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곧은 선비정신을 담은 책가도

책가도
책가도, 선비들의 마음과 생활상을 담다

가회민화박물관 명품 컬렉션에서 가장 먼저 소개할 그림은 바로 책가도이다. 현재 이 책가도는 가회민화박물관 상설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으며, 가장 인기 있는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화려한 화조도, 친근한 까치호랑이, 평화로운 어락도를 지나 책거리 그림 앞에 서면 관람객들은 ‘멋지다’ 라며 감탄사를 연발하기도 한다. 외국 관람객마저도 매료시키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책가도는 책거리, 문방사우도, 기명도, 기용도 등으로 불린다. 책거리의 ‘거리’는 볼거리, 구경거리의 ‘거리’와 비슷한 뜻으로 쓰인 말로 책이 늘어진 모습을 구경한다는 뜻의 순우리말이다. 책가가 있든 없든 책과 함께 여러 가지 물품을 그린 그림을 포괄적으로 책거리라고 할 수 있는데,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책거리는 선반인 책가가 함께 그려져 있으므로 책가도라 불러도 무방하겠다.
책가도는 주로 글 읽기를 즐기고 학문의 길을 추구하던 선비의 사랑방이나 서재에 두어 책을 아끼고 늘 가까이 두겠다는 그들의 마음을 반영하는 그림이다. 학덕을 쌓아 큰 뜻을 이루기 위한 문인들의 소망과 열망, 학문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그림이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조선 시대 선비들의 일상적인 생활상을 온전히 담고 있는 그림이기도 하다.

선명한 색채 대비, 섬세한 세부묘사 돋보이는 명품

이 책가도 병풍은 가로 31㎝, 세로 143.5㎝의 그림 총 8폭으로 이루어졌으며, 양쪽의 1폭과 8폭은 가운데 6폭보다 가로의 폭이 좀 더 좁게 제작되었다. 배접을 위한 여유를 계산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기본적으로 어두운 갈색과 진한 청색으로 책가를 채색하고 옅은 노란색 계열로 책을 표현하였으며, 색채대비가 강한 짙은 빨간색과 녹색을 사용하여 부분적으로 포인트를 주었다. 색깔의 조화 뿐 아니라 포갑, 두루마리, 도자기, 향로 등의 문양이나 과일 씨앗까지도 매우 정교하면서도 깔끔하게 표현되어있다. 이러한 섬세한 세부묘사가 그림의 수준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차곡차곡 쌓은 책들 사이에는 갖가지 사물이 놓여있다. 벼루, 필통, 붓과 같이 선비의 정신을 상징하는 문방구류와 행운과 배움을 상징하는 두루마리가 기본적으로 배치되어있다. 책과 전혀 관계없는 향로, 술병, 꽃병, 찻잔, 대접, 도장, 시계 등 다양한 생활용품 및 장식품은 물론이고 불수(佛手)와 석류와 같이 수복(壽福)이나 다자(多子)를 상징하는 과일도 그려 넣은 것을 볼 수 있다.
다양한 사물 가운데 중국도자기, 책, 수선화 화분, 시계, 향로 등 고급 기물로 보이는 몇몇의 물건들이 눈에 띈다. 18세기 이후 문물교류가 늘어나면서 중국의 책, 문방구류, 사치품들이 많이 수입되었는데, 아마도 갖고 싶거나 자랑하고픈 물건을 자연스럽게 함께 그린 것으로 보인다. 특히 수선화가 눈에 띄는데, 책가도 주인의 마음을 대신해주는 듯 날렵하고 두툼한 잎 사이로 연노란 색의 청초하고 향기 있는 꽃이 잘 표현되었다. 당시에 수선화는 우리나라에서 자라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에 다녀오는 사람들로부터 알뿌리를 겨우 얻어다 키울 만큼 귀한 꽃이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문인들은 매화 못지않게 수선화를 좋아하였는데, 그것은 수선화의 고고한 자태가 자신들이 가져야 할 정신적 덕목을 닮아 있기 때문이었다. 책가도의 소재가 되었던 것도 수선화가 주는 아름다움은 물론 겨울 추위를 이기고 꽃을 피우는 그 고고함 때문일 것이다.
보병에 꽂힌 공작 꼬리깃털과 산호는 최고의 관직과 지위를 상징하는데, 공작새는 아름다움과 고귀한 신분을 나타내는 새로 여겨졌다. 청나라 관복제도에 의하면 일품관의 모자 위에 공작새의 꼬리털과 산호 테두리를 하였다고 하니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자 하는 문인의 소망을 담았다고 할 수 있다. 그 외에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제사의례에 사용된 향로와 같은 의식용구, 청동기를 모방한 도자기, 표면에 빙열(氷裂)이 있는 도자기들이 있다. 이러한 물품들이 문인들의 관심을 받으면서 책가도의 소재로 그려진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점에서 잘 꾸며지고, 사치스러운 애장품이 빼곡히 그려진 책가도는 남에게 자랑하기 위한 장식용으로도 사용되었을 것이다.

