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ì´ë ‡ê²Œ 아름다울 수가! ì´íƒœí˜¸ êµìˆ˜ì˜ 미술사 여담 â‘¢ 강릉 굴산사지 ì„ì¡° 당간지주 上

ë„1 ë´„ì²  눈밭 ì† ê°•ë¦‰ 굴산사지 당간지주, 사진 ì´íƒœí˜¸, 2022. 03. 20



ê¹ƒë°œì„ ê±¸ê¸° 위한 기둥, ë‹¹ê°„ì€ ì§€ê¸ˆì˜ êµ­ê¸°ê²Œì–‘ëŒ€ì™€ 유사하다. ì‚¬ì°°ì˜ ê²½ê³„ë‚˜ 권위를 표징하거나 행사를 알리는 ì—­í• ì„ í•˜ì˜€ì„ ê²ƒì´ë‹¤. 당간지주 ëŒë©ì–´ë¦¬ëŠ” 별 ìž¥ì‹ ì—†ì´ í•˜ëŠ˜ë¡œ ê³§ì¶” ë»—ì–´ 있다. 장대하고 육중하다. 그야ë§ë¡œ ìžì—°ì— 어울리는 환경 조형물ì´ìž 대지예술로서, í˜„ëŒ€ë¯¸ìˆ ì— ë²„ê¸ˆê°„ë‹¤. 한국미술사를 대표할 ì¶”ìƒì¡°ê° 명품으로 꼽고 싶다.

글·사진 ì´íƒœí˜¸ (ëª…ì§€ëŒ€í•™êµ ì„좌êµìˆ˜, 다산숲 ì•„ì¹´ë°ë¯¸ ì›ìž¥)


올 ê²¨ìš¸ì€ ìœ ë‚œížˆ 가물었다. ì´ ì—°ìž¬ë¥¼ 제안 ë°›ì•˜ì„ ë•Œ, 첫 대ìƒìœ¼ë¡œ 강릉 강문 ì§„ë˜ë°°ê¸°ë‚˜ 굴산사지 당간지주를 떠올렸다. 당간지주를 ë‘ ë²ˆì§¸ë¡œ ì‚¼ì€ ê²ƒì€ í™©ëŸ‰í•œ 들 ëˆˆë°­ì— ì„  ëŒê¸°ë‘¥ì´ 그려졌기 때문ì´ë‹¤. 작년 12월부터 ê°•ë¦‰ì„ ë‹¤ë…”ê³ , ì¼ê¸°ì˜ˆë³´ì— 귀를 기울였다. 겨울눈 오는 ë‚ ì„ ë§Œë‚˜ì§€ 못했고, 지난 3ì›” 5ì¼ ì´ ì—°ìž¬ ê¸€ì„ ì“°ê¸° 위해 마무리 답사를 하였다. 굴산사 당간지주와 절터, 그리고 굴산사 창건주 ë²”ì¼ êµ­ì‚¬ì™€ 관련한 유ì ì§€ë¥¼ ìžì„¸ížˆ 살피며 ì˜¨ì¢…ì¼ ì˜ë‹¤ë…”다. 매화꽃 향기가 짙어지고, ë™í•´ì•ˆ 여기저기가 산불로 ì–¼ë£©ì¡Œì„ ë•Œì˜€ë‹¤.
4월호 ì›ê³ ë¥¼ íŽ‘í¬ ëƒˆì„ ë•Œë‹¤. 뒤늦게 ê°•ì›ë„ì— ë´„ëˆˆì´ ë‚´ë ¸ë‹¤ëŠ” 소ì‹ì„ 들었다. 반가웠다. 3ì›” 20ì¼ ì•„ì¹¨ 기차를 타고 ê°•ë¦‰ì„ í–¥í•´ 내달렸다. 예ìƒëŒ€ë¡œ 굴산사지 당간지주 ë‘ ëŒê¸°ë‘¥ì´ 학산리 들, 하얗게 ë®ì¸ ëˆˆë°­ì— ìš°ëš ì„œ 있었다(ë„1). 사시사철 다 좋지만, 역시 하얀 ë“¤ì˜ ìˆ˜ì§ ì¡°í˜•ë¬¼ì´ ìµœê³ ì˜€ë‹¤. ì´ í’ê´‘ì„ ì¹´ë©”ë¼ì— 담았다. 그리기ì—ë„ ê°„ë‹¨í•´ 현장ì—서 ì‚´ì§ ì–¸ ê³±ì€ ì†ìœ¼ë¡œ 몇 ì  ë“œë¡œìž‰í–ˆë‹¤(ë„2). 고요한 눈밭 ì† ëŒê¸°ë‘¥ì´ ë‹ë³´ì´ëŠ” 남쪽 들ì—서 ë¶ìª½ì„ 향해 í¬ì°©í•œ 그림ì´ë‹¤.


