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이태호 교수의 미술사 여담 ⑤ 강릉 굴산사지 석조 당간지주 下

도2 이태호, <강릉 굴산사지 당간 복원도>, 2022. 1. 면지에 수묵 스케치, 64×24cm



두 개의 돌기둥을 나란하게 설치한, 2~5m가량의 당간지주는 네모나게 긴 장방형이다. 안쪽 면을 수직선으로 다듬고, 바깥쪽 끝부분을 곡선으로 공 굴린 사례가 많다. 끝부분에 안쪽으로 홈을 파거나 돌기둥 상하에 둥글거나 네모진 구멍을 뚫어 당간 기둥을 고정하기 위한 장치를 만든다. 이러한 당간은 기단과 당간지주부터 상륜부까지 불교 장식물로써 사원의 권위나 호법護法의 역할을 잘 보여준다. 굴산사 당간에 대해 조사한 자료를 토대로 그 복원도도 그려보았다.

글·사진 이태호 (명지대학교 석좌교수, 다산숲 아카데미 원장)


강릉 굴산사지 당간지주(崛山寺址 幢竿支柱)는 지표에서 5.4m 높이로, 무덤덤하게 손질한 큰 덩치의 화강암 걸작이다(도1). 현존하는 당간지주들의 높이가 대체로 2~3m인 점에 비추어 두 배가량 된다. 5m가 훌쩍 넘는 당간지주에 맞춰 20m 남짓의 당간 높이, 그 기둥머리에 매달려 휘날리는 깃발을 상상해보자. 굴산사 당간은 절에서 1km가량 떨어진 동쪽 언덕에 솟았으니, 북쪽으로 강릉 도심이나 경포대까지 7~8km가량의 너른 들에 일대의 장관이었을 법하다. 신라 말 선승 범일국사가 집안의 터전인 옛 명주(溟州, 현재 강릉江陵)지역에 건립한, 굴산사의 사세를 짐작하고 남음직하겠다.
굴산사지 당간은 받침인 기단과 초석 부분이 남아 있지 않아, 돌기둥인지 쇠기둥인지 단정하기 어렵다. 날 돌덩어리에 가까운 당간지주 형태로 보면, 기단이 소략하거나 없었을 수도 있겠다. 당간지주의 주변 발굴을 통해 기단의 모양새가 밝혀지고 당간의 재료와 상륜부가 확인되면 좋겠다.
굴산사 당간의 복원도를 당간 꼭대기에 용머리를 갖춘 쇠기둥 당간으로 그려보았다(도2). 그동안 알려진 신라~고려의 당간과 관련한 자료를 고증해 짐작한 스케치이다.


도1 강릉 굴산사지 당간지주, 신라 말~고려 초, 사진 이태호, 2022.3



도3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당간지주, 사진 이태호, 2022.4


우리나라의 당간 형식

당간지주의 거친 조각만큼이나 절과 멀리 떨어트려 조성된 굴산사 당간의 위치도 독특하다. 현존하는 신라 시대의 당간들이 거의 사찰 경내에 있는 점을 고려할 때 그러하다. 본래 위치의 익산 미륵사지 당간지주는 백제의 두 석탑 앞 회랑 밖에다 신라 때 열을 맞추어 조성한 것이다(도3). 경주 불국사의 두 당간지주는 다보탑과 석가탑 마당의 축대 아래에 놓여 있다. 원래는 여기도 두 탑의 위치를 염두에 두었을 법한데, 지금은 두 기를 왼편으로 모아 옮겨놓았다. 신라 때 홀로 세운 영주 부석사의 당간지주는 사천왕문 밖 왼쪽 아래에 위치한다. 동시대 공주 갑사에 조성한 외 당간지주는 절 가까이 맞은편 개울 건너 언덕에 우뚝하다.
형태나 기능에서 국기게양대를 떠올리게 하는 당간은, 크게 네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땅바닥에 기단을 조성하고, 네모진 긴 장방형의 두 돌기둥으로 당간지주를 설치한다. 두 지주 사이에 높은 기둥 간竿을 세우고, 깃발인 번幡이나 당幢을 치장하니 ‘당간’이라 이른 것이다. 당간의 끝에는 깃발을 거는 줄과 도르래를 설치한 상륜부 장식이 따른다.
맨 아래층은 땅 위 당간과 지주를 세운 기단부이다. 기단 외곽에는 다른 불교 석조물처럼 안상眼象이나 띠무늬를 새기기도 한다. 기단에서 당간지주의 두 돌기둥 사이에는 당간을 고정하기 위한 밑받침 돌 초석이 놓인다. 대체로 당간 초석이 남아 있는 경우, 원형과 8각형의 얕은 파임을 냈다. 공주 갑사의 철조 당간이나 안양 중초사지 당간지주, 경주 불국사의 한 쌍 당간지주는 밑돌 파임이 원형이다. 익산 미륵사지 당간지주 밑돌은 당간 하단 넓이보다 절반 정도 크기의 8각형으로 파여 있다.
두 개의 돌기둥을 나란하게 설치한, 2~5m가량의 당간지주는 네모나게 긴 장방형이다. 안쪽 면을 수직선으로 다듬고, 바깥쪽 끝부분을 곡선으로 공 굴린 사례가 많다. 끝부분에 안쪽으로 홈을 파거나 돌기둥 상하에 둥글거나 네모진 구멍을 뚫어 당간 기둥을 고정하기 위한 장치를 만든다. 이러한 당간은 기단과 당간지주부터 상륜부까지 불교 장식물로써 사원의 권위나 호법護法의 역할을 잘 보여준다.


