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이태호 교수의 미술사 여담 ②
강릉 강문 진또배기 下

도1 이태호, <십년 전 강문동 진또배기>, 2021. 12, 면지에 수묵 스케치, 64×24㎝



진또배기 솟대는 2000년 이상 하늘 내지 먼 북방의 이상을 좇는 문화로 뿌리를 내린 신령스러운 에너지의 산물로서 신조神鳥의 상징이자 영표靈標였을 터이다. 이런 문화는 우리만이 아니라 시베리아, 내몽고, 중국, 일본 등 아시아, 나아가 세계 인류의 유산이다.

글·사진 이태호 (명지대학교 석좌교수, 다산숲 아카데미 원장)


우리 삶의 공간에 우리가 만들어 세운다

강문동 목조 진또배기는 5m 가량의 나무장대 끝에 나무오리 세 마리가 솟대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대관령(혹은 함경도)에서 나무오리 짐대가 떠내려와 이를 세우고 제사를 잘 지냈더니, 마을이 번성하였다고 한다. 지난 호에서 언급한 것처럼 마을 주민들이 3년마다 풍어를 기원하며 용왕굿과 뱃놀이 굿의 동제를 지내면서 새롭게 만들어 왔다. 나무가 비바람에 썩는 기간을 적절히 맞춘 셈이다.
현재 솟대 공원에 있는 여러 나무새들 가운데 우뚝 솟은 진본은 십 년 전 보았을 때의 모습보다 장대가 좀더 굵어지고, 조각이 좀 둔탁해진 듯하다. (도1) 시대가 내려올수록 퇴락하는 기미를 보인다. 십 년 전의 옛 사진을 찾아 솟대를 드로잉하였다. (도2) 이전에는 오리 조각의 주둥이 부분이 좀 더 날렵했고, 얼굴을 치켜세운 자세와 표정도 한층 멋졌다. 1980년대엔 조형미가 비교적 유지되고 있긴 하나, 전반적으로 완성도가 아쉽다. 기세가 떨어진 이유는 마을공동체의 힘이 그만큼 약해진 탓이겠다.

도2 현재의 강문동 진또배기 솟대 모습

1980년대 말 처음 이곳 진또배기를 보았을 때,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긴 장대 위에 선 나무오리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치솟아 날아갈 듯 상큼한 표정이었다. 꾸밈없이 아름다웠다. 더 보탤 것도 뺄 것도 없이 추상조각으로도 완벽했다. 그야말로 마을 사람들이 ‘우리 삶터에 우리 공동의 염원을 담아 우리 솜씨로 만들어 세운’ 민중의 예술이자, 현대 미술로도 손색없는 일품이었다.
‘솟대’ 혹은 ‘짐대’는 이름도, 조성방식도 지역별로 다양하다. 그 역할에 따라 짐대서낭, 진대, 솔대, 소줏대, 표줏대, 갯대, 수살이, 수살잇대, 액맥잇대, 골맥이, 용두솟대, 화주華柱 또는 화표주華表柱 등으로 불린다. ‘진또배기’라는 이름은 강문동이 유일하다.
경기, 충청, 전라 지역의 경우 솟대는 장승과 어울려 조성하는 게 보편적인데, 강릉 주변 영동 지역의 솟대는 장승 없이 단독으로 세워진다. 전라북도 부안에는 조선 후기 돌장승 곁에 돌 솟대를 배치했다. 정월에 줄다리기를 끝내고 그 새끼줄을 솟대 돌기둥에 감아 남근처럼 만들어 성기 신앙의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전북 남원 호경리의 나무 솟대는 높은 돌무더기 단에 세워졌다. 이러한 솟대는 수호신 장승과 더불어 마을 동제의 신성한 장소이자 마을 입구의 경계나 이정표 역할도 했다.
솟대나 장승 세우기의 마을 동제洞祭는 이제 강문동처럼 어려워지고 사라지는 양상이다. 겨우 박물관에 모셔져 보존되는 실정이다. 국립민속박물관 입구 돌무더기와 함께 한 장승 동산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2021년 11월 경기도 광주 엄미리 주민들이 직접 와서 장승과 솟대를 조성하고 제례를 올렸다. 2015년과 2017년 충청지역 목장승과 솟대를 세웠던 공간이다. 《역병, 일상》이라는 기획전(2021.11.24.-2022.2.28.) 오프닝 행사로 마련했다고 한다. 먹글씨 ‘天下大將軍’과 ‘地下女將軍’로 이름 붙인 두 장승의 치켜세운 두 눈과 굵은 먹선, 단순하고 힘진 얼굴 이미지는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퇴치할 듯한 기세이다.
(도3) 역병을 물리치고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천하대장군 장승 관모 꼬리와 솟대를 흰 실타래로 묶으며 명태를 끼워놓은 게 골계미 넘친다. 마을에서 하기 어려운 일을 오랜만에 진행하게 되어, 주민들이 너무 신바람 났단다.
이를 돌아보며 1980~90년대 한창 답사를 다닐 때, 충남지역 공주 탄천 마을에서 나무새를 주워왔던 기억이 떠올라 예전 이삿짐을 뒤져 찾아냈다. 기역자 형 소나무 가지로 새의 주둥이와 목을 만들고, 먹으로 깃털을 그려 넣은 형태이다. 그야말로 최소한의 손질로 조각을 완성한, 명품다웠다. (도4) 탄천의 이 나무새는 주둥이에 붕어빵을 닮은 나무 물고기를 물고 있는 점이 색다르다.