ë„2 ì´íƒœí˜¸, <굴산사지 당간지주와 ë“¤íŒ ì„¤ê²½>, 2022, ë©´ì§€ì— ìˆ˜ë¬µ 스케치, 24×64ãŽ


하얀 ëˆˆë°­ì— ìš°ëš, ì„ ëŒì˜ ì¶”ìƒë¯¸

제작연대가 ì‹ ë¼ ë§ê¸°~후삼국 시기(9세기 ë§~10세기 ì´ˆ)로 추정ë˜ëŠ” <강릉江陵 êµ´ì‚°ì‚¬ì§€å´›å±±å¯ºå€ ë‹¹ê°„ì§€ì£¼ 幢竿支柱>는 ì¼ì°ì´ 보물 ì œ86호(1963ë…„)로 지정ë˜ì—ˆë‹¤. 5.4ë¯¸í„°ì˜ ë‘ ëŒê¸°ë‘¥ì´ ê°•ì›ë„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1181번지 ë†ë¡œ 가장ìžë¦¬ ë…¼ë°”ë‹¥ì— ë‚˜ëž€ížˆ 서 있다. 서쪽으로 대관령 ì¤€ë ¹ì´ ë³‘í’ì„ ë‘르고 ë™í•´ì•ˆ 바다를 넘겨보는, 남쪽으로 칠성산 ëŠ¥ì„ ì´ ê°ì‹¼ 너른 들 한 ê°€ìš´ë° ì„  ë‘ ê°œì˜ ëŒê¸°ë‘¥ì´ ì••ê¶Œì´ë‹¤(ë„3). 당간지주 ëŒë©ì–´ë¦¬ëŠ” 별 ìž¥ì‹ ì—†ì´ í•˜ëŠ˜ë¡œ ê³§ì¶” ë»—ì–´ 있다. 장대하고 육중하다. 그야ë§ë¡œ ìžì—°ì— 어울리는 환경 조형물ì´ìž 대지예술로서, í˜„ëŒ€ë¯¸ìˆ ì— ë²„ê¸ˆê°„ë‹¤. 한국미술사를 대표할 ì¶”ìƒì¡°ê° 명품으로 꼽고 싶다.
당간지주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맨 ì•„ëž˜ì— ê¸°ë‹¨ì„ ì¡°ì„±í•˜ê³ , ê¹ƒë°œì¸ â€˜ë‹¹å¹¢â€™ì„ ë§¤ë‹¤ëŠ” ë†’ì€ ìž¥ëŒ€ â€˜ê°„ç«¿â€™ì„ ë•…ë°”ë‹¥ì— ê³ ì •í•˜ëŠ” ë‘ ê°œì˜ ë°›ì¹¨ëŒ€ ‘지주支柱’를 ë§í•œë‹¤. ë‹¹ê°„ì€ ì§€ê¸ˆì˜ êµ­ê¸°ê²Œì–‘ëŒ€ì™€ 유사하다. ê¹ƒë°œì„ ê±¸ê¸° 위한 기둥, ë‹¹ê°„ì˜ ë†’ì´ëŠ” 10~20ì—¬ ë¯¸í„°ì— ì´ë¥¼ 것으로 여겨진다. ì´ë¥¼ 기울어지지 않ë„ë¡ ì§€íƒ±í•˜ëŠ” 당간지주 ëŒê¸°ë‘¥ì€ 2~3미터부터 5미터가 넘는 ê²ƒë“¤ì´ ìžˆë‹¤.
