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과 국가의 번영, 자손만대의 번창을 염원하는 그림 – 일월오봉도

조선시대 왕실의 권위와 안녕을 기원하고자 그려진 일월오봉도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독창적인 구도와 대담한 색의 대비가 특징이다. 정전의 옥좌 뒤는 물론 임금이 밖으로 행차할 때 그리고 어진 뒤에도 반드시 있던 것이 일월오봉도이다. 일월오봉도의 화폭 뒤에 숨은 상징을 들여다본다. (편집자주)

궁궐에는 왕의 권위와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제작된 다양한 장식물들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어좌 뒤편 중앙에 펼쳐진 일월오봉도는 궁궐 안에서 제작되고 소용된 수많은 그림과 장식물들을 압도한다. 지금도 경복궁 근정전 내부에는 중앙에 닫집을 만들어 그 안에 어좌를 놓고 어좌 뒤에는 해와 달, 다섯 봉우리가 좌·우에 붉은 소나무를 대칭적으로 그려진 병풍이 펼쳐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그림을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라고 하는데, 일월도日月圖, 오봉병五峯屛, 일월오악도日月五岳圖, 일월곤륜도日月崑崙圖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는 왕의 뒤를 장식하는 장식화로 왕권을 상징할 뿐 아니라 왕실과 국가의 번영, 자손만대의 번창을 염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일월오봉도는 궁궐의 정전 옥좌 뒤는 물론이고 궁궐 밖 행차 시 천막 안의 옥좌 뒤편 그리고 죽어 관속에 누워서도 초상화 뒤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그림이다. 왕이 집무를 보는 근정전에서 생활하는 거처나 침실은 물론이고 궁궐 밖에서도 이동식 그림을 만들어 사용했고 죽어서도 함께하는 그림. 이것은 일월오봉도가 임금의 생존 당시는 물론 사후에도 언제 어디서나 왕의 존재를 상징하는 동시에 보호하는 역할을 하였다는 점을 의미한다.

해와 달, 다섯 봉우리의 조형적 의미

일월오봉도는 한자어 그대로 해와 달, 다섯 봉우리를 그린 그림으로 4첩, 8첩, 혹은 좁은 한 폭 짜리 협폭挾幅, 또는 삽병揷屛 형식 등 다양한 형태로 남아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일월오봉도를 보면 그 크기나 폭 수에 관계없이 형식상, 구도상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다섯 개의 산봉우리, 해와 달, 물결이 넘실거리는 수면과 그 위로 떨어지는 폭포, 그리고 양측에 배치된 네 그루의 소나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형적으로 분석해 보자면 화면의 중앙에는 다섯 개의 산봉우리 가운데 가장 큰 봉우리가 위치해 있고 좌우 양쪽에는 각각 두 개의 작은 봉우리가 협시夾侍하는 모양새다. 해는 오른편의 두 봉우리 사이에, 달은 왼편의 두 봉우리 사이에 떠 있다. 폭포 물줄기는 양쪽의 작은 봉우리 사이에서 시작하여 한두 번 꺾이며 아래쪽의 넘실대는 물을 향해 떨어진다. 네 그루의 붉은 소나무는 좌우 양쪽 바위 사이에 대칭으로 서 있다. 그림의 하단을 가로질러 넘실거리는 물결은 비늘 모양으로 도식화되어 반복되는 물결무늬를 형상화시켰다. 마지막으로 산과 물의 경계선이나 작은 봉우리와 물결들의 사이사이에 하얀 물거품들이 무수히 그려져 있다.
일월오봉도에 나오는 자연물들은 제각기 고유의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해와 달은 각각 왕과 왕비를 상징한다. 해는 태양을 가리키는 우리말로 고대국가에서 왕을 상징하였다. 고구려 시조 주몽이나 신라의 박혁거세, 가락국 시조 김수로왕 등의 탄생설화에는 어김없이 해가 등장한다. 해는 태고로부터 어둠을 물리쳐 깨뜨리는 희망을 상징하는 존재로 고대에는 문양으로도 사용되었고 십장생에서는 장생불사를 상징한다.
일찍이 맹자는 “일월日月은 밝음의 덩어리라. 빛을 받아들일 만한 곳은 모두 비춰준다”라고 하였다. 다섯 봉우리는 중국 신화에 나오는 곤륜산이라 주장하기도 하지만 신화에서 곤륜산은 세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으로 묘사하고 있어 맞지 않는 논리이고, 선조들이 예로부터 산신에게 제를 올리던 오악(금강산, 백두산, 지리산, 묘향산, 삼각산)이라 주장하는 것이 이치에 맞을 것이다.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일월오봉도

