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벽화무덤과 전통색

일본을 비롯한 유럽 선진국에서는 1980년대부터 문화재 보존의 이름으로 전통색 연구를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펼쳐왔다. 이들 국가는 전통 채색물감에 대한 이해와 자료들을 다량 축적하고 나아가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를 무대로 연구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일본이 가장 먼저 미술작품의 보존 수복을 목적으로 하는 연구를 시작했다.

일본의 ‘전통색 찾기’는 특히 고려불화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면서 연구가 시작되었고, 1988년 돈황석굴벽화의 보존처리를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얼마 전(2015년 11월 말) 일본 학자가 TV 방송을 통해서“타카마쓰와 키토라 벽화무덤은 고구려를 계승한 무덤”이라고 공표하는 장면이 보였다. 이 말의 의미는 고구려 벽화와 타카마쓰에서 측정기기로 조사된 안료와 제작기법 및 표현기법이 일치된다고 보고 공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타카마쓰와 키토라 벽화무덤이 고구려 벽화무덤을 계승한 것은 여러 면에서 확인되고 있어서 논란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일본은 아직 고구려 벽화무덤의 색채를 논論하기에는 다소 이른 것이 아닌가 짐작해본다.
일본의 무기안료를 이용한 ‘전통색 찾기’는 30여 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까지 전통색을 정립하지 못했다. 그 첫 번째 원인은 첨단기기로 측정하여도 전색제(고착제) 성분이 검출되지 않고 있고, 두 번째 원인은 안료부터 다음과 같은 다양한 특성과 변화를 보이기 때문이다. 광물은 여러 가지 조암광물이 혼재婚材하기 때문에 광물조성에 따라, 또는 가공 방법에 따라 색상에 차이를 보인다. 그런즉, 안료 성분이 같아도 색상이 다른 경우가 있고 같은 성분인데 색상이 변하지 않거나 변하는 안료도 있다. 특히 칼슘(Ca) 성분이 검출되는 안료는 자연계에 8종이 있다. 하지만 첨단기기로 측정하면 모두 ‘Ca’로 검출된다. 또, 칼슘 성분 안료와 전색제를 배합해서 물감으로 사용했을 때 물리화학적 변화가 매우 크기 때문에 급격히 훼손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또, 물감층(layer)의 물리화학적 변화도 변색의 원인이 될 수 있고, 심지어 성분이 전혀 다른 안료인데 채색된 색상이 비슷한 경우도 있다. 세 번째 원인은 동아시아 전통색채 표기와 표색 시스템의 가장 기본 사상은 음양오행에 의한 오방색에 관한 것이다. 과연 한대漢代에 형성된 음양오행의 오방색 개념이 전全 시대에 걸쳐서 모두 통용되는 개념인가?
의사가 병을 진단하려면 병명만 알아서는 안 되고 어떻게 해야 나을 것인지 또, 앞으로 나타날 징후까지 예측해서 처방할 수 있어야 제대로 병을 고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보존처리를 하려면 위와 같은 안료와 전색제의 성질 및 물감으로 사용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들을 충분히 파악하여야 한다. 그러자면 물감의 종류, 물감의 물리화학적 성질 외에 바탕물질·마감층·연백층·채색층 간의 결합방법, 물감 표면구조의 특성들을 모두 이해하고 앞으로 나타날 일까지 예견할 수 있어야 비로소 고구려 벽화의 색을 말하고 보존처리를 할 수 있다.
필자는 실험 제작을 통해서 고구려 벽화무덤의 마감칠 물감에 대한 연구를 발표한 바가 있다. 고구려 후기 석재바탕 벽화무덤의 마감층 물감 실험을 통해서 천연 무기질바인더(암석이나 석재를 강화시키고 결합시킬 수 있는 접착제)가 세계 최초로 밝혀지기도 했다. 이 천연 무기질바인더로 반구대 암각화도 암석 성분에 맞게 제조한 물감으로 마감칠 하면 원석처럼 보이면서 강화된다. 또, 반구대 암각화는 마감칠로 코팅되면 오히려 대곡천이 반드시 있어야만 보호할 수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¹⁾고구려 벽화무덤 마감칠 물감의 성능과 기능은 과학적으로 밝혀진 셈이다. 하지만 채색층 물감은 아직 학계에 공개하지 않아 다소 시기상조이긴 하다.