ì´ëŸ¬í•œ ë‹¹ê°„ì€ ì‚¬ì°°ì˜ ìž…êµ¬ë‚˜ ê²½ë‚´ì˜ ì£¼ìš” ìœ„ì¹˜ì— ì„¸ì› ë‹¤. 야외 장엄으로 ì‚¬ì°°ì˜ ê²½ê³„ë‚˜ 권위를 표징하거나 행사를 알리는 ì—­í• ì„ í•˜ì˜€ì„ ê²ƒì´ë‹¤. ì „êµ­ì— 100ì—¬ ê¸°ì˜ ë‹¹ê°„ì§€ì£¼ê°€ 남아 있긴 하나, 쇠나 ëŒ ìž¥ëŒ€ë¥¼ 갖춘 ë‹¹ê°„ì€ 10ì—¬ 기 ì •ë„ì´ë‹¤. 대부분 강릉 êµ´ì‚°ì‚¬ì§€ì˜ ê²½ìš°ì²˜ëŸ¼ 당간지주만 댕그ë¼ë‹ˆ, ì ˆì´ ì—†ì–´ì§„ í사지를 지켜온 사례가 많다. 대부분 국가나 지역 문화재로 ì§€ì •ëœ íŽ¸ìœ¼ë¡œ, 사ì›ì— 설치한 ë‹¹ê°„ì˜ ì„ì¡° 지주는 문화유산으로 가치를 í¬ê²Œ ì¸ì •받았다. 불êµë¥¼ 수용한 아시아ì—서 ìš°ë¦¬ë‚˜ë¼ ì‚¬ì›ì— 가장 ë§Žì€ ë‹¹ê°„ì´ ì¡°ì„±ë˜ì—ˆë‹¤. 그런 ë§Œí¼ ë‹¹ê°„ì§€ì£¼ëŠ” 아시아 ë¶ˆêµ ë¬¸í™”ê¶Œì—서 한국ì ì¸ 조형물로 ì†ê¼½ì„ 만하다. 엄기표, ã€Ší•œêµ­ì˜ ë‹¹ê°„ê³¼ 당간지주》, 학연문화사, 2007
단순한 ìˆ˜ì§ í˜•ìƒì˜ ì„조물, 당간지주는 ì‹ ë¼ì˜ 수ë„ì¸ ê²½ì£¼ì§€ì—­ì—서 8세기 전후부터 세우기 시작해 ì‹ ë¼ ì¤‘ê¸° ì´í›„ ê³ ë ¤ ì‹œëŒ€ì— ì£¼ë¡œ 제작ë˜ì—ˆë‹¤. ì¡°ê°ìˆ˜ë²•ì´ ë‹¨ìˆœí•œ 편ì´ì–´ì„œ 시대 ì°¨ì— ë”°ë¥¸ ì–‘ì‹ë³€í™”나 편년 ì„¤ì •ì´ ì‰½ì§€ 않다. 고려까지 ì´ì–´ì§„ 당간지주 형ì‹ì€ ì™¸ë©´ì„ ê±°ì¹ ê²Œ 다룬 ì‚¬ë¡€ë“¤ë„ ì—†ì§€ 않으나, 비êµì  다듬어 세웠다. 외곽 ë ë‚˜ ì„ ì¡° 무늬를 넣는 게 통례ì´ê³ , 외관으로 연꽃무늬를 새긴 ì‚¬ë¡€ë„ ìžˆë‹¤.


