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도윤 작가의 풍속이 있는 창작민화
– 가장 행복한 순간, 우리가 추억하는 풍경들

전통 혼례는 음양의 이치에 따라 부부가 되었음을 알리는 의식이다. 선조들은 화촉의 색깔부터 절의 횟수까지 혼례 용품과 절차 등에서 음양의 조화를 기원하며, 결혼을 통해 기대되는 모든 소망을 담고 부정한 기운을 쫓았다. 음양의 조화뿐 아니라 길상과 벽사의 의미를 추구하는 것은 민화에서도 사용되는 방법이다. 사라져가는 풍속과 민화를 연결해 예술로 승화시킨 옥도윤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편집자주)


예전엔 없이 살아서 정화수만 떠놓고 부부의 연을 맺었다고 하지만, 요즘에는 스몰웨딩이나 노웨딩처럼 일부러 결혼식을 간소하게 치르는 문화가 주목받고 있다. 달라진 결혼풍속도에 따라 혼례 때 갖추는 절차도 생략되는 추세이다. 그러나 신부 집에 함을 보내는 의례를 중요하게 여기는 가정도 꽤 남아있다. 나도 전통적인 관혼상제에 깃든 의미와 멋스러움을 붓으로 되새기고 싶었다. 행복과 번영의 의미를 담아 풍속을 그려내는 일. 그것은 가르쳐서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실패를 거듭하며 깨우쳐야 하는 것이었다.

사라져가는 아름다움을 그리다

어려서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미대에 진학하지 못했다. 대학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결혼 후 김해에 터를 잡았는데, 김해로 오기 전에 본 한국화 전시를 계기로 그림에 대한 열망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일을 하면서도 붓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인제대학교 평생교육원 등에서 한국화를 계속 배웠다. 여러 선생님을 거치고 나만의 작품세계를 연구하던 중에 민화에서 내 그림과 잘 맞는 화풍을 발견했다. 민화를 배우기 위해 여기저기 발품을 팔았고, 8년 만에 김해민화연구회를 발족했다. 매년 제자들과 함께 전시를 개최하면서 붓을 잡은 세월이 20년이나 흘렀음을 실감하게 된다.
나는 주로 담채를 사용해서 민화를 그렸다. 물론 맑게 표현하기 위해 여러 번 채색을 올리는 일은 쉽지 않다. 물감의 농도, 붓질의 방향 등 모든 면에서 섬세한 작업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함 받는 날 1·2>(도1)(도2)은 사람이 살면서 겪게 되는 관혼상제 가운데 가장 경사스러운 날을 표현하려고 함에 담긴 기물을 묘사했다. 신랑 측은 결혼을 허락해준 신부 집에 감사의 뜻으로 함을 보낸다. 함 안에는 음양의 결합을 뜻하는 청홍비단 혼수와 혼서, 무명필, 오방주머니를 넣는다. 오방주머니는 노랑·파랑·분홍·연두·빨강색의 5개 주머니로, 부부의 백년해로와 자손번성을 기원하고 잡귀나 부정을 막으려는 염원을 담는다. 오방주머니나 나무 기러기 등에 담긴 의미를 그림으로 전하기 위해 몇 년간 한복이나 혼례용품 자료를 모아 밑그림을 만들었다. 오래전부터 구상해온 작품이라서 애착이 많이 가는 민화 중 하나이다. 화면에 등장하는 소재들이 화려한 색을 띠고 있어 바탕은 커피에 봉채황토를 사용해 밑작업을 했다. 삼베의 질감을 느낄 수 있는 조각보를 더했고, 비단의 광택을 살리기 위해 펄물감과 색조화장품을 아교에 섞어 사용해보았다.

민화에 만다라를 차용하다

올해 초 창원 파티마갤러리에서 만다라를 재해석한 <만복도>(도3)를 선보였는데, 불교미술인 만다라(mandala)는 모든 법을 원만히 다 갖추어 모자람이 없는 완전함을 의미한다. 이 작품에는 함에 담긴 기물을 비롯해 십장생, 백수백복도 등 장수와 행복을 염원한 상징물들이 해체되어 ‘복福’자를 중심으로 둘러싸고 순환한다. 기존작과 다르게 먹과 물을 1:5로 희석하여 일곱 번 바탕색을 올리고, 호분과 동색계열로 전체적인 색감을 조절했다. 만다라를 차용해 인간이 한평생 소망하는 모든 염원과 온갖 덕을 망라한 것처럼 보이나, 신비롭고 황홀한 풍경 속에서 마주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모습이다. 반면 <영원>(도4)은 만다라의 외곽에 십장생의 소재를 배치하고, 민트계열로 색을 절제해 물빛이 번진 것 같은 유토피아를 그려냈다. 우주의 중심은 인간이고, 인간의 이상향은 영겁의 시간을 보내도 변함없음을 나타내고자 했다. 이상향의 세계에서 피어난 연꽃의 창백한 표정에서는 고결한 영혼마저 느껴졌다.
어린 나에게도 그런 영혼이 있지 않았을까. 몸이 약했던 그 시절에는 오빠가 사준 화구로 그림을 그리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화구는 사라지고 없지만 그때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손가락 사이사이에 숨어 있다가 붓을 잡으면 문득 떠오른다. 종이 위에서 소망을 품는 지금도 여전히 그날처럼 삶의 의미들이 반짝이고, 또 반짝인다.


글, 그림 옥도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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