필자는 고구려 벽화무덤 색채의 중요성을 알리고, 미술문화재의 전략적 국가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우선 다음 내용들을 정리해보고자 한다.(이번 호에는 (1)과 (2)를 정리해 보았다.)

(1)고구려 벽화무덤 색채의 중요성을 알리고, 고구려 벽화무덤이 동아시아 최대 최고의 회화작품이 될 수 있는 이유와 조건들을 정리해본다.
(2)고구려 벽화무덤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로 말미암은 우리의 주권과 정체성을 되돌아보기 위해서 중국과 일본의 국가정책과 국제정세를 살펴보기로 한다.
(3)미술문화재는 이론理論과 실제實際의 유기적인 종합 분석이 되어야 작품의 올바른 해석이 가능하다. 오늘날의 학문은 전공별로 세분화되어 있어서 종합적 분석이 어렵다. 종합적 분석이 되지 않아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살펴보고 앞으로 국가정책에 반영되기를 바란다. 또, 문화재 관련 책임자들은 이런 문제점을 숙지하여 국가에 불이익이 되지 않도록 한다. 더불어 한국의 채색된 미술문화재가 더 이상 일본식 짜깁기로 연습용이 되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4)전략적 국가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미술문화재의 원형 보존 및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바의 해결책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기로 한다.

1. 고구려 벽화무덤 색채의 중요성

고구려 벽화의 색채는 동양의 예술정신과 전통회화, 궁궐건축(사찰건축)의 단청, 공예기법들을 직접 익혀 제작해 본 오랜 경험에 의하지 않고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실제實際 문제에 당면해 있다. 일본은 아시아 전역의 미술문화재에 유네스코 신탁기금의 막대한 금액을 부담하면서 해결하기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바로 단절된 재료와 제작기법 및 전통기술의 복원에 관한 문제였다.²⁾ 이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전통색’이다. 이것은 ‘ICCROM(국제문화재보전 및 복원연구센터, International Centre for the Study of the Preservation and Restoration of Cultural Property)’에서도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중요시 여기는 사업이기도 하다.³⁾
일본은 1988년 돈황석굴벽화의 보존처리를 맡게 되면서 전통색을 찾으려면 이론理論 못지않게 실제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화제畵題와 소재素材의 서랍 박물관》을 우선적으로 개관하고 관련 연구자는 물론 일반 신청인들까지 정기적인 교육을 실시하게 되었다. 이론과 실제의 유기적인 연계 연구의 필요성을 더욱 절실하게 깨달은 일본에서는 서둘러 문화재 관련학과를 대학에 개설하게 되었다. 지금은 그 교육 세대들이 다수 배출되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은 2004년 고구려 벽화무덤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일본에서 유네스코 휘하 고구려 벽화 전문가 양성교육으로 이어졌다.
동아시아 미술문화재의 전통색 복원은 고구려 벽화무덤의 색채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동아시아의 가장 중요한 전통사상과 모든 학문은 위진 시대(BC 280~420)부터 체계적으로 정리되기 시작하여 남북조시대(BC 420~589)에 완성된다. 문예文藝에서 서書와 화畵가 분리되고 동아시아 근본 회화미학들이 대두되면서 회화 이론들이 뿌리를 내린다. 이처럼 가장 중요한 시기에 고구려 벽화무덤은 400여 년 동안 지속적으로 조성되었다.
둘째, 고구려 벽화무덤의 색채는 전통색의 뿌리이다. 후대後代로 내려갈수록 바탕물질과 제작기법이 더 다양해지므로 색채복원은 그만큼 더 복잡해진다.
