ì™œê³¡ëœ ìš°ë¦¬ ì‚¶ì˜ ê¸°ë¡, í’ì†ë„ 초본 â…¡

ì´ë²ˆì— 소개할 ì´ˆë³¸ì€ ì§€ë‚œ ì‹œê°„ì— ì†Œê°œí•œ í’ì†ë„ 초본 6í­ ì¤‘ 하나ì´ë‹¤.
먼저 소개한 초본과 ì´ ì´ˆë³¸ì„ í•¨ê»˜ ì‚´íŽ´ë´„ìœ¼ë¡œì¨ í’ì†í™”ì˜ ë³€í™”ìƒì„ ì§šì–´ë³´ê³ ìž í•œë‹¤.

– 글 ì´ë‹¤ì •(가회민화박물관 ê°ì›ì—°êµ¬ì›)


지난 ì‹œê°„ì— ì†Œê°œí•œ 초본(ë„1)ì˜ ì£¼ì œëŠ” 다듬ì´ì§ˆí•˜ëŠ” ì—¬ì¸ë“¤ì´ë‹¤. ê·¸ëŸ°ë° ì´ ì´ˆë³¸ì„ ì‚´íŽ´ë³´ë©´ 어울리지 않는 ë¶€ë¶„ì´ ë‚˜íƒ€ë‚œë‹¤. ì´ ê·¸ë¦¼ì˜ ì†Œìž¬ì¸ ë‹¤ë“¬ì´ì§ˆì€ 보통 실내ì—서 하는 작업ì¸ë°, ì´ ì´ˆë³¸ì„ ê·¸ë¦° 작가는 야외ì—서 다듬ì´ì§ˆí•˜ëŠ” 것으로 표현하여, 실제와는 ë§žì§€ 않는다. ì´ë ‡ê²Œ 실제 í’ì†ê³¼ ë§žì§€ 않는 ì´ìœ ëŠ” ì´ë²ˆì— 소개할 ì´ˆë³¸ì„ í†µí•´ 추정할 수 있다.
í’ì†ë„ 초본(ë„2)ì€ í•œ ì—¬ì¸ì´ 어린아ì´ì˜ ì†ì„ 잡고 가는 ëª¨ìŠµì„ ê·¸ë¦° 것ì´ë‹¤. ì¸ë¬¼ì˜ 옷ì—는 ìƒ‰ì±„ëª…ì„ ì¨ë†“았고, ì¸ë¬¼ 주변ì—는 나무가 몇 그루 그려져 있다. 그림 ìƒë‹¨ì˜ 나무 옆ì—는 ‘나무는 봄’ì´ë¼ê³  ì“°ì—¬ 있고, 나무 아래ì—는 나비와 ‘나비’ë¼ëŠ” 글ìžê°€ ì“°ì—¬ 있다. ì¸ë¬¼ ì£¼ë³€ì— ìžˆëŠ” 나무와 í’€ 곳곳ì—는 ‘’ ‘쓴바구(씀바귀꽃)â€™ì´ ë“¤ì–´ê°€ 있다. ê·¸ëŸ°ë° ì´ ê·¸ë¦¼ì˜ êµ¬ë„ ì–´ë””ì„œ 본 ì ì´ 있는 것 같다. 바로 ì´ë‹¹ ê¹€ì€í˜¸ì˜ <봄나들ì´>(ë„3)ë¼ëŠ” 그림ì´ë‹¤. ì´ë‹¹ ê¹€ì€í˜¸ì˜ 대표작 중 í•˜ë‚˜ì¸ <봄나들ì´>는 ì›ëž˜ 1926ë…„ ì—¬ì¸ê³¼ ë‘ ì•„ì´ê°€ 있는 구ë„로 ê·¸ë ¸ë˜ ìž‘í’ˆì¸ë°, 현재 남아 있는 ê·¸ë¦¼ì€ 1952ë…„ì— ë‹¤ì‹œ 그린 그림ì´ë‹¤.

ë„1 í’ì†ë„ 초본,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왼쪽) ë„3 ì´ë‹¹ ê¹€ì€í˜¸, <봄나들ì´>, 65×47ãŽ, ê°œì¸ì†Œìž¥
(오른쪽) ë„4 혜촌 김학수, <춘êµ>, 38.6×27.2ãŽ, ê°œì¸ì†Œìž¥

