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과거의 현재적 지속과 의미 무신도

용왕도, 20세기, 52x83.2cm
무신도

인간들은 신을 쉽게 보고 만날 수 있도록 가시화하는 장치를 마련한다. 이것이 곧 무신도巫神圖다. 신의 형상을 그린 그림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무신도라는 용어 대신에 무화巫畵, 신화神畵, 무속화巫俗畵, 무신화巫神畵 등을 쓰기도 하나 널리 지지받지 못하고 연구자 제각각의 용어로 쓰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용어들은 무속 현장의 용어는 아니다. 무신도 역시 학자들의 용어라는 점에서 ‘무속적’이지 못하다. 무당들은 정작 이런 말들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무신도를 크게 두 가지 양식, 그림과 문자로 표현된 사례를 통해 우리 무신도의 전통과 의미를 살펴보자.

오래된 편견, 그러나 뿌리 깊은 전통

무속에 대한 여러 가지 오해와 편견에도 불구하고 무속은 우리 역사와 함께하며 오늘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기층문화의 굳건한 요소로 자리 잡아 우리의 삶과 현대인의 생각까지 두루 영향을 끼치고 있다. 애써 이런 사실을 무시한다 해도 무속문화의 뿌리 깊은 전통은 쉽사리 없어질 것 같지 않다. 무속이란 무엇인가? 여러 가지 학술적인 답변이 가능하지만 무엇보다도 ‘무속은 신과 소통하는 종교의 한 현상’이라는 짧은 답변이 오히려 명쾌할 것 같다. 그러나 이렇게 답변을 해놓고 보니, 신은 누구이며, 어떻게 형상화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 뒤따른다.
신은 무엇인가, 어떻게 형상화하는가? 이런 질문에 ‘신은 자연의 절대성과 강력한 에너지를 인식하고, 이를 나름대로 인격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신의 존재성이 절대적 지고신至高神인가 아닌가는 논외로 하고, 자연 속에 존재하는 ‘거대한 힘이나 정신’을 가리키는 객관적인 용어로 한정한다. 그리고 ‘나름대로’ 인격화한 것이란 말은 각자의 교의敎義에 따라 인격화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종교마다 신이 다르고 형상이 다르며, 숭신崇信의 방법이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정작 신을 볼 수 없다. 가시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인간들은 신을 쉽게 보고 만날 수 있도록 가시화하는 장치를 마련한다. 이것이 곧 무신도巫神圖다. 신의 형상을 그린 그림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무신도라는 용어 대신에 무화巫畵, 신화神畵, 무속화巫俗畵, 무신화巫神畵 등을 쓰기도 하나 널리 지지를 받지 못하고 연구자 제각각의 용어로 쓰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용어들이 무속 현장의 용어는 아니다. 무신도 역시 학자들의 용어라는 점에서 ‘무속적’이지 못하다. 무당들은 정작 이런 말들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무신도는 지역에 따라 탱화, 환, 전안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황해도 무당들은 무신도를 ‘마지’, ‘화분’이라 부른다. 이런 이름 외에도 ‘신령님, 할아버지’라 부르는 경우도 많다. 이들은 신령 하나하나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두루 높여서 부르는 이름이다. 무당 사이에서 실제로 쓰는 말이기에 가장 지시성이 강한 용어다.
환은 그림을 뜻하는 畵에서 왔다. 그림 그리는 사람을 일컬어 ‘환쟁이’라 낮추어 말했는데, 이때의 ‘환’이 바로 무신도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화분은 어디서 비롯된 말인지 정확한 어의를 알 수 없다. 짐작컨대 그림을 가리키는 ‘화畵’와 사람을 높여 부르는 ‘분’이 합쳐진 말인 것 같다. 화에 그려진 신을 높여 부르는 의미로 말이다. 마지는 무신도를 마지麻紙에 그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탱화는 부처, 보살들을 그려서 벽에 거는 불교 용어를 가져다 쓴 것이 분명하다.