ë„3 굴산사지 당간지주 주변과 남쪽 칠성산 설경


í˜„ëŒ€ì  ì¡°í˜•ë¬¼ ê°™ì€ ìžì—° ìƒíƒœì˜ ë‚  ëŒ

í•™ì‚°ë§ˆì„ ë“¤ë…˜ 논바닥 가장ìžë¦¬ì— 세운 굴산사지 당간지주는 ì „êµ­ì— ë¶„í¬í•œ 당간지주 ê°€ìš´ë° ë†’ì´ 5.4m로 우리나ë¼ì—서 가장 í¬ê³  당차다. ë™ê³¼ 서로 ì¼ ë¯¸í„° 좀 못ë˜ê²Œ 벌려 배치한 ì–‘ìª½ì˜ ì§€ì£¼ë¥¼ ê°ê° í•˜ë‚˜ì˜ ê±°ëŒ€í•œ ëŒì„ 사용하여 조성하였다. 그리고 ê¸°ë‹¨ì„ ì¡°ì„±í•˜ê³  다듬어 세우는 ë‹¹ëŒ€ì˜ ë‹¹ê°„ì§€ì£¼ 형ì‹ê³¼ 달리 외형과 ì„ë©´ì„ ë‹¤ë“¬ì§€ ì•Šì€ íŒŒê²©ì„ ë³´ì¸ë‹¤. ê±°ì˜ ìžì—°ì„ ìƒíƒœì— ê°€ê¹ë‹¤. 단순하고 소탈한 형ìƒì€ 앞서 언급한 것처럼 í˜„ëŒ€ì  ì¡°í˜•ë¬¼ë¡œ ë³´ì•„ë„ ì†ìƒ‰ì´ ì—†ì„ ì •ë„ì´ë‹¤(ë„4).
굴산사지 당간지주는 암반ì—서 분리ëì„ ë•Œ, ìµœì´ˆì˜ ë©ì–´ë¦¬ ê°ì„ ì‚´ë ¤ 세운 ì ì´ ë…ë³´ì ì´ë‹¤. ë™ì„œë¡œ 배치한 ë‘ ì„ì¡° 지주는 본디 한 몸ì´ì—ˆì„ 듯하다. ì´ëŠ” 화강암 ìƒë‹¨ì— ë‘ ì¤„ 사선으로 난 í° ì„ì˜ ì¤„ë¬´ëŠ¬ê°€ ê°™ì€ ë‘ê»˜ì— ë‚˜ëž€í•œ 모습ì—서 서로 ì§ì´ 잘 맞는 것ì´ë¦¬ë¼ 추정ëœë‹¤(ë„5).
거대한 ëŒë©ì–´ë¦¬ì— 새겨진 ìžì—°ë¬´ëŠ¬ê°€ ë„리어 시ê°ì ì¸ 세련미를 준다. 암반ì—서 떼어낸 분리 í”ì ìœ¼ë¡œ 모서리 세모 열마저 내버려 ë‘ì—ˆì„ ì •ë„ì´ë‹¤(ë„6). 떨어진 ë©´ì„ ë‹¤ë“¬ì§€ ì•Šì€ ìƒíƒœ 그대로 ì‚´ë ¤ë†“ê¸°ë„ í–ˆë‹¤. ë‚  것다운 ë§›ì´ ì¼í’ˆì´ë‹¤. 마치 ìžì—°ì„ 냇ëŒì„ í•„ìš”ì— ë”°ë¼ ê¹¨ì–´ë‚´ê³  개조해 주먹ë„ë¼ ë—€ì„기를 ë§Œë“¤ë˜ êµ¬ì„기시대 ì¸ë¥˜ ìµœì´ˆì˜ ì¡°í˜•ì˜ì‹ê³¼ë„ ìƒí†µí•˜ëŠ” 듯하다.