도3 경기도 광주 엄미리 주민들이 만든 나무장승과 솟대, 2021.11, 국립민속박물관



도4 <나무오리와 물고기>, 1980년대 공주 탄촌마을 솟대, 높이 35㎝, 이태호 소장


소박한 단순미, 민족문화의 원형이자 전통

마을 사람들의 염원을 표출한 동제의 중심 진또배기, 솟대의 새는 대체로 오리 형태이다. 지역에 따라 갈매기, 기러기, 까마귀, 봉황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조류는 하늘과 땅, 혹은 먼 지역을 내왕하는 동물이다. 예로부터 새는 하늘 혹은 이상향을 기리는, 천신天神 사상과 관련한 상징물로 여겨왔으니, 진또배기는 목조木鳥 신간神竿인 셈이다. 이런 솟대는 《삼국지三國志》 <마한전馬韓傳>의 ‘소도蘇塗’에서 그 기원을 찾는다.

‘모든 나라 별읍이 소도라 불리며, 큰 나무에 방울과 북을 매달아 귀신으로 섬겼고. 도망자가 그곳에 들면 잡아가지 못했으며, 절의 부도浮屠와 흡사하다 […又諸國各有別邑 名之爲蘇塗 立大木縣鈴鼓 事鬼神 諸亡逃至其中 皆不還之 好作賊 其立蘇塗之義 有似浮屠…]

긴 장대 ‘솟대’가 영물로 섬겨지는 터, ‘소도’는 신성한 장소이자 나은 세상을 꿈꾸며 만든 오붓한 공간이겠다. 이 기록과 근사한 시기, 초기철기시대 유물로 광주광역시 신창동에서 출토된 2개의 나무새가 떠오른다. (도5) 31.9㎝ 길이로, 늘씬한 몸 날개의 새 모양이다. 그중 하나에 나무를 꽂았던 접합구멍이 있어, 솟대의 원형이 아닐까 짐작하게 한다. 신창동 유적은 농사 도구를 중심으로 목공구, 무기, 악기 등 목물과 칠기류, 철기, 토기 등이 쏟아진 농경 생활 유적지로 꼽힌다. 대전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하는 <농경문청동기>(초기철기시대, 보물 제1823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에 묘사된 나뭇가지에 앉은 새들은 소도의 장간長竿 신조神鳥의 원류로 주목된다. 둥근 고리 장식이 달린 앞면에 나뭇가지 끝에 앉은 3마리의 새가 음각되어 있다. 왼쪽 면 두 갈래로 갈라진 나뭇가지 끝에, 오른쪽 면 한 가지에 각각 앉은 새가 3마리이다. (도5) 꼬리가 긴 까치나 까마귀 모습이다. 아래쪽을 잃은 폭 12.8㎝의 이 작은 청동기는 고리 장식과 좌우로 뻗은 모습이 얼핏 지붕 모양 같기도 하고, 방패 모양 같기도 한데 쓰임새가 명확하지 않다. 상단 여섯 개의 네모 구멍에서 좌우 가장자리 두 구멍 마모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부족장이나 샤먼의 장식물로 끈을 꿰어서 목에 걸고 다녔던 모양이다.
나뭇가지에 앉은 새는 청동기시대 유목민 전통의 동물 정령신앙인 애니미즘과 연계되며, 반대 면에 새겨진 그림처럼 농경문화와 맞닿아 있다. 뒷면 왼쪽에는 그물망을 엮은 토기와 함께 있는 사람, 오른편에는 밭에서 따비질과 괭이질하는 사람이 보인다. (도6) 농사 풍속도이다.
세 인물상은 모두 등뼈를 드러냈다. 직선으로 단순하게 그은 팔다리 동세가 역동적이다. 특히 오른편 잘 정비된 고랑의 논밭 위 양날 따비질을 하는 인물이 주목된다. 머리 뒤로 길다란 깃털 장식이 눈길을 끈다. 발가벗고 성기를 드러낸 인물은 일상의 농부라기보다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던 샤먼으로 추정된다.