용왕도, 20세기, 52x83.2cm
산신도, 20세기, 56.9x91cm
칠성도, 20세기, 51x83cm
일월성신도, 20세기, 50.7x80.6cm
오방신장도, 20세기, 54x92.5cm
오방신장도, 20세기, 53x95.2cm
관우장군도, 20세기, 54x85cm
삼불제석도, 20세기, 51.6x82.5cm
병마장군도, 20세기, 76x100.5cm
산토신령도, 20세기, 76x100.5cm
신위형 무신도, 20세기, 각 24x70cm
신위형 무신도, 20세기, 각 24x70cm
 
신들을 특정 방식으로 특정한다

무신도는 ‘巫神+圖’이고, ‘巫+神+圖’이다. ‘巫神+圖’는 무속에서 존재하는 신을 그린 그림이라는 뜻이고, 무속신앙에서 숭신되는 신을 그린 그림이다. 그러므로 무신도는 무속巫俗의 존재 양식과 관념을 분명히 드러낸다. 이를테면 ‘산신도’를 통해 산신의 존재 양상을 밝힐 수 있고, ‘산의 신’으로서 위치와 성격을 알려준다.
그러나 ‘巫神+圖’보다 더욱 세분된 개념이 ‘巫+神+圖’이다. 이때의 ‘巫’는 종교 현상의 하나로서 전승 배경을 가리키고, ‘神’은 그림의 주제가 신 또는 신격神格이라는 회화의 대상을 가리키며, 圖는 대상을 구체화한 방식 및 형태로서의 그림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무신도는 이름에서부터 불화와 다르고, 일반인의 초상화와도 다르다.
무신도는 무당들이 받들고 모시는 여러 신령을 형상화한 그림이다. 절대적이고 추상적인 신이 존재한다고 상정想定하는 사고를 물질적 상징으로 고정하여 구체화할 때, 두 가지 방식을 취한다. 하나는 사람의 형상으로 그리는 그림 방식이고, 또 하나는 신의 이름神名을 종이나 천 위에 적는 글자 방식이다. 뒤의 것을 신위神位라 부른다.
무신도는 그림으로 그리는 경우, 사람의 형상이지만 신에 따라 달리 그려진다. 이를테면 용왕과 산신을 어떻게 구별하여 그릴 것인가. 둘 다 본 적이 없으므로 ‘용왕’과 ‘산신’의 추상개념이 앞설 수밖에 없다. 용왕은 강과 바다 등 온갖 물을 대표하는 신을 형상화한 것이고, 산신은 크고 작은 모든 산을 대표하는 신을 구체화한 것이다. 형상을 구체화할 때, 용왕은 ‘물’과 ‘용’을 근거로 하고, 산신은 ‘산’과 ‘호랑이’를 근거로 한다. 그래서 용왕은 물 위에 있거나 용의 호위를 받는 양상으로 그려지고, 산신은 산과 소나무를 배경으로 호랑이를 거느리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그 모습은 남성이되 ‘할아버지’ 정도 되는 노인으로 도식화한다.
이 모두가 인간이 만들어낸 개념이다. 비록 물질적 상징이 뻔한 개념일지라도 이처럼 무신도는 단순한 모티프를 강조하고, 화제話題의 중심점으로 삼는다. 칠성도七星圖는 북두칠성을 의인화한 그림이다. 흔히 인간의 수명을 관장한다는 북두칠성을 신으로 그릴 때, 일곱 개의 별을 모티프로 차용하여 사람을 그리고, 이들이 쓴 양관梁冠에 별을 동그랗게 그려 칠성임을 표시한다. 하나 같이 남성의 모습인데, 마치 관리처럼 홀笏을 들고 있어 왕조시대의 권위 있는 문관의 모습을 취했다. 이들이 칠성인 것은 일곱 명의 홀을 든 남성이기 때문이다. 이는 일종의 기호적 표현이고, 집단적인 보존 체계에 의한 상징이다.
일월성신도日月星辰圖는 해와 달을 상징하는 신을 그린 그림이다. 해와 달을 모티프로 하되, 사람의 형상을 그린다. 두 사람을 좌우로 배치하고, 이들이 쓴 양관의 중앙에 해와 달을 각각 그렸다. 흔히 ‘붉은 해, 흰 달’을 그리는데, 이는 전통적으로 해와 달을 좌우로 배치하는 방식을 그대로 따랐다. 이것이 일월성신을 상징하는 도상이다. 이런 측면에서 무신도는 기술적인 미술(art description)에서 그림문자(pictograph) 차원으로 존재하는 특별한 그림이다.
이렇게 본다면 무신도를 제작할 때 관습적으로 적용되는 문법이 있음이 분명하다. 몇 가지 작법作法을 차례로 살펴본다.