셋째, 동아시아 전통색채 표기와 표색 시스템은 그동안 음양오행사상에 의한 오방색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과연 한대漢代에 형성된 음양오행사상의 오방색 개념이 전全 시대에 걸쳐서 모두 통용되는 개념인가? 기존에 알려진 적·청·황·흑·백색으로 구분하고 있는 오방색과 간색間色(2차색, 3차색 등)의 표색 시스템에 해당 안료의 색상들을 적용시켜보면 분류체계가 잘못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동아시아 전통색은 아직 정립되지 못했다).
고구려 벽화무덤이 동아시아 최대 최고의 회화작품이 될 수 있는 조건은 다음 사실만 보아도 충분하다.
첫째, 벽화무덤의 숫자는 동아시아 문화의 정통성과 계승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로 볼 수 있다. 고구려 벽화무덤은 고구려 멸망까지 400여 년 동안 집안지역과 환인지역에 31기基, 북한에는 평양지역에 76기가 알려져 있어 모두 107기가 발견되었다. 이에 비해 중원지역은 위진남북조시대를 거쳐 당唐(618~907)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발견된 벽화무덤은 약 700여 년 동안 모두 80여 기가 발견되었다.
둘째, 문화가 변화, 발전하려면 안정된 국력은 필수적이다. 전통문화를 계승하여 변화 발전시키고 새로운 문화를 이식시켜 꽃피우려면 대내외적인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때 안정적인 국력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전통문화와 새로 이식된 문화의 변화 발전은 불가능하다. 고구려 벽화무덤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삼국지〉와 〈삼국사기〉를 보면 고구려 국가체제는 늦어도 1세기경인 태조왕대에는 성립했을 것으로 보인다. 5부를 중심으로 하는 고구려 초기의 정치체제는 중앙집권력이 강화된 3세기 이후에 점차 변모했다. 고구려의 중앙집권체제가 잘 정비되고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강력해진 시기는 4세기이다. 이 시기부터 벽화무덤이 본격적으로 조성되기 시작하여 7세기 말 고구려가 멸망하면서 그 전통이 사라졌다. 이와 같이 고구려의 경우는 국가의 중앙집권력이 강화되어 벽화무덤이 처음 조성되기까지 3~4세기가 걸렸다. 이때 중원에서는 많은 나라가 나타났다 사라지는 분열과 황폐화가 지속되어 벽화무덤이 조성되기 어려웠다.
셋째, 안정된 국력은 국가의 존속기간과도 불가분의 필연적인 관계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고구려는 705년간 존속하였다. 고구려의 존속기간 동안 중원지역에서는 한漢나라가 붕괴되고 당唐 왕조가 세워졌다. 이 기간 동안 중원에는 35개의 나라가 나타났다 사라지는 분열과 황폐화가 지속되고 있었다. 특히, 고구려의 국력이 강성해지는 5~6세기 중원지역에서는 40년을 넘긴 나라가 3개국밖에 없다. 차후 연구가 진행되어감에 따라 좀 더 많은 사실이 밝혀지겠지만, 고구려 문화는 전통문화와 새로 받아들인 문화(주로 대외교섭을 통해서 이식된 문화)가 짝을 이루며 계속 변화 발전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즉 국가의 존속기간은 곧 문화적 역량과 국력을 나타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러한 내용들이 글로 잘 남아있는 예가 바로 광개토대왕 비문書이고 고구려 벽화무덤은 그림으로 나타낸 대표적인 예다.
남북조시대의 국가별 존속기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북조〉 북위北魏(386~534)·동위東魏(535~549)·서위西魏(535~555)·북제北齊(550~577)·북주北周(556~581)·수隨(589~618), 〈남조〉 송宋(420~478)·제齊(479~502)·양梁(502~557)·진陳(557~589)이다. 40년을 넘긴 나라는 북위의 108년, 양나라의 55년, 송의 58년, 그 외에 남북조시대는 아니지만 수나라에 이은 당나라(618~907)는 290년간 존속하였다.
