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堯임금 시대의 은자 허유許由와 소부巢父

도 1. 전 진재해, <소부세영도>, 《만고기관첩》, 18세기 전반, 종이에 채색, 33.5×29.4cm, 일본 야마토분카칸

▲도 1. 전 진재해, <소부세영도>, 《만고기관첩》, 18세기 전반, 종이에 채색, 33.5×29.4cm, 일본 야마토분카칸
*이 그림에서는 소부가 영수 강가에서 귀를 씻고 있고, 번중부가 소를 상류로 끌고 가서 물을 먹이고 있다.

허유와 소부는 요임금 시대의 전설적인 은자이다. 요임금이 허유를 불러 천하의 통치를 맡기려 하였지만 허유는 이를 사양하고 다시 그런 제의를 듣고 싶지 않아 영수 물가에서 귀를 씻었다. 그의 친구 소부가 마침 송아지를 끌고 와서 물을 먹이려다가 허유가 귀를 씻는 것을 보고 그 이유를 물어보고는 더러운 물을 먹일 수 없다며 더 상류로 올라가서 송아지에게 물을 먹였다. 이 이야기는 워낙 널리 알려져 있어 모르는 사람이 드물 것이다. 하지만 태평성대를 구가한 전설적 성군인 요임금이 천하를 양위하고자 한 그 제의가 왜 더럽게 받아들여졌던 것일까? 이것을 이해하려면 이 이야기가 수록된 원전인 《고사전高士傳》(西晉의 皇甫謐, 215~282년 지음)을 좀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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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의 자리를 사양하고 기산箕山에 은둔한 허유

요임금은 중국 신화 속의 인물이다. 삼황오제三皇五帝에서 오제 중 하나로서 순임금과 함께 성군聖君으로 꼽힌다. 이런 요임금이 스스로는 부족함이 많다고 여기고 허유에게 천하를 선양하려고 하였다. 허유는 사양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대가 다스려 천하가 이미 잘 다스려지고 있는데 내가 대신한다면 나더러 허울 좋은 이름을 위하라는 말인가? 이름이란 실질의 손님이니 나더러 손님이 되라는 말인가? 뱁새가 깊은 숲에 둥지를 튼다 해도 나뭇가지 하나면 충분하고, 두더지가 황하의 물을 마신다 해도 배만 채우면 그만이오. 그러니 돌아가시오. 나에게는 천하가 쓸모가 없소이다.”
뱁새가 둥지를 트는 데에 숲 전체가 필요하지 않고, 두더지가 배를 채우는 데는 황하 전체가 필요치 않듯이 은사隱士인 허유에게는 천하가 필요치 않다는 말이다.
허유는 세속을 등진 고결한 선비였으니, 아무리 선정善政이 이루어진 태평성대라 할지라도 임금의 자리는 속세의 더러운 티끌에 묻힌 곳이라 여겼던 것이다. 허유는 선양을 피하여 중악中岳(嵩山)에 있는 영수潁水 북쪽 기산箕山 아래에 숨어 살았다고 한다. 이후 기산은 은거처의 대명사가 되었다. 허유에게는 이후에도 재차 요임금의 선양 제의가 들어왔는데 허유는 다시는 그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영수 강에 귀를 씻었던 것이다.

그런 허유를 수치스럽게 여긴 소부

소부는 은사隱士의 본분에 더욱 충실한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새처럼 나무에 둥지를 틀고 살았고, 둥지 소巢 자를 쓴 ‘소부’라는 이름도 그래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소부는 송아지에게 물을 먹이러 갔다가 허유가 영수 강가에서 귀를 씻는 것을 보았다. 그가 요임금의 선양을 거절하고 와서 씻고 있던 것을 알고는 “어찌하여 자신의 모습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었는가? 스스로 명예를 구한 것이니 내 송아지의 입만 더럽혔네”라 하고 송아지를 끌고 상류로 더 올라가서 물을 먹였다.
소부의 생각은 이것이다. 허유가 세상을 등지고 제대로 은둔했다면 그 이름이 요임금에게 닿지 않았을 것이니 천하를 맡아달라는 청을 받을 일도 없었을 것이건만, 그는 스스로 알려지기를 바라며 명예를 구한 것이었으니 수치스럽다는 것이다. 소부는 이후 다시 허유를 보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허유와 소부는 상고시대의 인물들로서 어떤 기록에는 허유와 소부가 같은 사람이라고 기록하기도 하였다. 어쨌든 허유와 소부는 세속의 부귀공명을 버리고 산수에 파묻혀 살았던 고결한 은사의 표상이 되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숭앙되고 있는 것이다.