도5 신창동에서 출토된 나무 새(31,9㎝)와 농경문청동기의 나무가지에 앉은 새 무늬, 2022.1. 국립광주박물관 전시실에서



도6 농사풍속, 농경문청동기(뒷면), 초기철기, 길이 13.5㎝, 보물 1823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농경문청동기>에서 성기를 드러낸 이 인물상은 청동기시대 울산 반구대 암각화의 도상과 유사하면서도, 그 위상은 다르다. 고래는 물론이려니와 돼지, 염소, 심지어 거북이보다 사람을 작게 표현한 암각화와 달리, <농경문청동기>의 인물상은 논밭보다 훨씬 크다. 동물이나 생활 터전보다 인간을 더 중요한 존재로 인식한 결과이다. 자연을 일구어 살던 농경사회 정착을 시사하는 이미지 표현 방식일 법하다. <농경문청동기>의 농사일과 더불어 나뭇가지의 새 표현은 강문 진또배기 솟대에 이르기까지 전승해왔으니, 한국문화사에서 민족미술의 원형이자 끈질긴 전통이라 할만하다.
<농경문청동기> 앞뒤에 새겨진 생활 풍속도는 외곽의 추상무늬와 더불어 초기철기시대 농경문화를 알려준다. 이를 염두에 두면, 강문의 진또배기는 농업사회 민속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진또배기와 관련해 ‘대관령에서 왔고, 잘 모셔야 벼농사가 잘되었기에 신성시했다’는 내용의 구전설화가 그 증거이다. 진또배기와 남성황당이 바다보다 들쪽의 초당동에 붙어있기도 하다.
신조神鳥이자 길조吉鳥로서 나뭇가지에 앉은 새는 우리 미술사에서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신라 5세기 서봉총 출토 금관에도 보인다. 화려한 귀걸이와 함께 출토된 전형적인 ‘出’자형 신라 금관의 내관에 세 나뭇가지에 세 마리 금조金鳥가 앉은 모습을 장식했다. 꼬리가 살짝 길고, 둥근 금잎을 치장한 새는 봉황의 이미지이다. (도7)
조선시대 70세 이상의 고위관리 기로 공신에게 하사한 궤장机杖에서, 나무 지팡이에는 농기구인 쇠 살포와 작은 새 장식이 딸려 있다. 왕이 내린 권위의 조형물이다. 이는 조선시대 문관의 관복 흉배에는 전기의 공작, 백한, 기러기, 후기의 학 등 새들이 등장하는 것을 떠오르게 한다. 명나라 방식을 따른 관복제도이다. 또 혼례의 초례상에 기러기를 올리는 풍습에 따라 조각한 나무 기러기 목안木雁도 그 상징성이나 의미에서 솟대의 새와 유사하다.


도7 <신라 서봉총 금관>, 세 나뭇가지에 앉은 새,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한류의 근원이자 케이아트의 새 원천, 민속 미술

솟대는 마을공동체에서 우리나라 민속신앙의 주요 조형물이다. 마을 사람들이 뜻을 모으고 스스로 만들고 함께 공유했던 만큼 기운차다. 간소하면서도 소박한 표현 방식이 으뜸이다. 최소한의 표현으로 깎아 세운 선돌, 돌무더기, 장승이나 솟대 등을 보면 그러하다. 어쩌면 인류가 처음 공동체를 조성하며 이룬 원초성을 아우르며, 한국미술에서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또 K-Art, 한류의 근원이자 새로운 예술 장르를 창조해낼 원천이지 않나 싶다.
진또배기 솟대는 2000년 이상 하늘 내지 먼 북방의 이상을 좇는 문화로 뿌리를 내린 신령스러운 에너지의 산물로서 신조神鳥의 상징이자 영표靈標였을 터이다. 이런 문화는 우리만이 아니라 시베리아, 내몽고, 중국, 일본 등 아시아, 나아가 세계 인류의 유산이다. 오랫동안 이 땅에 뿌리내렸던, 이들 민중 공동체의 신앙적 조형물은 인간의 삶, 행위, 작가와 작품, 작품의 사회화 등 예술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덕목이다.
비디오 아티스트 고 백남준이 쏟아낸 “예술은 사기다”라는 농지거리를 연상케 하는 작금의 미술계를 보면서, 삶과 함께 하는 예술 정신과 역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본다. 인간의 삶에서 ‘예술이란 무엇인가, 어떤 형태여야 좋을까’ 되물으며 나무오리 솟대를 첫 글로 삼았다.
다음 호에는 강릉의 보물로, 진또배기의 형식과도 연계된 신라 후기 굴산사 터 석조 당간을 찾아가겠다.

[참고문헌]

이태호, 《미술로 본 한국의 에로티시즘》, 여성신문사, 1998
이태호, 《이야기 한국미술사》-주먹도끼부터 스마트폰까지, 마로니에북스, 2019
《2000년 전의 타임캡슐-광주 신창동 유적 사적지정 20주년 기념 특별전》 도록, 국립광주박물관, 2012


이태호 | 명지대학교 석좌교수

홍익대학교 회화과와 동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를 졸업했다.
국립중앙박물관 및 광주박물관 학예연구사, 전남대학교 교수·박물관장,
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문화예술대학원 원장,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다산숲 아카데미 원장이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