ë‘ ë‹¹ê°„ì§€ì£¼ ê¸°ë‘¥ì€ ë°‘ë°”ë‹¥ ì¸¡ë©´ì´ 130ãŽ, ì•žë©´ì´ 75~85ãŽê°€ëŸ‰ì´ë‹¤. ë¶ìª½ 향해 오른쪽 ëŒ ë°‘ë¶€ë¶„ì´ ì•½ê°„ 너른 편ì´ë‹¤. 약 1m ê°„ê²©ì„ ë‘ê³  ë™ì„œë¡œ 위치한 ë‘ ëŒì€ ì˜†ë©´ì´ ì•žë©´ë³´ë‹¤ 약간 ë„“ì€ ì‚¬ë©´ì²´ 형태로 수ì§ìœ¼ë¡œ 세워졌다. 당간 ê¸°ë‘¥ì„ ê³ ì •í•˜ê¸° 위해 í•€ì„ ë¼ìš°ëŠ” 구ë©, ê°„ê³µæ†å­”ì€ ì§€ì£¼ì˜ ìƒí•˜ì— 한 뼘 ì •ë„로 둥글게 뚫었다. ë‘ ì§€ì£¼ì˜ êµ¬ë©ì€ 나란히 ì´ì–´ì ¸ 있어 구ë©ìœ¼ë¡œ 반대편 í’ê²½ì„ ì‚´ì§ ë³¼ ìˆ˜ë„ ìžˆë‹¤. 눈밭ì—서 보니 êµ¬ë© ë„ˆë¨¸ 먼 í’ê²½ì´ ì„ ëª…í•˜ê²Œ ë³´ì¸ë‹¤. (ë„7)
ë‹¹ê°„ì„ ì„¸ìš°ê³  고정하는 공간으로, ì–‘ 지주가 마주하는 한쪽 ë©´ë§Œ í‰í‰í•˜ê²Œ ë‹¤ë“¬ì€ íŽ¸ì´ë‹¤. 외면ì´ë‚˜ 사면체 ë¼ì¸ì—는 별ë„ì˜ ì„ ì¡°ë‚˜ 새김 장ì‹ì´ 없다. 다듬기를 고집하지 않고 떼어낸 ìƒíƒœ 그대로를 ì‚´ë ¤ 거칠다. 3ë©´ì—서 ëŒ í‘œë©´ì´ ì¡°ê¸ˆì”© ë‘드러진 곳마다 ë§ì¹˜ë¡œ 쇠 정수리를 ì³ì„œ 부분부분 깎아 내었다. 길고 짧게 ìª¼ì€ ì • ìžêµ­ë„ 사뭇 불규칙하다. ì–‘ ì§€ì£¼ì˜ ì •ìƒ ë¶€ë¶„ì€ ì¢í˜€ë“¤ë©´ì„œ ëì´ ë¾°ì¡±í•œ 형태로 ê³¡ë©´ì„ ì´ë£¨ëŠ”ë°, 옮기면서 ìƒê¸´ 듯 ë™ìª½ ì§€ì£¼ì˜ ëì´ ì‚´ì§ íŒŒì†ë˜ì—ˆë‹¤.