넷째, 고구려의 석회 몰탈과 석재바탕 벽화무덤에는 오늘날의 과학문명에서도 찾지 못한 천연 무기질바인더와 최첨단 표면과학기술이 적용되어 있다. 석회 몰탈 벽화의 주성분 재료인 석회는 원료·소성조건·가공방법·제작시의 가변성들로 그 특성 변화가 매우 심하다. 서양의 프레스코fresco 벽화도 이러한 다양한 가변성 때문에 정확한 제작비법을 밝힐 수 없었다. 프레스코 벽화에 대한 가장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논한 것은 첸니니의 《회화의 서》(14세기 말)가 최초이다.⁴⁾ 고구려의 석회 몰탈과 프레스코 벽화는 석회가 사용되었다는 점만 같을 뿐이다.(석회가 주재료이긴 하나 엄밀히 말하면 가공 방법조차도 다르다) 또, 주재료가 점토인 점토 몰탈의 제작기법은 고구려의 석회 몰탈과는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점토 몰탈은 일반 평민이나 천민의 가옥에도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즉 고구려 벽화무덤은 당시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적 역량을 판가름하는 최고의 척도가 될 수 있다.
고구려 벽화무덤의 중요성은 다음 전문가들의 주장에서도 잘 나타나있다. 전前 고구려 연구회 서길수 회장은 중국이 개방되기 전부터 발로 뛰는 연구를 중요시해온 분으로 “고구려 벽화무덤은 핵폭탄 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1973년부터 고구려 벽화무덤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고구려 벽화를 연구 모사模寫해온 전 서울대 이종상 박물관장은 “고구려 벽화무덤을 알면 한국미술을 다 안다고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2015년 10월 말에 있었던 한국문화재보존과학회의 국제학술대회에서 한국의 동산문화재를 모두 조사해서 발표한 공주대 조남철 교수는 “한국의 동산문화재는 모두 고구려 벽화무덤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였다.⁵⁾

1)　蔡美榮,「춤무덤과 씨름무덤의 벽화재료」, 『고구려연구 제7집』, 학연문화사, 1999.10. 蔡美榮, 「고구려 벽화무덤의 바탕재에 관한 고찰 -석회 모르타르를 중심으로-」,『고구려연구 제9집』, 학연문화사, 2000.06. Mi-young Chae,「Study on the Coating Material Used in the Mural Paintings of koguryo Tombs – Focusing on the Ca-based Ingredients Found in the Twin Column Tomb -」『세계한국학대회』, 한국학중앙연구원, 2013, 09.25～26. Mi-young Chae,「Study on Transparent Finishing [hobun+glue] color paint of Wall Painting on Stones in the Late Koguryo Period」『International Conference on Conservation of Stone and Earthen Architectural Heritage』, May 20∼23, 2014.(ICOMOS-ISCS) 蔡美榮, 「고구려 석재바탕 마감칠 물감을 통해서 본 반구대 암각화 연구」, 한국문화재보존과학회, vol.30 no.3(2014). Mi-young Chae,「Study on Transparent Finishing color paint of Wall Painting on Stones in the Late Koguryo Period」『Modern Environmental Science and Engineering, USA』(ISSN 2333-2581), (MESE20150108-1) 蔡美榮,「고구려 벽화 마감칠과 무덤 환경 연구」『제5회 세계과학관심포지엄(ISSM)』, 국립중앙과학관, 2015. 10. 22～23. Mi-young Chae,「A Research on the Relationship Between Daegokcheon River and Coating Materials Used for Bangudae Petroglyphs」, 추계 국제학술대회, 한국문화재보존과학회, 2015.10. 30～31.
2)　徐吉洙,「평양지역 고분벽화의 분포현황과 보존 방향」,『고구려 연구』제3집, 고구려 연구회, 1997. 84∼91쪽.(1996∼97년도 유네스코 신탁기금 총 예산의 36.9%)
3)　(사)고구려연구회·ICCMOS 한국위원회, 『한·중 고구려 유적 UNESCO세계유산 등재의 현황과 대책』,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후원, 2003년 12월 23일.