이제 물줄기와 물결, 그리고 소나무를 살펴보자. <서경書經> 우공禹貢편에는 ‘강수江水와 한수漢水가 바다에서 조종朝宗한다’는 글귀가 나온다. 지상의 모든 물줄기가 바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해도 그 형세는 이미 바다를 향하고 있다는 이치를 말한 것으로 문무백관들이 궁궐에 모여 임금을 보필하고 알현하는 것을 흔히 강물이 바다에 흘러들어드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일월오봉도에서 두 줄기 폭포가 짙푸른 바다로 떨어지는 장면은 천하가 임금에게 귀의하고 신하들이 조회함을 상징한다. 소나무는 유교에서 보면 지조와 절개, 탈속과 풍류, 장수長壽를 상징하나 일월오봉도에 나오는 소나무는 왕권의 장구함과 공고함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소나무는 공자가 논어에서 “날씨가 차가워진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름을 알 수 있다”고 한 바로 그 나무이며 세종대왕때 지어진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의 한 구절을 떠오르게 한다. “아득한 세월에 한 그루 소나무 / 푸른 산 몇 만 겹 속에 자랐구나 / 잘 있다가 다른 해에 만나볼 수 있을까 / 인간을 굽어보며 묵은 자취 남겼구나.”

좌우에는 폭포 두 줄기가 떨어지는데 물은 해·달과 함께 생명의 원천으로 그 힘은 만물을 자라나게 하고 그 만물 가운데 가장 존귀하고 신령한 존재인 사람, 그 사람 가운데 덕이 가장 높은 임금은 날마다 일월오봉도 앞에 앉아 정사에 임한다. 그러면 비로소 하늘天, 땅地, 사람人의 삼재三才(우주를 이루는 세 가지 바탕)가 갖추어지는 것이다. 왕은 모든 백성들의 위에서 군림하는 지존이지만 자신의 권위와 지배권을 신하와 백성들에게 확실히 인식시키고 더불어 자연을 법으로 삼아 백성을 다스리는 신성한 존재로서 백성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제작된 것이 일월오봉도이다.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 회화양식

일월오봉도는 왕실을 대표하는 대표적 궁중화로서 조선 후기 독창적으로 발달된 회화양식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좌우대칭형의 웅장한 구도와 대담한 색의 대비(전통적으로 사용하던 색은 붉은 색과 녹색)는 한국 전통미술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장식성이 매우 강하다. 청록산수화에서 볼 수 있는 청색과 녹색 이외에 붉은 색의 강렬한 색조가 농채로 표현되었고 소나무와 산, 파도를 명료한 윤곽선으로 표현하였다. 좌우대칭구도의 조형원리에 비추어 볼 때 다섯 개의 산봉우리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형상으로 표현하면서 조형적으로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전통을 탐구하는 일은 보이지 않는 시간을 여행하는 순례자와 같고 테크놀로지를 찾는 것이 아니라 아날로그를 보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변화되지 않는 모사는 곤란하다. 무릇 문화란 수많은 시간 속에 축척되어 변화하고 발전하기 때문이다.
전통미술에서 원본을 똑같이 따라 그리는 모사摹寫는 가장 기초적인 교육 단계이다. 따라서 이러한 표현 기법이나 기술은 전통적으로 화가의 수준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똑같은 것을 반복하여 그리다 보면 양식에 있어서 일관성을 보이며 같은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것들을 읽고 이해한다. 반복이 거듭되다 보면 원작을 맹목적으로 따라하기 보다는 자유롭게 변경하는 경우가 더 많아진다. 이렇게 정해진 틀을 바꾸고 새로운 시도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창작을 하게 되는 것이다.

반복적 모사를 통해 새로움을 추구하다

오늘날 모방과 모작행위는 창조를 방해하는 아주 낮은 단계의 작품 활동으로 평가절하되는 경향이 있다. 단순한 기능에 불과하다는 혹평도 있다. 그러나 전통회화에서 반복을 거듭하다 보면 그 속에 감추어진 인문학적 지식을 알게 되고 한층 재미가 더해져 점점 새로움을 추구하게 된다. 이에 더하여 힘든 시간을 보내고 찾아오는 특별함도 맛볼 수 있다.
단지 전통을 초월하고 거부하는 것만이 진정한 창작은 아니다. 우리 선조들이 그랬듯, 우리가 속한 사회의 가치나 관습 등을 소중히 받아들여 우리 것으로 만들 때 비로소 선조들의 지혜와 정신이 담긴 뜻그림 우리 민화가 한국미술에서 중심에 서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키고 또 그 길을 알려주는 지도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의 바람대로 선조들의 삶에 한 걸음 다가가 그들과 소통할 수 있으며 여기에 우리의 이야기를 더하여 다음 세대에게 전해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민중의 삶의 방식을 가장 풍부하게 담고 있는 우리 그림 민화에 대하여 가슴을 펴고 당당히 자랑할 수 있어야 한다. 화단과 미술시장에서 새로운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민화는 전통을 넘어 창작 부문의 새로운 모티프로 떠오르고 있다.


글 금광복 (대한민국민화전승문화재, (사)한국민화협회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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