ë„4 강릉 굴산사지 당간지주 오후



(좌) ë„5 강릉 굴산사지 당간지주 ìƒë‹¨ì—서 ë³¼ 수 있는 í°ì¤„ì˜ ì„ì˜ë§¥
(ìš°) ë„6 강릉 굴산사지 당간지주 ë™ìª½ ìƒë‹¨ì—서 최초로 ëŒì„ ë—€ 부분


무심으로 ìª¼ì€ ëŒì¡°ê°

굴산사는 ì´ê³³ 명주 출신 ë²”ì¼(梵日, 810-889) 국사가 창건하고, ê·¸ ë²•í†µì„ ë”°ë¥¸ ì‹ ë¼ ë§ 9산선문ä¹å±±ç¦ªé–€ì— 해당하는 선종禪宗 사찰ì´ë‹¤. 명주 사굴산파 사굴산문é—崛山門으로 꼽힌다. 선종 불êµëŠ” ë²”ì¼ ê°™ì€ ë‹¹ë‚˜ë¼ ìœ í•™ 승려를 통해 ì‹ ë¼ í›„ê¸°ì— ìˆ˜ìš©ë˜ì—ˆë‹¤. ë²”ì¼ êµ­ì‚¬ì˜ ì„  ì •ì‹ ì€ í•œêµ­ë¶ˆêµì˜ 초기 선승禪僧으로 ì‹ ë¼ ì„ ì¢…ì˜ ë‹¬ë§ˆ ê²©ì¸ ë„ì˜é“義 선사ì—서 ì°¾ì„ ìˆ˜ 있겠다. 굴산사와 가까운 ì–‘ì–‘ ì§„ì „ì‚¬ì— ì£¼ì„í•´ 선불êµë¥¼ ì¼ìœ¼í‚¤ê³  전파한 ë„ì˜ì˜ 사ìƒì€ ‘무위임운지종無爲任é‹ä¹‹å®—’으로 ì••ì¶•ëœë‹¤. 당나ë¼ì— 유학해 무ë…ë¬´ìˆ˜ç„¡å¿µç„¡ä¿®ì˜ êµì™¸ë³„전敎外別傳ì„
내세웠기ì—, 당대 êµì¢… ì¤‘ì‹¬ì˜ â€˜ì™•ì¦‰ë¶ˆçŽ‹å½ä½›â€™ì´ ê°•ì¡°ëœ ì‹ ë¼ ë¶ˆêµì—서 새로운 ì„ ìŠ¹ì˜ â€˜ë¬´ìœ„ë²•â€™ ë‚´ì§€ ‘ìžì‹¬ì¦‰ë¶ˆè‡ªå¿ƒå½ä½›â€™ ê°•í•™è¬›å­¸ì€ ë§ˆì–´é­”èªžë¡œ ëª°ë¦¬ê¸°ë„ í–ˆë‹¤ê³  ì „í•  ì •ë„ì´ë‹¤. 그런 íƒ“ì— ì„ ì¢…ì€ ì¤‘ì•™ê¶Œë ¥ì˜ ê²½ì£¼ë³´ë‹¤ ì§€ì—­ì˜ í˜¸ì¡±ì„¸ë ¥ê³¼ 조우했다. 구산선문ì´ë¼ 지칭ë˜ë“¯ì´ ì „ë¼ ì¶©ì²­ ê°•ì›ë„ì— í¼ì¡Œë‹¤. 그러나 ê²°êµ­ ì‹ ë¼ ì™•ì‹¤ë„ ë²”ì¼ êµ­ì‚¬ì²˜ëŸ¼ ì„ ìŠ¹ì„ êµ­ì‚¬ë¡œ ì¸ì •하게 ë˜ì—ˆë‹¤.
ì„ ì¢…ì€ ê²½ì „, 장엄, ì˜ë¡€ ë“±ì„ ê°•ì¡°í•œ êµì¢…ê³¼ 달리 ìˆœê°„ì˜ ê¹¨ë‹¬ìŒ ë°©ì‹ìœ¼ë¡œ ëˆì˜¤é “æ‚Ÿì˜ ê²½ì§€ë¥¼ 추구했다. 미술사ì—서는 조선시대 ê¹€ëª…êµ­ì˜ <달마ë„>로 ìœ ëª…í•˜ë“¯ì´ ìˆœê°„ 빠른 필치로 대ìƒì˜ íŠ¹ì§•ì„ ì••ì¶•í•´ë‚´ëŠ” 수묵 ê°í•„ë²•æ¸›ç­†æ³•ì´ ì„ ì¢…í™” ë°©ì‹ìœ¼ë¡œ 선호ë˜ì—ˆë‹¤. 바로 굴산사지 ë‹¹ê°„ì§€ì£¼ì˜ ë¬´ì‹¬í•œ ì¡°í˜•ìˆ˜ë²•ì€ ì„ ì¢…ë¶ˆêµì˜ ìœ ìž…ì— ë”°ë¥¸ 새 íŒŒê²©ì„ ë³´ì—¬ì¤€ë‹¤. 잘 다듬어 격ì‹ì„ 갖춘 ê¸°ì¡´ì˜ ê²½ì£¼ì§€ì—­ 형ì‹ì—서 벗어난 ìƒê¹€ìƒˆì´ë‹¤.