4)　神林恒道·潮江宏三·島本浣·김승희, 『예술학 핸드북』, 지성의 샘, 1993, 179～180쪽.(프레스코 벽화에 대하여 가장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논한 최초의 서적. 수복보존을 목적으로 한 프레스코의 전성기 기법에 관해서는 비교적 자세한 정보가 들어 있다.)
5)　조남철 교수님은 필자가 2011년의 박사학위3차발표논문인 ‘고구려 오회분5호 벽화무덤의 보존을 위한 채색물감 특성과 재현연구’의 심사위원을 맡아주셨던 분이다.

2. 고구려 벽화무덤 세계유산 등재와 국제 정세

1）중국의 국가정책

일본이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고 고구려 벽화무덤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⁶⁾시킨 결과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불을 지피는 격으로 나타났다. 중국은 1986년부터 티베트를 지방정부로 예속시키기 위한 서남공정을 추진한 적이 있다. 또, 서북지방의 신강, 위구르, 몽골의 역사도 중국 역사로 편입시키기 위한 서북공정을 추진하기도 했다. 동북공정은 고구려가 중국의 고대 지방정권의 하나이고 이전시기의 역사도 모두 중국 역사라고 강조하더니 이제는 세계 모두가 인정한 것처럼 당연시하고 있다. 2002년 2월 말 베이징에서 제1차 회의가 열린 후 2003년 7월에 동북공정에 관한 최초의 대 학술회의가 있었다. 이 학술회의에서 고구려가 중국의 고대 지방정권의 하나라는 데 합의하고 고구려사 문제가 집중적으로 논의되었다. 또 하나 중요한 합의 내용은 북한에 어떤 정치적인 변화 내지는 위기가 있을 때, 또는 앞으로 남북통일이 될 때 중국이 한반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동북공정 학술회의의 첫 번째 성과는 집안지역과 북한의 평양지역 고구려 벽화무덤이 공동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은 고구려 역사 왜곡을 일반화하는데 최대의 기회로 활용했다.⁷⁾ 세계유산 등록을 계기로 중국에서는 유적정화사업에 집안시에만 3억 유안 또는 3억 9천만 유안의 예산이 지급되었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450억~584억 원이 되는데 두 나라의 소득 차나 물가를 생각하면 우리 돈으로 5천억 원에 가까운 돈을 퍼부은 것이다.
중국의 고구려유적정화사업은 두 가지 목표를 가지고 총력전을 펼치며 진행했다. 첫째, 세계유산 등록을 계기로 현지를 찾은 관광객에게 고구려 역사가 중국의 역사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둘째, 관광산업을 극대화하여 수입을 올리자는 것이었다. 이런 목표 아래 고구려유적정화사업 후 모든 문화재의 설명을 중국사로 편입시켰다.
고구려 첫 번째 왕도인 환인의 오녀산성은 국가등급 관광지(별 4개)로 변했다. ‘오녀산산성 사적진열관’은 오녀산성에서 정비된 진짜 유물들은 대부분 상부에서 가져갔고 일부 진품과 많은 복제품으로 상당한 규모를 갖추었다. 또한, 국가 관광국은 두 번째 왕도인 집안시를 중국우수관광도시로 선포하였다. 새로 조성된 ‘오녀산산성 사적진열관’과 새로 정비된 ‘집안박물관’은 역사왜곡의 교육장으로 ‘고구려는 중국 동북지방의 소수민족이고 지방정권이다’라는 내용을 강조하고 있다. 유물의 연대도 한-왕망-후한-위-진-제-양-진-수-당 식으로 철저하게 중국 왕조의 서술체계로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이곳에 들어서는 모든 사람들은 고구려가 중국의 소수민족사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인지하도록 정리했다.