ì¼ë³¸í™”í’ì´ ë¯¼í™”ì— ë¯¸ì¹œ ì˜í–¥

ì´ë‹¹ ê¹€ì€í˜¸ëŠ” 우리가 잘 알다시피 한국 íšŒí™”ì‚¬ì— í•œ íšì„ ê·¸ì€ ìœ ëª…í•œ 근대 화가ì´ìž, 친ì¼ë…¼ëž€ì´ 있는 화가ì´ë‹¤. 그는 ì Šì€ ì‹œì ˆ ì¼ë³¸ìœ¼ë¡œ ìœ í•™ì„ ë‹¤ë…€ì™”ëŠ”ë°, ì´ë•Œ ì¼ë³¸í™”ì˜ ì˜í–¥ì„ í¬ê²Œ 받았다. 그래서 ê·¸ì˜ ìž‘í’ˆì—서는 ì¼ë³¸í’ì´ ì§™ê²Œ 나타나며, 특히 ì¸ë¬¼í™”ì—서 ë‘드러지게 나타난다. ì¼ë³¸ 유학ì—서 ëŒì•„온 후 1922년부터 조선미술전람회æœé®®ç¾Žè¡“展覽會(ì„ ì „)ì— ì¶œí’ˆí•˜ì—¬ ì´ 7회 수ìƒì„ 하는 등 활발하게 활ë™í•˜ì˜€ë‹¤. ë§Žì€ ì œìžë¥¼ 양성하여 ê·¸ì˜ ì˜í–¥ì„ 받지 ì•Šì€ í™”ê°€ë¥¼ 찾기 어려울 ì •ë„였다.
ì´ ì´ˆë³¸ì„ ê·¸ë¦° 사람 ë˜í•œ ê¹€ì€í˜¸ì˜ ì˜í–¥ì„ ë°›ì€ ê²ƒìœ¼ë¡œ ë³´ì´ëŠ”ë°, ì´ ì´ˆë³¸ê³¼ 구ë„ê°€ 매우 í¡ì‚¬í•œ ê·¸ë¦¼ì´ ì´ë¥¼ 뒷받침한다. <ì¶˜êµæ˜¥éƒŠ>(ë„4)는 1963ë…„ 혜촌 김학수(æƒ æ‘ é‡‘å­¸æ´™, 1919-2009)ê°€ 그린 작품ì´ë‹¤. 그는 ì´ë‹¹ ê¹€ì€í˜¸ì™€ 소정 ë³€ê´€ì‹ ë“±ì„ ì‚¬ì‚¬í–ˆìœ¼ë©°, ìŠ¤ìŠ¹ì˜ í™”í’ì„ ì „ìˆ˜ë°›ì•„ 작품 활ë™ì„ 했다. ì´ ìž‘í’ˆì€ ì–¸ëœ» 보기ì—ë„ ê¹€ì€í˜¸ì˜ 그림과 유사하며, í’ì†ë„ 초본과 구ë„와 í‘œí˜„ì´ ë§¤ìš° í¡ì‚¬í•œ ê²ƒì„ ì•Œ 수 있다. 그러나 ì´ í’ì†ë„ ì´ˆë³¸ì€ ê¹€í•™ìˆ˜ì˜ ìž‘í’ˆì´ ì•„ë‹ˆë‹¤.
ê¹€ì€í˜¸ëŠ” 사람들 사ì´ì—서 ê·¸ë¦¼ì˜ ì¸ê¸°ê°€ ë§Žì•„ì§€ìž ì´ˆë³¸ì„ ë°”íƒ•ìœ¼ë¡œ 비슷한 ê·¸ë¦¼ì„ ëŒ€ëŸ‰ 제작했다. ì œìžë“¤ì„ 가르칠 때 ì´ˆë³¸ì„ ë‚˜ëˆ„ì–´ì£¼ê³  연습하ë„ë¡ í•˜ì˜€ê¸° ë•Œë¬¸ì— ë¹„ìŠ·í•œ 구ë„ì˜ ê·¸ë¦¼ì´ ë§Žì´ ê·¸ë ¤ì¡Œë‹¤. 당시 í™”ê°€ë“¤ì´ ê¹€ì€í˜¸ì™€ ê·¸ì˜ ì œìžë“¤ì˜ ê·¸ë¦¼ì„ ëª¨ë°©í•˜ë©´ì„œ ê¹€ì€í˜¸ì˜ ì¼ë³¸í™”í’ì´ ë„리 í¼ì ¸ë‚˜ê°„ 것으로 ë³´ì¸ë‹¤.
í’ì†ë„와 ì¸ë¬¼í™”ë¿ ì•„ë‹ˆë¼ ì¼ì œê°•ì ê¸°ì— 그려진 대부분 ê·¸ë¦¼ì€ ì¼ë³¸ê³¼ ì„œì–‘ì˜ ì˜í–¥ì„ í¬ê²Œ 받았다. 그래서 한국ì¸ì˜ ê°ì„±ê³¼ëŠ” ì–´ëŠ ì •ë„ ê±°ë¦¬ê°€ 있다. ì¼ì œê°•ì ê¸°ì˜ ì˜í–¥ì€ ì•„ì§ë„ ë¯¼í™”ë¿ ì•„ë‹ˆë¼ í•œêµ­ì¸ì˜ ì‚¶ ì „ì²´ì— ë‚¨ì•„ 있다. ê·¸ê²ƒì´ ëª¨ë‘ ë‚˜ì˜ë‹¤ëŠ” ê²ƒì€ ì•„ë‹ˆì§€ë§Œ, 우리를 지워가면서까지 받아들여서는 안 ë  ì¼ì´ë‹¤.


ì´ë‹¤ì • | 가회민화박물관 ê°ì›ì—°êµ¬ì›

ë°±ì„ëŒ€í•™êµ ê¸°ë…êµë°•물관 학예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성백제박물관 학예연구ì›, 가회민화박물관 ê°ì›ì—°êµ¬ì›ì´ë‹¤.
월간<민화> 창간호부터 민화 ì´ˆë³¸ì— ëŒ€í•œ ì¹¼ëŸ¼ì„ ê¸°ê³ í•´ì˜¤ê³  있다.


ì €ìžì— 관하여

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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