 정조 19년(1795) 윤 2월 비명에 간 아버지 사도세자와 어머니 혜경궁 홍씨 회갑년을 맞아 년 수원화성에서 벌인 행사 기록 보고서이다.
의궤 도면에는 모란을 닮은 꽃장식의 ‘화촉畵燭’과 운룡무늬 용촉龍燭으로 크기가 다른 원통형 초 두 자루, 유기로 만든 연주형 ‘화촉대畵燭臺’, 나무로 짠 받침대 ‘촉대부燭臺跗’, 네 덩이 그림에 세부 이름이 밝혀져 있다(도10). 온양민속박물관 소장의 <목제운룡촛대> 한 쌍에서 녹청 사자 받침의 운룡무늬 동청 촛대기둥은 ‘용촉’과 유사하고, 노란 사자받침의 연못과 운룡을 조각한 촛대기둥은 ‘화촉’에 해당하겠다. 기둥 상하의 여의주문이나 연판문 띠장식도 양자가 비슷하다. 사찰 장엄용 형식이 궁중문화로 자리 잡혀 쓰였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 촛대를 행사에 실제 사용한 모습은 《화성능행도 8폭병풍》 중 제3폭 <봉수당진찬도>(1795, 동국대학교박물관)에 등장한다(도11). 혜경궁 홍씨가 대규모의 잔치 무악舞樂을 관람하는 공간에 한 쌍으로 놓여 있다. 그림을 보면, ‘촉대부’ 받침대 위에 높다란 놋쇠 ‘화촉대’가 설치되어 있다. 그 위로 노란색 ‘용촉’이 꽂히고, 또 그 위로 붉은색 ‘화촉’에 촛불을 켠 상태이다. 그림으로 보면 용촉은 나무로 만든 장식물로 생각 들기도 한다.
잘 알다시피 불은 어두움을 벗기며 빛을 낸다. 또 열을 발산해 만물의 생성을 돕고 삶을 유지시켜 준다. 불은 뭇 생명의 근원인 셈이다. 특히 불가에서는 대적광전에 모신 비로사나불, 곧 큰 빛의 대일여래大日如來를 법신불法身佛로 여긴다. 촛불은 세상을 여는 부처의 몸이자 말씀에 비유되고, 의례 공간의 정화淨化 기능을 지닌다. 그래서 밀납 초는 향과 더불어서 불교 공양물로 일품에 해당하며, 촛대는 더욱 각별하다. 이번에 소개한 두 사례처럼 촛불을 꽂는 촛대는 몸 기둥에 산과 연꽃 핀 연못, 구름과 산, 용 구름을 새기고, 거북이나 사자 받침으로 장엄한 최상의 명품이 만들어졌을 터이다. 또 촛불의 역할은 궁중으로, 민간으로 확산하면서 촛대 제작은 우아하고 다채로운 형태로 지속해 왔다. 이들 일부에 대하여는 <월간민화>에 정하근 선생이 “한국의 고등기”로 20회(2020~22년)에 걸쳐 연재했었다.

이태호 | 명지대학교 석좌교수

홍익대학교 회화과와 동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를 졸업했다.
국립중앙박물관 및 광주박물관 학예연구사, 전남대학교 교수·박물관장,
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문화예술대학원 원장,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다산숲 아카데미 원장이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