국내외인에게 알리는 관광사업을 펼친 후 집안시는 수 백 억을 들여 새롭게 태어났다. 고구려 문화재를 정비한 집안시는 관광이 성황을 이루게 되었다(지금은 접근하기 쉽도록 집안을 중심으로 통화, 환인, 단동으로 가는 길에 굴을 뚫어 도로정비를 하여 교통시간이 많이 단축되었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후에는 주변은 물론 남방 사람들도 많이 오고 특히 “지금 일본 관광객이 1천명이나 신청이 들어왔는데, 일본사람들이 왜 고구려 유적에 관광을 오는 것입니까?” 질문하는 관광관계자가 있어서 대답하기가 쉽지 않았다.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후 가장 놀라운 변화는 박물관과 벽화를 빼놓고는 어디서나 마음대로 사진이나 비디오 촬영을 자유롭게 찍을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중국 당국이 고구려 유적에 대한 접근을 철저하게 막아버려 어려움을 겪어왔었다. ‘집안 박물관의 월급은 모두 한국 사람으로부터 받은 벌금으로 준다’고 할 정도로 비디오를 찍다 걸리면 작게는 1천위안(15만원)에서 크게는 5천위안(75만원)이라는 벌금을 물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카메라를 빼앗겼던 것이다. 고구려를 연구하는 사람으로 고구려의 유적을 마음대로 촬영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10년간 금지하던 것을 왜 갑자기 자유화했을까 하는 것을 생각해 보니 한편으로는 착잡한 심정을 누를 수 없다. 중국은 세계유산 등재를 마치 고구려사가 중국사인 것을 세계가 인정한 것처럼 끌어가고 있다. ‘이제는 찍어가 봐야 우리 역사다’라는 자신감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분쟁지역은 지금도 독도와 이어도, 러시아의 발해 역사의 편입, 쿠릴열도 남쪽 4개 섬의 영유권을 둘러싼 일본과 러시아의 대립(일본과 러시아는 공동관리구역에 독도를 포함시키고 한국은 배제시켰다)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분쟁지역들은 중국·일본·러시아보다 한국과 가까운 위치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한국의 울릉도에서 독도까지의 거리는 92km, 일본 오키섬에서 독도까지는 160km이다. 이어도는 제주도 마라도에서 1.4km, 중국의 서산다오에서는 287km, 일본의 도리시마에서는 276km 떨어져있다. 일본의 땅으로 되어버린 대마도도 부산에서 대마도까지는 50km, 일본 후쿠오카에서는 138km이다. 대마도에는 대마도에서 가장 중요한 조선통신사 유적지와 유물까지 잘 남아있다.
새해가 되자마자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를 놓고 중국·일본·미국은 또다시 맞서고 있다. 중국이 스프래틀리 제도의 피어리 크로스 암초(중국명 : 永暑礁)를 메운 인공 섬에서 항공기를 시험 운항한 데서 촉발됐다. 중국은 항행航行의 안전을 보장하고 해난 구조능력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며 영유권 분쟁 해역에 대한 순찰 활동도 강화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또한 중국은 일본과 영유권을 다투는 동중국해에도 기관포로 무장한 군함 5척을 해양 경비정으로 배치한다고 하였다. 2014년 말 동남아국가연합 10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아세안 공동체가 출범했다. 하지만 공동 안보 추구를 내세우면서도 경제적·외교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엇갈린 행보로 걷고 있다.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영유권 강화 행보를 이어가고, 이를 무력화하려는 미국·일본·필리핀·베트남들의 군사공조 강화, 중국 인공 섬 주변에 미국의 군함 재파견이 추진될 예정이다.⁸⁾

2）일본의 문화정책과 세계유산 등재의 의미

일본은 1988년대부터 유네스코를 통해서 동아시아 문화재에 대한 문화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서 지금은 더욱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돈황석굴벽화나 앙코르와트이고 일본이 가장 중요시한 미술문화재는 당연히 고구려 벽화무덤이다. 1988년 다케시다 수상은 “국제기구와 협력하여 문화교류 특히 세계유산보호에 참여하는 것은 일본의 국제협력정책의 주요 기조 중 하나이다”라고 천명했다. 그에 따라 막대한 재원을 유네스코 일본신탁기금으로 적립하여 1996~1997년의 경우 유네스코 신탁기금 총예산의 약 36.9%(미화 10,818,700달러)를 차지했다.⁹⁾ 이후 일본은 고구려 벽화무덤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시키고 전문가 양성교육까지 실시했으므로 더 많은 노력과 막대한 기금조성이 필요했음은 자명한 일이다.
