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하라 마고사부로가 세운 미술의 유토피아 구라시키민예관(倉敷民藝館)

구라시키민예관
구라시키민예관(倉敷民藝館)

구라시키 재벌의 오하라 마고사부로 회장은 도쿄에서 벌인 야나기 무네요시의 민예운동을 적극 지원하고 일본민예관 건립 당시 건축비를 내기도 했을 만큼 민예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그는 야나기 무네요시와의 인연을 계기로 자신의 고향인 구라시키에도 일본민예관을 본뜬 ‘구라시키민예관’을 건립하게 된다. 오하라 마고사부로 회장은 그의 고향인 구라시키에 미술의 유토피아를 세운 것이다.

구라시키에 신칸센 역이 서는 이유

KTX 신경주역이 생긴다고 할 때, 필자는 금세 일본 신칸센 구라시키역을 떠올렸다. 구라시키도 한국의 양동마을이나 하회마을처럼 에도시대의 전통마을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지역이라 문화유산 보호를 위해 신칸센역을 구라시키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설치하고 그사이를 열차나 버스로 접근하게 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조그만 시골마을 구라시키에 신칸센역이 서는 것일까? 에도시대 마을만 갖고 역을 건립할 만큼 관광객이 많은 것일까? 그곳에는 또 다른 명소가 있다. 뜻밖에도 일본 최초의 서양미술 전문 사립미술관인 오하라미술관大原美術館이 이곳에 있는 것이다.

구라시키 풍경
구라시키 풍경
 

구라시키민예관의 탄생 배경
오하라 마고사부로大原孫三郞

▲오하라 마고사부로大原孫三郞

오하라미술관은 1930년 당시 구라시키 재벌의 오하라 마고사부로大原孫三郞(1880~1943) 회장이 사재를 털어 세웠다. 그는 젊은 시절 학업보다는 유흥을 즐기며 방탕한 생활을 했지만, 부친이 세운 구라시키방적倉敷紡績을 물려받아서 일본 최고 굴지의 재벌로 키워놓았다. 하긴 중학교 때 뒤에서 건들건들한 친구들이 중소기업 사장이 되어 반창회에 나타나는 것을 보면, 희귀한 일도 아니다. 아무튼 그의 반전 있는 삶은 두고두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오하라 회장은 사회사업에도 많은 후원을 했는데, 무엇보다 도쿄에서 벌인 야나기 무네요시의 민예운동을 적극 지원하고 일본민예관을 세울 때 건축비를 낸 점이 주목을 끈다. 야나기 무네요시와의 인연으로, 1948년 오하라는 자신의 고향인 구라시키에도 일본민예관을 본뜬 민예관을 세웠으니, 바로 구라시키민예관倉敷民藝館이다. 이것은 일본민예관에 이어 두 번째로 설립된 민예관이다. 에도시대에 건립된 쌀 창고를 활용해서 민예관으로 바꿨는데, 마시코참고관도 에도시대의 건물을 리노베이션하여 참고관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아 당시에 유행처럼 이루어진 일이다. 이제 구라시키에 신칸센역이 서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오하라 마고사부로 회장은 그의 고향에 미술의 유토피아를 세운 것이다. 오하라 회장 덕분에 구라시키의 사람들은 두고두고 관광수입의 혜택을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소중한 재산을 참으로 값지게 쓴 사례라 하겠다.

명품 까치호랑이와의 만남

까치호랑이를 조사하는 장면

야나기 무네요시의 추천으로 구라시키민예관 초대 관장으로 부임한 토노무라 키지노스케外村吉之介(1898~1993)는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행운의 작품을 만나게 된다. 도쿄에 있을 때 알고 지내던 한 기업인이 경영이 어려워지자, 그가 소장하고 있던 민화 까치호랑이를 구라시키민예관에서 인수한 것이다. 이 그림은 일본에 있는 까치호랑이 가운데 최고의 명품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흥분을 감추지 못한 토노무라 관장은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어 국보급 호랑이 그림이 나타났다고 소개했다. 다음날 몇몇 신문에 국보 호랑이 그림의 출현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대서특필되었지만, 아직까지 국보로 지정됐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왜 토노무라 관장이 이 까치호랑이 그림을 보고 그토록 좋아했던가? 그가 1969년에 쓴 「민화편력 民畵遍歷」(朝日新聞社, 1969)이란 책에 소개된 글을 읽어보면, 그가 흥분한 이유를 충분히 헤아리고 남는다.

“어딘가 야생적이고 생생한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무엇보다도 눈동자가 그것을 말해준다. 분노로 가득 찬 눈빛이 괴이하게 움직이고 빛나고 있는데, 이 4개의 눈동자만큼 진실로 적절하고 유사한 예가 없다. 피카소가 인체를 해부하고 또한 조립한 것과 같은 시도는 여기에는 없다. 간절함이 없는 무법無法의 놀라움과 두려움이 이 표현을 심도 있게 한 것이다. 화론畵論 등에는 없지만 생생한 모습으로 묘사된 해맑은 표현이 여기에 보인다. 진실로 화론 이전의 초근대적인 표현이다.”