도4 익산 미륵사지 동탑 당간지주와 돌당간 일부, 신라 후기



(위) 도5 익산 미륵사지 돌당간 일부, 국립익산박물관 소장
(아래) 도6 공주 갑사 철당간, 신라 후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20세기 전반 유리원판사진


신라 이후 석조 당간과 철조 당간

당간幢竿의 지주인 두 선돌 사이에는 10~20미터 가량 높다란 장대를 세운다. 현존하는 10여 기의 사례를 보면, 기둥 재질이 쇠나 돌이다. 석당간은 미륵사지 석탑 앞에 나란히 세운 한 쌍의 당간지주에서 확인된다. 기단 위에 화강암 석재를 잘 다듬어 만든, 동쪽 당간지주에 팔각 석당간 부분을 별도로 세워 놓은 상태이다(도4). 절터에서 발견한 세 조각의 팔각 석당간 일부가 익산국립박물관 전시실에 놓여 있다(도5).
이외에 고려 시대의 석당간으로 완형은 두 곳에 전한다. 나주 동점문東漸門 밖 석당간(보물 제49호)은 11m 높이이다. 조선 후기에 복원된 담양 객사리 석당간(보물 제505호)은 당간지주가 고려 형식이다. 고려 5층 석탑과 함께한 15m 높이의 담양 석당간은 ‘정조 18년(1794) 태풍으로 석당간이 쓰러져 나무로 대체했다가 헌종 5년(1839) 다시 돌로 바꾸었다’라고 밝힌 명문 비석이 곁에 세워져 있다. 석당간은 호남지역의 성향으로 보기도 한다.
이들을 제외하고 신라와 고려에는 둥근 쇠기둥 철당간이 주류였다. 세 곳에 전한다. 신라 철당간은 의상대사의 화엄 10대 사찰인, 공주 갑사에서 만난다(도6). 공주 갑사 철당간(보물 제256호)은 둥근 죽절문 쇠통을 이어 붙여 조립했다. 50㎝가량의 쇠통 24층이 남아 있어 15m에 이른다. 본디 28층이었다고 한다. 이 철당간 양식은 고려에 계승되어, 두 기가 현존한다. 광종 13년(962)에 조성한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국보 제41호)은 상층 부분이 손실된 채 12.7m가량의 높이이다. 안성시 죽장면 칠장사 철당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9호)은 길이 60㎝ 가량의 철통 15개를 이어, 높이 11.5m 정도이다.


