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시절의 전염병과 민화 그림으로 질병에 맞서다

도 1. 고양이, 1884년 경

조선 말기에 전염병이 창궐할 때면, 병마로부터 생명을 지키기 위한 그림들이 그려졌다. 질병을 물리치기 위한 주술적인 성격의 민화들이다. 이 그림들은 의술의 혜택이 미치지 못한 평민들에게 심신의 위로와 평안을 주었다. 하지만, 의학의 발달과 더불어 주술적 민화들은 차츰 효력을 잃고 무속의 공간이나 박물관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우리 무속 민화 속에 담긴 전염병의 대처법과 그것을 극복하고자 했던 간절한 형상들을 들여다본다.

전염병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공포의 대상이다. 이 무시무시한 병마病魔를 조선시대의 사람들은 어떻게 감당하였을까? 과거의 의술은 전염병의 공세에 아무런 대응조차 하지 못했다. 수많은 인명이 공포와 고통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희생되었다. 의술의 기회마저 접하지 못한 백성들은 저마다 질병의 재앙에서 벗어나고자 주술의 힘에 의존하기도 했다. 평민들은 민간신앙이나 무속의 세계에서 마음의 평온을 찾았다. 또한 기도의 대상인 조형물이나 부적符籍 등을 만들어 그것이 영험한 능력을 발휘해 주기를 빌었다.
조선 말기에 유행한 민화民畵도 이러한 배경에서 그려진 사례가 많다. 예컨대 정월초하루에 집집마다 대문에 붙인 세화歲畵도 질병이나 사악한 기운을 막고자 그린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다.
하지만, 복을 구하고 사악함을 퇴치한다는 의미의 세화는 현실이 평온할 때 이야기할 수 있는 그림이다.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과 마주선 사람들은 어떤 그림으로 위안을 삼고 또한 자신을 지키고자 했을까? 질병 앞에서 의술과 처방마저 소용이 없을 때, 사람들은 한 폭의 그림에 간절한 바람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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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라와 고양이