큰 인상을 남긴 까치호랑이

그러고 보니, 이 호랑이의 눈동자는 각각 두 개다.
왜 그런가 이유를 따져보니, 잡귀를 쫓는 방상씨의 눈동자가 두 개인 것처럼 액막이로서의 역할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의 평 중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간절함이 없는 무법의 놀라움과 두려움이 이 표현을 심도 있게 한 것이다. 화론 등에는 없지만 생생한 모습으로 묘사된 해맑은 표현이 여기에 보인다. 진실로 화론 이전의 초근대적인 표현”이다. 그림을 그리는 원리를 설파한 화론에 따르지 않고 이를 넘어서 무법으로 자유롭게 그린 것이지만, 오히려 해맑고 생생하여 초근대적으로 보인다고 했다. “화론 이전의 초근대적인 표현”은 이 작품에 대한 토노무라 관장의 평가이자 조선민화 전반에 대한 인식이기도 하다. 2003년과 2004년 두 차례에 걸쳐 이 민예관을 방문했던 나는 이 명품을 2005년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반갑다 우리 민화전>에 한국과 일본 통틀어 처음 공개했다. 당시 전시회를 소개한 우리의 매스컴에서는 예외 없이 이 까치호랑이 그림을 전시회의 대표 작품으로 소개했다. 그만큼 우리에게 큰 인상을 남긴 작품이었다.

까치호랑이
문자도
문자도
책가도
 

구라시키민예관에 소장된 다양한 민화

구라시키민예관에는 까치호랑이뿐만 아니라 문자도, 산수도, 책가도 등 여러 종류의 민화가 소장되어 있다. 그 가운데 문자도는 비교적 초기에 제작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효제충신예의염치 가운데 ‘禮’, ‘義’, ‘廉’ 자만 전한다. 높이가 1m에 달하는 큰 화면에 설암체雪庵體의 해서로 한가득 그려져 있다. 설암체란 원나라 승려 이부광李溥光이 창안한 글씨로써, 조선시대 편액과 같은 큰 글씨로 많이 쓰였고 한석봉의 천자문도 이 글씨체를 자기화한 것이다. 획과 획 사이를 바람만이 간신히 지나갈 정도로 뚱뚱하고, 세로획의 끄트머리에 규각圭角의 점획을 강조한 것이 특색이다. 편액에 많이 사용하는 글씨체라 액체額體라고 불리는데, 이는 문자도를 편액처럼 보란 듯이 썼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자도 초기에 나타난 현상이다. 각 문자 안에는 해당 문자와 관련된 이야기 그림과 문양이 베풀어져 있다. 가장 오래된 삼성미술관 리움의 문자도와 달리 해학적으로 변형된 인물에 패턴화된 문양, 간결한 산수 표현 등 민화 표현이 역력하다. 민화적으로 변용된 문자도 가운데 편액 형식의 문자도로 비교적 초기의 형식을 갖추고 있고 규모도 제법 큰 작품이다.

비대칭의 구성미가 뛰어난 책가도 병풍

구라시키민예관 컬렉션 중에는 민화가 아니라 궁중회화도 포함되어 있다. 책가도 병풍이 그러한 예다. 민화와 궁중회화의 차이는 우선 병풍의 키에서 구분된다. 고려미술관 책거리 병풍은 허리쯤에 오지만, 구라시키민예관 책가도 병풍은 성인 남성의 키를 훌쩍 넘어선다. 물론 민화 병풍도 키가 큰 것이 있고, 궁중 책거리 병풍도 키가 작은 것이 있지만, 대체로 이러한 비교가 가능하다. 큰 건물에 큰 병풍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이 병풍은 상태가 좋지 않은 점이 아쉽지만, 궁중화풍의 책가도는 갈색 톤에 사실주의적 표현에 깊이감과 양감으로 견고한 조형을 보여주고 있다. 좌우 4폭씩 대칭을 맞췄는데, 양쪽이 서로 다르다. 한쪽이 3칸이면 반대쪽은 4칸, 한쪽이 4칸이면 반대쪽은 3칸으로 변화를 주었다. 비대칭의 구성미가 뛰어난 작품이다. 19세기 책거리의 명수 이형록李亨祿(1808~?)의 책가도와 유사한 화풍으로 보아 19세기 중엽에 유행한 책가도인 것을 알 수 있다.

서양미술에서 일본미술, 더 나아가 조선민화까지 여러 미술에 많은 애정과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오하라 마고사부로 회장을 생각하면, 같은 방직업으로 시작하여 세계적인 재벌의 발판을 마련하고 한국미술 전문 사립박물관인 호암미술관을 설립하며 그 개관 1주년 기념전으로 <민화걸작전>을 연 이병철 회장을 연상케 한다. 두 사람은 어쩌면 그토록 비슷할까? 이 정도면 요즘 유행하는 말로 싱크로율 100% 쯤에 해당할 것이다.

 

글 : 정병모(경주대학교 문화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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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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