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방신장도 五方神將圖Ⅱ

사람들은 각 방위에는 방위를 상징하는 색이 있고, 그 방위를 담당하는 신이 있다고 여긴다.
그리고 다섯 방위를 수호하는 신장을 오방신장五方神將이라 부른다. 이번 시간에는 지난 시간에 이어 두 장의 오방신장도를 비교해 보고, 이를 통해 두 장의 초본을 그린 인물이 동일한 인물이라는 증거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글 이다정 (가회민화박물관 객원연구원)


큰 공통점, 근거가 될 수 있을까?

지난 시간에 설명했던 것처럼 두 장의 초본에서는 상당한 차이점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어떤 근거로 두 초본을 동일인물이 그린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일까? 두 초본을 자세히 살펴보자.
두 장의 초본을 나란히 놓고 보면, 두 장의 초본을 접은 선이 동일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한 사람이 두 장의 초본을 그린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실제로 황해도 무신도의 경우 동일한 접기 방식으로 무신도를 보관하기 때문에 접은 선이 무신도가 그려진 지역을 구분하는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초본을 접은 선만으로 두 장의 초본이 동일한 사람의 손으로 그려졌다고 보기는 다소 어렵다. 나중에 이 두 초본을 소장했던 사람이 보관을 위해 접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초본을 접은 선은 두 장의 초본이 같은 사람의 손에서 그려졌다는 근거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두 초본을 동일한 사람이 그린 것이라는 근거가 될 수 있을까?


(좌) 도1 오방신장도 초본,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 (우) 도2 오방신장도 초본,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작은 공통점은 근거가 될 수 있을까?

두 장의 초본 모두 여러 곳에 각 부분에 들어가야 할 다양한 색채명이 쓰여 있다. 더불어 복식 중 어디에 해당하는 부분인지 적어놓은 것 또한 확인할 수 있다. 이를 미루어 봤을 때 이 두 장의 초본 모두 작가가 가지고 있으면서 무신도를 제작할 때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도4 오방신장도 초본 부분,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도3과 도4는 각각의 초본을 확대한 것이다. 도3은 먹으로 색채명을 썼고, 도4는 연필로 쓴 것임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도3의 색채명은 초본을 그릴 당시에 썼고, 도4는 초본을 그린 후 나중에 썼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두 장의 초본에 쓰인 글씨가 많이 닮은 것을 볼 수 있다. 필체는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기 때문에 필체가 동일하다는 것은 같은 사람이 썼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같은 사람이 다른 글씨체로 쓰는 경우라도 ‘공통적인 습관’을 고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필체감별을 통해 같은 사람이 썼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두 장의 초본은 필체만 닮은 것이 아니다. 표기법 또한 동일한 것을 볼 수 있는데, 두 초본에서 모두 아래아 ‘ㆍ’가 표기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래아 ‘ㆍ’는 1912년 4월 우리나라의 보통학교에서 사용할 교과서 제작을 위해 일제가 제정, 공표한 《보통학교용언문철자법普通學校用諺文綴字法》에서 폐지되었다. 이어 조선어학회 총회에서 1933년 공표한 조선어학회의 《한글마춤법통일안》은 모음에서 아래아 ‘ㆍ’는 ‘ㅏ‘로 표기하도록 하여 공식적으로 아래아 ‘ㆍ’가 사라지게 되었다. 이 표기법을 통해 이 두 장의 초본이 1933년 이전에 그려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할 수 있다. 물론 맞춤법이 제정되었다고 해서 그 맞춤법이 곧바로 실생활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문제점이 있기 때문에 1933년 이후에 그려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왜 맞춤법이 곧바로 실생활에 적용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읍니다’가 ‘-습니다’로 바뀌는 과정을 생각해보시길 바란다. 맞춤법이 사람들의 언어생활에 완전히 적용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필체와 표기법이 동일한 것을 근거로 두 장의 초본이 동일한 사람의 손에서 태어났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표기법을 통해 이 두 초본이 1930년대 이전에 그려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었다. 한 사물과 다른 사물의 연관성은 큰 부분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아주 작은 부분에서도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작은 것이라도 놓치지 않고 살펴보는 눈을 길러야 할 것이다.


이다정 | 가회민화박물관 객원연구원

백석대학교 기독교박물관 학예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성백제박물관 학예연구원, 가회민화박물관 객원연구원이다.
월간민화 창간호부터 민화 초본에 대한 칼럼을 기고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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