궁중에서 그려진 허유와 소부의 고사

<소부세영도>(도 1)는 《만고기관첩》이라는 서화첩에 있는 그림으로, 화폭의 왼편 아래쪽에 진재해秦再奚라는 화가의 이름이 쓰여 있다. 진재해는 영조 당시 최고급 화원 중 하나이고, 이 서화첩은 궁중에서 감상되던 것이다. 민화의 주제로 종종 다루어진 허유와 소부의 고사는 그 유래가 왕실과 상류층이 향유한 그림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는 귀를 씻는 사람이 허유가 아닌 소부이고, 소를 탄 인물은 번중부樊仲父이다. 이 그림의 맞은편에는 <소부세영도>와 관련된 고사를 적은 글씨가 쓰여 있는데, 바로 《고사전》 중의 「소부」편과 위나라 조식曹植이 지은 「허유소부번중부찬許由巢父樊仲父贊」이라는 글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그 내용을 보면 요임금이 허유에게 왕위를 양위하고자 했다는 사실을 소부가 듣고 영수 강가에서 귀를 씻는다. 마침 소에게 물을 먹이던 번중부는 더러운 물을 소에게 먹일 수 없다며 상류로 끌고 간다. 조식의 글에서 허유·소부·번중부는 요임금 때의 세 은사隱士라 칭하였다. 이 그림에서는 허유는 전혀 표현되지 않고 소부가 부각되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조선 후기에 허유와 소부의 고사는 《고사전》뿐 아니고 더욱 다양한 문헌을 통해 수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속세를 벗어나 유유자적하는 은사들의 삶의 표상

‘영수에서 귀를 씻는다’는 제목의 그림에서 대개 귀를 씻는 이는 허유이고 소를 끄는 이는 소부이다. <영상세이도>(도 2)는 고사인물화 8폭 중의 하나이다. 강이 화폭을 대각선으로 가르고, 전경에는 소를 탄 인물이 강의 건너편에는 귀를 씻는 허유의 모습이 그려졌다. 사선으로 가로지른 강을 중심으로 한 구도가 화면에 동세를 더해 주고, 인물과 산등성이에 청·홍·황·갈·녹색 등의 채색이 가해져서 화사하고 활기찬 분위기를 자아낸다.
가회민화박물관 소장의 <영수세이도>(도 3)도 영수潁水에서 귀를 씻는 허유와 소부의 고사를 그렸다. 이 그림에서는 수묵으로 묘사된 산수가 채색이 화사한 인물들과 대조를 이루며 신선한 감각을 보여준다. 더구나 화면 상단의 바위산에서 아래를 향해 거꾸로 자란 소나무와 거기에 걸린 허유의 옷 표현은 파격이라 할 만하다. 웃통을 벗은 채 귀를 씻는 허유와 소를 탄 소부의 해학적 표현이 그림에 재미를 더해준다.

기산箕山, 허유 이래의 대표적 은둔처

<세이영천도>(도 4)는 언뜻 한 폭의 수묵 산수화 같다. 지그재그로 흐르는 영천이 화면 중앙을 종으로 가르고, 강기슭의 풍광이 화폭의 테두리를 따라 펼쳐졌다. 가만히 보면 화면 하단 강 가운데의 바위섬에서 한 인물이 귀를 씻고 있고, 소 한 마리가 홀로 물을 먹고 있다. 이들은 이 그림의 주인공이지만 비중이 현저히 줄어든 모습이다. 심지어 주요 등장인물 중 하나인 소부는 아예 생략되었다. 고사인물화에서 고사산수화로의 이행 과정을 보여 주는 듯하다.
<기산도箕山圖>(도 5)의 화면 구성은 복합적이다. 상단에는 고사도, 하단에는 화조영모도가 결합한 형식이다. 민화 가운데는 이처럼 화면을 상단으로 나누어 전혀 다른 주제의 그림을 그린 예를 볼 수 있다. 이 그림에서 하단에 그려진 것은 연꽃과 잉어, 자라로서 상단의 <기산도>와는 관련성이 없다. 여기서 관심을 끄는 것은 바로 상단에 그려진 것이다. 화면 중앙의 큰 산은 기산이고 거기서 흘러내린 강은 영수이다. 소 한 마리가 그 물을 먹고 있다. 바로 허유와 소부의 고사의 배경이 되는 기산을 그린 그림이다. 그런데 인물은 생략되고 소부가 끌던 소만 그려졌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산수화를 통해 고사의 내용을 전하는 이 같은 그림은 허유와 소부의 고사가 그만큼 널리 알려져 있었음을 말해 준다. 화면의 상단에는 기산과 관련된 간략한 글이 적혀있다. “소부는 빈 골짜기에서 배를 주리고, 천하의 녹봉은 뜬구름과 같구나. 인근의 노인이 연못에 와서 송아지 물을 먹이네.” 천하의 왕 노릇도 뜬구름 같은 것이다. 세속을 초월한 옛 은사의 삶을 동경하고 추구했던 인심을 보여준다.

 

글 : 유미나(원광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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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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