첫째, 주신主神 중심의 화면을 구성하는 방식이다. 중심 신격을 중앙에 크게 그리고 보조적인 신격을 좌우에 작게 그린다. 크기의 대소와 위치를 철저하게 고수함으로써 하나의 정형성을 확립한 그림이 무신도다. 때로는 오방신장도五方神將圖나 칠성도처럼 대등한 성격의 인물이 다수일 때 화면을 균등 분할하여 화면을 처리하고, 크기를 균일하게 하여 개별적 차이가 드러나지 않게 한다. 오방위는 위계位階가 아닌 위상적位相的 개념이 담긴 공간 용어이기 때문이다.
둘째, 신을 표현할 때 특정의 지물持物로 신격을 특정화한다. 지물은 주신이 손에 직접 드는 물건이기도 하지만 보조인물이 들기도 한다. 산신도에는 부채, 영지버섯, 지팡이, 인삼, 불로초 등이 등장하고, 삼불제석도에는 과일, 쌀, 징, 연꽃 등이 등장한다. 관우장군도에는 『춘추』와 활, 화살, 칼 등이 등장하고, 대신도에는 방울, 부채, 엽전, 쌀 등이 나타난다. 이들은 그림에 특정 신격을 부여하는 상징의 요소들이며, 내용을 규제하는 문자소(grapheme)다. 따라서 내용을 표현하는 일상의 형상과 소통이 가능한 문자적 기능을 하는 수단들이 상호 결합한 조형이다.
특정 지물은 그 자체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특정의 상징성을 지시한다. 예컨대, 공자의 『춘추』를 든 인물은 관우장군이고, 책을 들고 무엇인가를 적고 있는 신격은 조왕신이다. 그러므로 ‘책(춘추)’ 하면 관우로 표상되고, 관우는 곧 대의명분을 앞세운 의로운 인물로서의 상징인 ‘책’이 앞서는 것이다. 칠성신은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신이기 때문에 장수의 상징인 ‘반도蟠桃’가 빠질 수 없다. 반도는 서왕모가 요지瑤池의 반도회蟠桃會에서 내놓는 복숭아인데, 이를 먹으면 삼천 년을 산다는 영물靈物이다. 이것을 칠성과 연결하는 것은 상징(七星)과 상징(蟠桃)의 자연스러운 결합이고, 상징의 중첩을 통해 본디의 상징성을 극대화한다. 이처럼 어떤 지물을 쓰느냐 하는 것은 신의 성격과 직능職能에 따라 다르고, 이런 차별은 무신도를 그릴 때 철저하게 준수된다. 무신도를 일컬어 ‘그림문자’의 측면이 있다고 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셋째, 숫자의 정형성을 적극 반영한다. 대표적인 숫자는 3, 5, 7, 8이다. 사람의 명과 복을 관장하는 삼불제석은 반드시 3위位의 신이 등장하고, 동서남북과 중앙을 관장하는 방위신인 오방신장은 반드시 5위이다. 마찬가지로 칠성은 7위이고, 팔선녀는 8위이다. 무신도의 이름 역시 그림의 작법처럼 숫자를 앞세운다. 삼불제석의 3과 오방신방의 5, 칠성의 7, 팔선의 8이 그렇다.
무신도는 중심이 되는 주신主神만을 그리는 것이 기본이고, 필요에 따라 좌우로 보조인물을 작게 넣기도 한다. 일정 크기의 화면에 한두 사람을 그리는 방식인데, 삼불제석, 오방신장, 칠성, 팔선녀를 숫자대로 그린다는 것은 다소 무리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개별로서의 가치보다 총체로서의 가치가 있고, 신들간의 차별적인 위계가 없이 동등하다. 신위가 몇 명이라도 무조건 함께해야 의미를 갖는 그림이므로 나름의 배치 방식을 고안하고 있다. 칠성의 경우, 상단에 셋, 하단에 넷을 그려 넣는데, 상단의 인물은 정면을 향하고 하단은 좌우의 신이 중앙을 향해 그려진다. 그러므로 하단의 신은 측면의 모습이 된다. 이것은 하나의 정형성을 띠나 때로는 상단의 3위를 크게 그리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는 3위와 4위의 크기를 조절하려는 의도이지 신격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오방신장도는 오방신을 그린 무신도이니 5신위로 분명하게 나타난다. 오방위는 각각의 특정 색상을 지니므로 신장 역시 이를 반영하여 청東, 백西, 적南, 흑北, 황색中央으로 방위를 상징화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무신도에서의 숫자는 정형화되어 있다. 그러기 때문에 무신巫神의 얼굴을 살피지 않아도 숫자를 통해 도상의 성격을 쉽게 알 수 있다.