일본은 북한이 자금지원을 받아들이지 않자 유네스코를 통해서 고구려 벽화무덤의 보존문제에 간접적으로 관여해왔다. 그러나 북한은 1995~1996년 대홍수의 피해로 단군릉과 피해 입은 벽화무덤의 보존처리를 유네스코에 의뢰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 되었다. 북한은 ‘유네스코 참여사업(UNESCO Participation Programme)’이라는 이름 아래 결국 야마다 소히꼬山田莊彦에게 보존처리를 의뢰하였다. 야마다 소히꼬는 신문에 난 수산리 벽화무덤의 미인도를 보고 고구려 벽화에 각별한 애정을 갖게 된 화가였다. 이런 계기로 사찰벽화를 모사模寫하다가 동경미술대학의 교수가 된 사람이다.(도 3 참조)

야마다 소히꼬는 “이런 엄청난 가치가 있는 벽화가 더 이상 훼손되는 것은 막아야한다”며 앞장서서 고구려 벽화무덤을 알리고 민간단체를 주축으로 전문가 양성교육을 위한 자금을 모았다. 이러한 영향으로 보존을 위해 막강한 다국적 모임이 동경에서 결성되기도 했다. 야마다 소히꼬는 고구려 벽화 전문가 양성교육을 위한 자금을 모으기 위해서 미국 록펠러재단에까지 도움을 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에서 고구려 벽화무덤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시킬 때 힘쓴 주요 인물은 위에서 말한 야마다 소히꼬 외에도 히라야마 이쿠오平山郁夫가 있다. 히라야마 이쿠오는 당시 유네스코 회장이었다. 그는 북한에 있는 고구려 벽화무덤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시키기 위해서 6년의 마지막 임기를 2회째(1993~, 2003~) 연임하며 기어코 일본의 국가정책 핵심 목표를 달성시켰다. 한국 정부는 그 공로로 히라야마 이쿠오를 ‘한국을 빛낸 사람’ 가운데 한 사람으로 소개하였다. 또, 문화교류에 기여한 공로를 들어 훈장까지 수여하였다.¹⁰⁾ 필자는 이러한 사실에 충격을 받았고 당시 미술사 전공이었지만 보존과학으로 전공을 바꾸는 결정적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 다른 한 가지는 전통색은 화학성분(무기안료)이나 분자구조(조선시대 말 서양 합성안료)로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전처럼 적색, 흑색으로 말해서는 전통색을 말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일본에 의해서 고구려 벽화무덤이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는 의미는 보존과학 측면에서 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포함하고 있다.
첫째, 고구려 벽화무덤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시킴으로써 일본은 보존처리 대상 벽화무덤을 허가내고 조사하여 자료화할 수 있다. 예컨대, 일제시대에 조사해간 모사도나 흑백사진은 어떤 형태의 그림이 있는지만 알 수 있다. 따라서 모사도나 흑백사진이 제 가치를 발휘하려면 고구려 벽화무덤의 바탕재(벽체, 지지체)와 마감층 및 채색층 재료까지 조사되어야 완전한 자료가 될 수 있다.