(좌) ë„7 당간지주 í•˜ë‹¨ì„ ê´€í†µí•˜ëŠ” 구ë©
(ìš°) ë„8 ì´íƒœí˜¸, <김종ì˜ì´ 불ê°ì˜ 미를 추구하며 작업한 작품 79-21ì„ ë³´ê³ >, 2022, ë©´ì§€ì— ìˆ˜ë¬µ 스케치, 24×32ãŽ


ì • ìžêµ­ 하나하나가 선법禪法 같아

대충 떨어내 만든 굴산사지 ë‹¹ê°„ì§€ì£¼ì˜ ê±°ì¹˜ë¥¸ 형태미와 거대 ì¡°ê° ìˆ˜ë²•ì€ ê³§ 선종ì—서 ‘ëˆì˜¤â€™ì˜ 수행 ë°©ë²•ì„ ë– ì˜¤ë¥´ê²Œ 한다. 그야ë§ë¡œ ì§‘ì°©ì„ ë– ë‚˜ ë§Œì‚¬ì— ì´ˆì—°í•´ ì¼ì •한 격ì‹ì— ë©”ì´ì§€ ì•Šì€ â€˜ë¬´ìƒç„¡ç›¸â€™ì˜ ì´ë¯¸ì§€ë¡œ ë³´ì¸ë‹¤. ì´ë¦¬ì €ë¦¬ 선명하게 남긴 ì • ìžêµ­ 하나하나가 부처님 법문 같다. ë²”ì¼ êµ­ì‚¬ì˜ ì„ ç¦ª ì˜ì‹ì„ 그렇게 구현한 ì„ê³µë„ ìƒë‹¹í•œ ê²½ì§€ì˜ ë„를 깨우치지 않았ì„까. 어쩌면 유학승 ë²”ì¼ì˜ 선禪과 무위 철학보다 당간지주를 만든 ì„ê³µì´ ë¬´ë…무ìƒì˜ 실천ìžì˜€ê² ë‹¤. 물론 ì„ê³µë„ ìŠ¹ë ¤ì˜€ì„ í„°ì´ê³ , 그가 만든 형ìƒì„ ì´ëŒ€ë¡œ 허용한 ë²”ì¼ì´ë‚˜ ê·¸ í•™í†µì„ ì´ì€ ì„ ìŠ¹ì˜ ë†’ì€ ëœ»ì„ ê¸°ë¦¬ê²Œ 한다. 아니었으면 ì´ í•˜ì–€ ëˆ„ë¦¬ì— ì™¸ë¡œì´ ì„ , 우리 미술 ìµœê³ ì˜ ì¶”ìƒì¡°ê°ì„ ê°ìƒí•  수 있었겠는가?
ì´ ë‹¹ê°„ì§€ì£¼ì˜ ì¡°í˜•ë¯¸ë¥¼ 맛보며, 한국 현대조ê°ì˜ 거장 김종ì˜ì´ 추구하는 ‘불ê°ì˜ 미’를 떠올렸다. 작가는 노장 ì² í•™ì˜ ë¬´ìœ„ç„¡çˆ² ê°œë…으로 ‘새기지 않는 ìƒˆê¹€ì˜ ì¡°ê°â€™ì„ 표방하며 ìµœì†Œí•œì˜ ì¸ê³µìœ¼ë¡œ 단순하고 ì¶”ìƒì  형ìƒì„ 찾았다. 마침 í‰ì°½ë™ 김종ì˜ë¯¸ìˆ ê´€ì—서 <불ê°(ä¸åˆ»), ìƒ(象)ì„ ì¡°ê°í•˜ê¸°>ë¼ëŠ” 제목으로 ê¹€ì¢…ì˜ ìž‘í’ˆì „(2022. 3.18~5.15)ì´ ìžˆì–´ 들렀다. 김종ì˜ì˜ ë™ê¸€ë™ê¸€ 구름 ë‹®ì€ í° ëŒ€ë¦¬ì„ ì¡°ê° <작품79-21>ì´ ë‹¹ê°„ì§€ì£¼ì™€ 대조ì ì¸ 형태지만, ‘불ê°ä¸åˆ»â€™ì˜ ì´ë¯¸ì§€ë¡œ ëˆˆì— ë“¤ì–´ ê·¸ì˜ ì†ê¸¸ì„ ë”°ë¼ ê·¸ë ¤ 보았다. (ë„8)

ì´ ê±°ëŒ€í•œ ëŒë“¤ì€ 어디서 ì™”ì„까

í•™ì‚°ë§ˆì„ ë“¤íŒì— 드러난 당간지주 5.4më§Œ 놓고 ë³´ë”ë¼ë„ ê·¸ 규모가 매우 웅대하다. ì´ë¥¼ 수ì§ìœ¼ë¡œ 서ë„ë¡ ë•…ì— ë°•ížŒ 부분까지 ì—¼ë‘ì— ë‘ë©´, ëŒë©ì–´ë¦¬ëŠ” 7mê°€ ë„˜ì„ ë“¯í•˜ë‹¤. 허허벌íŒì—서 ì´ ê±°ëŒ€í•œ ëŒë“¤ì€ 어디서 옮겨 ì™”ì„까? ë˜ ì´ ì§€ì£¼ë¥¼ 버팀목 삼아 세운 ê·¸ ë‹¹ê°„ì€ ì–´ë–¤ 모양새였ì„까? ì´ë“¤ì— 대해서는, 굴산사 터와 ë²”ì¼ êµ­ì‚¬ ì´ì•¼ê¸°ë¥¼ í¬í•¨í•´ ë‹¤ìŒ íšŒë¡œ 넘긴다

ì´íƒœí˜¸ | ëª…ì§€ëŒ€í•™êµ ì„좌êµìˆ˜

í™ìµëŒ€í•™êµ 회화과와 ë™ëŒ€í•™êµ ëŒ€í•™ì› ë¯¸ìˆ ì‚¬í•™ê³¼ë¥¼ 졸업했다.
국립중앙박물관 ë° ê´‘ì£¼ë°•ë¬¼ê´€ 학예연구사, ì „ë‚¨ëŒ€í•™êµ êµìˆ˜Â·ë°•물관장,
ëª…ì§€ëŒ€í•™êµ ë¯¸ìˆ ì‚¬í•™ê³¼ êµìˆ˜Â·ë¬¸í™”ì˜ˆìˆ ëŒ€í•™ì› ì›ìž¥, 문화재청
문화재위ì›ì„ 역임했으며 현재 다산숲 ì•„ì¹´ë°ë¯¸ ì›ìž¥ì´ë‹¤.


ì €ìžì— 관하여

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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