넷째, 무신도는 전통의 관습적인 색상custom color을 적극 활용한다. 무신도의 전체가 원색 톤의 무거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한편으로 신비로운 느낌이 드는 것은 이 때문이다. 색채의 효과는 시각적인 감각에서 출발하지만 심리적인 경험과 상징에 의해 결정되고, 마침내 집단적 사고의 보존체계에 의해 관행화된다. 무신도의 색상은 오방색에서 비롯된다. 경험적으로 오방색이 갖는 심리적 경험이 반영되어 있으며, 오방이 지닌 상징성을 두루 담아내고 있다. 오방색 가운데 특히 벽사와 수호, 생명을 상징하는 적색과 청색을 많이 쓴다. 이런 까닭에 무신도는 기운 생동한 생동감이 강하고, 원초적인 느낌을 발산한다. 이는 신의 위엄을 드러내는 하나의 방식이고, 색깔 자체를 통해 신격을 극대화시키는 기법이다. 이와 함께 색과의 대비를 통해 명도를 드러내는 방식을 취한다. 이는 묵의 농담으로 명도 대비를 드러내는 수묵화와는 다르고, 이른바 화격畫格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강렬하고 화려한 채도를 지닌 색이 주가 되고, 그 색에 부합하는 색을 대비시킴으로써 전체를 완성한다. 색과 색의 경계면을 무채색으로 처리하거나 과감한 보색補色 대비를 통해 전체의 분위기를 이끌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유치하고 원초적인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이런 느낌 자체가 ‘서양화 작법에 길들여진 시각으로 얻은 감각적 느낌’일 수 있다. 그만큼 무신도의 색채 운용 기법이 남다르다는 것이다.
다섯째, 신의 외모에 차이를 두지 않는다. ‘신’ 자체가 추상적인 존재이므로 이를 사람의 형상으로 묘사할 때, 신의 특징을 잡아 형상화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무신도는 그런 방식을 택하지 않는다. 얼굴 하나만 놓고 보면 남녀, 나이의 차이는 보일지언정 얼굴 자체의 큰 차이는 없다. 마치 한 사람이 그린 것처럼 비슷한 얼굴이고, 그림본을 쓴 것처럼 동일계통의 얼굴을 지녔다. 도상학적으로 본다면 무신도는 이미 개별적인 신격이 아니다.
그렇다면 신은 모두 같은 것인가, 그렇지 않다. 특정 신을 묘사하기 위해 비록 얼굴은 비슷하게 그린다 해도 어떤 지물을 들었는가, 몇 명으로 형상화되었는가, 복식은 무엇인가로 차별성을 부여한다. 같은 장군신일지라도 본디부터 모호한 신격은 차별적으로 그릴 수 없다. 산토신령과 병마장군은 장군이라는 이름 때문에 ‘말을 타고, 칼을 들고, 갑옷을 입은 남성신’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수용자의 입장에서 구분이 모호하다. 그렇기 때문에 무신도의 측면(화면의 바깥)이나 뒷면에 무신도의 이름을 적을 수밖에 없다. 무신도의 신이 누구인가가 인지되어야만 숭신할 수 있고, 그럴 때 지속적인 신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여섯째, 무신도에서는 배경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아니 애써 배경을 무시하는 관습이 있다. 산신도나 용왕도에서 산이나 바다가 표현되기는 하지만 이는 일부분일 뿐 전체는 아니다. 배경이 없는 그림은 초상화의 기법을 가져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인물에 초점을 맞추고, 다른 요소를 축소함으로써 인물에 집중하려는 의도이다. 일반 회화와는 다른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것 자체가 무신도의 특징이고, 무신도를 무신도답게 하는 요소다.