타인이 보게 될 자신의 존엄을 위한 그림

2014061903책가도는 여타 민화와 달리 입체적인 느낌이 나도록 사물을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책이나 포갑의 형태를 보면 가까운 쪽이 좁고 먼 쪽으로 갈수록 넓어 보이는 역원근법을 사용하여 그려진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책과 사물들은 각각 다른 쪽을 향하고 있어 한 화폭에 여러 면에서 바라본 시점을 그리는 다시점기법을 사용하였다. 게다가 책가의 상단은 시선을 아래에서 위로 향하게 하고, 중단은 정면, 하단은 위에서 아래도 내려다보이게 그려 나름의 질서를 취하고 있으며 이는 조선시대 궁중 책거리에서 보이는 다시점기법과 같은 방식이기도 하다.
얼핏 파격적인 화면 구성에도 불구하고 여러 사물들의 공간배분이며 전체적인 구조는 혼란스럽지 않고 조화로우며 오히려 간결해 보이기까지 한다. 서양화 기법에서 창안한 독특한 시각과 역원근법의 표현으로 책장 속의 사물들이 강조되어 보이고 입체감을 돋보이게 하는 효과를 준다. 이러한 책가도의 비현실적 표현 구사가 오히려 민화의 매력으로 다가오는 점이기도 하다.
이렇듯 책거리 그림이 안정적으로 보이는 것은 자로 대고 그린 듯 굴곡 없는 선과 선명하고 깔끔한 채색도 한 몫 하였을 것이다. 책의 모양이나 포갑, 책가 하나하나를 자세히 살펴보면 자를 사용하지 않은 것임을 알 수 있다. 도화서에서는 그림 수업을 할 때 화원들에게 한 가지 그림의 본을 가지고 직선이나 곡선 그리기를 적어도 2천 번 이상 반복 훈련시켰다고 한다. 이 책가도 역시 엄청난 노력으로 숙달된 수준급의 화가에 의해 제작되었을 것이다.
시대에 따라 추구하는 미가 다르겠지만, 이 책가도에는 억지로 꾸민 화려한 느낌이 아니라 한국의 민화에서만 드러나는 자연스러움이 묻어나 있음을 알 수 있다. 책가도를 방 한 켠에 펼쳐 두고 이를 배경삼아 열심히 책을 읽고 있을 선비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면, 그의 삶과 내면이 그림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듯하다. 책가도는 기본적으로 과시나 멋 부리기가 아닌 흐트러지지 않는 선비 자세의 표현이었을 것이며, 이렇게 자신 스스로를 수양하면서 타인이 보게 될 자신의 존엄을 위한 그림이었을 것이다. 책가도라는 그림에 뜻을 담아 그렇게 살고자 노력했던 선조들의 자세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가회민화박물관은

지난 2002년 개관한 이래 민화의 상설 전시는 물론, 관람객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체험행사, 민화강좌, 국내·외 순회 전시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우리 민화의 연구와 저변확대에 크게 기여해 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화전문박물관입니다.

  • 위치 : 서울시 종로구 북촌로 12길 17
  • 문의 및 연락처 : 02-741-0466
  • 관람 : 오전 10:00 ~ 오후 06:00(매주 월요일 휴관)
글 : 황은경 (가회민화박물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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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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