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색 빛깔의 무지개, 민화 색채론上

도 1, 책거리,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한류 열풍의 주역인 ‘대장금’이란 드라마가 붐을 이룰 때, ‘대장금’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외국인에게 설문조사를 했다. 주인공인 이영애의 캐릭터가 매력적이기 때문에, ‘대장금’에 나오는 한식에 관심이 많아서, 스토리가 독특하고 재미가 있어서 등 여러 대답이 나왔는데, 그중에서 의외로 ‘대장금’에 나타나는 색채가 독특하고 한국적이기 때문이란 대답도 적지 않게 나왔다고 한다. 우리 눈엔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화면상의 한국적인 색채들이 외국인에겐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던 것이다. 색채는 가장 먼저 눈을 자극하는 시각적 요소이기 때문에 다른 무엇보다 그 나라, 그 민족을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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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는 자연의 빛깔, 취향과 정서,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다

민화는 오방색으로 그려진 채색화다. 물론 100% 다 채색화가 아니라 수묵화도 더러 있고, 100% 모두 오방색으로만 그려진 것은 아니지만, 채색화가 주류고, 오방색이 민화를 대표한다. 채색화는 그 나라가 위치한 자연의 빛깔을 반영한다. 자연안료를 사용하는 전통회화에 나타나는 중요한 특색이다. 붉은색 안료를 만들기 위해서는 붉은 색 돌을 빻아서 붉은 색을 만들고, 파란색 안료를 만들기 위해서는 파란 색 돌을 빻아서 파란 색을 만든다. 자연의 돌 색이 안료의 색을 결정한다. 한국의 전통안료가 우리 자연 빛깔을 띠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중국의 안료는 중국의 자연 빛깔, 일본의 안료는 일본의 자연 빛깔을 내는 것이다.
물론 전통안료의 색상은 자연환경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또 다른 요인이 작용하는데, 바로 각 나라별 혹은 민족별 취향과 정서와 세계관이다. 같은 붉은색이라도 우리 민화의 붉은색, 중국 민간연화의 붉은색, 일본 우키요에의 붉은색에 대한 느낌이 각기 다르다. 이러한 색감의 차이는 근본적으로 자연에서 비롯되지만 나라별 좋아하는 붉은색에 대한 취향과 정서도 무시못할 요인이다. 우리의 붉은 빛깔은 비교적 맑고 따뜻하며, 중국의 붉은 빛깔은 강렬하고 정열적이며, 일본의 붉은 빛깔은 감각적이고 세련된 면이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뿐인가? 색채에 대한 이데올로기도 민화 색채의 특색을 살피는 데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조선은 유교 국가다. 유교는 생활의 디테일한 측면까지 파고드는데, 심지어 색채의 사용에까지 규제를 가했다. 원조인 중국보다 철저한 유교 국가인 조선에서는 유교 윤리가 허용한 범위 안에서 채색을 사용했다. 유교의 이데올로기가 색채를 지배한 것이다.
민화는 가장 한국적인 그림이다. 한국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고, 한국적인 공간이 펼쳐져 있으며, 한국적인 색이 뚜렷하다. 이들 가운데 대표적으로 내세울 만한 특색이 오방색의 색채다. 이러한 색채를 통해서 어떤 점이 한국적이고, 그 특색은 무엇이며 어떤 의의가 있는지 같이 생각해보기로 한다.

오방색은 근본의 색이자 정통의 색이다

민화=오방색. 이러한 등식이 우리에게 각인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원래 오방색은 민화뿐만 아니라 조선불화, 궁중장식화 등에서 한국 채색화 전체를 대표하는 색채다. 그런데 현대 민화작가들이 민화뿐만 아니라 궁중장식화도 그리면서, 자연스럽게 오방색이 민화의 대표적인 색채로 자리잡은 것이다.
오방색이란 무엇인가? 오방색은 동서남북과 중앙의 방위를 대표하는 색채다. 이는 우주만물을 다섯 가지 물질의 구성으로 보는 오행설五行說에서 나온 것이다. 다섯 방위에는 각각 그곳을 지키는 상서로운 동물이 있다. 동쪽에는 청룡, 서쪽에는 백호, 남쪽에는 주작, 북쪽에는 현무, 중앙에는 황룡이다. 이들 동물은 각기 고유의 색채를 갖고 있다. 청룡은 청색, 백호는 백색, 주작은 주색, 형무는 흑색, 황룡은 황색이다. 여기서 가장 근본을 이루는 오방색이 탄생한 것이다. 이는 서양의 원색原色과 비슷한 개념이지만, 그것이 출현한 맥락은 다르다.
원래 오방색은 중국에서 시작하여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지역에서 사용되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만 고집스럽게 오방색의 원칙을 지켰고,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오방색에서 벗어나 다채로워지면서 간색을 선호하는 등 변화를 보였다. 오방색이 중국에서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화의 대표적인 특색을 이루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방색은 ‘정색正色’이라고 불린다. 올바른 정통의 색채라는 뜻이다. 유난히 원칙과 정통을 존중하는 한국인이 순수한 오방색을 선호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국인이 얼마나 정통성에 집착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조선의 소중화사상小中華思想이다. 중화의 정통성을 갖고 있는 명나라가 멸망하고 만주족인 청나라가 들어서자, 조선의 선비들은 청나라를 받아들이지 않고 명나라가 가진 중화의 정통성을 조선이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이 바로 작은 중화라는 의미의 소중화사상이다. 심지어 명이 멸망한 뒤에도 숭정이란 명의 연호를 계속 사용한 나라는 지구상에서 조선밖에 없었을 정도다. 그 때문에 조선은 정묘호란이나 병자호란 같은 청나라의 침입을 두 번이나 받는 값 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공자는 자주색이 주색(붉은 색)을 뺏는 것을 미워한다고 했다. 『논어』 양화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문장을 해석한 주자朱子의 집주集主를 보면 주색은 정색正色이고 자색은 간색間色이라 좋아하지 않은 것이라 했다. 오방색은 정색으로 올바르고 정통이지만, 다른 색은 간색으로, 그르고 이단이라고 재단한 것이다. 윤리적인 이데올로기가 예술적인 감각을 지배했던 것이다. 유교 국가인 조선에서 공자의 말씀을 충실히 따랐기에 그의 말씀대로 오방색을 고수한 것이다.
오방색의 매력은 무엇인가? 첫눈에 오방색은 순수하고 강렬하다. 또한 정서적으로 보면, 밝고 명랑하고 건강하다. 단순하고 강렬한 오방색의 특색은 근본주의적 미술을 추구하는 현대미술에는 딱 들어맞는다. 예를 들어 몬드리안은 우주적 질서를 기하학적인 조형과 원색으로 나타내었다. 미술의 근본적인 미의식과 표현에 대한 철학적인 탐색이 이루어진 변화였다. 원색과 같은 미술의 기본적인 요소는 우리가 갖고 있는 감성의 근본을 자극하는 힘을 갖고 있다.