조선시대의 가장 공포스러운 병마는 전염병인 괴질怪疾이었다. 원인도 모른 채 죽어가는 사람들이 속출할 때, 그 질병을 ‘괴질’이라 불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괴질에 관한 기록이 적지 않게 나온다. 가장 심각했던 것은 1821년(순조 21) 신사년에 전국을 초토화시켰던 괴질이다. 무더위가 맹위를 떨치던 그 해의 8월 13일, 평안감사로부터 숨 가쁜 보고가 올라왔다. 평양부에 괴질이 발생하여 열흘 동안 1천 명이 죽었으며, 구제할 방법도 없어 눈앞의 광경이 매우 참담하다는 내용이었다. 이로부터 열흘 뒤인 8월 22일의 『순조실록』에는 괴질이 서울과 전국으로 번져 수십만 명의 사망자가 나왔다는 기록이 있다. 전염병은 급속도로 확산되어 가는데 손 쓸 방도가 없었다. 이 괴질의 정체는 19세기 말에 가서야 비로소 밝혀졌다. 바로 콜레라Cholera였다. 당시 콜레라는 음역하여 ‘호역虎疫’ 혹은 ‘호열자虎列刺’로 쓰고 불렸다. 호랑이가 살점을 찢어내는 듯한 고통을 준다는 의미다. 이 ‘호열자’는 1821년 우리나라에 처음 발병하여 백성 10만여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안타까운 재앙이었다.
콜레라를 체험한 사람은 그 무서운 공포를 잊지 못한다. 또 다시 괴질이 온다는 소문이 들리면, 이런 그림이 집집마다 붙었다. 프랑스 인류학자 샤를 바라Charles Varat(1842~1893)가 1888년에 지방을 여행할 때, 어느 마을에서 발견한 <고양이> 그림이다.(도 1) 바라는 이 그림을 콜레라의 접근을 물리치고자 한 부적 같은 그림이며, 당시의 백성들은 콜레라의 주범을 쥐로 여겼다고 소개하였다. 쥐가 발병의 원인이 되었기에 쥐의 천적인 고양이를 그려두면 콜레라가 접근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바라가 소개한 <고양이> 그림은 다분히 주술적인 의미로 그려진 것이다.
그림 속의 고양이는 점무늬가 있는 검은 고양이다. 앞발을 딛고 앉은 모습이 마치 19세기의 민화 호랑이와 흡사하다.(도 2) 당시 유행하던 까치호랑이의 호랑이 도상과 분명 연관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고양이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얌전한 모습이다. 마치 괴질에 대적하라고 사람들에게 등 떠밀려 나온 고양이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두 눈 위에 눈이 하나씩 더 그려진 것처럼 보인다.
눈 위에 눈썹을 그린 것이라고 하기에는 석연치 않다. 다시 보면, 틀림없이 네 개의 눈을 가진 비범한 고양이다. 위쪽의 두 눈은 병마를 위협하여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매서운 눈을 그리려 한 것 같다. 그러나 명확한 묘사가 되지 못했다. 그런데 아래의 두 눈은 눈망울이 무척 선해 보인다. 병으로 죽거나 고통 받는 사람들을 향한 눈물 어린 위로의 시선으로 다가온다. 민간화가가 그린 서민들의 순박한 정서가 그대로 담긴 듯한 고양이의 이미지다. 구한말의 무속화에 등장하는 인물 형상을 보면, 인간미가 느껴지는 해학적인 특색이 잘 드러나 있다. 그러한 인간미는 고양이의 이 모습과도 부합되는 일면이 있다. 화면 오른쪽 위에는 ‘雜殺退’라고 적어두었다. 아마도 떨어져 나간 한 글자는 쥐를 의미하는 ‘서鼠’자로 보인다. “잡귀인 쥐를 죽여서 물리쳐라”는 뜻이다. 전염병의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이 고양이에게 부여한 임무이자 주문인 것이다.
조선시대에 고양이를 그린 그림은 그리 많지 않다. 변상벽卞相璧이 그린 <묘작도 猫雀圖>(도 3)를 비롯한 화원화가들의 그림이 잘 알려져 있다.(도 4) 그런데 화원들은 당시 영모화翎毛畵에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던 자들이다. 이 문배 <고양이>를 그린 민간화가는 화원들의 정밀한 필치를 따라가지 못한다. 전문가와 아마추어의 차이다. 하지만, 그림을 그린 의도의 절박함으로 본다면 단연 <고양이>가 어떤 그림보다 앞설 것이다. 문배 그림인 <고양이>는 조형적인 특징보다 어떤 맥락에서 나온 그림인지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실적인 그림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사실적인 묘사가 전할 수 없는 묘한 분위기를 띠고 있다.

천연두 신神의 형상화

샤를 바라는 천연두와 관련된 문배그림에 관해서도 자신이 목격한 바를 이야기했다. “천연두가 발병하면 집집마다 나라의 으뜸 고관대작의 준엄한 의관을 갖춘 무시무시한 표정의 천연두 마귀 그림을 벽에 붙였다”고 했다. 이때 바라가 본 ‘천연두 마귀’라는 그림은 어떤 모습의 그림일까? 그의 저서 『조선기행』에는 서울 광통교에서 구입한 그림 하나를 ‘천연두 마귀’라는 제목으로 실었다.(도 5) 갓에 깃털을 꽂고 활과 칼을 찬 무관의 용모를 한 모습이다. 즉 바라는 이 그림을 인간의 모습을 빌어 형상화한 천연두의 실체로 본 것이다.
이와 비슷한 그림은 무신도에서 여러 사례를 볼 수 있다. 한 예가 <별상도 別相圖>로 알려진 그림이다.(도 6) 갑옷을 입고 언월도를 들고 있는 이 존재는 천연두를 관장하는 신이라고 한다. 보는 순간 사람들의 시선을 압도하며 금방이라도 화면 밖으로 튀어나올 듯 한 기세다. 무속화에서 ‘장군’이라는 제목을 붙인 그림 가운데 이와 유사한 도상들이 있다. 예컨대 <장군도>(도 7)로 소개된 그림은 활과 검을 등에 걸치고 앉은 형상이다. 머리에 쓴 붉은 옻칠을 한 갓에는 깃털로 만든 호수(호랑이 수염)라는 장식물을 꽂았다. 전형적인 무관의 모습이지만, 예사롭지 않은 눈매와 표정은 인간적인 범주를 넘어서 있다. 이러한 <장군도>와 같은 그림은 천연두처럼 질병과 관련된 그림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그림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존재로 설명되는가가 그 정체성을 말해주는 관건이 될 것이다.
샤를 바라는 천연두의 신을 그려서 붙여두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질병의 실체를 의인화하여 그리는 것은 그 대상에 대한 존중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즉 그림 속의 천연두 신은 퇴치해야 할 상대가 아니라 존중하고 공경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이다. 극진한 기도의 대상으로 모시고 대접함으로써 노여움을 풀고 물러가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했다.
샤를 바라는 천연두의 신에게 ‘천연두 마귀’라는 제목을 붙였지만, 당시 사람들은 ‘마마’라는 존칭을 썼다고 한다. ‘마귀’와 ‘마마’의 의미는 극과 극의 차이다. ‘마마’는 임금을 상감마마라고 불렀듯이 최고의 격을 부여한 존칭이다. 이런 명칭을 천연두에 붙인 것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질병의 신을 공경하여 노여움을 풀게 한다는 주술적 의미를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앞에서 다룬 <별상도>와 <장군도> 속의 주인공은 과연 ‘마마’라는 존칭으로 불린 천연두의 실체로 볼 수 있을까?