도7 신라 금동용두, 당간 꼭대기 장식, 영주출토, 531×492㎝, 국립대구박물관 소장


당간의 용머리 장식은 하늘에 닿고

당간의 끝에는 깃발을 걸 줄과 도르래 시설이 필요하다. 지상에서 10~20m 당간이 하늘로 뻗으니 상륜부는 성스러이 꾸몄을 터이다. 사찰 당간의 상단이 온전한 경우란 거의 없으나, 다음 세 사례는 꼭대기 치장이 용머리였을 것으로 짐작하게 한다. 잘 알다시피 용龍은 불교의 호법신이다. 동양에서는 신비한 영물로 천자나 황제를 상징했고, 기우제의 주신이고 수호신 역할을 해왔다.
먼저 신라 ‘금동당간용두’(金銅幢竿龍頭, 국립대구박물관소장, 보물 제1410호) 장식이 1975년 3월에 ‘영주군 풍기면 성내2동’(발굴 당시 지명) 마을 안길 하수도 공사 중에 출토되었다. 여의주를 문 용머리 아가리 아래에 깃발을 오르내리기 간편하게 고안된 도르래가 시설되어 있어, 당간의 상륜부 장치임을 금방 알아차렸다. 68㎝ 크기로 처음 실물로 발견된 사례이기도 하려니와, 아름다운 공예 명품으로 크게 주목을 받았다(도7). 현재 국립대구박물관 뜰에는 이 용두를 모델로 복원한 당간이 서있다. 당간의 끝이 하늘에 맞닿은 용두 장식의 위세가 당당하다. 화려한 도금 상태도 좋고 세부 무늬나 조각 솜씨가 뛰어나다. 윗입술을 길게 뻗고 포효하는 표정의 용머리는 역동적이다. 수탁 벼슬의 계룡형鷄龍形 머리인 점도 독특하다. 계룡은 신라 건국 시조인 박혁거세와도 연관되어 관심을 끈다. 알영 연못에서 계룡이 출현해 옆구리에서 여아를 낳았고, 성장해 박혁거세의 부인이 되었다고 한다. (일연, 《삼국유사》) 신라 불교미술의 절정기를 지난, 8~9세기에 주조한 이 ‘금동당간용두’는 발견장소에서 가까운 소수서원이 차지한 숙수사터나 부석사의 동시대 당간지주와 연관되지 않을까 싶다.
신라를 승계한 고려 시대 당간의 형태는 ‘금동용두보당’(金銅龍頭寶幢, 국보 제136호, 삼성미술관리움 소장)에서 찾을 수 있다. 높이 73.8㎝로 작은 규모의 미니어쳐로 전하여 주목된다(도8). 이를 20배 확대하면, 15m쯤의 고려 당간일 게다. 중층의 기단부, 두 당간지주, 8개 통을 이은 당간, 그리고 기세 찬 표정의 용머리 상륜부까지 실감 난다. 이런 조각 솜씨 탓에 당간의 당대 이미지가 고스란하다, 전체 표면에는 부드럽게 옻칠을 했고, 그 위에 금칠을 덮었던 흔적이 살짝 보인다.


도8 고려 청동용두보당, 73.8㎝, 국보 제136호,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도9 당간을 음각선묘로 새긴 고려 계사명탑당동판, 1233년, 25.6×11㎝,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 고려 ‘금동용두보당’의 외모는 같은 시절의 청동판에 음각으로 새긴 당간 선묘화에서도 확인되어 흥미롭다. (《대고려국보전》, 삼성문화재단, 1995) 여기서는 용두에서 기단까지 당간을 타고 내린 쇠줄이 묘사된 탓에, 국기게양대와 닮은 당간의 형태와 기능을 명확히 보여준다(도9). “ ?영충공양자 계사4월일 근기( ?永充供養者癸巳四月日謹記)”라는 명문의 끝부분이 남은, 25.6×11㎝의 손바닥 만한 동판(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이다. 명칭은 ‘계사명탑당동판(癸巳銘塔幢銅版)’이라고 불린다. 동판의 오른편에 한 줄로 쓴 이 명문은 ‘영원하고 충만한 공양’을 ‘계사년 4월’에 했다는 의미이다. 이로 보면, 동판 오른편 명문 부분이 대거 잘려나간 모양이다. ‘영충…’ 위의 한 글자가 잘 읽히지 않는 데다, 부러진 흔적이 역력하다. ‘영충’ 앞에는 ‘탑塔과 당幢’에 대해 썼을 법하다. 당간 새김 오른편에 7층 목탑그림을 배치해 놓았기 때문이다. 동판에 새긴 음각 선묘는 거친 편이나, 세부 묘사는 탑과 당간의 도상을 정확히 담았다.
나는 바로 이들 사례를 따서 얼추 굴산사지 당간을 추정했다. 당간지주의 거친 기운에 맞추어 기단은 단촐하게 했다. ‘금동용두보당’의 8층 당간을 적용했고, ‘계사명탑당동판’의 쇠줄을 참작했다. 쇠줄을 따라 오르는, 하늘로 치솟는 용오름을 상상하며 재구성해본 당간 복원도이다(도2).

*다음 호부터는 옛 그림을 중심으로 여담을 풀어가 보겠다.

이태호 | 명지대학교 석좌교수

홍익대학교 회화과와 동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를 졸업했다.
국립중앙박물관 및 광주박물관 학예연구사, 전남대학교 교수·박물관장,
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문화예술대학원 원장,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다산숲 아카데미 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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