둘째, 현행 보존처리는 한국의 미술문화재가 일본식으로 짜깁기되는 지름길이다. 예컨대 불교회화의 진수眞髓로 알려진 고려불화는 전 세계적으로 160점이 알려져 있다. 그 중 130여 점은 일본에 있고 20여 점이 미국, 유럽 등지에 있다. 나머지 10여 점은 한국에 있으나 대부분 최근에 거금을 주고 사들인 것들이다. 고려불화는 대부분 일본 소장이어서 여러 차례 짜깁기 되었다. 국내를 비롯한 나머지 다른 고려불화들도 구조적으로 일본에 보존처리를 의뢰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이미 고려불화는 반복해서 실시하는 일본식 짜깁기로 시대성·고유성·특수성이 점차 사라져 국적을 알 수 없게 되었다.¹¹⁾ 문제는 이러한 짜깁기식 보존처리가 다른 문화재에서도 결코 예외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셋째, 고구려 벽화무덤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로 남한에서는 보존처리 전문가가 배출될 수 없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전통색 찾기’는 일단 고구려 벽화무덤의 색채를 한 번이라도 보지 않고는 색을 말할 수 없다. 단순히 붓으로 칠해서 되는 색채가 아니기 때문이다.
(2)전승된 전통재료와 제작기법대로 표현하는 화원畵員이나 불화 제작자 및 장인匠人들이 대부분 고인故人이 되어 그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물감이 미리 튜브에 담겨져서 판매되므로 화가가 직접 물감을 배합하고 손으로 만지는 마지막 세대가 될 것이다.
(3)지금은 컴퓨터와 멀티미디어 시대여서 예전과는 회화미술의 장르와 소재 자체가 크게 달라졌다.
(4)대학에 색을 많이 사용하는 미술과(동양화·서양화·공예)가 남아있긴 하지만 그들은 창작創作하기 위해서 전공을 선택했기 때문에 보존과학과 물리화학에는 관심이 없다.
(5)보존과학과가 있는 대학에서 보존처리 전문가를 일부 양성하고는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 배워온 대로 보존처리가 되고 있어서 구조적으로 계속 일본식 짜깁기가 되어갈 뿐이다.
일본은 위와 같이 고구려 벽화무덤에 사용된 물감과 채색 특성을 잘 몰라도 가장 먼저 선행연구 되었다는 이유로 동아시아의 보존처리를 도맡아 할 수 있다. 또한 모든 이권利權과 영향력을 행사하며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해도 그 책임이 뒤따르지 않는다(이러한 전례前例는 국내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채색된 미술문화재는 한 번 보존처리가 잘못되면 영원히 원래대로 되돌릴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가야·고구려·백제·신라의 고대사는 물론 고려·조선의 중요 유물 유적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중요 문화재의 보존처리도 계속 맡아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6)　2004년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북한의 고구려 유적목록은 다음과 같다. 5개 지역 63기의 무덤 중 벽화무덤은 총 16기가 등재되었다. ‘고구려 고분무덤 군’에는 동명왕릉 주변 무덤 군(15기·이중 벽화무덤 3기), 호남리 사신총 주변 무덤(34기·벽화무덤 1기), 덕화리 무덤 군(3기·벽화무덤 1기), 강서삼무덤 군(3기·벽화무덤 3기), 단독 무덤 군(8기·벽화무덤 8기)들이 포함됐다. 집안지역은 무덤 군 외에 다른 고구려 유적들이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 고구려 수도인 오녀산성, 국내성, 환도산성의 3개 도시와 무덤은 40기(왕릉 14기, 귀족무덤 26기)를 포함한다.
7)　다음 내용들은 고구려 벽화무덤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듬해인 2005년에 전 고구려발해학회(전 고구려연구회) 서길수 회장이 고구려 유적의 변화상을 조사한 내용들을 요약해서 발췌하였다.
8)　연합뉴스, 2016/01/05, kms1234@yna.co.kr.
9)　徐吉洙,앞의 글. p86.
10)　서연호, 『일본 속의 예술의 현장』, 도서출판 문, 2008.
11)　李泰浩, 「高麗 佛畵의 製作技法에 대한 고찰」 – 染色과 背彩法을 중심으로-『미술사학연구』192집, 1998.李泰浩, 「高麗 佛畵의 製作技法과 재료」,『한국미술사의 새로운 지평을 찾아서』,1998.

introduce. 채미영

영남대학교 미술대학 회화학과 강사
경주대학교 문화재학과 강사
대구교육대학교 강사
홍익대학교 박사과정 재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