또 다른 양식의 무신도 : 신위형 무신도

무신도라 함은 보통 도상 위주의 그림을 말한다. 그러나 그림 대신에 글씨로 신의 이름을 표현하는 방식이 있다. 무당 사이에서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사례는 아니지만 간혹 이런 형태의 무신도를 발견할 수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특별전(2015.4.22.~6.22.)에 전시된 무신도 가운데 이와 같은 신위神位 형태의 무신도는 특별하기 때문에 주목받는다. 비단 위에 신령 이름을 한자로 적은 신위형神位形인데, 모두 18위이다. 위아래에 붉은 연꽃문양을 배치하고 중간에 신명神名을 먹으로 필사하였다. 지방을 쓰듯 신명을 쓰고 신위라는 뜻의 ‘位’자를 썼다. 명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정성을 다해 정서한 것인데, 몇몇은 2~3명의 신명을 나란히 병기하여 신위 무신도는 18매이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신은 총 23위이다.
신명은 ‘천신대감, 철장대감, 일월성신, 옥황천존, 약사보살, 부악산신령, 산신토신, 호투부인, 소열황제, 사부칠성, 용궁부인, 산대감, 조장군, 장장군, 마장군, 사해용장군, 임장군, 서산대사, 옥천대사, 오방신장, 삼불제석, 용궁불사, 천궁불사’이다. 그런데 몇몇의 신명이 잘못 쓰여 있어 주목된다. 나름의 한문 해독 능력을 가진 사람이 썼을 것인데, 명백한 오기誤記가 여럿 있다는 것은 ‘그렇게 신명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그러므로 오기를 오기로만 볼 수 없다. 몇 가지 예를 든다.
첫째, ‘虎夫人호투부인’이다. 호투부인은 후토부인后土夫人의 오기誤記로 보인다. 왜냐 하면 무속에서 호투부인은 찾을 수 없는 신이기 때문이다. 발음상 유사한 것인 후토부인인데, 이 신은 땅을 다스리는 신령으로, 후토신后土神과 짝을 이룬다. 황해도굿에서는 액운과 잡신을 물리치는 삼토신령三土神靈의 부인으로 등장한다. 둘째, ‘西可世尊서가세존’과 ‘三拂帝譯삼불제역’이다. 석가세존은 석가모니를 높여서 부른 말이며, 세존천왕이라고도 한다. 그러데 釋迦석가라 써야 할 것을 西可서가로 적었다. 삼불제석은 불교에서 온 신령으로 하늘을 다스리고 인간에게 재복·수명·잉태를 담당하는 신이다. ‘三佛’로 써야 할 것은 ‘三拂삼불’로 썼고, ‘帝釋제석’이라 할 것을 釋과 譯의 형태적 유사성에 빠져 ‘帝譯제역’이라 했다. 셋째, 龍宮拂師용궁불사, 天宮拂師천궁불사이다. 불사는 흔히 용궁과 하늘 궁전에 있는 불교 계통의 신을 부르는 말이다. 그런데 ‘佛師’를 ‘拂師’로 썼다.
이런 사례는 흔한 것은 아니다. 애초부터 알고 있었던 한자어 신명을 정성을 다해 쓴 것이다. 틀리려고 틀리게 쓴 것이 아니고, 몰라서 그렇게 쓴 것이 아니다. 이 역시 하나의 도상학적 상징이다.

무신도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모색해야

무당이 나이가 많거나 건강이 좋지 않아 무업巫業을 그만두어야 할 때가 되면 ‘하직굿’을 한다. 하직이란 어떤 일을 그만두는 것을 말함이니, 하직굿은 말 그대로 더 이상 무업을 하지 않겠노라고 신령에게 작별을 고하는 굿이다. 신령을 모실 수도 없으니 편히 좌정하라는 말도 덧붙이는데, 이 때 무신도를 태우고 쇠붙이 무구巫具를 땅에 묻기 일쑤다. 만약 태우지 않거나 남에게 주면 신이 무주고혼無主孤魂이 되어 해를 끼친다는 신앙 때문이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전집』 제2권 『노무편老巫篇』에 무신도 이야기가 처음 나온다.

丹靑滿壁神像 온 벽에다 붉고 푸른 귀신 형상을 그리고
七元九曜以標額 칠원성군과 구요성을 표액했네

이처럼 유구한 역사를 지닌 무신도지만 100여 년 전의 무신도가 흔치 않다. 민속문화라는 측면에서 아쉬운 일이고 ‘전통회화’ 내지 ‘민화’라는 차원에서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무신도는 무속에서 숭신하는 신을 그린 종교화이다. 종교적인 상징성과 의미를 찾아야 하는 대상이지만 도상학으로서 연구할 필요가 있는 영역이다. 뿐만 아니라 회화로서의 가치 또한 높다. 특히 넓은 의미에서 민화로서의 가치를 타진할 때 일반 가정에서 향유되었던 민화와의 관계 모색은 앞으로의 과제이다. 몇 사례를 제외하고 민화를 그린 사람이 알려지지 않은 것처럼 무신도 역시 누가 그렸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민화를 그린 사람이 무신도를 그렸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제작자 문제, 신격과 도상관계 등부터 하나씩 천착한다면 무신도 연구의 새로운 지평이 열릴 것이다.

 

글 : 장장식(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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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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