한국회화에서 보편적인 적색과 청색의 조합

2002년 월드컵은 4강의 실력을 세계에 과시한 점이 무엇보다 큰 성과이지만, 한국의 색채를 세계인에게 각인 시킨 것도 크나큰 소득이다. 2002년 11월, 서울시청 광장에 붉은 물결이 치는 가운데 적색과 청색으로 이루어진 태극 문양이 세계인의 가슴을 움직였다. 브라질 호나우두의 드리볼을 한국의 홍명보가 저지하는 장면은 브라질과 한국의 색채 대결처럼 보인다. 한국의 태극을 상징하는 유니폼과 브라질 국기를 상징하는 유니폼이 두 축구영웅의 대결을 넘어 색채의 대결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처럼 한국인에겐 무의식적으로 익숙해져서 너무나 자연스러운 색채의 조화가 있다. 바로 국기인 태극기 태극문양에 보이는 적색과 청색의 조화로, 민화를 비롯한 우리나라 미술 속 색채 조합의 핵심이자 이상이다. 태극의 원 가운데 적색과 청색이 ‘∼’형태로 맞물려 있다. 적색은 음, 청색은 양을 상징하는 것으로, 밤과 낮, 햇빛과 그늘, 동과 정, 남과 여처럼 상대적인 관계를 보여준다. 음양오행설로 보면, 청색(녹색)과 적색(주황색)을 상생하는 관계로 가장 이상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조화인 것이다.
서양의 시각으로 보면, 적색과 청색은 보색관계다. 보색이란 두 색을 섞으면 무채색이 되는 색채간의 관계를 말한다. 보색의 관계를 갖는 두 색은 상치되는 색으로, 이 둘을 나란히 배치하면 시각적으로 부딪치기 때문에 대비의 효과가 강하게 일어난다. 동아시아에서는 이 두 색의 관계가 활기차고 생기가 넘치는 상생의 관계로 오히려 최고의 조합으로 여긴다.
민화에서도 가장 선호한 배합은 청색(녹색)과 적색(주황색)의 조화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책거리〉는 적색과 녹색 또는 청색의 조합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맨 아래에는 청색의 책이 깔려 있고, 그 위에 적색의 책갑이 놓여 있으며, 다시 그 위로 녹색 또는 청색의 서갑이 보인다. 청색과 녹색의 반복적인 구성이 명확한 패턴을 이루고 있다. 색채의 수는 많지 않지만, 단순명료한 색의 구성이 감상자에게 화려함과 더불어 강한 임팩트를 준다.
이러한 적색과 청색의 조합은 불화, 궁중장식화와 같은 전통채색화에서도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1781년에 제작된 〈쌍계사 삼장탱〉 중 지장보살도를 보면, 주인공인 지장보살을 무독귀왕과 도명존자, 시왕 등이 빙 둘러싸고 있는 구도를 취하고 있다. 이 불화에서 가장 많은 색면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녹색과 적색이다. 바탕에 깔린 녹색이 화면을 싱그럽게 이끄는 가운데, 적색과 청색이 상들의 위엄을 돋보이게 하는 장식적 역할을 한다. 이러한 적색과 청색의 대비 및 조화가 이 불화의 전반적인 인상을 대표한다.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된 〈일월오봉도〉는 어좌 뒤나 임금의 초상화인 어진 뒤에 설치되는 궁중의 대표적인 회화다. 자연을 대표하는 산, 소나무, 해와 달, 물로써 왕권을 상징한다. 좌우 동형의 구도에 도식적인 표현이 엄격하고 흐트러짐 없는 이미지를 나타낸다. 일반적으로 도식적인 표현보다 사실적인 표현을 더 격조가 높은 것으로 평가하지만, 위엄과 권위를 나타내는 궁중회화에서는 오히려 그 반대다. 도식적인 표현이 더 권위가 있다. 화면의 배경이 되는 산, 하늘, 물의 색은 녹색과 청색이다. 그 위에서 두드러져 보이는 색은 소나무와 해의 적색이다. 녹색과 청색을 배경색, 적색을 주조색으로 사용한 것이다.
안료를 많이 사용하지 않은 민화에서는 적색과 청색의 조화라는 한국회화의 보편적인 조합을 선택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가장 적은 색으로 가장 강렬하고 활기찬 색채의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 적색과 청색의 조화다.

 

글 : 정병모(경주대학교 문화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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