별성마마의 실상과 해석

민화에는 천연두와 관련하여 별성마마라는 제목을 붙인 그림이 여러 점 전한다. 별성別星은 변화하는 별의 기운을 뜻하며, 별상別相이라고도 불렀다. 몸이 허약하여 별의 기운을 얻지 못하면 천연두에 걸리게 된다는 것인데, 별성마마는 천연두의 신을 높여서 부르는 말로 쓰이고 있다. 샤를 바라는 앞서 소개한 그림 속의 존재를 천연두의 신(잡귀)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는 정반대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다시 말해서 그림에 등장한 별성마마는 천연두를 좌우하는 질병의 실체가 아니라 그 질병을 물리칠 수 있는 막강한 힘의 존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즉 그림의 주인공은 그 질병의 주관자가 아니라 병을 퇴치할 힘을 지닌 존재로 볼 수 있다. 예컨대 금사당이라는 곳에 걸린 <별상도>(도 8)처럼 창과 철퇴로 무장한 그림 속의 존재는 천연두를 잡는 영험이 있는 존재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여기에 소개하는 두 점의 그림을 보자. 조선 후기 무관의 복식을 한 인물상이다. 한 점은 <장군도>(도 9)이고, 또 한 점은 <별상도>(도 10)라는 제목을 붙였다. 원래의 제목일 수도 있지만, 이 그림을 소장하거나 정리한 사람이 붙였을 것으로 본다. 제목의 범위로 보면 앞서 본 그림들과 같은 맥락에 있다. 얼굴의 표정도 앞 그림들보다 훨씬 평온하다. 이 두 그림은 검이나 지휘봉 등을 들고서 질병의 잡귀를 위협하여 백성들을 평안히 지켜준다는 의미로 읽힌다. 그렇게 보면, 더욱 인간적인 면모와 질병퇴치의 힘을 지닌 능력자의 모습으로 마주하게 된다. 질병을 주관하는 실체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사실 질병의 주관자, 즉 질병의 실체를 인격화하여 그린 그림은 무속화에 많지 않다. 또한 그런 논리로 본다면, 이 글의 앞에서 살펴본 콜레라를 퇴치해야 할 그림은 고양이가 아니라 쥐나 쥐를 의인화한 모습이 되어야 한다. 쥐를 신격神格으로 대접하고 달래서 질병을 거두도록 해야만 같은 맥락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앞으로 검증되어야 할 가설이다. 콜레라를 퇴치해야 할 고양이, 그리고 천연두를 물리쳐야 할 별성마마는 어떻게 보면 같은 임무를 지닌 존재다.
전염병의 실체인 바이러스는 끊임 없이 변화하고 진화해 간다. 의술도 마찬가지이다. 현대 의학은 조선 말기의 괴질이 창궐하던 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전한 문명사회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 질병을 제압하는 위대한 현대 의학이나 구한말 불가항력의 상황에서 그림으로 질병에 맞서고자 했던 절박한 노력들은 모두 그 시대의 최선이 아니었을까.

 

글 : 윤진영(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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